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지 낯익은 <커뮤니티> 루저들의 가정통신문

대학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면 모름지기 풋풋한 청춘의 꿈과 두근거리는 낭만의 로맨스를 그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별 볼일 없는 전문대학교인 그린데일 컬리지에는 음모와 협잡, 배신과 협박이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NBC 는 사상 가장 혁신적인 캠퍼스 드라마다. 그리고 노인과 주부, 종합대학에 진학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모인 이 학교에서도 특이한 인물들이 모여 결성한 스페인어 스터디 그룹 ‘커뮤니티’는 서로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희망을 짓밟는 가장 골치 아픈 모임이다. 그러나 가식과 위선이 없는 그 교정에서 시청자들은 오히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우정과 위로를 발견할 수 있다. 못나고 어설픈 커뮤니티 학생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그린데일의 총장실에서 발견된 아직 발송되지 않은 가정통신문이다. 한때 스페인어 선생님이었던 세뇨르 챙의 한마디가 덧붙여진 이 문건은 의 세계로 들어가는 안내서이자, 이제 막 시작한 한국 Foxlife의 시즌2 방송을 보기 위한 속성 복습교재이다.

어딘지 낯익은 <커뮤니티> 루저들의 가정통신문
학교에서 가정으로
본교에서는 외모가 매력적인 학생과 교수들의 명단을 작성하고 있으며, 귀댁의 자녀는 2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버버리 체크 셔츠와 양말을 깔맞춤으로 입고 등교한 적이 있어 순위가 하락 할 뻔 했으니, 가정에서의 세심한 보살핌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매력적인 외모를 학교 홍보물에 사용하고 싶은데, 학생이 재차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비싼 시계와 적당한 근육을 갖춘 학생이 흔치 않으니 가정에서 잘 설득 부탁드립니다. 개인적으로 귀댁의 자녀가 홀딱 벗은 몸으로 당구를 치는 사진을 소장하고 있으니 모쪼록 좋은 방향으로 결정 내리시길 바랍니다.

가정에서 학교로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는 잘 나가는 변호사로 활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학교는 그저 가짜로 꾸며댄 학위가 들통이 나서 그걸 메우려고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것뿐입니다. 콜롬비아에서 딴 학위가 적법하지 않다니,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딨답니까. 우리 아이는 원래 자신의 리드만 따르고, 모든 것을 부인하면 승리하게 만들어주는 유능한 변호사였단 말입니다. 렉서스를 몰만큼 능력 있고, 페이스 북 사진은 풍경으로 올려 놓을 만큼 자기애가 깊지도 않아요. 완전히 남자다운 아이죠. 그러니 학교에서 아이를 라이언 시크레스트 닮았다고 이나 진행을 하라고 놀리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합니다. 심지어 우리 아이는 도 싫어한다고요.

어딘지 낯익은 <커뮤니티> 루저들의 가정통신문
학교에서 가정으로
특별하지 않음이 특별한 학생입니다. 베이글을 ‘베글’이라고 발음하니 가정에서 명문사학 그린데일에 걸맞는 발음을 할 수 있도록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보고서도 시험도 없는 수업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언제나 제프가 찾아오는 극강의 날림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게으르면서 주관이 없는 형편이네요. 엘리자베스 슈를 닮은 얼굴과 금발인 머리카락의 힘을 너무 믿고 있는 건 아닌지 가정에서 세심하게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학생이 제프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서 제가 꼭 이러는 건 아닙니다. 세뇨르 챙에 따르면 이 학생은 컨닝을 한 적도 있는데다가 아부도 심하다고 하더군요. 제프랑 같은 수업을 듣고, 제프랑 같은 스터디를 하고, 아무튼 TBD(to be determined)입니다.

