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사냥’, 속는 셈 치고 와서 사냥이나 보든가

[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사냥' 메인 포스터 /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 ‘사냥’ 메인 포스터 /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사냥'(감독 이우철)은 여러모로 다층적인 영화다. ‘우연히 발견된 금맥을 독차지하기 위해 산에 오른 엽사 무리와 이를 목격한 사냥꾼 기성(안성기)의 16시간의 목숨을 건 추격전’이라는 외피 속에 여러 가지 형태의 선(善)과 악(惡)이 춤을 춘다.

안성기·조진웅·손현주·권율·한예리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했지만, 그간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른 얼굴로 등장한다. 영화 전반을 내달리는 추격전 속에서 다양한 선악, 그리고 다채롭게 변모하는 캐릭터들을 살피는 것이 이 영화만의 재미다.

영화 '사냥' 스틸컷 /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 ‘사냥’ 스틸컷 /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사냥’에서 안성기는 신사가 아니요, 권율은 밀크남이 아니다. 조진웅은 1인 2역을 맡았고, 한예리는 팔푼이 그 자체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순수한 사냥꾼에서 ‘고뇌하는 람보’로 변해가는 안성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슴 속에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가장 큰 내적 변화를 겪는다고도 할 수 있는 권율은 비열한 ‘맹실장’으로 변신해 인간의 가장 비겁하면서도 탐욕스러운 면을 보여준다. 조진웅은 마을의 경찰인 명근과 엽사들의 우두머리인 동근, 쌍둥이 형제를 연기했다. 대립하는 인물인 기성의 입장에서는 명근만 아는 설정으로, 극중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사냥’은 악의 여러 얼굴을 비춘다. 그 중에서도 ‘보통 사람들’의 악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색다르다.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처럼 종(種) 자체가 다른 인간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 과장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업의 사람들을 조망해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힌다. 이우철 감독은 “이들은 전문적인 사냥꾼이 아니다. 동호회 같은 성격을 지닌 팀이다”라고 밝혔다. ‘나’와 그닥 다를 것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 ‘금맥’으로 상징되는 탐욕에 사로잡혔을 때 과연 어디까지 악으로 물들 수 있는지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영화 '사냥' 스틸컷 /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영화 ‘사냥’ 스틸컷 / 사진제공=롯데 엔터테인먼트

‘산’이 형성하는 특수한 공간성 또한 흥미롭다. 산은 제로섬 게임 속으로 엽사들을 몰아넣는 일종의 공포 증폭 장치다. ‘입산금지’라는 팻말이 산을 단절된 공간으로 만들고, 이 폐쇄된 공간 안에서 엽사들은 발견한 금맥을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다는 이기심에 사로잡힌다. 내가 갖지 않으면 남에게 뺏긴다는 초조함을 시작으로, 산 속에 출몰한다는 ‘허옇고 늙은 것’에 대한 공포심은 밤이 깊어갈수록 초자연적인 공포심을 형성한다. 산에 오른 그날이 수많은 탄광사고 희생자의 기일이라는 사실도 영화 전체에 차갑고 섬뜩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후반부로 향해 가면서 영화는 관객 앞에 또 다른 드라마를 펼쳐놓는다. 트라우마를 가진 남자, 기성의 이야기다. 기성은 과거 무진에서 있었던 대규모 탄광 사고에서 살아남은 기적의 주인공이지만, 그의 생존에 관한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생존 트라우마를 지닌 그가 양순(한예리)이라는 소녀를 살리면서 변해가는 모습은 엽사 무리들이 추악하게 변해가는 모습과 평행선을 이루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처럼 ‘사냥’은 약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내달리는 추격전 속에 상이한 드라마를 담았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게 변질될 수 있는지, 가장 극한의 상황을 겪었던 인간은 또 어디까지 구원받을 수 있는 지에 대한 질문들 또한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쫓는다. 동근(조진웅)은 이미 “속는 셈 치고 와서 사냥이나 하든가”라며 미끼를 던졌다. 오는 29일 개봉.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