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이 글에는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릴 적 면목동 반지하 집에서 1년여 간 살았던 적이 있다. 벽지에는 곰팡이가 얼룩얼룩 번졌고, 방바닥은 축축했던 그 집에서 약골이었던 여동생은 줄곧 아팠다.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와 놀이가 넘쳐나던 면목동 시절을 이따금 되새겼지만, 반지하 집만큼은 제외였다. 그런데 내가 겨우겨우 되삼켰던 기억을 영화 ‘기생충’이 게워냈다. 눈물이 떨어졌다. 뚝뚝.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살고 있는 반지하 집. 습한 곳을 좋아하는 꼽등이는 이 집의 식구처럼 천연스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요금 미납으로 핸드폰이 끊긴 오누이 기우(최우식 분)와 기정(박소담 분)은 공짜 와이파이를 찾아서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진다. 기택은 아내 충숙(장혜진 분)이 부업으로 하는 피자 박스 건으로 피자집 사장과 실랑이가 오가는 순간에도 먼 산 불구경 하듯 짐짓 모른 척한다.

기택의 가족이 모처럼 필라이트를 한 캔씩 들이키고 있는데 창밖에서 취객이 오줌을 갈기려고 한다. 마침 찾아온 기우의 명문대생 친구 민혁(박서준 분)이 취객에게 정신 차리라며 호통을 친다. 기택은 대학생 민혁의 기세에 탄복한다. 그리고 민혁이 재물운과 합격운을 불러온다며 들고 온, 참으로 시의적절한 선물 산수경석(山水景石)에도. 유학을 떠나는 민혁은 고2 다혜(정지소 분)의 영어 과외를 기우에게 넘긴다. 민혁은 명문대생도 심지어 대학생도 아닌 기우가 주저하자 4수생 경험을 운운하면서 설득한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 집 사모님이 영 앤 심플해.”

기우가 글로벌 IT기업의 CEO 박동익(이선균 분)의 집으로 면접을 보러 나선다. 기택은 계획이 있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정성껏 산수경석을 씻는 충숙은 모서리가 해어진 가방을 메고 짤따란 양복을 입은 아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건축가 남궁현자가 지은 걸작 하우스에서 사모님 연교(조여정 분)로부터 합격점을 받은 기우는 동생 기정까지 인디언 덕후 10살 다송(정현준 분)의 미술 교사로 일하게끔 주도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버지 기택은 운전기사로, 어머니 충숙은 가사 도우미로 들어앉힌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봉준호의 영화, 아니 우화 속으로 들어온 배우들은 예사롭지 않은 연기로 인물을 구현하며 수상에 힘을 보탰다. 특히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로 이어지는 ‘봉준호의 페르소나’인 송강호는 이번 작품에서도 작가 봉준호의 문체가 되어서 스크린으로 사르륵 숨어들었다.

송강호가 분한 기택은 감정을 확 지르지도, 쉬이 내비치지도 않는다. 극 중에 나오는 복숭아를 떠올리게 한다. 불그스레한 얼굴은 외양을, 온화한 성품은 달큼하고 물렁한 속살을, 일순간의 칼부림은 상대에 따라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것까지. 송강호는 기택의 무력한 처지부터 뭉근한 감정선, 후반에 몰리는 감정의 낙차까지 선연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인디언 분장을 한 송강호의 눈빛은 더 스산하게 다가온다. ‘김 기사님 스멜’(인물의 존재감)은 ‘선’(스크린)을 넘어서 관객의 뼛속까지 진하게 퍼진다.

기택의 가족은 일확천금을 노린 것이 아니라 그저 가난을 물리치고 싶었을 따름이다. 위장 취업이라는 극단적 방법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박 사장네가 다송의 생일을 맞이해 캠핑을 떠나고 집을 비운 동안, 기택의 가족은 빈 공간마다 자신들을 대입한다. ‘믿음의 벨트’를 강조하는 연교로서는 기절초풍할 풍경이다. 기택 부부는 고용주인 연교에 대한 상반된 평가도 내린다. 기택은 부자인데도 착하다고, 충숙은 부자라서 착하다고.

번개가 친다. 이후 상황이 어긋물리면서 영화는 희극에서 비극으로 넘어간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도 폭우를 맞이하는 온도차가 다르다. 박 사장 가족에게는 폭우가 미세먼지를 삼킨 희극이라면, 기택 가족에게는 폭우가 삶의 터전을 집어삼킨 비극이다. 혹독한 시간을 감당하지 못한 기우는 불안증을 드러내고 아버지에게 계획을 묻는다. 기택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무계획이고, 계획대로 안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답한다.

‘기생충’의 첫 문장은 양말 건조대의 집게에 매달린 양말이다. 습한 반지하에서 가까스로 해를 붙들고 있는 모습이다.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네를 붙들고 있듯이. 그렇지만 그들과 함께 박 사장네를 맞붙들고 있는, 끈끈한 존재가 있다. 바로 전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 분)과 남편 근세(박명훈 분)다. 근세는 남궁현자가 밝히지 않은, 그래서 박 사장 가족이 모르는 공간인 지하의 비밀 벙커에서 4년 3개월 17일째 버티고 있다. 빚쟁이에게 시달렸던 그는 이곳이 편하다며, 마치 이곳에서 태어난 것 같다고 한다. 컵스카우트인 다송은 혹여 알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센서등을 이용해 감사의 마음을 담은 모스부호까지 보내면서.

‘기생충’은 ‘선’과 ‘냄새’가 밑줄을 쫙 그은 문장처럼 따라붙는다. 기택의 가족은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꿔가며 박 사장의 집에 입성하지만 10살 다송에게도 들킨다. 기택과 충숙은 같은 냄새가, 기정에게도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냄새’로 농축된 궁기(窮氣)가 기택의 집에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이사를 가야만 없어지는 반지하 냄새가. 박 사장은 거실 소파에 나란히 누운 연교에게 말한다. 선을 넘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기택은 아슬하게 선을 넘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차안에 퍼지는 냄새가 선을 넘는다고. 그리고 ‘김 기사님 스멜’이란 단어로 냄새를 설명한다. 가끔 지하철을 타면 나는, 지하철 타는 분들 특유의 냄새. 소파 옆 탁자 밑에 숨어서 자식들을 곁에 두고 이 말을 듣고 있는 기택의 후끈거리는 심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기생충’은 웃다가, 울다가, 곱씹게 되는 작품이다. 심지어 영화를 보는 내내 되새김질 하게 된다고나 할까. 우선 반지하 기택의 집부터 언덕 위의 박 사장 집, 그리고 다시 지하 벙커까지 영화의 공간 설계가 놀랍다. 어린 시절 인체 해부도를 처음 봤던 순간처럼, 낯선 듯 낯익고 거듭 들여다보게끔 만드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한없이 처연하다. 뭉툭한 표현 하나에도 서늘한 메시지가 깃들어 있을 만큼 빈틈없다. 봉준호의 전작 ‘옥자’(2017)를 함께한 정재일은 음악으로 영화의 바탕색을 살렸다.

극 중에서 기택이 산수경석을 껴안고 있는 기우에게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한다. “얘가 나한테 자꾸 달라붙어요. 자꾸 날 따라와요.” 꼭 내 마음이다. 봉준호의 살아서 꿈실거리는 우화는 땅속까지 뼛속까지, 아니 뼛속들이 파고든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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