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걷는 선비
밤을 걷는 선비

MBC ‘밤을 걷는 선비’ 19회 2015년 9월 9일 수요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귀(이수혁)는 김성열(이준기)에게 ‘흡혈귀’ 누명을 씌워 추포령을 내리고 직접 뒤쫓는다. 김성열(이준기)은 폐위된 주상(심창민)과 얘기 중에, 귀를 무찔러 평화를 이루면 자신은 귀와 함께 사라지겠다는 말을 남긴다. 흡혈귀의 밀정이라는 혐의로 중전 혜령(김소은)을 처형하겠다던 귀는, 정작 중전이 자신의 손에 죽게 되자 공허감에 미쳐 날뛴다. 성열은 귀와의 일전을 위해 지하궁으로 향한다.

리뷰
너무 많이 죽는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지금 굳이 혜령을 이런 식으로 죽여야 했는지, 원래 죽어야 하는 캐릭터였는지 이 잔인한 전개에 대해 되묻게 된다. 꼭 죽여야만 했을까. 폐주가 된 주상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자처한 중전은 비장하고 애절했다. 그녀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을지 모른다. 혜령은 120년 전 명희의 죽음을 연상시키며 ‘정인’을 위한 희생으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혜령의 시신을 안고 자기 처소로 간 것도, 혜령의 죽음에 전 존재를 걸고 비통해 하는 것도 귀라는 이 아이러니를 어쩌랴. 진정 혜령을 사랑한 것은 흡혈귀 귀였단 말인가. 이 사건을 통해 보여주려던 게 귀의 비통함과 숨겨둔 순애보였던 것인가. 중전의 위기에 대처한 주상의 가벼움과 미숙함이 두드러져, 성열의 말처럼 ‘헛된 죽음’이 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귀는 어전회의에 온 대신들을 다 죽인다. 귀는 혜령이 죽은 뒤 완전히 황폐하고 처참해진 허탈함을 못 이겨 피바다 속에 홀로 앉아 있다가 영상(손종학)을 맞는다. 딸이 죽었다는데도 “괜찮습니다”고 하는 영상에게 귀가 오히려 호통 친다.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귀가 정녕 갖기를 바랐던 것은 혜령의 말대로 ‘사람의 마음’이었을까. 그 시기심이 320년을 시퍼렇게 버티게 했을까. 귀는 혜령을 잃고서야, 자신이 천년을 함께 하고 싶었던 이가 혜령이었으며 혼자 남은 영생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호진(최태환)은 그동안 정말이지 성열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했다. 성열의 일에 앞질러 끼어들지도 않았고 묵묵히 뒤처리를 해왔다. 하지만 ‘죽으러 가는 길’의 뒷일을 부탁하자 호진은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라며 원망하는데, 시청자들도 오늘은 그리 묻고 싶었다. 19회에 이르도록 성열은 귀와의 결전을 매주 반복해 강도만 높여온 듯하다. ‘최후의 결전’이라는데도, 왜 자꾸 돌림노래를 듣는 기분일까.

귀는 자작극을 성사시키기 위해 ‘김성열이 지하궁의 흡혈귀’이며 주상은 세손 시절부터 김성열과 한패니 처단해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한다. 자작극은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점차 사실로 굳어져 ‘역사’의 반열에 올라서려는 지경에 이르렀다. 귀는 점차 ‘사람’처럼 변해가고, 인간들은 점차 허수아비가 되어간다.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마냥 탐닉해온 귀. 소중한 것을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는 인간들. 궤도를 이탈한 지 오래인 인간의 역사는 ‘지하궁 폭파’라는 최후의 결전으로 끝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수다 포인트
-대화 장면이 많았으나 교과서 읽는 느낌이었네요. 지당하신 말씀은 지루한 법.
-귀는 비통해할 때 가장 그다운 모습이라는 뱀파이어 포스의 역설.
-지하궁을 ‘놈의 무덤’으로 만들겠다는 선비님. 320년을 기다린 인간의 해결책은 폭약의 발명이었나요.
-부디 양선의 ‘밤선비뎐’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뻔하디 뻔한’ 결말로 끝나기를.

김원 객원기자
사진. ‘밤을 걷는 선비’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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