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윤, 몰입의 즐거움 (인터뷰)

[텐아시아=윤준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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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내 딸, 금사월(이하 금사월)’ 주오월은 송하윤에게 찾아온 기회였다. 송하윤은 친부와 헤어지고, 세상의 모진 풍파에 맞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삶을 보여줘야 했다. 또한, 중도에 죽음으로 하차가 예정돼 있었다.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그래서 더 대본에 집중했고, 캐릭터에 몰입했다. 그야말로 주오월에 푹 빠져 살았다. 몰입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컸다. 죽을 운명이었던 주오월이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대중들이 13년차 배우 송하윤의 이름을 기억했다. 잔잔한 별빛이 흐르던 송하윤의 머리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기 시작했다.

10. 51부작 ‘금사월’이 드디어 끝났다. 실감이 나는가?
송하윤: 인터뷰까지 끝나야 실감이 날 것 같다. (웃음)

10. ‘내 딸 주오월’이라고 할 정도로 드라마 후반부 주오월의 인기가 대단했다.
송하윤: 평소에는 정신없이 촬영을 하느라고 인기를 실감할 여유가 없었다. 다들 밤새서 촬영을 했으니까. 전인화 선생님은 ‘저 많은 분량을 어떻게 잠도 안 주무시고 하는 거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10. ‘금사월’ 기사에는 온통 주오월을 찾는 댓글들뿐이었는데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나?
송하윤: 기계치라 그런 걸 잘 못한다. (웃음) 2G폰을 계속해서 쓰다가 몇 달 전에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SNS도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이것저것 만지다가 올렸던 사진을 지우기도 한다. 잘못 눌러서 삭제하는 건데 팬들은 왜 자꾸 지우냐고 말하고. (웃음)

10. 원래 주오월은 중반에 하차하는 캐릭터라고 들었다.
송하윤: 맞다. 오혜상(박세영)이 낸 사고로 죽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작가님께서 살아날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사람이 죽다 살아나면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고 더 파이팅 넘치게 되지 않나. 내가 딱 그런 기분이었다. 아, 죽다 살아났으니까 앞으로 더 잘 살아야겠구나.

10. 죽는 걸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주오월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송하윤: 역할이 어려워보여서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 또래의 여자 배우들이 이런 캐릭터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려운 역할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깨지고, 또 다른 내가 생길 수 있는 거니까.

10. 주오월이란 캐릭터가 굉장히 변화무쌍했다. 억척스러운 엄마, 다섯 살 어린아이의 지능을 가지게 된 성인,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악녀에게 복수하는 역할까지. 드라마 안에서 정말 많은 것을 보여줬다.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송하윤: 재미있었다. 오월이가 외형적으로 예쁜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난 활동적인 캐릭터가 연기하기 편한 것 같다.

10. 김순옥 작가하면 ‘막장 드라마’를 쓴다고 많이들 얘기하지 않나. ‘금사월’이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었는데 그런 부분에서 편견이나 걱정 같은 것은 없었나?
송하윤: 걱정 같은 건 없었다. 오로지 오월이란 캐릭터의 매력만 보였다. 작가님과 감독님이랑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기분 좋게 수다 떨고 ‘열심히 해보자. 좋은 인연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듣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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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어떤 이야기를 했기에 ‘기분 좋게 수다를 떨었다’고 하는 건지 궁금하다.
송하윤: 송하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이야기했다. 작가님과 감독님은 부모님을 생각하는 부분이 오월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하윤이라면 주오월을 잘 할 수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작품 중간에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도 해주셨고.

10. 연기를 시작한지 어느덧 13년 차다. 이제야 배우 송하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송하윤에게 ‘금사월’은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겠다.
송하윤: 그동안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꾸준히 1년에 한 작품 이상 해왔다. 그런 작품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오월을 만날 수 있었고, 내가 큰 실수 없이 주오월을 연기할 수 있었다. ‘금사월’ 직전에 일일드라마 ‘TV소설 그래도 푸르른 날에’를 했었다. 내가 정말 실수투성이였는데 좋은 감독님과 작가님, 스태프들, 연기자 선배님들을 만나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만약 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금사월’을 촬영할 때 고생 좀 했을 것 같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금사월’을 한 8개월의 시간이 내게 좋은 것들을 가져다 줬다.

10. 일일드라마와 주말드라마를 연달아 출연하면 어머니 팬들이 많아졌을 텐데, 그런 반응들은 아무래도 부모님이 제일 잘 아시지 않나.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셨을 것 같다.
송하윤: 진짜 좋아하신다. 하지만 내가 불편해 할까봐 평소에 집에서는 일 얘기를 잘 안 하신다. 하도 아무 말씀이 없으시니까 밥을 먹다가 엄마한테 “어때?”라고 물어봤다. 그제야 “당연히 좋지”라고 대답하시더라. (웃음) 부모님들은 만나시면 자식자랑을 많이 하시지 않나. 그동안 어른들이 잘 모르는 작품에만 출연해서인지 엄마 아빠가 딸이 배우하고 있다해도 친구분들이 잘 모르셨다. 그런데 내가 아침드라마, 주말드라마를 하니까 “걔가 네 딸이냐”고 많이 물어보신다고 하더라. 엄마는 덕분에 찜질방에서 스타가 되셨다.

