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희, 그 남자의 로맨스 (인터뷰)

[텐아시아=장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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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멋진 일이다. 나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나이테라는 멋스러운 무늬를 하나씩 갖게 되는 것처럼, 지진희는 작품 속의 배우로, 생활 속의 한 남자로 멋들어진 향기를 품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남자의 로맨스는 얼마나 진실된가. 멋진 배우 지진희의 멜로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

10. ‘애인있어요’는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을 것 같다.
지진희 : 모든 작품이 아쉽고 섭섭하다. ‘애인있어요’는 아주 깔끔하게 떨어진 느낌이다. 군더더기 하나 남지 않고, 모든 걸 다 배설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아주 깔끔하다. 만족도가 높은 드라마라고 볼 수가 있다. 대본도 마찬가지고, 감독님 연출, 배우들 연기, 모든 것 하나하나가 빠지는 게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끝나고 나서도 아쉽다거나 그런 부분은 없는 것 같다. 대신, 이런 조합이 언제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있다. 또 이렇게 모여서 촬영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얘기도 했다. 내일 모레 번개팅으로 ‘애인있어요’ 식구들이 모인다고 해서 일정 끝나고 거기도 들러야 할 것 같다.

10. 수많은 작품을 했는데 ‘애인있어요’ 팀이 최고라고 생각하나.
지진희 : 다른 사람들 덕분에 최고라고 느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부족한 부분을 내가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던 게 조금이라도 있었을 것 같고, 또 내 부족한 부분을 다른 사람들이 채워줬다. 거의 8개월의 시간 동안 무리 없이, 별 탈 없이 마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라 그러기가 쉽지가 않다.

10. 결말에서 드라마의 스토리가 힘을 조금 잃은 것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아쉬움도 있었다.
지진희 : 아마도 결말을 다르게 해석하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그분들한테는 그게 맞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 따라 결말은 다 다를 것 같다. 그래야만 하고. 진언과 해강에게 수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바닥까지 갔다 온 아픔이다. 자식이 죽고, 헤어지고, 악마같이 변하는 와이프를 봤고, 무던히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날 사랑하는 여자가, 오해였지만,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돼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말은 그럼에도 다시 만나서 알콩달콩 지지고 볶고 사는 건데, 그게 보통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일상이다. 서로가 첫사랑이었던 진언이와 해강이가, 만약 두 명, 세 명, 네 명을 만나고 나서 서로를 만났다면 이렇게까지 아파하지 않았을 거다. 첫 사랑이기 때문에 더 순수했던 모습이었다. 해강이에게는 성공해야 한다는 목적이 뚜렷했지만, 진언이는 그런 고민이 없었다. 오직 사랑만 생각했을 거다. 내가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그 수많은 걸 겪고 나서 앞으로의 행보가 너무 행복한 거다. 아마 이미 끝까지 가봤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거다. 지지고 볶든 간에 아마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싶다.

10. 내 남편과 불륜했다는 독특한 소재로 화제가 됐다.
지진희 : 지진희 입장에서는 사실 이해를 못 했던 부분도 있다. 내 입장에서 본 진언이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캐릭터였다. 그런데 진언이 입장에서 보니까 얘가 이해가 되는 거다. 작가님이 정말 글을 잘 써주셨다.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고, 누나와의 문제도 있었을 거고, 그 과정에서 진언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다가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한 여자에게 집중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진언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진언이의 상황을 모르고, 옆에서 지켜만 봤을 때에는 감당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런 진언이의 모습이 불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었을 거다.

