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없다’ 손예진에 美치다 (인터뷰①)

[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손예진

‘비밀은 없다’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이경미 감독은 누구보다 먼저 ‘손예진의 광기’를 써먹고 싶어서 손예진을 영화 ‘비밀은 없다’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여러 남성들의 마음을 흔드는 청순의 대명사 손예진의 광기라니. 그러나 ‘비밀은 없다’를 보면 감독의 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은 상상 그 이상의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손예진이 보여준 ‘미친 연기력’의 원천은 어디일까.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반드시 해결하고 싶었던 호기심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손예진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연기에 美쳐있었다. 노력과 열정, 고민과 시간이 빚어낸 아름다운 배우, 손예진을 만났다.

10. ‘비밀은 없다’는 연홍(극중 손예진)의 감정을 극한까지 몰고 가는 작품이다. 배우 입장에서도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손예진: 말 그대로 과정이 치열했던 영화다. 중요한 신은 며칠씩 공들여 찍었다. 열심히 했는데 편집된 부분들도 있었다. 배우로선 고생 많이 했는데 편집돼서 아쉽기도 했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작품이다.

10. 연기적인 고민도 많았을 텐데.
손예진: 어떻게 하면 다른 시각의 모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기존에 없는 모성을 표현한다고 해도 관객들이 공감하지 못하면 안 되니 그 부분 역시 고민되는 부분이었다. 연홍의 돌발적인 행동이나 표정들에 대해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했었고, 내가 생각하는 연홍과 감독님이 생각하는 연홍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긴 했다. 그러나 점점 촬영이 진행될수록 내가 연홍에 빠져들었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내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10. 스릴러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대부분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해보곤 한다. 그런데 ‘비밀이 없다’의 연홍은 그다음 행동들을 예상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손예진: 사실 배우 입장에서도 지금 캐릭터의 어떤 모습을 강조해야 할지 미리 계산하고 촬영에 들어갈 때가 있다. 그런데 ‘비밀은 없다’는 그런 계산을 많이 못 했다. 한 신에서 표현해야 하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려웠지만 배우로서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손예진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10. 연홍이 경험하는 감정의 폭이 매우 크다 보니 캐릭터에 몰입하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손예진: 이제까지는 캐릭터에서 비교적 잘 빠져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그게 좀 쉽지 않더라.(웃음) ‘비밀은 없다’는 긴 시간 찍어야 했고, 연홍의 감정이 고스란히 표현돼야 했기 때문에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신나게 웃고 떠들고, 농담하다가 촬영에 들어갈 때쯤엔 연홍의 감정을 상상하고, 연홍에 몰입하는 데 집중했다.

10. 극 중 캐릭터가 중3 딸을 둔 엄마다. 아직 장성한 딸을 둔 엄마를 연기하기엔 이르지 않나?(웃음)
손예진: 내 나이보다 많은 역할들을 자주 했었다. 어색해 보일 거란 걱정은 전혀 없었다.(웃음) 연홍이 중학생 딸을 둔 엄마지만, 딸과 엄마가 같이 있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리고 엄마이기 전에 연홍은 연홍 자체로 살아있는 캐릭터였다. 이렇게 살아있는 캐릭터가 모성을 보여줄 때 어떤 모습일지를 더 고민했다.

10. 이경미 감독이 말한 ‘손예진의 광기’가 조금 이해됐다. 관객들이 ‘미쳐가는 연홍’을 느낄 수 있게 감독이 따로 주문한 부분이 있는가?
손예진: 딸의 부재를 걱정하는 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이 아니라 히스테릭하고 이성을 잃어가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광기’에 대해 감독이 따로 지시한 부분은 없었다.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만 했다. 개인적으로 연홍은 광기가 가득한 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보기에 연홍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파악되지 않는 것뿐이다.

10. 연홍이 종찬(극중 김주혁)의 선거캠프 사무국장 앞에서 자해하는 부분이 굉장히 섬뜩했고, 광기가 느껴졌다.
손예진: 딸이 없어져서 제정신이 아닌데 (남편 종찬의) 선거 캠프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연홍이 외로웠겠는가. 그 장면에서 연홍이 자해를 하는 것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들이 연홍식의 모성의 표현인 것 같다.

손예진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10. 연홍이 종찬에게 “우리 딸은 그렇게 착한 애가 아니었을지도 몰라”라고 말한 그 대사가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예진: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못 보는 것 같다. 자식을 다 안다고 하지만, 부모는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못 보고 자식도 마찬가지로 우리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나도 우리 엄마가 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다. 밖에서 말이나 제대로 하고 다니는 거냐고 말씀하신다.(웃음) 그런 점에서 연홍의 그 대사는 지금껏 자기가 생각했던 남편과 자식의 다른 모습을 본 연홍이 느낀 생경한 기분을 담은 말인 것 같다. 어떤 분은 그 대사 때문인지, 영화를 본 다음에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엄마, 나 착한 딸이야?”라고 물어봤다고 하시더라.(웃음)

10. ‘비밀은 없다’를 통해 열정이 생겼다는 말을 했더라.
손예진: 내가 작품들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지칠 때가 있다. 과연 내게 열정이 남아있을까 걱정도 든다. 내가 더 보여줄 게 있을까 두려움도 생기고.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연홍이란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것과 다른 시각과 표현을 알게 됐다. 그런 점에서 좀 재미를 느꼈다. 앞으로 조금 더 다른 시각으로 재미있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10. 혹시 감독과 의견이 충돌했던 적도 있었나?
손예진: 감독님이 시나리오에 그려놓은 연홍은 되게 독특하고 매력 있었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연홍을 잘 표현하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내가 흥분하면 감독님은 차분하길 원하셨고, 내가 차분해지려고 하면 흥분하길 원했다. 처음엔 의구심이 들긴 했었지만, 점점 감독님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점점 연홍화(化) 되었다고나 할까.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동안 해본 적 없는 다른 연기에 대한 기대와 갈증이 있었기 때문에 연홍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손예진

손예진 / 사진제공=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10. 특히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나?
손예진: 관객들이 캐릭터에 공감하고, 호흡할 수 있는 지점들을 설득하는 것이 연기자의 역할인데 그 접근 방식이 기존에 내가 했던 것과 달라서 재밌었다. 아무래도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라서 접근 방식도 달랐던 것 같다.

10. 작품을 선택할 때 전형적인 것보다 독특한 캐릭터를 선호하는 건지 궁금하다.
손예진: 꼭 그렇지도 않은 게 얼마 전까지 ‘덕혜옹주’를 찍었다. 배우들은 작품을 선택할 때 해본 적 없었던 캐릭터를 보통 고르고 싶은데, 아무래도 직전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것들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다음 또 이런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느냐, 그건 아닌 것 같다. 또다시 다른 것들로 채워지고 새롭게 보여드릴 게 있는 것 같아. 연홍과 같은 느낌의 역할들이 또 들어온다면 그건 그때 가서 좀 더 고민해야겠지.

⇒ 인터뷰②에서 계속

윤준필 기자 yoo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