10. 인터뷰를 할수록 송하윤은 참 밝은 사람 같다. 그런데 극중에선 슬프거나 비극적이거나 또는 비장한 캐릭터였다. 혹시 내 성향과 맞지 않은 캐릭터를 맡아서 힘든 것은 없었나. 
송하윤: 힘든 건 하나도 없었다. 오월이의 인생이 그런 걸 어쩌겠나. 물론, 시청자들은 제 3자니까 오월이가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 하지만 난 힘들다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월이는 남편 찾아다니고, 자식들 챙기느라 바쁘고, 시어머니 눈치도 보고, 그 와중에 사월이(백진희)도 보고 싶은 아이였다. 일이 고되거나 연기가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10. ‘금사월’은 막장 드라마 논란이 있었던 만큼, 빠른 전개가 돋보였던 드라마다. 가끔씩은 배우가 보기에도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있었을 텐데.
송하윤: 그냥 받아들였다. 새로 대본이 나오면 새로 오월의 미래가 나온 거였다. ‘아, 나 이렇게 되는구나’하면서 대본을 읽었다. 가끔 대사가 입에서 안 떨어지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고, 상황이 열악해지면 선생님들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봤다. 사월이와 혜상이(박세영)하고도 얘기 많이 하고.

10. 주오월에 흠뻑 빠져 있었나보다.
송하윤: 대본을 볼 때는 송하윤이 아닌 주오월로 살았으니까. 현장에서 아역 배우들과 대기실을 같이 썼는데, 애들한테 “어제 뭐했어?”하고 물어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그랬다.

10. 눈물?
송하윤: 내가 체구도 작고, 결혼도 안 해서 실제로 엄마도 아니다보니까 홍도처럼 애엄마 느낌이 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니 자연스레 아이 둘을 가진 엄마가 되더라. 그렇게 8개월을 살았던 것 같다. 현장에서 미랑이, 우랑이를 보면 불쌍하고, 걱정되는 거다. 내가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우리 애들 어떡하나’ 이 마음이 컸다. 나중에는 애들만 봐도 불쌍해서 눈물이 나더라. 집에서 모니터하다가 애들이 보고 싶어서 울었던 적도 있었다. 이번 역할을 하면서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모로 많은 걸 느끼게 해 준 역할이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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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보자면. 
송하윤: 나는 주로 감정 신들이 많아서 기억에 안 남는 순간들이 없다. 가볍게 하는 대사들은 쉽게 잊었을 텐데 워낙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촬영들이 많았으니까 하나하나가 다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사월이와 처음 만났던 장면이 마지막까지 맴돌더라. 어떤 장면을 찍어도 공사장에서 사월이와 어깨를 부딪치던 그 느낌이 바탕에 있었다.

10. 남편 임시로(최대철)하고 촬영을 할 때도, 엄청난 감정을 소모했을 텐데.
송하윤: 남편한테 버림 받을 때 정말 처절하게 버림받았다. 오빠가 촬영 전부터 ‘홍도야 우지마라’ 노래를 부르면서 놀리더라.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울었다. 촬영이 끝나고 “오빠 정말 너무하다”고 말했다. 얼굴만 봐도 서럽더라. 그만큼 내가 연기에 잘 몰입할 수 있게 해준 거니까 고맙다. 진짜 주오월은 내가 잘 한 것이 아니다. 주변에서 그만큼 많이 받쳐주고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줬기 때문에 사랑받을 수 있었다.

10. ‘금사월’이 ‘막장드라마’란 평가도 있지만, 주오월이 아빠(안내상)와 다시 만나는 장면은 정말 찡했다. 찍으면서도 엄청 울었을 것 같다.
송하윤: 지능이 떨어졌을 때, 아빠한테 카네이션을 접어주는 신이 있었다. ‘아빠 고맙습니다’라고 적혀있는 그 카네이션인데, 마지막에 아빠가 날 만나기 직전 그 카네이션을 들고 계신다. 그 카네이션을 보고 많이 울었다. 보통 눈물 신을 여러 번 찍다보면 눈물이 마르는데 그날은 카네이션의 힘으로 울었다. 많은 감정들이 담긴 카네이션이라 그런지 그것만 보면 눈물이 나왔다.

