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 ‘응답하라 1988’이 만든 간극 (인터뷰)

[텐아시아=한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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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랐다. 직접 만난 안재홍은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 속 김정봉(안재홍)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안재홍은 덕후인 적도 없었고, 어수룩하고 엉뚱한 모습도 아니었다. 정봉이 아닌 안재홍은 생각이 많은 신중한 사람이었고, 작품을 냉철히 바라볼 수 있는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진 남자였다. 정봉과 안재홍 사이, ‘응답하라 1988’이 만든 간극이었다.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고 실망한 것이 아니다. 정봉이 아닌 배우 안재홍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었고, 그 모습에 또 한 번 반할 수 있었다. 안재홍과의 이날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됐다.

10. 어떤가. ‘응팔’도 끝나고,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편(이하 꽃청춘)’도 다녀왔는데.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안재홍 : 인터뷰로 드라마가 끝난 걸 실감하고 있다. 하하. 알아보시는 분도 많이 생겼고. 정봉이가 친근한 느낌이라 그런지 어른들이 부쩍 알아보신다. 기분이 좋다.(웃음)

10. 종영하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응팔’의 파급력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안재홍 : 길거리에서 반갑게 알아봐 주시고, 인사해 주실 때마다 감사할 뿐이다. 사실 그 전까지는 파급력이라고 할 정도로 무언가를 느끼지 못했다. 얼마 전 시행한 공약 팬 사인회에서 ‘응팔’의 힘이 뭔지 실감하겠더라. 전날 밤을 새운 분도 계시고, 정말 많은 분이 와주셨다.

10. 인기는 예상만큼이던가, 아니면 그보다 더 이상이던가?
안재홍 : 전혀 생각을 못 했다. 전작들의 팬이었기 때문에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하.

10. 좋은 작품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배우로서는 조심스러워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보는 눈이 많아지니까.
안재홍 : 맞다.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런 관심을 불편하게 느끼는 건 아니다.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 예전에는 ‘알아봐 주셨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직접 프로필을 돌렸는데, 그 때 비하면 지금의 이런 많은 관심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 아닌가 싶다.(웃음)

10. 사랑스러운 정봉이의 득을 크게 보았을 것 같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정봉은 사랑스러운 인물이었나.
안재홍 : 정봉이는 정말 사랑스럽다. 정봉이가 혼자 방에서 무언가에 몰두하는 장면이 많았다. 솔직히 나는 정봉이처럼 ‘덕후’인 적이 없었다. 물론 영화에는 빠져 있었지만 ‘덕후’라고 말하기엔 어렵다. 반면에 정봉이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일에 몰두하잖아. 끝까지 파버리고, 깊게 들어가지. 몰두한 일에 실패할 땐 깊은 수렁에 빠진 얼굴을 하기도 하고, 라디오에서 자기 사연이 나올 때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을 한다. 그런 정봉이의 모습이 내겐 대단하게 보이기도하고, 무척 사랑스러워 보였다.

10. ‘덕후’였던 적이 없다니, 정봉의 덕후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겠다. 그럼 안재홍의 실제 취미는 무엇인가.
안재홍 : 음(고심하더니), 딱히 무언가 떠오르지 않는다. 없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TV보고, 영화 보는 게 다인 것 같다. 아, 고양이를 기르는데, 고양이랑 노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나? 하하.

10. 여행은 어떤가. ‘꽃청춘’으로 아프리카도 다녀왔지 않는가. (웃음)
안재홍 : 아프리카, 하하. 한때는 여행을 자주 다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취미라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10. 가본 곳 중에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여행지는 어디인가. 추천을 해줘도 좋다.
안재홍 : 아프리카? 하하. 아프리카를 제외한다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추천하고 싶다. 예수님 제자 중 야곱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몇 날 며칠을 도보로 가야 한다. 난 한 20일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걷기만 하니까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 그러니까 성지순례 길이겠지만.(웃음) 걸으면서 생각을 통해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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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독특했던 정봉의 말투, 행동, 표정, 모든 게 다 눈길을 끌었다. 아이디어는 누구에게서 나온 건가.
안재홍 : 그건 정말 대본에 있는 그대로 연기한 거다. 애드리브이거나 덧붙인 대사와 행동들은 별로 없다. 작가님이 대본 자체로 정봉이란 인물을 자세하게 묘사해주셨다. 이미 탄탄한 대본을 내 마음대로 변형한다는 건 실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판단이 해가 될까 봐 어느 때보다 대본에 충실했다.

10. 연기할 때 레퍼런스를 두는 편인가?
안재홍 : 딱히 레퍼런스를 둔다기보다 들어가는 작품에 맞는 분위기나 톤을 미리 익혀두는 건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이랄까. 영화 ‘족구왕’에 임하기 전에는 ‘포레스트 검프’(1994), ‘문라이즈 킹덤’(2012),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2014)들을 다시 돌려보기도 했다. 어떤 장면을 캐치한다기 보단 작품의 톤에 익숙해지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10. 그렇다면 정봉이는 어떤 작품으로 예열했나.
안재홍 : 정봉이를 연기할 땐 ‘응칠(응답하라 1997)’과 ‘응사(응답하라 1994)’를 다시 봤다. 신원호 감독님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를 사전에 익히고 작품에 임했다.

