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백동수>, 공허하기만 한 무인의 외침

<무사 백동수>, 공허하기만 한 무인의 외침 4회 월-화 SBS 밤 9시 55분
“동무를 죽이고 가는 게 무인이라면 대체 살수와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무예를 익히는 게 이런 거라면 그만둘 겁니다.” 무예를 배우고 싶어 장용위의 일원이 된 백동수(여진구)는 생존 시험에서 헤엄 못 치는 친구를 구한 뒤 이렇게 말한다. 살수의 검이 흑사초롱의 그것이라면 무인의 검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던 김광택(전광렬), 백사굉(엄효섭)의 그것일 것이다. 첫 회에서 김광택이 인(박철민)에게 “돈과 권세에 기생하는 놈들이 감히 무인을 입에 담느냐”고 일갈한 것처럼 는 그렇게 검의 길을 두 갈래로 나눈다. 물론 굳이 작가의 의도를 가늠하려 애쓰지 않아도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길이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다음 주부터 청년이 될 백동수가 걸어야 할 길일 것이다.

하지만 첫 회부터 여러 인물들이 검을 맞댔지만, 여전히 어째서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 검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 드라마는 설명하지 못한다. 검이라는 것은 도저히 평화적 방법으로는 세상의 정의를 구할 수 없을 때 차악으로서 드는 마지막 수단이다. SBS 의 일지매가 그랬고, KBS 의 송태하가 그랬다. 이들 드라마가 영웅 서사 안에서 도탄에 빠진 백성의 모습을 그렸던 건 그래서다. 하지만 는 사도세자(오만석)의 북벌에 대한 의지만으로 장용위의 탄생과 백사굉의 죽음, 그리고 검의 사용을 정당화한다. 우리가 잃은 북방의 영토를 되찾겠다는 세자의 외침은 멋있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 나라, 즉 백성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없다면 공허할 뿐이다. 지금, 가 말하는 무인의 도가 딱 그렇다. 아직까지 여운(박건태)에 대한 경쟁심만으로 조선 제일 검을 꿈꾸는 백동수는 과연 왜 검이어야 하는지 자각할 수 있을까. 작품을 위해 꼭 그러길 바란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