10. 평소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송하윤: 현장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우리 드라마가 워낙 상대방을 쥐고, 흔들고 그런 것이 많았지만 말이다. 피하고 밀치고, 그러다가 실제로 맞는 경우도 있었고. 저번에 손창민 선배님께서 코를 맞으신 적이 있는데 그 장면이 ‘해피타임’에는 다 나오더라. (웃음)

10.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나?
송하윤: 더 많은 인생을 살고 싶다. 더 많은 어려움을 있었으면 좋겠고 더 많이 해보고 싶다. 아직도 내가 어떤지 모르지만 더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면 조금은 나에 대해 더 잘 알지 않을까.

10. 어떤 이미지의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송하윤: 화려하기보단 솔직해지자. 오월을 연기할 때 샵에 간 적이 없다. 내가 메이크업하고 분장팀 도움 받아서 머리를 했다. 내가 예뻐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조명 감독님 모든 스태프가 알아서 준비해주시니까 나는 내 연기에 솔직해지고, 주오월의 감정을 잘 이해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본을 더 많이 보고, 주오월의 인생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옆집 언니처럼 아랫집 사는 동생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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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침드라마부터 ‘금사월’까지 오랜 시간 쉬지도 못하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다.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어떤 걸 가장 하고 싶은가?
송하윤: 여행이 너~무 가고 싶다. (웃음) 그런데 시간이 안 생긴다. 간단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다. 오랫동안 일을 쉬고 싶진 않다.

10. 평소엔 어떻게 여가시간을 보내나?
송하윤: 화실에 나가서 그림 그릴 때도 있고,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가끔 미치게 외로운 순간들이 찾아오면, 약간 이상할 수 있는데 날씨를 즐겼다. 비오면 비 맞고, 눈 오면 쌓은 눈을 밟아보고. 그러면서 계속 감정들을 채워나갔다. 어릴 적 대사가 없는 캐릭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어떤 분이 “예쁘게는 나왔는데 내공은 없어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는 이해가 안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까 ‘감정이 채워진다’는 의미를 알았다. 연기로 그런 게 보인다는 것도 알았고.

10. ‘금사월’을 통해서 새롭게 채워진 부분도 있겠다.
송하윤: 한 작품이 끝날 때마다 조금씩 내 성향도 바뀌는 것 같다. 한 작품하면서 반성하고 깨닫고를 반복하니까 원래 있던 내가 깨지고 다른 내가 입혀진다. 다른 작품을 하면 또 다른 내가 입혀지고. 그러한 반복이 조금씩 날 바꾸고 있다. 지금 나는 이렇게 얘기하지만 또 다른 작품을 하고 나면 내가 달라지니까 말이 바뀔 수 있다. (웃음) 어느 날 갑자기 라디오를 듣다가, 우연히 마주친 글귀 하나가 사람을 바꿀 수 있지 않나. ‘금사월’을 하면서는 감수성의 폭이 엄청나게 커졌다. 아무래도 오월이가 느낀 감정의 진폭이 크다보니까 나까지 생각이 좀 많아진 것 같다.

10. ‘제보자’ 이후 영화 소식이 뜸하다. 영화 출연 생각은 없나?
송하윤: 영화도 당연히 하면 좋지. 영화는 영화만의 매력이 있으니까. 지금은 뭐든 다 하고 싶다. 뇌가 활짝 열려있는 상태다. 다 흡수하고 싶다. (웃음) 지금은 스쳐가는 한 마디도 뇌리에 꽂히는 상태다. 감수성이 열려 있다.

10. 연기 욕심을 보여주는 그래프가 있다면, 지금 송하윤은 가장 최대치를 찍고 있을 것 같다. (웃음)
송하윤: 그런가? 아니다. 전작에도 이랬고, 또 전작에도 이랬었다. (웃음) ‘그래도 푸르른 날에’를 끝낸 다음에는 모진 풍파를 다 겪은 캐릭터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주오월을 만났다. 나는 “완전 재미있겠다” 생각했는데, 회사에선 중간에 죽는 역할인데 괜찮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이게 얼마나 큰 행운이냐”고 말했었다. 주오월 같은 역할이 많은 게 아니니까 나는 무조건 좋다고 했다. 13년 동안 연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 해야 하는 역할은 무조건 하게 되더라. 한 번은 정말 하고 싶은 캐릭터를 오디션을 봐서 합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역할을 다른 배우가 한다고 해서 양보를 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그 배우가 다쳐서 결국 다시 나한테 그 배역이 왔었다. 그 때 느꼈다. 연기자한테 다 자기 캐릭터가 있다는 말이 맞구나.

10. 세상 풍파 다 맞은 캐릭터를 하고 싶었을 때 주오월을 만났다. 지금은 어떤 캐릭터를 기다리고 있는가?
송하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운명적으로 나를 찾아올 캐릭터가 있다고 믿고 있다. 어떤 캐릭터를 만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윤준필 기자 yoo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