특히 설리와 있는 모습이 너무 미워보여서 불륜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 드라마가 쉽지는 않은 드라마였다. 나중에 그런 얘기들이 계속 나온다. 내가 이러는 게 너를 사랑해서인지, 현실을 피하기 위한 수단인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결국 진언이에게 설리는 수단이고, 방법이었던 거다. ‘애인있어요’는 ‘사랑하는 사람 있어요’다. 진언이는 오로지 해강이었고, 해강이 역시 오로지 진언이었다. 설리는 진언이었다. 그런데 진언이는 설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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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작발표회에서 멜로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제대로 보여준 것 같나.
지진희 :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시청자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아주 후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웃음). 많은 분들이 분노하다가도 공감할 수 있었던 작품인 것 같다. 특히 많은 분들이 굉장히 집중해서 봐주신 것 같다. 사실 이런 일들은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생뚱맞게 툭 튀어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 너무 흔히 있는 일들이다. 멜로 얘기는 정말 하고 싶었는데, 내 나이 또래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는 상황에서 ‘애인있어요’를 만난 건 행운이다.

10. 감정의 진폭이 컸던 작품 같다.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지진희 : 일단 스케줄에 있어서는 완벽했다. 밤 12시 이후에 끝난 적이 거의 없었다. 새벽 1시 이후에 끝난 게 두세 번 있었나? 정말 훌륭했다. 감독님이 드라마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미리 준비해서 그런 멋진 영상, 완벽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감정에 있어서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복잡하다. 해강이, 백석, 설리 모두가 복잡했다. 굉장히 깊이 있는 드라마였다. 감독님과 콘셉트 회의를 하고 나서 내가 조금이라도 틀어진 게 있으면 감독님이 바로바로 잡아주셨다. 말 한마디가 뉘앙스가 굉장히 많이 달라서, 그런 것들을 서로 많이 의논했다.

10. ‘애인있어요’는 결혼한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을 얻는 작품이었다.
지진희 : ‘따뜻한 말 한마디’도 그렇고, ‘애인있어요’도 그렇고, 우리가 거부하려고 해서 거부되는 게 아닌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싫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불륜이 내 얘기라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거다. 디테일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디테일 면에서 두 작품 모두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디테일이 좋아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결혼한 분들이 깊이 있게 봐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10.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
지진희 :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감정이입 하지 말라고 했다(웃음). 저건 일이고, 나는 네 남편이라고 얘기했지(웃음).

10. 최진언이 여성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진희 : 여자들이 진언이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해강이에 대한 몰입인 것 같다. 그래서 더 분노했을 거고. 진언이를 더 이해할 수 있었던 건 해강이가 기억을 잃고, 모두가 다 몰라보는데 진언이는 알아보지 않나. ‘내 아내니까’라고. 그 누가 아니라고 해도 내 아내니까 나는 안다, 라고 얘기하는 부분이 감동적이다. 여성 시청자들도 내 남편이 저렇게 나를 알아봐줬으면 해서 더 진언이를 좋아해준 것 아닐까 싶다.

10. ‘네 몸은 네 것이 아니야, 내 거야’라는 마지막 대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지진희 : 진언이었으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보면 오글거리겠지만(웃음). 진언이는 사실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상남자 같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다정하게 고백도 안 하고(웃음),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으면서, 안 웃긴 것 같은데 웃기다. 내 생각이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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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애인있어요’는 어떤 드라마였나.
지진희 : 만족감이 정말 높았던 작품이다. 진언이는 잘 우는 편인데, 나는 잘 우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진언이의 입장에서 이 눈물을 어떻게 해야 되나 많이 고민했다. 지진희는 그렇게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 조금은 감정의 파고가 생겼다. 어떻게 조절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다. 요즘 대본이 깊이 있게 쓰인 대본이 많지 않은데, ‘애인있어요’는 정말 깊이 있는 대본이라 공부하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반복이 아닌 다른 연출을 봤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내가 더 성장한 것 같다. 배우들의 호흡도 마찬가지다. 배우들의 호흡이 워낙 좋아서 더 성장할 수 있었다.

10. 최근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나.
지진희 : 다행히도 난 기억력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서 살기가 편하지(웃음).

