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형진, 배우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터뷰)

[텐아시아=장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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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담백했다. 약 60분이라는 시간 동안 공형진은 드라마와 드라마 속 민태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풀어냈다. 무엇보다 공형진이 가장 솔직해졌던 순간은 바로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였다. 매일 다른 얼굴을 해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을 한 이들에게 우리는 가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이들의 진실된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일까. 26년간 무형의, 그리고 유형의 금자탑을 쌓아온 공형진은 말한다. 연기를 하는 시간, 나는 가장 나다워진다고.

10. 그동안 코믹적인 이미지가 강했다면 ‘애인있어요’에서는 강렬한 악역 이미지가 강했다.
공형진 : 연기 변신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전혀 없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해보지 않은 역할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캐릭터를 공감대 있게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었다. 그동안 코믹한 역을 많이 했으니, 정책적으로(웃음) 악역을 해야겠다는 건 없었다. 다만 재밌었던 건, 25~6년 연기를 하면서 대놓고 악역을 한 건 처음이었다. 이상하게 악역을 맡은 적이 없었고, 늘 의리 있고, 재밌고 착한 그런 역할이었다. 악역을 맡아도 장치적인 악역을 맡았었지.

이 역할을 감독님이 제안하시면서 듣도 보도 못한 나쁜 놈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시놉시스도 안 보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50부작도, 주말드라마도 처음이었다. 나로서는 아주 구미가 당기는 역할이었다. 드라마 촬영을 진행해 나가는데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오히려 리허설 때는 웃겨봐야지, 하다가도 실제로 촬영이 들어가면 정말 민태석이 돼서 즐겁고 기분이 좋았다. 촬영기간은 8개월, 방송은 6개월 정도 됐는데 너무 빨리 지나갔다. 방송 마지막에는 한 3개월 정도 더 하면 안 될까 할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10. ‘베테랑’ 조태오, ‘리멤버’ 남규만처럼 악역 전성시대다.
공형진 : 그들은 끝까지 악역이다. 민태석은 그나마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고, 아픔도 있는 역할이다. 원래 그런 설정은 아니었고, 작가님이 내가 연기하는 걸 보면서 수정, 변형해 주신 것 같다. 민태석의 아버지 이야기가 시놉시스에는 잠깐 있었지만, 그런 내막이 있을 줄은 몰랐다. 민태석이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만 있고, 그걸 위해서만 물불 안 가리는 인물인 줄 알았지. 물론 용서받지 못할 악행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나는 우리가 연쇄살인범을 미화할 수도, 미화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해해서는 안 되고, 이해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죄를 저질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 사람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에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밖에 없지는 않다는 말이다. 거짓말도 머리가 좋아야 하는 거지(웃음). 민태석이라는 인물도 무리수를 두려다 보니 악수를 둬서 계속 수렁에 빠지게 된다. 거기에서 오는 인간적인 고뇌가 엄청났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계속 내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억지 정당성을 가지고 오는 인물이기도 하다. 민태석도 사냥개였을 뿐이었는데, 어느덧 뒤돌아보니 천하의 몹쓸 악인이 되어 있었다. 나름 참회하고 회개하려는 모습, 마지막 장면이 특히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걸로 민태석에 대한 설명은 끝난 거 아닐까.

10. 어떤 점에서 민태석 역이 특히 흥미로웠나.
공형진 : 표면적으로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악역이라는 점, 그리고 그 안에 대척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그 텐션(tension)을 정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이 역할을 잘 해내서 동료들이나 관계자, 시청자 분들에게 공형진이라는 배우가 이런 역할도 잘 하는구나 얘기도 듣고 싶고. 모든 배우들의 공통된 지향점 아니겠나.

