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기자]
영화 ‘바이스’ 포스터.
영화 ‘바이스’ 포스터.
와이오밍주. 음주 운전으로 인해 예일대에서 쫓겨난 딕 체니(크리스천 베일)는 전선 설비공으로 일하면서 술독에 빠진 ‘밥버러지’로 살아간다. 체니는 총명한 여자친구 린(에이미 애덤스)의 마지막 경고로 마음을 다잡는다. 의회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체니는 자신의 권력을 접이식 나이프처럼 휘두르고 누가 앞을 막아서면 냉큼 베어버리는 의원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에게 매료된다.

럼즈펠드의 눈에 든 체니는 헌신적이고 겸손한 권력의 시종으로 거듭난다. 이후 세계 최대 석유기업 헬리버튼의 CEO, 국방부 장관, 백악관의 최연소 수석 보좌관으로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부시 가문의 수치’로 불리는 조지 W. 부시(샘 락웰)가 체니를 러닝메이트로 삼아서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체니는 존재감도 영향력도 없는 부통령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비밀스러운 권력자로 모든 곳에 존재하기에 이른다. 정치 미디어를 등에 업고, 전 국민을 영장 없이 감시하고, 적이 누군지 모르는 전쟁까지 밀어붙이고.

영화 ‘바이스’ 스틸컷.
영화 ‘바이스’ 스틸컷.
지난 11일 개봉한 ‘바이스’(Vice)는 미국 부통령을 줄인 말로도, 악행으로도 읽히는 중의적 단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애덤 맥케이는 ‘바이스’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미국 정치 역사의 한 거대한 챕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주제가 완전히 영화 속에서 표현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선동 광고, 조작 및 가짜 정보 등을 통해서 정치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하는 이런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가를 알아가려면 중요한 퍼즐 조각을 찾아야 한다. ‘딕 체니’는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바이스’는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플랜B’가 애덤 맥케이의 전작 ‘빅쇼트’(2016)에 이어 제작한 작품이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작가 출신답게 애덤 맥케이 감독은 미국의 단면을 특출한 유머를 곁들여서 대담하고 명확하게 그려냈다. 내레이션을 하는,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운 방식도 꽤 신선하다.

크리스천 베일은 술독에 빠진 청년에서 한 나라, 아니 전 세계의 권력을 주무르는 노년까지 오로지 딕 체니로만 화면에 등장한다. 삭발에 20kg를 증량한 후 분장으로 딕 체니의 외양을 걸치고, 말투와 손짓, 걸음걸이를 더했다. 분장도 분장이거니와 배우로서 자신을 지우고 딕 체니의 심장으로 뛰는 듯한 연기를 한다. 뼛속까지 딕 체니로 느껴질 만큼. 제91회 아카데미의 선택은 그였어야 하지 않았나 싶을 만큼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딕 체니의 그림자이지만 중요한 결정은 함께하는 아내 린 역의 에이미 애덤스, 도널드 럼즈펠드로 첫 등장하는 순간 딕 체니 뿐 아니라 관객까지 사로잡는 스티브 카렐,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우리에게도 눈에 익은, 8년간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 역의 샘 락웰은 실존 인물보다 더 진짜 같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애덤 맥케이는 톡 쏘는 경제 교과서 ‘빅쇼트’에 이어 정치 교과서 ‘바이스’를 스크린 위에 출판했다. 누가 읽어도, 누가 보아도 쏙쏙 들어오는 필치로.

15세 관람가.

박미영 기자 stratus@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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