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권 “사람들은 모두 ‘또라이’라고 생각해요”

박혁권 “사람들은 모두 ‘또라이’라고 생각해요”
배우 박혁권입니다. KBS 의 수지 아빠, MBC 의 김태희 아빠, 거슬러 올라가 의 홍상일 교수나 , 의 국정원 요원으로 이 남자를 기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의 ‘혁권 더 그레이트’나, 건포도를 보고 야릇한 상상을 이어가던 의 ‘스모키 배우’, UV의 근원을 파헤치던 Mnet < UV 신드롬 비긴즈 >의 파리 석학 ‘기 소보르망 박사’, 혹은 지난주 개봉한 의 성도착증 육상코치로 그를 처음 만난 분들도 계실 겁니다.

가만히 보면 이 남자는 크게 소리 내어 웃는 법이 없습니다. 좌중이 쓰러지는 웃긴 이야기를 던져놓고도 씨익 미소 짓는 게 다 입니다. 과도한 진지함도, 속세를 벗어난 쿨한 태도도 아닌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늘어놓는 이야기 앞에 인터뷰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진짜와 가짜 사이, 웃기지만 웃지 않는 배우, 이상하게도 정상인 남자 박혁권은 그렇게 휴전선보다 더 비현실적인 라인을 장대 하나로 넘나들고 있는 신기한 배우였습니다.

100: < UV 신드롬 비긴즈 >에 등장하시는 걸 보고 아, 드디어 저기까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음)
박혁권: 윤성호 감독의 대학 1년 후배가 < UV 신드롬 >의 박준수 감독인데, 저하고도 예전에 단편작업을 한번 했었어요. 일단 저는 그 전에 UV가 뭐하는 사람들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1부 대본보고 좀 감이 안와서 2부 대본보고 결정하자, 고 했는데 그 쪽에서는 할 테니까 2부 대본도 보자, 로 이해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은 했는데. 촬영을 하다가 중간에 못하겠다고 했어요.

100: 왜요?
박혁권: 제가 거기서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5부쯤인가 한번 빠졌었어요. 그러고 총 몇 부작이냐고 물어봤더니 9부작이라고 해서 에휴- 이왕 한거니까 마무리를 짓자, 마음 고쳐먹고 다시 촬영에 합류했죠. 그러다가 1부 방송되는 걸 보고나서야 비로소 알았죠. 아! 이런 거였구나. 그 다음 부터는 재밌어지더라고요.

“판 자체를 새로 만드는 UV는 큰 자극이 되었어요”
박혁권 “사람들은 모두 ‘또라이’라고 생각해요”
100: 제작진은 왜 하고 많은 배우들 중에 기 소보르망 박사 역할을 박혁권 씨에게 맡겼을까요?
박혁권: 제가 다큐식 연기를 하고 아직 별로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저 사람 진짠가 가짠가? 헷갈려 할 수 있으니까, 혼란을 주는 게 목표였던 것 같아요. 아마도 더 유명했으면 안 썼을 것 같고.

100: 코믹한 배우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좀 꺼리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시트콤 섭외가 들어와도 출연을 안 하셨다고.
박혁권: 사실 저 웃기는 거 좋아해요. 그냥 그 시기가 그랬죠. 끝내고 전에 있던 소속사에서 다음 작품은 시트콤을 좀 알아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라는 진지한 드라마를 하고나서 바로 다음 작품으로 시트콤을 찍는 건 뭐랄까… 감독님에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1, 2년 후에는 후회를 했죠. 이사도 가야하고 목돈 들어갈데가 생기니까… 그냥 할 걸. 지금은, 불러주시면 고맙죠!

100: 영화에서도 독특한 사람들과 작업을 해오셨지만 UV, 유세윤 씨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가 궁금해요.
박혁권: 되게 좋았어요. 정말 되게. 사실 배우나, 개그맨, 뮤지션도, 대부분 주어진 판 안에서 창작 활동을 하거든요. 그런데 UV를 보니까 그 판 자체를 아예 새로 만드는 더 큰 창작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큰 자극이 되었어요. 저 같은 경우는 한 시간 동안 이 안에서 놀아, 그러면 한 시간 동안 뭐하고 놀지를 생각하는 편인데, 그 친구들 보면 꼭 여기서만 놀아야하나? 딴데서 놀아볼까? 하는 생각을 하잖아요. 윤성호 감독과의 작업이 재미있고, 많이 배우는 것들도 그런 맥락이죠. 같은 방식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죠. 저런 생각은 과연 어디서 나올까, 궁금해요. 저는 이상한 건 참 잘 잡아내는 위주로 발달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인지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나 봐요. 나에게는 없는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존경심.