10. 안재홍은 극 중 시대 배경인 1988년도가 생소할 수밖에 없는 1986년생이다. 촬영하면서 처음 본 소품도 많았을 것 같다. 어떤 게 가장 신기하던가.
안재홍 : 음, ‘곤로’가 아닐까. 하하. 곤로를 난생 처음 봤다. 곤로는 88년도에도 쓰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극 중 덕선(혜리)이네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편이었기 때문에 예전부터 곤로를 써왔다는 설정을 했던 거지. 미술팀이 정말 고생하셨다. ‘응팔’은 치밀할 정도로 디테일에 신경을 썼으니까. 외국에서 소품을 구해오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소품은 ‘햄 통조림’이다. 요즘엔 ‘원터치 형식’으로 한 번에 뚜껑을 따잖아. 80년대 통조림은 통 자체를 돌려서 따더라.(웃음)

Q. 소품뿐만 아니라 연출 전반이 모두 치밀했었지. 마치 탐정 드라마처럼.(웃음)
안재홍 : 정말, 정말 연기자들은 촬영할 땐 복선인지도 모른다. 하하. 방송을 보고 그제야 “저게, 와~”라고 하면서 복선인 줄 깨닫고, 이해한다. 제작진의 생각을 못 따라가겠구나 싶었다.(웃음) 정봉이의 테마곡 중에서 리차드 막스의 ‘라이트 히어 웨이팅(Right Here Waiting)’이라는 곡이 있다. 14회에서 정봉과 (장)미옥(이민지)이 서로 엇갈릴 때 나오는 음악인데, 뒤늦게 보니 가사가 우리 얘기더라. ‘당신이 어디 있든, 당신이 무얼 하든, 난 바로 여기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Wherever you go, Whatever you do, I will be right here waiting for you)’ 사실 이 곡이 굉장히 잔잔한 곡이라서 정봉이와 어울리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얘기였으니,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순 없지 않겠는가. 하하.

10. 로맨스 상대역 미옥이었던 이민지 배우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웹드라마 ‘썸남썸녀’에서 한 차례 만나지 않았는가.
안재홍 : 맞다. ‘썸남썸녀’를 함께 촬영했었다. 그렇지만 같이 나온 신이 하나도 없었을 거다. 하하. 그땐 서로 알기만 하던 사이였다. 이렇게까지 친하지 않았었지. (이)민지하고는 정말 마음이 잘 맞았다. 러브라인을 연기하기 위해선 서로의 마음이 잘 맞는 게 중요한데, 민지와는 정말 편했다. 편한 게 가장 좋은 거잖아. 둘이서 끊임없이 얘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러브스토리를 연기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10. 두 사람이 로맨스 커플로 재회했다. 둘의 로맨스는 재밌는 와중에도 뭔가 고전 영화 속 커플 같았다. 옛날 프랑스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웃음)
안재홍 : 그래서 더 좋았다. 나 역시도 요즘에는 없는 옛날 고전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더 로맨틱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정봉이 가게 앞에서 하염없이 미옥을 기다리는 장면부터, PC통신으로 재회하는 장면까지. 모든 장면이 영화 같았다. 특히 PC통신 재회하는 장면은 영화 ‘접속’을 떠올리게 했다. 퀴즈를 통해 서로를 알아보고 다시 만나는 모습이 내가 봐도 굉장히 감동적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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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쌍문동 친구들이 그립지는 않은가.
안재홍 : 보고 싶다. 하하. 많이 생각난다. 수개월을 매일 같이 보다가 안 보니까 허전하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스태프 한 분, 한 분 모두 생각난다.

10. 정봉이와 의외의 ‘케미’를 보여준 인물은 진주(김설)였던 것 같다. 세상에서 더할 나위 없는 절친이 아니었나. 절친 진주도 보고 싶겠다.
안재홍 : 설이도 많이 보고 싶다. 아, 진주 본명이 김설이다. 하하. 촬영할 때 설이가 자꾸 나한테만 반말하더라. “아니야”, “이건 어떻게 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유독 나한테 자주 반말을 했다. 설이가 다른 사람에게는 안 그런 것 같은데, 나를 정말 친구처럼 대했다. 하하. 설이는 예뻐하지 않을 수 없는 친구다. 걸어 다니는 인형이었으니까.(웃음) 설이를 보면서 결혼하고 딸을 낳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푸켓에서 많이 못 놀아 준 게 마음에 걸린다. 나중에 봤더니 설이도 많이 탔더라. 하하.

