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아와 글린다: 170×170의 성장기 (인터뷰)

[텐아시아=손예지 기자]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8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뮤지컬 배우 정선아가 8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뮤지컬 ‘위키드’는 착한 마녀로 알려진 글린다를 예쁜 외모로 사랑받는 것에만 익숙한 철부지 금발 마녀로 설정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본 적 없어”라고 자신에 차 노래하는 글린다를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녀가 제 잘못을 뉘우치는 데 망설임이 없고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 줄 알며 오즈를 다스리는 마녀로 거듭나기 위해 책임감을 다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선아는 글린다가 겪은 일련의 과정을 ‘성장통’이라 표현했다.

정선아는 2013년 ‘위키드’ 한국 초연에 이어 2016년 재연에 참여 중인 현재까지, 170회 이상 글린다로서 무대에 오르며 국내 최다 공연 기록을 세웠다. 다시 말하면, 정선아가 글린다로 살아내는 170여 분의 시간이 170여 회 반복됐다. 공주병에 걸린 마녀가 진짜 여왕이 되는 동안, ‘무대에서 어떻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까’를 생각하던 정선아는 ‘좋은 무대’ 자체를 먼저 생각하는 진짜 배우가 돼 있었다. 정선아와 글린다, 170 제곱의 성장기를 들어봤다.

10. 최근에 ‘위키드’ 대구 공연을 마쳤다.
정선아: 한 달 정도 지났나? 요즘 시간 개념이 사라졌다.

10. 살이 빠진 것 같은데?
정선아: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니고 조금 아팠다.

10. 심한 감기로 이틀간 ‘위키드’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정선아: 그동안은 아파도 티를 안 내고 관객들을 만났는데, 이번에는 이틀을 쉬어야 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 정신적으로 죄송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웃음) 더더욱 몸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10. 배우로서 건강관리가 중요할 것 같은데?
정선아: ‘위키드’ 초연 때는 사람도 안 만났다. 공연 당일에는 레슨, 운동, 공연장, 집만 오갔다. 그때는 공연을 주 5회 해서 그게 당연했다. 지금은 사람도 만나고 밥도 잘 챙겨 먹는다. 운동도 매일 하고.

10. 삶의 모토가 1년 중 4개월은 공연, 4개월은 운동, 4개월은 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들었다.
정선아: 공연은 다른 장르와 다르게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같은 것만 연습을 한다.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 희망에 차게 되더라. 다음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기 전에 여행을 가면 이전의 캐릭터를 완전히 잊고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10을 벌면 여행에 10을 투자해서 결국 0이 된다.(웃음) (여행에 가면) 눈과 마음으로 담은 풍경을 서울에 가서 관객들에게 나눠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잘 나눴는지는 모르겠다. 아름다운 눈으로 공연을 하고 있긴 하다.

10. 외국 여행에서 레슨도 받는다고?
정선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네덜란드와 독일 등에서 공연을 봤다. 체코에서는 성당에서 음악극도 보고 성악 연주도 봤다. 이번에 ‘위키드’ 재연을 잘 하고 싶어 현지 선생님에게 레슨을 부탁했다. 말은 잘 안 통했는데 그분도 영어 잘 못하시더라. 음악으로 소통했다.(웃음)

뮤지컬 배우 정선아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뮤지컬 배우 정선아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위키드’는 초연부터 ‘역대급’이라는 호평을 들었다. 재연을 앞두고 부담감은 없었나?
정선아: 부담이 컸다. 하지만 그보다 ‘위키드’를 너무 사랑한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 작품에서 주는 메시지도 다양하지 않나. 이렇게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좋아하는 배우들과 좋아하는 작품을 하니까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아까울 정도다. 앞으로도 매 해마다 하게 되면 제발 (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10. 정선아가 생각하기에 ‘위키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정선아: 너무너무 많다. 예전에는 우정과 사랑, 성장통에 대해 많이 느꼈다면 이번에는 모리블 학장을 통해 미디어의 중요성도 느끼고 엘파바를 통해 선악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다.

10. ‘위키드’는 여배우들의 호흡이 돋보인다. 배우들끼리 사이는 어떤가?
정선아: 내가 보기보다 어리더라.(웃음) 차지연·아이비·박혜나, 다 언니들인데 워낙 친구처럼 편하게 대한다. 이렇게 진심으로 아플 때 같이 슬퍼해주고 기쁠 때 즐거워해주는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특히) 박혜나는 그냥 천사다. 이번에 (아팠을 때) 박혜나가 문자 메시지로 힘을 줬다. 그 한 마디에서 동료애를 느꼈다. (아프고 나서) 무대에 처음 선 날, 박혜나와 차지연이 같이 울어줬다. 이 사랑을 잊지 않고 앞으로 공연하면서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0. 초연과 비교했을 때, 이번에 글린다를 표현하는 데 있어 달라진 점이 있나?
정선아: 예전에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런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신에서 어떻게 보여야 하나’ 1차원 적으로 많이 생각했다면, (지금은) 3년이 지났다고 깊이가 생겼다. 시야를 넓게 보게 됐다. 예전에는 글린다만 바라봤다면, 지금은 ‘위키드’ 전체를 (보고), ‘엘파바가 보는 글린다, 피에로가 보는 글린다는 어떨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됐다.

