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너무 좋아서 아껴 듣는 음악들

김진│너무 좋아서 아껴 듣는 음악들
세상에는 그냥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보면 즐거운 것들이 있다. 교실 벙어리장갑을 끼면 손이 벙어리장갑 모양으로 변하니 절대 끼지 말라고 말하는 아이, 좋아하는 과일을 그리라는 말에 일부러 야채 이름만 읊으며 은근슬쩍 선생님을 놀리는 아이 등 김진 작가의 웹툰 에 소개되는 방과 후 교실 학생들의 이야기는 별다른 과장이나 극화 없이도 보는 이를 아빠 미소 혹은 엄마 미소를 짓게 만든다. 크리스마스에 선생님이 카드를 써줬다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카드를 만들어 답장하는 아이들이라니. 데뷔작 으로 역시 일상 속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던 김진 작가에게 방과 후 학교를 통한 아이들과의 만남은 개인적인 보람인 동시에 창작을 위한 소재의 금맥을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만큼이나 인상적인 건, 그 모습을 어른의 잣대로 쉽게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그대로 긍정하려 노력하는 작가의 태도다. 종이에 솜을 붙일 때 종이가 아닌 솜에 풀칠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미술 선생님으로서 눈높이 교육의 필요를 절감하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마음가짐은 제목인 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연재 세 달 전부터 방과 후 교실 수업지도를 했는데, 아이들 중 그림 그리고 글씨 쓸 때 조금만 삐뚤어도 지우고 다시 그리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그 때 ‘삐뚤어도 괜찮아’라고 대답해주다가 ‘오호라’ 했죠.” 삐뚤빼뚤 아직 서투르고 순진한 아이들과 반듯한 글씨를 바라는 선생님이 만났더라면 과연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야기들을 독자가 만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번 ‘그의 플레이리스트’는 혹 바래기라도 할까봐 아껴두고 싶은 아이들과의 추억처럼, 김진 작가가 아껴 듣는 곡들로 구성해보았다.

김진│너무 좋아서 아껴 듣는 음악들1. 몽구스(Mongoose)의
“전 멜로디만큼 가사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몽구스 4집에 수록된 ‘변해가네’를 처음 들었을 때 제 심리 상태랑 테트리스 블록처럼 찰칵 들어맞았어요. 마치 생활툰에서 독자분들이 공감을 얻는 것처럼, 저 역시 노래 가사에서도 공감을 찾을 때가 많아요. 몽구스의 지금까지 앨범 모두 훌륭하지만 이번 4집은 특히나 아쉬운 노래가 하나도 없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몬구 님을 너무나 좋아한답니다. 하하.” 데뷔 이후 꾸준히 신시사이저를 적극 활용해 댄서블한 록 넘버를 들려주던 몽구스지만 추천곡인 ‘변해가네’는 ‘모두 변해가, 쉽게 변해가’라는 조금 쓸쓸한 가사처럼 차분한 템포의 모던록 넘버다.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기보다는 ‘너도 나처럼 울고 있을까, 하지만 볼 수 없네’라고 조금은 담담하게 노래하기에 오히려 그 여백 안에서 공감할 수 있다.

김진│너무 좋아서 아껴 듣는 음악들2. 빛과 소금의
김진 작가의 두 번째 추천곡은 빛과 소금 4집에 수록된 동명 타이틀곡 ‘오래된 친구’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다투고 나서 선물했던 테이프였어요. 그땐 MP3도 없었을 때니까요. 하하. 가사처럼 다툰 적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우정도 깊어졌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는 노래라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었어요.” 이제는 MBC ‘나는 가수다’의 자문위원으로 더 잘 알려진 장기호 교수지만 빛과 소금을 듣던 세대에게는 ‘키오’라는 당시 예명이 더 친숙할 것이다. 그 장기호, 박성식 두 콤비가 서로를 ‘미스터 박, 미스터 장’으로 호칭하며 ‘우리는 오래된 친구’라 노래하는 이 곡에 아주 핵심을 찌르는 가사는 없다. 하지만 정말 깊은 우정은 별다른 설명이나 수사 없이 ‘오래된 친구’라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법이다.