가정에서 학교로
아이의 오빠가 두 명 있어요. 그 중 하나는 아픈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데, 그런 점에서 우리 아이가 세상을 보는 남다른 눈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타인의 고통을 그냥 봐 넘기지 못해 사사건건 간섭하고,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욕구를 꺾지 말아 주세요. 키우던 고양이가 죽으면 새 고양이를 사는 게 아니라 유기묘 보호센터에서 데리고 오는 아이입니다. 헬로 키티 속옷을 입을 정도로 동물 애호가라구요. 물론 우리 아이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라디오헤드를 감명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결국 검정고시를 봤거든요. 하지만 남자 문제에서 만큼은 보통의 수준으로 이기적이고 찌질 하니 너무 심려 마세요. 잘 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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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정으로
전형적인 모범생입니다. 늘 백팩을 메고 다니고, 백팩에서 지퍼의 중요성을 잘 알며, 대학용 줄 간격이 없는 노트를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수업을 녹음하지요. 또한 교가 위원회와 성병 박람회, 토론대회에 참여하여 인상적인 활동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귀 댁의 자녀야 말로 본교가 아이비리그에 진입하는데 가장 필요한 그런 인재입니다. 다만, 교내 경비대에 자원 했을 때는 조금 걱정스럽더군요. 달리면서 후추 스프레이를 쏘는데, 후추를 뿌린 방향으로 달리고 있더라고요. 자초된 아군의 공격이라고는 하는데 방향 감각이나 달팽이관에 이상 증상이 의심스럽습니다.

가정에서 학교로
우리 아이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주변의 칭찬이 자자한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인기는 바닥이었지만, 리버사이드 고등학교 성적은 4.0에 육박했었지요. 언젠가 아이가 치어리딩을 그만두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넌 그렇게 예쁘지도 않고, 가슴도 없고, 높이 날아뛰기도 못하지만 늘 헌신하는 사람이니까 얼른 팜팜을 집어 들라고 다그쳐 학교에 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약물 문제 때문에 재활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그 한 번의 일탈 때문에 장학금을 잃고, 순결도 잃었지요. 원래는 이런 학교에 다닐 그런 애가 아닙니다. 무엇을 하든 자유롭게 재능을 펼치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내버려 둬 주세요. 뭐든 여기 다니는 애들 보다는 잘 할 겁니다. 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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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정으로
귀 댁의 자녀는 학교를 온통 달콤함으로 물들여 줍니다. 과테말라의 저널리스트들이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긴급히 주최한 항쟁 모임에서 셜리는 브라우니를 나눠줬지요. 망자의 날에는 데킬라를 챙겨 왔고, 학교 대항 토론 대회를 응원 할 때는 구버를 가져왔어요.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기도를 하시더니, 정말 부족함 없이 학우들과 가진 것을 나누는 모습에 감명 받았습니다. 명문사학 그린데일 출신으로서 사회 지도층이 되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는 태도는 다른 학생들이 본받을 만 합니다. 다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겨드랑이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긴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빵과 골동품을 팔기 위해 경영학 학위를 준비 중이지만, 고객들에게 댓글을 달면서도 땀을 흘릴 수 있으니 가정에서 용기를 많이 주세요. “우, 댓츠 나이스!”라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학교로
집에는 어른들이 없어서 저희가 대신 써요. 사실 이모가 있기는 한데, 엄마가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저희가 엄마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한다면서 이모가 이거라도 쓰래요. 하지만 사실은 이모에게 불임이라서 자기를 질투한다고 엄마가 말한 것 때문에 이모가 쓰기 싫어진 것 같기도 해요. 엄마가 혹시 학교에 지각을 해도 너무 혼내지 마세요. 아빠 애인이 집에서 먼 클럽에서 일한다고 엄마가 미니밴을 아빠한테 줘 버렸거든요. 그래서 엄마는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해요. 게다가 이번에 총격전 끝에 얻어낸 수강신청 우선권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통풍 환자라서 특혜를 받은 것처럼 다리를 절면서 다니느라 더 느려졌어요. 하지만 엄마가 학교에 다녀서 좋아요. 엄마는 우리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그냥 저희는 이 상황이 댓츠 나이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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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정으로
귀 댁의 자녀는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건 발생 지연시 심리적 공황상태를 분석하는 실험에서 무려 26시간동안 반응을 보이지 않아 교수 이하 학생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갔던 사건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래를 불러 쥐를 통제하질 않나, 학교 식당의 닭튀김을 통제해 학생들을 조종하질 않나, 심지어 달리기도 잘 하죠.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칭찬하는 재능은 배트맨 성대모사입니다. 귀댁의 자녀는 현재 쿨아벳필름의 이름으로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한 바 있는데, 이참에 배우로 전향할 것을 권합니다. 다만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가정에서의 도움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정말 아벳이 주인공이 아닌가요? 인도 사람인데?

