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초점] 향음악사 폐점이 의미하는 것

[텐아시아=이은호 기자] 향음악사

향음악사가 문을 닫았다.

서울 마포구 창천동에 위치한 향음악사는 1991년 6월 개장해 지난 12일 문을 닫았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폐점을 앞두고 지난 3일부터 약 2주 간 할인 행사가 진행됐다. 조용하던 매장이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향음악사는 음반 판매점 이상의 의미를 가진 곳이다. 홍대 인근의 레코드포럼, 퍼플레코드, 미화당 등이 하나둘 문을 닫고, 거의 유일하게 명맥을 유지하던 곳이 바로 향음악사였다.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 보루이자 주변인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너만은 남아주길’이란 바람과 ‘너만은 남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을 동시에 품고 있던 곳. 향음악사의 폐점은, 그래서 꽤나 충격적이었다.

향음악사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은 약 두 달 전의 일이다. 인근 M레코드에서 판매하지 않던 B밴드의 음반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보다 한 달 앞서 팝 가수 A의 신보를 사기 위해 잠깐 들르기도 했다. 남아메리카 출신 가수 M의 음반을 내준 곳도 향음악사였고, G밴드의 절판된 음반을 찾으려 기웃거리던 곳도 향음악사였다.

향음악사는 그런 곳이었다. 대형 판매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음반도, 향음악사에는 대부분 있었다. 인디 음반과 수입 음반을 주로 취급하던 향음악사는, 때문에 마니아들이 더욱 사랑하는 곳이었다. 향음악사에서만 독점적으로 유통되던 음반도 더러 있었다.

가게에서 또 다른 손님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 하기야, 요즘 같은 세상에 CD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온라인 채널이 음악 시장의 ‘대세’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 국내의 경우 그 흐름이 더욱 빨랐다. 지난해 CD 판매량 10만장을 돌파한 팀은 고작 16개뿐이다(가온 차트 기준). 더욱이 국내 시장의 경우 CD 가격이 낮고 마진도 적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향음악사

그러나 향음악사의 폐점을 그저 ‘CD 시장의 축소’라고 설명하기에는 씁쓸함의 여운이 길다. 앞서 언급했듯 향음악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곳이었다. 물리적으로는 비주류들이 누리는 영토였으며, 관념적으로는 그들의 존재감을 나타냈다. 소위 말하는 ‘K팝’ 영역 밖에서도, 이렇게 끈질기게 이어지는 시장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곳이었다.

인디 레이블의 한 관계자는 “향음악사는 소수 취향의 음반을 많이 취급해준 곳이었다. 인디 신(scene) 초기 CD 배급하는 것조차 녹록치 않았던 때, 이 곳의 여러 시도를 흔쾌히 받아준 것도 향음악사였다. 콜렉터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곳이다”고 회상했다.

관계자는 그러나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았을 뿐 향음악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판매는 계속 이어진다. 아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오프라인 판매보다 온라인 판매 비중이 더 컸을 것이다. 향음악사가 완전히 문을 닫는 것은 아니다”고 거듭 당부했다. 인디 신의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온라인 매장이 남아있으니 향음악사가 완전히 죽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최근 바이닐(LP) 붐이 일고 있듯, 다른 형태의 피지컬 애호가 발생하지 않을까. 피지컬의 시대가 끝났다고 보는 것은 섣부른 판단인 것 같다”고 내다봤다.

기사를 쓰면서 몇 번이고 향음악사의 온라인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흥미로운 음반 몇 개가 눈에 띄기에 장바구니에 담아뒀다. 실로 오랜만의 쇼핑이었다. “평소에도 (손님들이) 이만큼만 왔다면…” 폐점 세일날, 누군가 무심코 던졌던 한마디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향음악사 공식 SNS 및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