100: 하지만 그런 창작력을 가진 사람들이 박혁권이란 배우를 편애하고 또 찾잖아요. 페르소나로 부르기도 하고. 그 이유는 뭘까요?
박혁권: 싸고… 말 잘 들으니까… 아직까지는. 하지만 비싸지고, 내 의견을 많이 내면 싫어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100: 사기꾼 같기도 하고, 사이코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도인 같기도 하고. 윤성호 감독의 의 전영록 코치는 영화를 다 본 이후에도 이런 사람이다, 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박혁권: 전영록의 행동에는 딱 떨어진 목적이 좀 약하긴 하죠. 부모의 복수나 뭐 그런 비장한 이유는 아니니까. 대신 그 목적을 보충하는 것이 이 사람의 정신세계죠. 사알짝 이상한. 캐릭터를 움직이는데 총 100이 필요하다면 전영록은 목표는 70밖에 안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정신세계 30을 더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둘을 합쳐주면 엉뚱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가 되니까.

100: 대본상에서는 딱 떨어지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 더 쾌감 같은 걸 느끼시나봐요?
박혁권: 아니에요. 저는 딱 떨어지는 게 좋아요. 그래야 배우는 계획을 세우니까. 목적지까지는 아니라도 대충 몇 Km까지는 가보자, 하면 괜찮은데, 일단 가보면서 생각하자, 하면 힘들어요. 징역을 산다면 차라리 무기징역이 편할 것 같아요. 어차피 포기하니까. 그런데 만약 당신이 10년에서 20년 사이 출소할 거다. 이러면 힘들잖아요

100: 그런데 윤성호 감독이 딱 떨어지는 역할만 주는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박혁권: 아! 윤성호 감독은 저에게 딱 떨어지는 뭔가가 있어요. 이 사람은 딱 떨어지는 뭔가를 안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딱 떨어지는 거죠. 할 때도 다른 배우들은 좀 헷갈려 하기도 했는데 저는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오히려 편했죠.

100: 윤성호 감독과는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으신가요. 유머코드라던가. 정서라던가.
박혁권: 윤성호 감독은 영화와는 달리 생활에서는 별로 웃기려고 노력안하는 스타일이고 저는 일상에서도 웃기려고 노력하거든요. 혼자 연습해서 친구들에게도 야, 이거 웃기지 않냐 보여주기도 하고. 윤성호 감독과는 뭐가 통해서라기보다 제가 뭘 해도 그냥 놔두는 편이라서 편해요. 사실 서로 작품이야기도 많이 하진 않아요. 대신 술은 많이 먹는 편이죠. 그리고 여자 이야기… 예. 음담패설. 너무 좋아합니다.

“‘유도리’는 많지만 고집은 세죠”
박혁권 “사람들은 모두 ‘또라이’라고 생각해요”
100: 물론 독립영화계에서도 활동이 꾸준하시지만 영화 에서의 존재감도 컸고, 최근 , 까지 대중적인 인지도가 많이 높아지셨어요. 예전엔 나만의 ‘혁권 더 그레이트’였는데 말이죠. (웃음)
박혁권: 의 수지아빠로 많이 알아보시긴 하죠. < UV 신드롬 비긴즈 >도 재방송을 워낙 많이 해요. 특히 술집에는 뮤직채널을 많이 틀어놓으니까 친구들은 야, 술집만 가면 니가 나온다고 하죠. 최근 베트남에 놀러갔었는데 현지인 2명이 를 봤다며 알아보더라고요. 한 5일 있었는데….

