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직후] ‘트럼보’ 복면작가,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

[텐아시아=정시우 기자]트럼보

공개날짜: 3월 28일(월) 오후 4시
공개장소: CGV 왕십리
감독: 제이 로치
배급: (주)프레인글로벌
개봉: 4월 7일

줄거리: 할리우드 황금기였던 1940년대. 자타공인 천재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는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혀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한 순간 부와 명예를 잃게 된 트럼보는 글을 쓰기 위해 필명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것은 실화다.

리뷰: 신분을 숨기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 종종 있다. 필명을 쓰는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본명이 밋밋해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서(조앤 롤링: ‘해리포터’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후, 필명으로 ‘뻐꾸기의 외침’ 출간), 한 지면에 여러 작품을 쓰게 돼서(에드워드 D.호크, 김성종), 출판업계 풍조로 인해서(스티브 킹은 1년 1작가 1권 출판의 분위기 때문에 필명 사용) 등 여러 이유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작가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 남자가 필명을 쓰게 된 사연 앞에서는 다소 숙연해지는 게 사실이다. ‘사상검증’이란 광기의 시대를 만나 유령작가로 살아야 했던 달튼 트럼보. 트럼보의 슬픈 사연 뒤에는 “나는 공산주의가 싫어요”를 외쳤던 ‘매카시즘’ 광풍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반미활동 조사위원회(HUAC)’가 민주적 가치를 오염시키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겠다고 나선 것도 바로 이때다.

시대의 검은 그림자는 할리우드도 피해가지 않았다. 반공주의자들의 표적이 된 배우·작가·제작자 등이 청문회에 소환됐는데, 그 중 한 명이었던 트럼보는 의회모독죄로 감독에 수감되기도 했다. 1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트럼보를 기다렸던 것은 현대판 마녀사냥. 작품 활동 금지로 밥줄이 끊긴 트럼보가 선택한 것은 결국 익명 뒤에 숨어 글을 쓰는 것이었다. 트럼보에게 필명은 그러니까, ‘먹고사니즘’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고 ‘표현의 자유’ 탄압에 대한 나름의 항변이었다.

이 기간, 트럼보는 무려 11개의 필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은 가짜 이름으로도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가명으로 쓴 ‘로마의 휴일’과 ‘브레이브 원’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기도 했다. 물론 그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존재를 숨긴 채, 집에서 가족들과 자축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슬픈 이야기를 영화는 슬프게 풀어내지 않는다. 냉혹한 ‘공포 정치’ 속에서 새어 나오는 희망의 문장같달까. ‘오스틴 파워’ ‘미트 페어런츠’를 연출했던 제이 로치의 손끝에서 매만져진 이 작품은, 시종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아마도 ‘트럼보’는 창작의 자유가 억압받는 사회에 전하는 응원가일 것이다.

다만 ‘트럼보’는 전기 영화나 정치 드라마로서 다소 평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동료의 배신과 화해, 가족애의 위기와 봉합, 명예회복에 이르는 이야기 방식이 매우 관습적이다. 존 맥나마라가 쓴 이 시나리오는 작가 트럼보가 쓴 시나리오에는 못 미친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마음이 간다면,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잃지 않았던 트럼보의 삶이 주는 울림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각종 검열이 자행되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영화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트럼보가 쓰고, 커크 더글라스가 주연을 맡은 1960년대 작 ‘스파르타쿠스’에서 노예들은 자신의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한 사람씩 일어서며 “내가 스파르타쿠스다!”를 외친다.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 택한 죽음. 트럼보는 이 대사를 쓰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관람지수: 10점 만점에 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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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제공. (주)프레인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