가정에서 학교로
아이와 같이 스터디 그룹을 하는 노인네가 자꾸 우리 아이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는데, 분명히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의 애비인 저는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엄연한 미국시민입니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절반만 아랍인이라고요. 그리고 우리 애가 학교에서 내가 화내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고 떠들고 다닌다는데, 그런 일로 나를 비난 할 생각 마쇼. 나는 이 녀석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고 있단 말이요. 팔라펠을 파는 우리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필요한 기술이나 배우라고 보낸 학교인데, 녀석은 항상 친구들한테서 이상한 것들을 배워오고 있소. 안 그래도 온종일 TV만 보고 TV에 나오는 말만 해대는 녀석인데 영화 수업까지 내가 듣게 해 줬단 말이오. 내가 얼마나 쿨한 애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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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정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농담을 공책에 써서 연구하는 열정은 다른 학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지요. 랩이나 비트박스는 물론, 입을 벌리고 연필을 한꺼번에 36자루나 넣을 수 있는 능력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본교의 교육 방침에 매우 적합합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을 들을 때마다 “뇌에 주름 가게 하는 걸!”하고 말하는 것은 뭔가 두뇌적인 발언이므로 가정에서도 자주 사용하도록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아스퍼거’를 ‘애스 버거’인 줄 알고 킬킬대며 웃거나 ‘닥터 에스코데라’가 왜 스페인어를 가르치냐고 따지는 태도에 대해서는 가정에서의 훈육이 필요해 보입니다. ‘닥터’니까 가서 뭘 치료하기나 하라니요. 정말 뇌에 주름 가게 하는 소리 아닙니까!

가정에서 학교로
아시다시피, 우리 아이는 리버사이드 고등학교에서 주목받는 쿼터백이었습니다. 맥주통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다가 어깨가 나가는 바람에 장학금도 날리고, 인생도 날려먹었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그 시절은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요. 무도회 킹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아이가 매일 고등학교 로고가 그려진 가죽점퍼를 입고 등교해도 특별히 나무라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아이가 예능에 재능이 있어 현대 무용이나 크럼핑 같은 스트릿 댄스에 관심이 많은데, 특별한 지도 부탁드립니다. 이것도 학교라고, 졸업하고 나서는 지성인이 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거든요. 멀리서 보면 하는 일이 없는 듯 보이는 그런 사람 말이죠. 집에서는 할머니가 스위치 막대기로 엉덩이를 때려가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잘 인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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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정으로
귀 댁의 자녀가 불교에 관심이 깊은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그런데 불교 커뮤니티에서 레벨5의 레이저 연꽃단계라고 자랑을 하더니, 4월에는 레벨 6으로 승격된다고 자랑을 하더군요. 레벨의 차이에 따라서 세균 면역력과 독심술 능력이 고조된다고 하던데, 부모님의 각별한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순진하게 다 믿어버리는 그런 나이잖아요. 하지만 귀 댁의 자녀는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한 교내 활동에 적극적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학교의 공식 캐릭터인 ‘휴먼빙스’를 제작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노인과 아이, 남자와 여자, 인종과 종교를 뛰어 넘는 이 무색무취의 캐릭터를 제작하기 위해서 저와 함께 많은 고민을 나눴거든요. 혹시 학교에서 그것을 만나면 얼굴은 만지지 마세요. 나일론에 매직팬으로 입을 그린 거라서 자꾸 번지거든요. 아, 그런데 피어스가 트위터에서 본인을 마흔 일곱의 여성전용 필라테스 강사라고 하던데, 사실 여부 확인 부탁드립니다.

가정에서 학교로
우리 아이는 일곱 번 이혼 했습니다. 그동안 서른 두 명의 의붓 자녀를 축적 했지요. 비록 가정부 때문에 이혼하긴 했지만, 그 중에서 완다의 딸은 아이가 워낙 예뻐해서 자꾸 돈을 쥐여 주네요. 혹시 그런 문제도 학교에서 살펴 줄 수 있나요? 아직 너무 어린이 같은 아이라 여러모로 걱정이 많습니다. 학교는 어떤지, 인기는 좋은지. 제프라는 뺀질한 녀석이 자꾸 우리 아이를 놀린다는데, 요즘은 괜찮은지 궁금하네요. 물수건 회사를 경영하면서 물수건 광고 음악을 작곡할 때도 늘 물가에 내 놓은 아이처럼 염려되었는데, 이제 은퇴하고 학교를 다닌다니 더더욱 노심초사입니다. 이미지 경영, 아이콘 개발, Y2K 대비 능력이 뛰어나지만 한편으로는 감성적인 피아니스트인지라 살뜰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입니다. 사랑을 주세요.

글. 윤희성 nine@
편집. 장경진 th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