10. 민태석 역에 스스로 점수를 매겨본다면.
공형진 : 75점 정도? 풀타임으로 전후반을 모두 보면 이긴 게임은 아니라고 보더라도 진 게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10. 공형진이 생각하는 민태석은 어떤 인물인가.
공형진 : 악역이라고 해서 늘 소리 지르고 뭔가 감정을 폭발시키기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민태석이라는 인물이 신데렐라 콤플렉스만 있어서, 신분상승 욕구만 있었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재된 인간적인 회한이랄까, 이런 것들이 있었던 인물이라고 봤다. 민태석이 아랫사람과 같이 있는 장면을 찍을 때는 시선을 잘 안 맞추려고 했다. 누구와 얘기할 때 시선을 안 맞춘다는 건 굉장히 기분 나쁜 일이다. 내 할 말만 한다는 것 아닌가. 그게 바로 민태석 안에 내재돼 있는 콤플렉스였을 것이다. 권위라는 것은 당사자가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세워주는 거다. 그런데 민태석은 다른 사람에게, 혹은 진리에게 그걸 풀면서 억지로 권위를 세우려고 하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불쌍한 놈이다. 그런 민태석이 가장 순수해 질 때가 바로 동생이랑 같이 있을 때다. 동생을 세계적인 권위자로 키우는데 한 몸을 다 바쳤다. 독고용기가 동생이랑 가까워질 때 민태석은 협박하지만, 어떻게 보면 읍소한 거다. 건드리지 마라, 내 불가침 성역이라고. 민태석을 작가님이 굉장히 입체적으로 그려주신 것 같다.

10. 민태석 역할을 위해 참고한 작품이 있나.
공형진 : ‘어퓨굿맨(A Few Good Men)’이라는 영화를 보면 잭 니콜슨이라는 대배우가 나온다. 극 중에서 잭 니콜슨은 상징적인 악역이지만, 사실은 진짜 악역은 아니다. 톰 크루즈가 폭행 사건에 대해 법정에서 잭 니콜슨을 몰아붙이는데, 잭 니콜슨이 “예스, 아이 디드(Yes, I did)”라고 대답한다. 그 장면에서 잭 니콜슨이 최전방의 해병대 사령관으로서 그렇게 나약한 애들까지 뒷받침해줄 여력이 없다고 구겨진 군복을 딱 펴고 가는데, 단번에 캐릭터 설명이 되더라. 옷을 정리하고, 핏도 신경 쓰고, 너네 따위와는 달라, 라고 정리하는 그런 모습.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불쌍한 인물이지만, 어떻게든 당당한 척 하며 살아보려고 하는 모습이 녹아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0. 1인 4역의 김현주와 호흡을 맞췄다.
공형진 : 김현주는 굉장히 사랑스럽고 예쁜 여우다. 김현주가 무서운 건 머리와 마음을 함께 가동한다는 거다. 머리로만 하면 보이고, 마음으로만 하면 넘칠 수 있는데, 김현주는 굉장히, 아주 정확하게 그 수치를 계산한다. 그러면서도 진심이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러니까 독고용기와 도해강이 그렇게 다르게 표현이 됐겠지. 내가 김현주가 연기를 잘 한다고 평하는 건 의미 없다. 나보다 연기 잘하는 애를(웃음). 김현주 만나는 날이면 설렜다.

10. 김현주가 연기하는 도해강과 독고용기가 어떻게 달랐나.
공형진 : 농담으로 독고용기 신을 찍을 때는 ‘너네 언니 데려와, 넌 왜 그렇게 못생겼니’라고 놀리고 그랬다(웃음). 난 이번 작품으로 소위 말하는 ‘김현주빠’가 된 것 같다. 배우는 상대방과 연기를 했을 때 내가 누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연기하면 성찬을 먹고 잘 소화시킨 느낌이 든다. 그런 면에서 김현주한테 너무 고맙다.

