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우의 영감대] ‘스포트라이트’, 썩은 사과와 ‘그것이 알고 싶다’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스포트라이트(*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내부자의 폭로에서 시작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은 최근, 내부자가 폭로한 ‘시크릿 리스트’를 토대로 연예인 스폰서 실체를 추적했다. 예상대로 시청자 반응은 뜨거웠다. 뜨거운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일부 연예인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연예계에 암처럼 번져있는 스폰서 세력에 날선 비난을 보내면서도 “일부의 일이 전체인 것처럼 오해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사회자이기도 한 배우 김상중 역시 클로징 멘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방송은 배우로서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저로선 어느 때보다 전하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연예계 전반에 비일비재한 일로 비쳐 자신들의 땀과 노력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후배들에게 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주목할 말은 다음이다. “이 문제를 외면하기보다 그것이 분명한 현실임을 직시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 “우리가 피해자가 아닌 것은 그저 운이었을 뿐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2002년 보스턴 글로브가 폭로한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다룬 영화다. 이 사건이 더욱 문제였던 건, 교회가 알면서도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해 왔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내세운 논리는 이것이었다. “일부 성직자들의 행동이 전체의 행동으로 비춰질까봐 조심스럽다.” 보스턴 지역 유지들 역시 “사과 몇 알 썩었다고 상자 째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로 사건을 암묵적으로 덮었다. 보스턴 사회는 자신들이 가꿔온 행복한 보금자리가 성추행 스캔들로 더럽혀지거나, 문제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행복은 어떤 진실이 은폐돼 있기에 진정한 행복일 수 없지만, 그들은 진실이 은폐됐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었다.
스포트라이트

사과 몇 알 썩었다고 상자 째 버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사과가 아니라, 인권이다. 인권이란 더하기 뺄셈이 아니라 함께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다수의 논리에 입각해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위험은 결과가 증명했다. 사회가 쉬쉬하는 30년간 보스턴 내 6개 교구에서 80여 명의 신부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이 지속적으로 이뤄졌고, 피해자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지옥을 살아갔다. 극중 마크 러팔로가 분한 마이크 레젠데스 기자의 외침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그들은 알면서 이런 일이 생기게 놔뒀어요. 당신의 아이가 당할 수도 있었고, 내 아이가 당할 수도 있었고, 누구든 당할 수 있었어요!” 나와 무관한 일이라 방관한 일은 당신의 아이, 당신의 친구, 당신의 가족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피해자일 수 있다.

# 내부자들 VS 외부자들

내부자의 폭로에서 시작한 ‘그것이 알고 싶다’와 달리, ‘스포트라이트’은 외부자의 시선에서 시작됐다. 오랜 시간 암묵적으로 은폐돼 왔던 성당 내 성추행 사건을 눈여겨보고 스포트라이트 팀에 취재를 맡긴 것은 ‘보스턴 글로브’에 막 부임한 편집국장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이다. 유대인 출신에 야구에 문외한인 그는, 책 ‘밤비노의 저주’(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시킨 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불운을 이르는 말)를 읽으며 보스턴이라는 사회를 이해하려 하는 동시에 그 속을 객관적으로 투시한다. 스포트라이트 팀 보다 한 발 앞서 이 사건에 혈혈단신으로 싸워 온 변호사 미첼(스탠리 투치) 역시 외부인이다. 아르메니아인인 미첼은 마이크와 식사를 하며 “보스턴은 우리 같은 이방인이 살기 힘든 곳”이라고 말한다. 보스턴 사회의 텃세 속에서 미첼이 성추행 피해자들을 위해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냉정한 시선에서 내부 시스템의 부조리를 조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지닌 직업윤리이기도 했다.

객관적인 시선, 공정한 시선. 이것은 펜을 든 기자들에게 요구되는 것들이지만, 망각 속에서 종종 잊혀지곤 한다. 보스턴 토박이 출신이자 가톨릭교회에 맞서 심층 취재를 이끈 스포트라이트 팀장 로비 로빈슨(마이클 키튼)은 몇 년 전 자신에게 성당 내 성추행 제보가 왔었음을, 그리고 자신이 그걸 은연중에 지나쳤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감지하고 자책하는 로비에게 편집국장 마티 배런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가요. 갑자기 불을 켜면 탓할 것들이 너무 많이 보이죠.”
스포트라이트2

사건을 방조한 언론에 질책과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하는 동시에, 결정적 순간 명징한 대사로 관객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영화의 연출과 극본은 촘촘하고 예리하면서 따뜻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기도 한 토마시 맥카시 감독은 기자의 활약을 호들갑스럽게 찬양하거나, 사명감을 낯간지럽게 주장하는 허다한 작품들과 궤를 달리하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 “이런 걸 보도하는 게 언론인입니까?”
“그럼 이런 걸 보도하지 않는 게 언론인입니까?”

상영 내내 집요하고 성실하고 촘촘한 ‘스포트라이트’는 기자 입장에서는 특히나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속보가 파도치는 국내의 상황을 떠올리면, 글로브 기자들이 보다 의미 있는 타깃을 잡기 위해 기사화를 참고 참아내는 모습이 일견 ‘초현실주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른 회사에서 냄새 맡기 전에 빨리 보도하자”는 한 기자의 주장에 마티 배런는 눈도 꿈적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이 아닌, 시스템을 파헤쳐야 이 사건의 뿌리를 건드릴 수 있다고 믿는다. 특종에 매몰 돼, 자칫 더 큰 진실이 매몰되는 걸 경계한다.

결국 ‘스포트라이트’는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왜 좋은 언론이 존재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기자들을 향한 강력한 독려로도 읽힌다. 굳이 언론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집단의 내부자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일이 불행을 키우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새삼 주위를 돌아보게 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