10. 김현주와 호흡을 맞췄다.
지진희 : 많은 분들이 드라마를 보면서 둘이 참 잘 맞는다는 걸 느끼셨을 거다. 연기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분명히 김현주의 배려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기 외에도 다른 많은 부분들에서 비슷한 걸 많이 느꼈다. 그래서 서로 웃기도 많이 웃었다. 고마운 부분이다. ‘파란만장 미스김’을 찍으면서도 좋았는데, 지금은 그 이상으로 더 좋았다.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안 했던 게 큰 장점이다.

해강이를 생각했을 때 김현주 이외에 다른 사람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옷을 입고 왔을 때에도 맞추지도 않았는데 서로 비슷한 옷을 입고 온다든지 그런 일도 많았다. 그런 것들부터 시작해서 시시콜콜한 것에서 놀랄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도 얘기 나누다가 ‘어, 너도? 이러면서 놀라기도 하고.

10. 40대 이후에 멋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지진희 : 마흔이 넘어도 멜로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현재까지 100% 만족은 안 하지만, 아직까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50대에도 매력적이고 섹시한 배우가 되고 싶다. 예전에는 40대도 낯설었다. 우리가 선구자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배들도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 같다. 많이 노력해야지. 요즘은 30대 친구들도 예전의 20대 만큼 뭔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더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40대는 되어야 뭔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같다. 우리는 20대 정도만 돼도 선택을 내렸는데, 요즘은 20대도 굉장히 아이 같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웃음). 마흔은 굉장히 멋진 나이임에는 분명하다. 40대가 되면 더 재밌고, 더 멋있다.

10. 황정민, 조승우와의 친분이 화제다. 함께 ‘꽃청춘’에 출연해 달라는 시청자들도 많다.
지진희 : 정민이 형, 승우한테 연기 좀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지들끼리만 먹고 살고, 안 가르쳐 준다(일동 폭소). 내가 자기들 자리 뺏을까봐 안 알려주는지(웃음). 승우한테 연기 좀 가르쳐 줘, 하면 형 잘하잖아 너무 잘 보고 있어 그런다. 고맙다. 내가 잘하긴 뭘 잘하겠나. 그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부터 날리던 분들이고, 나는 다르다. 두 사람이 연기하는 것만 봐도 흐뭇하다. 형이, 동생이 날 봤을 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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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앞으로 어떤 작품에 도전하고 싶나.
지진희 : 더 나이 먹고 힘 빠지기 전에 액션은 한 번 해보고 싶다. 내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연기를 열심히 하기 위한 기본이다. 요즘 기본적으로 하는 운동은 걷기? 너무 무리해서 하면 안 된다. 한 두 시간 정도 걸으면서 조금씩 운동량을 늘려 나가려고 한다. 예전에는 뛰었다면 지금은 걷기다(웃음).

10. ‘애인있어요’를 사랑한 시청자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지진희 :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쉽게 접근이 어려운 드라마였는데, 끝까지 분석을 해가시면서 봐주신 것 진심으로 너무 감사드린다. 배우들 모두 만족도가 높은 드라마였고, 끝까지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우리의 몫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즐겁게 봐주셨던 덕분이니까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 드라마 보시는 분들은 계속 되새김질을 하면서 보시더라.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10. ‘애인있어요’는 결국 사랑에 대한 드라마였다. 지진희가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지진희 : 드라마를 통해서 나도 많은 걸 배웠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구속하는 건 위험한 일인 것 같다. 사실 사랑은 그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는 건데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존중해 줘야 한다고 본다. 사랑을 한다고 하더라도, 수평적인 구도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불행해 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랑한다면 깊이 있는 대화를 해보는 게 어떨까. 내가 아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게 그들의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 수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닐 수 있다. 완성이라는 건 없다. 죽을 때 끝이 아름다우면 그걸 완성이라고 하겠지. 그 전에는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랑은 끝없이 싸우고, 화해하고, 뭐 그런 것 아니겠나(웃음). 그러다 보면 싸우는 시간을 줄이는 노하우도 생기는 거고. 물론 쉽지 않겠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재밌는 거고.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