10. 말로만 들어도 촬영장의 화기애애함이 느껴진다. 또래 연기자들부터 시작해서 유쾌한 어른 연기자들까지. 심지어 감독님까지 유쾌한 분이 아니었나.
안재홍 :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감독님의 힘인 것 같다. 감독님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배우, 스태프들 모두가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0. 또래 배우 중엔 대학 후배도 많았다.
안재홍 : 내가 05학번인데, 09학번이었던 (고)경표랑 10학번 (류)혜영은 학교를 같이 다니기도 했었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고, 오가며 인사하는 정도? 혜리는 학번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만나지 못했고.(웃음)

10. 그중 가장 선배로서 뿌듯하기도 할 것 같다. 학교에서 후배들을 만날 때와 촬영장에서 만날 때 느낌도 달랐을 것 같고.
안재홍 : 일단 정말 좋았다. 편하기도 했었고. 후배라서 편한 것보다는 얼굴을 아는 사이라서 편했던 것 같다. 촬영 할때는 후배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저 함께 출연하는 동료인 거지.

10. 솔직히 말해서 ‘응팔’은 소위 말하는 연기를 못하는 사람도 없었다. 특히 또래 배우들은 정말 보석 같은 배우들이 출연했고. 친구들과 함께 연기하면 본인도 힘을 얻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안재홍 : ‘응팔’ 배우들은 정말 극 중 그 역할이었다. 혜리는 덕선이였고, (최)성원이 형은 노을(최성원)이 그 자체였으니까. (류)준열이, (박)보검이, (이)동휘, (고)경표, (류)혜영 모두가 말할 것도 없이 잘하는 배우들이었다. 이런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성원이 형에게 많이 의지했다. 최성원은 인간적으로 멋진 사람이다.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형이기도 하고. 촬영할 땐 보통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서로 만나기 쉽지 않았는데, 성원이 형만큼은 따로 만나서 얘기도 하고 고민도 털어놨다. 내 정신적 지주인 것 같다.

10. 실제로는 노을이와 멘티, 멘토가 바뀌었구나. 하하.
안재홍 : 그런 셈이지. 하하. 극에서는 노을이가 정봉이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잖아. 노을이 입장에선 ‘자기 방’이 있는 정봉이가 참 대단해 보이겠지. 실제로는 내가 성원이 형을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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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본인에게는 ‘응팔’이 첫 드라마였다. TV 시청자들도 안재홍을 ‘응팔’로 처음 만났고.
안재홍 : 생애 첫 드라마였다. 걱정도 많이 됐지만, 막상 촬영해보니 이때까지 해왔던 영화 현장이랑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다. 드라마 현장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선배님들도 “‘응답하라’는 좀 달라”라고 말씀하시더라. ‘응답하라’ 시리즈만의 특징인 것 같다.

10. 서로가 초면인데도 안재홍이 낯설지가 않았다. 자세히 말하자면 안재홍의 코미디 연기가. 웹드라마 ‘썸남썸녀’ 남자 2호(안재홍)와 영화 ‘족구왕’의 홍만섭(안재홍) 때문일까.
안재홍 : 그럴 수도 있다. 둘 다 코믹한 캐릭터였으니까. 남자 2호는 굉장히 짠돌이였고, 만섭이는 족구 덕후였고.(웃음)

10. 실제로 만난 안재홍은 또 다른 느낌이다. 실제 성격은 어떠한가?
안재홍 : 여러 가지 면이 있는 것 같다. 들뜰 때와 차분할 때 간극도 심한 것 같다.

10. 코믹적인 이미지를 예상하는 건 그간의 역할 때문이겠지. 여태껏 해왔던 작품들이 대부분 코미디 연기가 많았으니까. 코미디를 좋아하는 편인가.
안재홍 : 코미디 자체는 엄청나게 좋아한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잖아, 블랙 코미디, 슬랩스틱, 미국식 코미디의 행오버 식 유머나, 화장실 유머라든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코미디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코미디 연기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장르에 출연해보고 싶은 욕심이 크다. 시도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10. 영화 ‘족구왕’에서 선배가 홍만섭에게 “족구는 뭐냐”고 묻고, 홍만섭은 “재밌잖아요”라고 대답한다. 그럼 안재홍에게 연기도 같은 대답일까?
안재홍 : 하하. 사실 “재밌잖아요” 대사가 원래는 “놀이입니다”다. 족구를 진심으로 재밌어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놀이입니다”라고 했는데, ‘놀이’라는 게 뭔가 어감이 안 사는 느낌이잖아. 발음하기도 어렵고. 그래서 “재밌잖아요”로 바꿨다. 이 신이 가장 NG가 많이 났던 신이다. 감정을 끌어내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감독님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안재홍, 너한테 연기가 뭐냐”라고 묻기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지, “재밌잖아요.”라고.

10. 그렇다면 정봉이의 ‘치토스 한 봉지 더’의 행운 같은 안재홍의 행운은 무엇인가.
안재홍 : 음, ‘응팔’의 일원이었다는 게 아닐까. 하하.

한혜리 기자 hye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