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주의 10 Voice] ‘외롭고 웃긴 가게’, 라디오와 트위터에 놀러오세요

[김희주의 10 Voice] ‘외롭고 웃긴 가게’, 라디오와 트위터에 놀러오세요
“아까 사무실에 습기가 가득하다고 혜정 씨가 습기 없애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하셨죠? 6882 외 많은 분들이 습기 없애려면요, 보일러를 틀어야 돼요. (중략) 0324 님은, 커다란 과자 봉지 몇 개 뜯어 놓으면 금방이에요 (라고). 과자를 뜯어 놓고 계속 먹지 말고 놔두라구요? (웃음) 과자가 습기를 빨아 먹게? (중략) 그리고 홍득준 씨는, 습기 없애는 방법은 일단 한숨을 크게 쉬구요,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칩니다. 그리고 나서 큰 소리로 “습!” 을 외치면 습기가 없어져요. 해보세요, 라고. 참, 득준이 같은 소리 하고 보내주셨죠. 우리 득준 씨, 참 자주 오시는 분이시거든요. 우리 득준. 예, 이름 참 좋아요. 우리 득준 님. 고맙습니다.” 지난 7월 13일 밤, KBS 2FM (이하 )의 한 청취자는 지겹게 이어지는 장마에 습기 없애는 방법을 물었다. 노래가 나가는 동안 다른 청취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을 게시판 혹은 문자로 알렸고 DJ 유희열은 이를 읽어주었다. 휴대폰으로 트위터 타임라인을 훑으며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듣다가 “득준이 같은 소리 하고 보내주셨죠”라며 어이없어 하는 유희열의 목소리에 함께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때 문득, 라디오라는 이 낡은 매체와 트위터라는 지금 가장 핫한 매체가 어딘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청춘들을 위하여
[김희주의 10 Voice] ‘외롭고 웃긴 가게’, 라디오와 트위터에 놀러오세요
그 청취자는 정말 ‘장마철 습기 제거’ 방법이 궁금해서 사연을 보낸 것만은 아닐 것이다. 포털에 ‘습기 제거’라고 치면 블로그부터 지식인, 뉴스까지 주르륵 유용한 정보들이 기다리고 있다. 정말 방법이 궁금했다면,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다른 이들의 대답을 듣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간편했을 것이다. 그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요즘 비 너무 많이 와서 다들 지겹고 힘들죠?”가 아니었을까. 쨍 하니 해가 좋았던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나날에 지친 사람들과 그 피로감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처럼, 늦은 밤 라디오에 소소한 궁금증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잠들지 않거나 혹은 잠들지 못 하고 깨어 있는, 심야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 이들은 라디오를 켜 놓고 인터넷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혹은 심야의 타임라인 한 켠을 채우고 있다. 라디오 사연과 마찬가지로 소소하다 못해 시답잖은 이야기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TV가 등장하고, 인터넷이 등장하면 라디오는 사라질 줄 알았다. CD를 사고 음악을 챙겨 듣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라디오는 목소리를 잃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심야 라디오를 듣는다. 비록 지지직거리는 소리에 주파수 다이얼을 돌리지는 않지만, 컴퓨터에 창을 띄워 듣거나 다음날 팟캐스트나 다시 듣기로 음악은 잘린 채 DJ의 멘트와 사연, 즉 이야기만 남은 라디오를 듣기도 한다. 음악이 아니라도 라디오를 듣는 이유는 그 시간을 함께 한다는 소속감과 위로 때문이다. 감상에 빠져 올린 심야 트윗에 나도 그래요 라고 누군가가 보내주는 멘션이 고마운 것처럼 이 시간에 나 혼자 깨어 있는 게 아니구나,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니구나, 좋아하는 희열님이, 성DJ가, 윤이모가 “혜정 씨” 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구나, 오늘도 “잘 자요~” 라고 말해주는구나, 이런 사소하지만 친근한 위로가 있어 ‘음도 시민’과 ‘별밤 가족’이, ‘라천민’과 ‘아우라 식구’가 지금도 여전히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라디오 스타, 유희열이 지금과 같은 공고한 팬덤을 구축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MBC FM 의 DJ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쌓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심야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의 성향과 위로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유희열은 외로운 사람들에게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경박하게,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게요, 내가 웃기는 이야기로 당신의 지친 오늘을 달래줄게요 라고 말을 건넸다. 유희열의 라디오는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위로의 말을 가장 웃기고 편안하게 들려주는 친구이자 닮은 감성을 공유하고 같은 추억을 쌓게 해주는 안테나다. 그래서 지금의 트위터가 또 다른 유희열의 라디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트위터의 의미는 이것을 이용하는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트위터는 언론에서 침묵하는 김진숙과 희망버스와 명동 3구역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분노하고 반성하는 소셜 미디어다. 한편, 어떤 이들에게 트위터는 명사의 깊고 날카로운 생각을 배우거나 연예인이 솔직하게 털어 놓는 이야기를 몰래 지켜 볼 수 있는 마이크로 블로그다. 또 많은 이들에게 트위터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가볍게 털어 놓고, 지인 혹은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어딘가 취향이나 세상을 보는 눈이 닮은 팔로워들과 공감과 위로를 주고받는, 공개된 메신저이자 커뮤니티다. 그래서 트위터는 라디오, 특히 심야 라디오와 어딘가 닮았다. 외로운 사람들이 대화하며 리얼 타임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외롭고 웃긴 가게야,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어줘
[김희주의 10 Voice] ‘외롭고 웃긴 가게’, 라디오와 트위터에 놀러오세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외롭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언급할 필요가 없는 명제다. 그런데 유난히 더 외로운 아니,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주로 혼자 사는 사람이거나, 혼자인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다. 단적으로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연인과 볼이 뜨거워지도록 통화를 하거나 문자로 밀어를 주고받는다. 늦은 밤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 손에 쥔 휴대폰으로 오타를 내며 트윗을 날리고 타임라인을 훑으며 심야 라디오를 듣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깊은 밤 잠 못 이루는 청춘들은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모스 부호로 무선 통신을 하는 마음으로 멘션과 사연을 보내며 서로의 외로운 밤을 위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 PD로 유희열의 파트너이자 KBS 2FM 의 DJ인 윤성현 PD가 저서 저자소개에 쓴 ‘어릴 적부터 산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틀어 놓고 음악과 이야기를 듣곤 했다’ 라는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에게 라디오, 그리고 트위터는 말한다. ‘외로운 사람들아 붙어 여기 / 괴로운 사람들도 여기 여기’ 라고. 물론 오늘 밤 들르지 못해도 괜찮다. 한참을 잊고 있다 문득 생각나 찾아가도 늘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을 것이다. ‘외롭고 웃긴 가게’ 같은 그곳은.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