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라디오│쿠루리, 마음에 부는 산들바람

10 라디오│쿠루리, 마음에 부는 산들바람
어떤 음악은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의 OST로 처음 쿠루리를 만난 많은 사람에게 이들의 음악은 쓸쓸한 국도, 문을 닫은 수족관, 조개가 데굴데굴 굴러떨어지는 아득한 심해,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도 그대로인 골목으로 기억되지요. 이들의 노래 ‘하이웨이’는 도무지 분리해 낼 수 없을 만큼 영화를 꼭 끌어안은 곡이었으니까요. 때로는 그루브가, 때로는 일렉트로닉한 느낌이 앞서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쿠루리는 기타와 차분한 목소리를 들려줄 때 가장 매력적인 법입니다.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 뿔테를 맡고 있는 키시타 시게루와 베이스를 치는 사토 마사시는 교토의 대학에서 만났습니다. 지금은 탈퇴한 드러머까지, 셋은 아마추어 밴드 콘테스트의 상금을 위해 의기투합한 사이였지요. 그리고 아홉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면서 쿠루리는 어떤 밴드와도 겹쳐지지 않는 특유의 목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낯간지러운 말로 달래거나, 따끔하게 야단치지 않지만 이들의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무언가 마음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이 태어나는 기분이 들거든요. 고민을 털어 놓으면 시큰둥하게 듣고서는 몰래 신에게 전해 줄 것 같은 막연한 든든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듣게 된다면 가장 주의를 기울일 것 같은 노래는 진저에일을 마시게 만드는 ‘장미꽃’이나 ‘언제나 미안해, 오늘도 미안해’하고 말하는 ‘baby I love you’보다는 의 OST인 ‘말은 삼각 마음은 사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둥근 눈물을 닦을 준비가 되었다면 자, 다들 눈 감으세요.

글. 윤고모 n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