10. 주연 배우라는 데 대한 자부심도 있지 않나?
정선아: 어렸을 때부터 여러 작품에서 주·조연을 맡아왔다. 작은 배역은 없다고 생각한다. ‘킹키부츠’ 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애정을 가져주신 분들이 비중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나는 비중과 상관없이 즐거웠다. 내가 보이든 안 보이든 한 신에서 감초가 되고 관객을 재밌게 했다면 그것으로 힐링을 받았다. 앞으로도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언제든 마음이 열려 있다.

10.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에 변화가 생겼나?
정선아: 예전에는,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좋은 노래, 나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주연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좋은 배우들과 좋은 대본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배우 인생이 더 풍족해진다는 마음이 든다.

10. 뮤지컬이라는 한 우물만 고집해왔다. 원동력이 있다면?
정선아: 뮤지컬 사랑. 지금 보면 ‘나는 뮤지컬만 고집할 거야’라는 게 너무 촌스러운 생각이다.(웃음) 어렸을 때는 뮤지컬이 무작정 좋았고 뮤지컬 밖에 안 보였다. 다른 것들은 볼 시간이 없었다. 그때는 내가 더 많은 뮤지컬을 함으로써 나를 바라보는 지망생 친구들에게 뿌리를 내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많은 동료들이 방송에서 잘 되는 모습을 보며 축하드리고 박수쳐주고 싶다. 덕분에 뮤지컬도 많이 알려지고 있다.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크로스오버를 시도해보고 싶다.

10. 출연하고 싶은 방송 프로그램이 있나?
정선아: MBC ‘복면가왕’. 동료들도 많이 나왔다. 내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 ‘라디오스타’로 인연이 된 김구라가 (복면가수들을 보고) 다 나라더라. (10. 그러고 보니 ‘라디오스타’에서도 솔직한 모습이 재밌었다) 솔직하게 느껴졌나. 더 말하고 싶었는데 참은 것도 있다.(웃음) 뮤지컬은 라이브인 반면 방송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 편집을 하고 축약돼 나오는 면이 특이했다.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 기회가 된다면 나가보고 싶다. 아직은 ‘위키드’로 너무 바쁘니까.

뮤지컬 배우 정선아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뮤지컬 배우 정선아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마리아 전후로 작품 선택 기준이 달라진 것 같다.
정선아: 오, 그렇다. 마리아 때였던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극 중에서 군중의 하나로 주인공 예수와 유다를 따라가며 공연을 하다 보니 ‘다른 조연·앙상블 배우들도 (평소에) 나에게 기댔었겠구나’라는 생각에 조금 더 어른스러워졌다. 그때부터 내가 좀 더 아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 정선아로서, 책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10. 마인드가 달라졌구나.
정선아: 책임이 점점 막중해지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더하겠지만, 이런 게 나쁘진 않다. 지금도 철은 없다.(웃음) 점점 어른스럽게 시야가 넓어지다 보니 기분이 좋고 스스로 기특하다. ‘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한다. ‘지금 솔로라서 저들을 챙기는 게 아니겠지, 시집을 가서라도 웃음 내가 이 마음을 변치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웃음)

10. 정선아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정선아: 중2때부터 ‘뮤지컬 바라기’였다. 지금도 무대 위의 프리마돈나를 꿈꾸는 지망생들을 위해 (스스로) 변하지 않고 싶다. 무대 위에서 ‘정선아’ 하면, 누구보다 완벽한 공연을 꿈꾸고 열정을 가진 배우라는 소리를 들으면 만족할 것 같다.

10. 차기작은 정해졌나?
정선아: 아직 보고 있다. 일단 ‘위키드’가 끝나면 시간이 조금 있어서 희망을 가지러 갈 거다.(차기작은) 아직 확실한 게 없는데, 여행은 확실히 간다.(웃음) 다음 작품이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레슨도 받고. ‘위키드’가 아직 꽤 남았다. (당분간은) 관객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무사히 그리고 재밌게 행복을 드리는 일에 집중하겠다.

10. 마지막으로 정선아에게 글린다란?
정선아: 항상 생각하던 말이 있는데… 나의 인생이다. 이 시점에 글린다를 만나 너무 감사하고 나이가 들어도 또 하고 싶다. 철이 없을 때 뮤지컬을 시작해서…(이 대목에서 눈물을 보인 정선아는 “배우들이 그렇다”면서 민망한 듯 웃어보였다) 나도 상처를 받을 때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못 챙겼던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글린다에 대입이 되더라. 글린다처럼 성장통을 겪으면서, 뮤지컬의 길을 걷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이라는 경주에서 승패를 떠나 (동료들과 서로) 끌어주고 같이 가면서 힘들 때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뮤지컬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이 마음 변함없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