100: 어떠세요. 그런 반응들을 접하면? 옛날에는 싸인도 잘 안 해주셨다면서요?
박혁권: 알아봐 주시는 건 재밌죠. 한편 창피하기도 하고. 싸인은… 지금도 싫어요. 저는 솔직히 싸인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가끔 식당에 가면 “일루와, 여기 싸인이나 해” 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싸인 없는데요, 하면 “이름이라도 써” 하고, 제가 다음에 싸인 만들어 올게요, 하면 “그럼 날짜라도 써!” 하고, 죄송하다고 대신 식당에 자주 올게요, 하고 돌아서면 그 뒤통수에 대고 “성격이 되게 못됐네” 하신다구요. 저는 제 이름 삼겹살집에 걸어놓고 싶지 않거든요. 정말 팬이라면 몰라도 그저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는 그런 요구에는 어느 정도 폭력성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100: 대중 앞에 얼굴 파는 사람이니까 이 정도 요구는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식으로요?
박혁권: 예. 연기하는 게 직업인 사람인데, 그 외의 것들이 내 생활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제 직업을 바꿀 생각도 있거든요. 저는 연기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에요. 그저 태어나 살다보니 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지. 가끔 공인, 이란 말 가지고도 많이 싸워요. 나는 93년부터 연기를 해왔는데 그럼 내가 공인이 된 시점이 언제야? 그런 게 명확하지 않잖아요. 물론 대중 앞에 선 사람으로서 배우가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공인이란 말은 누군가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관여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고위 공직자나, 성직자나, 선생님들, 혹은 모든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들에게 공인이겠죠. 영화 무대인사 끝나고 사인회를 할 때는 이름을 써요. 대신 그 시간이 오래 걸리죠. 저도 싸인 받으시는 분들을 기억하고 싶으니까요.

100: 에서 보스로 나오는 엄기준 씨가 “사람이 유도리가 없어” 라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정말 그런 건가요.
박혁권: 아뇨, 전 ‘유도리’가 많은 편이예요. 대신 고집이 좀 세죠.

100: 하하하, 그 둘의 차이는 뭘까요?
박혁권: 내가 여기서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상황들이 눈에 보이긴 보여요. 그게 안 보이는 사람이 ‘유도리’가 없는 사람이고. 대신 보여도 하기 싫은 건 절대 안 하는 거죠.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감은 있어요. 그 거절이나 고집 때문에 불이익이 온다면 오케이 감수하겠어, 하는 편이죠. 어떻게 보면 방어적일수도 있는 건데, 이것까지 내줘버리면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안 그러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조금 자신감 얻다가 또 좌절하고, 아마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박혁권 “사람들은 모두 ‘또라이’라고 생각해요”
100: 아까 연기를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박혁권: 특별히 배우를 해야겠다고 꿈꿨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재밌겠다, 내가 하면 좀 잘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죠.

100: 혹시 잘생긴 외양 때문에?
박혁권: 어휴, 제가 수원에서는 그래도 좀 먹어줬죠. 주변 여학교에서도 제 이야기가 좀 나오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서울에 수원사람들이 별로 없거든요. 어차피 모를 테니까 함부로 말하는거에요.

100: 그렇다면 본인은 뭘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았어요?
박혁권: 그런 게 없었어요. 그냥 놀았어요. 고등학교 때 가출해서 학교를 그만뒀거든요. 그러고 2년 넘게 살았으니까 시작의 모양새는 가출이었지만 결국 생활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명절 때 집에도 왔다 갔다 하고 그랬으니까. 자연스럽게 사회생활을 좀 일찍 하게 된 케이스예요.

100: 왜 가출을 해야겠다고,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나요?
박혁권: 그냥 잘 안 맞았나봐요. 집도 학교도. 엄마에게 남긴 편지에는 그래도 대학은 갈꺼다 라고 써놨거든요. 아마도 그때는 고등학교를 대학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검정고시도 있는데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다닐 필요가 뭐있어 했던 것 같고요. 가출하고 1년 동안은 집에서도 내가 어디갔는지도 몰랐고, 학교 친구들하고도 1년이 지나서야 연락을 했어요. 학교에서 보면은 그냥 사라져버린 아이였죠. 그러다가 나중에 들었는데 내가 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전교에 파다했다고 하더라구요.

100: 고등학생이 산 속으로 들어갔다는 전설이 돌 정도면 (웃음) 그 전에 보여줬던 기행이 상당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박혁권: 그때 단전호흡 같은 게 유행이었거든요. 같이 성당 다니는 형들과 모여서 그런 걸 많이 했어요. 기수련 같은 거도 하고. 무술도 하고. 그 형들하고 어울리면서 패싸움 구경도 다니고 그랬죠.

100: 직접 주먹을 쓰시진 않고요?
박혁권: 수원에서… 그 당시에는 좀 잘나갔어요. 좀 전설이었거든요, 저 말고 그 형들이. 그래서 학교에 가면 야! 어제 그 이야기 들었냐? 응… 그게 우리 형들이야. 으쓱해하곤 했죠. 아마 산에 갔다는 소문은 그래서 나온 것 같아요.

100: 그렇다면은 실제로 그 1년은 뭐하셨어요?
박혁권: 가출해서 6개월은 레스토랑 웨이터 했었고, 나머지 1년 반은 재래시장에서 일하고.