독고용기는 솔직담백하면서 푼수기도 있지 않나. 그런데 도해강은 철저히 이성적이고 빈틈을 안 준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과연 독고용기가 편할까, 도해강이 편할까 궁금하기도 하더라. (김)현주는 독고용기 분장을 하면 대사가 잘 안 외워진다고 하더라(웃음). 연기할 때도 독고용기는 내가 떡 주무르듯이 하려고 했고, 도해강은 반대로 내가 책잡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배우, 두 캐릭터와 연기하지만 텐션의 정도가 전혀 달랐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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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백지원과의 케미도 남달랐다. 민태석이 ‘온통 적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돼 있는데, 최진리는 그 중에서도 민태석의 숨 쉴 틈이 되어주는 캐릭터였다.
공형진 : 민태석이 미안해 한 유일한 사람도 진리였다. 참회하고 속죄한 것 역시 진리 때문이었고. 동생조차도 그냥 미국에 가지 않나. 진리가 끝까지 태석이를 챙긴 건, 정말 태석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저는 결혼한 지 20년 됐는데 부부라는 역학관계가 너무 신기하고 오묘하다. 님에서 점 하나 찍으면 남이라는데, 부부는 무촌이라 헤어지면 끝이고 남남이다. 하지만 거꾸로 제일 미안하고 안쓰러운 것 역시 서로일 거다. 그 정도 세월이 지나야 만들어 지는 게 부부의 역학관계라고 본다. 민태석도 처음에는 목적을 가지고 진리를 꼬여냈겠지만, 함께 오랜 세월을 지내오니까 마지막에 생각나고 찾는 사람은 진리밖에 없었다는 거지. 나도 결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 관계의 숨은 뜻을 잘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10. 아내가 ‘애인있어요’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였나.
공형진 : 내 와이프는 실제로 굉장히 쿨한 성격이다. 내가 하는 작품을 대놓고 보지도 않지만, 본다고 해도 코멘트도 잘 안 한다. 어느 날 내 연기를 보여주면서 ‘어때, 죽이지’라고 했더니 재수 없다고, 잘난 척 좀 하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내가 연기하고 작품 하는 거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는 척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데, 그 말이 굉장히 정확하다. 그런 부분에서 굉장히 쿨하다고 할 수 있지.

10. 영화로 출발했는데, 최근 영화 출연이 뜸하다. 스크린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 같다.
공형진 : 애초에 영화로 데뷔했고,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을 다시 갖기 위해 애썼다. 생각해 보니 올해 개봉하는 ‘고산자’까지 치면 영화를 54작품 했더라. 2년 전에 해외영화제 출품하려고 찍은 영화가 아직까지 개봉 못한 것도 있다. 지금 영화에 5만 퍼센트 정도 목말라 있다. 기회가 되면 영화에 매진하고 싶은 게 사실이지만, 드라마와 영화를 구분 짓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제일 부러운 건 (황)정민이가 제일 부럽다. 아주 작두를 탔더라고(일동 폭소). 잘 하고 있는 거 보니까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좋은 영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영화가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공형진이라는 배우에게 이것만은 맡겨야겠다고 생각 될 때 다들 나름의 생각이 있지 않으실까 싶다. 정말 나와 맞지 않는다 하는 것 빼고는 어떤 역이든 무조건, 꼭 하고 싶은 생각이다.

10. 지난해 힘든 시기를 겪었다.
공형진 : 지난해 힘들었다는 게 경제적으로 힘들었다는 얘기일 텐데, 지금도 당연히 힘들다. 왜 힘들 수밖에 없었는지 시시콜콜하게 얘기할 수가 없어서 더 힘들다. ‘애인있어요’는 경제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그것보다는 나에게 삶과 같은 작품이다. ‘애인있어요’ 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이 다 그렇다. 올해로 연기한지 26년이 됐고, 앞으로도 26년을 해야 하는데 연기로 남들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연기를 보는 사람들이 공형진이 연기를 못하지는 않는구나, 믿음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현장에 있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하지. ‘애인있어요’ 그리고 내가 거쳐 온, 그리고 내가 거쳐 갈 작품들은 내게 있어 너무나도 절실한 삶과 같다. MC도 연기 활동을 하는데 또 다른 장르일 뿐이다. 예전에는 ‘멀티 플레이어가 뭔지 보여줄게. 나는 이것도 잘 하고, 저것도 잘 할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MC나 라디오 DJ는 내가 잘 해서 한다는 것보다는 내가 너무 해보고 싶은 것들이다. 가장 중요한 건, 내 근간은 연기라는 사실이다.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