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을린 사랑>│여자의 일생이 남긴 위대한 유산

영화 <그을린 사랑>│여자의 일생이 남긴 위대한 유산
너희에겐 아버지가 있단다. 그리고 형제도 있어. 이게 무슨 말인가?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혼란스럽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남겨진 이상한 유언장. 거기엔 전사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던 형제에게 전달하라는 두 개의 봉투가 있다. “편지가 모두 전달되면 너희에게도 편지를 줄게.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지면 비석을 세우고 내 이름을 새겨도 된다. 햇빛 아래에….” 남겨진 낡은 여권과 사진 한 장을 들고 중동으로 떠난 잔느는 그곳에서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어머니의 진짜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영화 <그을린 사랑>│여자의 일생이 남긴 위대한 유산
1+1=1, 힌트는 여자의 일생

영화 <그을린 사랑>│여자의 일생이 남긴 위대한 유산
그 여자를 안다고 말하지 마라. 사랑하는 남자가 총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봐야 했던 여자다. 죽은 남자의 선물 같던 아이를 낳자마자 고아원에 보내야 했던 여자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산화되는 인간들을 보았고, 적진에 뛰어들어 수장의 머리에 총을 겨눴으며, 좁은 감방에서 15년 동안 노래를 부르며 버텨야 했던 여자다. 고문 기술자에게 강간당해 임신을 했고, 그렇게 낳은 아이들을 죽는 순간까지 키워낸 여자다. 캐나다 공증인의 비서로 평생을 일했던, 어느 여름 풀장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한 노부인이었다고? 그 여자를 안다고 말하지 마라.

캐나다 감독 드니 빌뇌브의 은 용기 있는 영화다. 그런 기구한 여자의 삶 따위, 영원히 모를 수도 있었다. 아니 모르고 사는 편이 훨씬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 무지에서 오는 평화 대신 알기 때문에 막을 수 없는 전쟁을 택한다. 그것은 쾌락을 위한 가학이 아니라 고통을 무릅쓴 대면이다. 그렇게 역사 속에 그을려진 어머니의 과거는 딸의 발걸음이 닿을 때마다 조금씩 선명해져 간다. 나발 역의 배우 루브나 아자발과 딸 잔느 역의 멜리사 에소르모-풀랭은 흡사한 외모를 통해 극의 사실감을 더할 뿐 아니라, 강인한 존재감의 유전자까지 나눈다.

중동의 종교전쟁, 레바논의 피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은 역사적 사실을 오히려 희미하게 처리한다. 이렇게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읽으려는 시도를 애초에 막은 후 획득한 보편성은 대신 이 응시하는 지점을 분명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속죄와 용서가 평생을 통해 감행된, 출산과 강간이 동시에 벌어졌던 한 여자의 몸이다. 그 몸에서 사랑으로 잉태된 생명은 증오를 양분으로 성장하고, 수치 속에 세상에 나온 생명들은 화해의 바늘을 쥔 채 용서의 순례 길을 떠난다. 그 과정 속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역시 엎치락뒤치락 재배치를 반복하다가 결국 하나가 되는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그 순간, 당신은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았던 수학문제의 답을 찾은 기분이 들 것이다. 이토록 단순한 답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함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한마디 말을 남기기 위해서 말이다. 실로, 위대한 유산이다.

글. 백은하 기자 one@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