100: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비교적 어린 시절에 깨치셨겠네요?
박혁권: 어릴 때 가정에 사건이 많았거든요, 굴곡도 많고. 나이도 호적이랑 다르고, 게다가 또래들보다 사회생활을 2년 먼저 했고 돈을 벌어서 생활도 해봤으니까. 이후로 10년 정도는 내 나이에 나 정도 경험해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하고 다녔는데. 서른 즈음이 되니까 약발이 안 먹히더라고요. 할 때도 전화해서 나 드라마 한다고 했더니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은 다 뒤집어 졌죠. 뭐 니가 의사라고? 환자를 해야지, 너는.

100: 그렇게 좀 돌아오긴 했지만 대학을 가면서 다시 정상적인 트랙을 타셨네요.
박혁권: 검정고시 봐서 대학에 들어가긴 했는데 주변에서는 계속 답답해만했어요. 제가 잘 못하니까. 예를 들면 집중을 하라고 하는데 연기에서 집중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차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모르는 학생에게 가르쳐주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방법을 알려주지 않고 답답해만 하더라고요.

100: 연기가 교육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박혁권: 체험적으로 느낀 건, 교육을 잘 받는다면 10년 걸릴 걸 7년으로 줄여 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저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감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거울을 보는데 내가 배우처럼 보이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훈련도 많이 했지만 서서히 몸이 알았던 것 같아요. 연극 할 때는 기고만장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난 다음에 보니 내가 너무 까불었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러다가 영화판 나와서 많이 깨지고, 다시 드라마판 가서 또 깨지고, 조금 자신감을 얻다가 또 좌절하기도 하고, 아마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대신 이제는 그 기복을 줄어보고 싶죠. 기복이 있으면 결국 실력이 아니라는 거니까.

100: 윤성호 감독은 배우 박혁권에 대해 “자연인으로서의 ‘선의’가 아닌 프로로서의 ‘합리’를 바라는 태도, ‘열심히 하는’ 배우보다 ‘잘하는’ 배우가 되는 게 올바른 일이라 생각하는 주관”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박혁권: 이건 전쟁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자니까 당연히 그런 직업적 책임감은 있어야 하는 거죠. 만약 사기꾼이었으면 저는 사기를 정말 잘 치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잘 못하는 직업을 가졌다면 직업을 바꿔야죠. 전쟁이었으면 변명도 할 겨를 없이 이미 죽었을 테니까. 열심히 싸웠어요 라는 말은 필요 없거든요. 잘 싸워야지. 이러고 나가서 어디서 배우라고 말하면 너무 창피하잖아요. 동물로 치면 사냥을 못하면 굶어죽을 테니까.

100: 왜 좋아하는 프로그램으로 을 꼽는지 알 것 같은데요.
박혁권: 저는 사람이 나오는 화면은 재미가 크게 없어요. 사실 다 뻥이잖아요. 가짜라고. 다큐도 아주 몰래 카메라가 아닌 이상 다 계산을 하니까요. 그런데 에는 진짜가 나오잖아요. 동물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고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물론 진짜처럼 뻥치는 게 배우란 직업의 매력이죠. 대신 어차피 가짜기 때문에 더 진짜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만약 제 직업이 종이로 꽃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저는 진짜 꽃처럼 만들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그런데 대놓고 가짜연기를 해버리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건 보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거죠.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딸이 집에 늦게 들어오면 꼭 시계 밑에서 서서 기다리잖아요. 물론 편리성 때문이겠지만, 소파가 바로 옆에 있는데 왜 굳이 팔짱끼고 그 아래 서서 기다리냐고. 그리고 혼잣말을 하잖아요. “이 녀석. 어제 8시까지 온다고 말 해놓고, 흥 이래도 안 들어와?” 무슨 셰익스피어 희곡도 아니고, 무슨 독백을 풀- 센텐스로 해 저 사람은! 이건 거의 정신병자거든요. 그런 거 보면 재미가 없죠. 장례식장에 간 스타들이 현장에서 인터뷰 하는 거 볼 때도 너무 화가 나요. 눈물이 흘러도 일부러 안 닦고 흐르게 놔두고 . 사실 사람이 죽었는데 인터뷰 할 정신이 어딨어요. 만약 제가 더 유명해진다면 유서에는 이렇게 꼭 써놓을 거예요. “야! 내 장례식 와서 인터뷰 하지 마라!”