김진│너무 좋아서 아껴 듣는 음악들3. 옥상달빛의
“듣자마자 응? 내 이야기네, 나잖아. 없는 게 메리트”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곡은 옥상달빛 1집에 수록된 곡 ‘없는 게 메리트’다. “옥상달빛분들은 가사를 너무너무 잘 쓰세요. 상냥하면서 약간은 기운 없는, 투명한 성량도 좋고요.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의 실로포너 아닐까요.” 수많은 인디 밴드 중 유독 이 여성 듀오의 인기가 높은 건 무엇보다 동시대의 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아주 무책임하지만은 않은 희망이 조금 더 더해진다. 전작 에 수록된 ‘하드코어 인생아’에서 ‘죽지 못해 사는 오늘’의 우울함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했던 그들은 이제 ‘없는 게 메리트’에서 ‘가진 게 없어 손해 볼 게 없다네’라 노래한다.

김진│너무 좋아서 아껴 듣는 음악들4. 토이의
앞서 노래 가사에서 공감을 찾는다고 말한 김진 작가는 의외로 토이의 연주곡 ‘길에서 만나다’를 추천했다. “그토록 가사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충분히 전해지고 느껴지는 게 많은 멜로디예요.” 신나기보다는 황량한 느낌이 드는 드럼 인트로와 함께 흐르는 조금 우울한 피아노 선율이 매력적인 곡이다. 뼈대가 되는 멜로디는 피아노를 통해 흘러나오지만 순차적으로 기계적인 드럼 프로그램과 몽환적인 효과음, 현악기 연주가 겹쳐지며 다층적인 사운드와 다층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만약 깊은 사연이 있는 누군가를 정말 길에서 만나게 된다면 이토록 다양한 감정이 오갈 수 있지 않을까. 편곡자로서의 유희열의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김진│너무 좋아서 아껴 듣는 음악들5.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의
“다이나믹듀오는 동갑내기라서 왠지 동네 친구 같고 (혼자서) 왠지 전화 걸어 ‘나와’라고 하면 술 한 잔 하며 고민을 말할 수 있을 거 같고 (혼자서) 그렇게 가상 친분을 느끼며 지내 와서 그런지 개코 님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도 대단했어요. (역시 혼자서) 결혼하셨다고, 신혼이라고 달달한 가사의 앨범을 들고 나오면 배신감 느낄 거예요. (혼자서)” 이렇게 열심히 혼자서 다이나믹듀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김진 작가의 마지막 추천곡은 3집에 수록된 ‘동전 한 닢’이다. ‘니가 좋으면 들어 그리고 싫으면 꺼’라고 말하는 그들의 음악적 자신만만함 혹은 다짐을 보여주는 곡이다. 하지만 우리가 최고라는 식의 허세 넘치는 넘버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말발로 밥 벌어 먹지만 거짓말은 안 해. 난 사기꾼은 아니니깐’ 같은 가사는 뮤지션으로서 건강한 자신감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김진│너무 좋아서 아껴 듣는 음악들“일단은 생활툰 작가로서의 입지를 좀 더 굳혀야 할 것 같아요.” 생활툰과 극화, 둘 사이에 우열은 없다. 다만 생활의 에피소드를 아기자기하고 공감 가게 그리는 작가들은 스토리가 있는 픽션을, 반대로 독특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춘 작가들은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관심을 경우가 많다. 김진 작가 역시 “극화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지만 아직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하지만 곧 연재가 끝나는 이후의 작품 혹은 그 이후 작품에서 우리는 새로운 소재와 감성으로 무장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어요. 30대가 되고 보니 주위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왜 이렇게 굴곡지고 가파른, 낭떠러지 같은 연애 이야기가 많은지. 하하.” 물론 모든 일이 그렇듯 어떤 계획도 연재를 시작해야 진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하고 왜곡 없는 눈으로 같은 작품을 그리는 작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결국 미더울 수밖에 없다. “항상 노력하고, 거듭나서 달라진 모습, 좀 더 나아진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말뿐이 아니라 진심으로.”

글. 위근우 기자 e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