영화 '기생충' 흑백판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흑백판 스틸컷./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지난해 한국영화는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 '기생충' '벌새' 등이 전세계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을 휩쓸며 '100년 역사' 한국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 또한 극장도 호황을 이뤘다. 역사상 처음으로 상반기에만 극장 관객수 1억명을 돌파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한국영화 앞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라는 불청객이 나타났다. 영화계는 생각지 못한 덫에 걸려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2019년 5월,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주목을 받기 시작한 '기생충'은 연일 해외에서 수상 낭보를 전했고, 올해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영화상 수상,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아카데미' 효과로 '기생충'은 역주행했다. 북미 박스오피스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면서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렸다. 이탈리아에서 단숨에 박스오피스 1위가 됐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기생충'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졌다.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에서도 흥행세를 탔다.

국내에서도 지난 2월 16일 재개봉해 박스오피스 4위까지 상승했다. 이와 함께 '기생충 흑백판' 개봉도 앞두면서 관객들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기생충' 배우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기생충' 배우들./
불과 두 달 전까지, 영화계는 '기생충'이 이룩한 신화에 감탄했고, 우리 영화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관객들도 '기생충'의 뒤를 잇는 한국영화 탄생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됐고, '영화'라는 매체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었다. 살아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두 달 사이 영화계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 처참하게 부서졌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등이 주연을 맡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감독 우민호)부터 전도연, 정우성, 배성우 주연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까지 올 초 흥행을 예상했던 작품들이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흥행에 참패했다. 또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등 충무로 대세들이 출연하고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은 '사냥의 시간'은 개봉을 미루다 결국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로 공개를 결정했다.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고, 2월에는 감염병 심각단계로 격상됐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이런 가운데 영화 촬영, 개봉, 홍보 등 모든 일정이 올스톱 됐다. '결백' '콜' '침입자' 등 3월 개봉키로 한 영화 대부분이 일정을 연기했으며 크랭크인을 앞둔 영화들도 일정을 미뤘다.

3월 중순부터는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국도 우리나라 영화계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극장을 폐쇄하고, 블록버스터 대작들의 개봉을 결국 연기했다. 유럽, 아프리카 할 것 없이 코로나 19가 확산되자 해외에서 촬영중이던 우리나라의 배우, 제작진들도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급하게 귀국했다.

한국영화계는 순식간에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개봉일이 밀리면서 영화판은 어수선해졌고, 배우들의 스케줄도 꼬였다. 촬영, 홍보 등이 스톱되면서 경제적 손실이 막대해졌다. 제작·배급사 등은 코로나19 사태가 하루 빨리 끝나길 바라면서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이며, 코로나19 이후에도 어떻게 수습해야 할 지 고민이 깊다.
한산한 극장가./ 사진=텐아시아DB
한산한 극장가./ 사진=텐아시아DB
극장도 역대 최대 위기를 맞았다. CGV 등 대형 멀리플렉스도 일부 극장 문을 닫았다. 신작이 걸리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캠페인이 펼쳐지면서 관객수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일 극장을 찾은 총 관객 수는 1만 5726명이다. 2004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저다.

코로나19대책영화인연대회의는 지난달과 이달 초 연이어 성명을 내고 영화계 위기 상황과 관련해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코로나19대책영화인연대회의는 "한국영화 100년, 그리고 영화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으로 한국영화는 온 세계에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이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한국 영화산업은 코로나19라는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파도를 만났다. 한국 영화산업은 지금 그 깊이조차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관의 매출 감소는 곧 영화산업 전체의 붕괴를 의미한다"며 "영화산업의 위기는 결국 대량 실업사태를 초래하고 이로 인해 한국영화의 급격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국영화를 확산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 동안 쌓아온 한국영화의 위상 마저도 한 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영화산업은 정부의 지원에서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영화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산업의 시급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며 "자칫 이렇게 가다가는 영화산업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지금 당장 정책 실행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한 "영화산업 지원,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며 "정부는 기다리라고만 한다. 심장이 멈춰 당장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중환자에게 체온만 재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 1일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어려움에 부닥친 영화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영화발전기금 부과금 한시 감면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영화계는 정부가 영화산업 위기를 인식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선 그나마 다행이라는 입장이지만, 지원책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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