“누구보다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박혁권 “사람들은 모두 ‘또라이’라고 생각해요”
100: 영화 가 특히 아끼시는 작품이라고요.
박혁권: 일단, 의 신정원 감독님이 좋아요. 말을 잘 안 해서 처음엔 사람을 참 어렵게 만드시거든요. 끝나고 둘이서 술을 먹는데 말이 없으니까 저 혼자 만취했던 일도 있었어요. 이제는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이 사람을 관찰하는 게 재밌어요. 저렇게 말 안하면서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거죠. 분명 영화를 그렇게 찍는 사람이라면 말은 안하지만 느끼고 생각하는 게 많은 사람일 테니까.

100: 감독님도 어쩌면 조용히 박혁권을 관찰하고 있었겠죠.
박혁권: 그러게요. 저는 따지고 들어가면 사람은 다 또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신정원 감독은 그런 걸 잘 끄집어 내는 것 같아요. 에서 제가 음료수 훔치는 장면이 있는데 원래 대본에 있던 설정은 아니었어요. 리액션 컷이 필요해서 할 게 없어서 했더니, 다른 신 찍는데 슬그머니 와서 이번에는 저 담배를 훔쳐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음부터 이거 훔쳐봐라, 저거 훔쳐봐라… 가끔은 집에 혼자 있다가 이런 생각을 해봐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안 이상한 사람이 누가 있나… 없더라고. 그러면 내가 아는 남자 중에 철든 사람이 누가 있나…. 역시 없어요. 어릴 때는 언제쯤이면 어른스러워지고 철들까 고민했는데 어느 순간, 당연히 철이 안 드는 족속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러고 보니 편해졌어요. 굳이 나만 들 필요는 없잖아요. 제가 뭐 간디도 아니고… 그런데 간디도 분명 이상한 구석이 있을 거예요.

100: 뭔가 배우는 것에 욕심도 많으시죠. 기타에, 복싱에, 영어학원도 그렇게 열심히 다니신다던데, 혹시 할리우드 진출을 목표로? (웃음)
박혁권: 영어는 어쩜 그렇게 안 느는지 화가 나서 계속 하고 있는 거예요. 영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잘 할 때까지 해보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계속 하고 있어요. 복싱은… 몸 쓰는 게 재밌어요. 땀 흘리는 거. 그래야 뭔가 한 거 같고, 뿌듯하고. 기타는… 중학교 때 교회나 성당에서 여자 꼬시려고 배우잖아요. 그래서 조금씩 치다가 찍을 때 쯤 기타 치는 역할이 두 편이 있었고 한창 음악을 듣다보니 블루스 기타가 너무 매력적이라 겸사겸사 좀 더 배워볼까 한거죠. 그런데 다 잘 하지는 못해요. 저는 사람이 뭐 하나 잘하려면 국가에서 인정하는 법적 노동시간 정도를 해줘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 8시간 정도.

100: 예전에 연극공연 할 때는 일지를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박혁권: 연기 초반에는 대본 전체에 뭘 적어놔서 빽빽했거든요. 질문이나, 기억할 것들 같은 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대본이 깨끗해지더라고요. 나중에는 한 글자도 안 쓰여진 대본도 있었구요. 좋게 말하면 노하우, 기술 같은 게 생겼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지금도 손으로 모든 대사를 한 번씩 꼭 써봐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드라마가 좀 힘든 게 대본이 그 때 그때 나오잖아요. 안 써보고 가면 제가 불안한 거예요. 하지만 급하게라도 꼭 써요. 방법이라기보다는 위안 같은 거죠.

100: 적지 않은 나이십니다. (웃음)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속도싸움보다는 스스로와의 높이 싸움을 해왔던 시간인 것 같아요. 조바심은 없어요?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는?
박혁권: 연기를 하면서 세상 보는 눈이 생겼고, 그 틀로 생각을 하게 되었던 사람이니까 아직까지는 배우라는 직업으로 이 세상에 공부할 게 여전히 많다는 게 좋아요. 누구보다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저는 각자 자기 길을 간다고 생각해요. 대신 제 치부책에 적어놓은 사람들이 저보다 잘 되는 건 안 보고 싶은 소박한 바람은 있죠.

100: 뒤끝이 좀 있는 편인가봐요.
박혁권: 어휴, 엄청 길어요. 복수는 꼭해요. 지금도 연락 안하는 사람 몇 있어요.

100: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박혁권 씨가 그런 복수를 하고 있는지 모르시죠?
박혁권: 모르죠. 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그런데 사실 저는 그들에게 처절하게 복수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글, 사진. 백은하 기자 one@
편집. 장경진 th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