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영화 ‘그랜드파더’ 포스터 / 사진제공=컴퍼니K파트너스
영화 ‘그랜드파더’ 포스터 / 사진제공=컴퍼니K파트너스
‘그랜드파더’는 왜 장도리와 엽총을 들었을까.

영화 ‘그랜드파더’(감독 이서)는 베트남 참전용사로 고엽제 후유증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시는 기광(박근형)이 어느 날 아들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달려간 장례식장에서 유일한 혈육인 손녀 보람을(고보결)를 만나고, 아들의 심상치 않은 죽음과 손녀, 주변 인물들 사이에 얽힌 사연과 음모를 알게 되면서 복수에 나서는 액션 느와르다.

‘그랜드파더’는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 tvN 예능 ‘꽃보다 할배’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박근형의 액션 느와르라는 점이 가장 먼저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할리우드에는 영화 ‘테이큰’의 리암 니슨이나 ‘그랜 토리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백발의 액션 스타가 있지만, 아직까진 한국에선 그런 배우들이 없었기 때문. 그러나 ‘그랜드파더’의 진가는 노배우의 액션 투혼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그랜드파더’는 이번 여름 극장가를 이끌었던 ‘부산행’과 ‘터널’보다 훨씬 날카롭게 부조리한 현실을 지적한다.

영화 ‘그랜드파더’ 스틸컷 / 사진제공=컴퍼니K파트너스
영화 ‘그랜드파더’ 스틸컷 / 사진제공=컴퍼니K파트너스
‘그랜드파더’의 시작과 끝은 가족 간의 소통의 부재다. 기광은 월남전에 참전했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혈육인 가족과는 연을 끊고 지냈다. 그랬던 그가 아들의 자살 소식 이후 존재를 잊고 살았던 손녀 보람(고보결)을 만나고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아들에게 못 준 사랑을 손녀에게 주고 싶은 할아버지 기광과 할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자신이 품은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보람 사이의 불통은 관객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생계형 악역의 등장도 ‘그랜드파더’의 독특한 점이다. 보통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과 대적하는 적은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범죄 조직인 경우가 많다. 반면 ‘그랜드파더’의 적 김양돈(정진영)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도, 음모를 꾸미는 실력자도 아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우리 이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미성년자를 착취하고 있는 인물이다. 또,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자신과 똑같은 짓을 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이웃의 아픔에 방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 양돈과 그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무능력한 공권력을 겨누는 칼날 또한 매섭다. 극중 경찰은 계속해서 아들의 재수사를 요청하는 기광의 말을 묵살한다. 이는 결국 기광의 사적 복수로 이어진다. 감독은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기 전까지 약자의 외침을 무시하고,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하는 경찰의 무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랜드파더’는 개인과 이웃 그리고 공권력의 무관심이 그려내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영화 ‘그랜드파더’ 스틸컷 / 사진제공=컴퍼니K파트너스
영화 ‘그랜드파더’ 스틸컷 / 사진제공=컴퍼니K파트너스
할아버지에 대한 요동치는 보람의 감정선이나, 액션의 매무새가 투박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아쉬운 영화의 틈은 박근형의 57년차 연기 내공으로 모두 메워버린다. ‘그랜드파더’의 날선 메시지가 더욱 울림을 주며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것도 박근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근형은 ‘그랜드파더’를 위해 체감온도 3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투혼을 발휘했다. 그의 혼이 실린 연기는 ‘그랜드파더’라는 작품에 무게감을 더하고, 관객들이 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영화의 모든 내용을 차치하고, 대배우 박근형의 연기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영화다.

오는 3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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