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박정민, 과정이 아름다운 당신(인터뷰)

[텐아시아=정시우 기자]박정민

묵묵히 힘주어 내달리던 청춘은 무엇이 그리 서러워 꺽꺽 울었을까. 영화 ‘동주’가 언론에 처음 공개되던 날, 박정민은 차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영화 ‘동주’에는 비극의 시대를 살고 간 두 인물이 나온다. 먼저 윤동주(강하늘). 그는 과정은 내세울 게 없지만 결과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 반대편에 그의 사촌이자 소울메이트 송몽규(박정민)가 있다. 과정은 아름다웠으나 결과가 없는 사람. 결국 세상이 남은 것은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고, 송몽규는 역사에서 잊혀졌다.

결과만 두고 보면 송몽규의 삶은 비극이지만 영화는 그의 과정을 추적하며 결과를 뒤집는다. 영화가 공개된 날 박정민이 흘린 눈물에는 아마도 자신을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되는 인물을 연기하며 짊어졌던 부담감과, 거대한 인물을 연기한 것에 대한 두근거림과, 그의 삶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미안함 등이 총체적으로 섞였으리라. 송몽규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박정민은 이전의 박정민이 아닌듯 보였다. 박정민을 만나러 가는 길, 송몽규가 세상에 남겼다는 두 편의 시 중 하나인 ‘밤’을 떠올렸다.

고요히 침전(沈澱)된 어둠/만지울듯 무거웁고/밤은 바다보다 깊구나/홀로 헤아리는 이 맘은/험한 산길을 걷고/나의 꿈은 밤보다 깊어/호수군한 물소리를 뒤로/멀-리 별을 쳐다 쉬파람 분다 – 송몽규(밤)

10. 모 월간지에 연재중인 칼럼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팬이다.
박정민: 엇! 진짜 보나?

10. 솔직히 말하면 당신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하나만 읽자 했는데, 재미있어서 이전 글들을 다 찾아봤다. 당신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더라. 글 쓰는 걸 원래 좋아했나.
박정민: 전혀.(웃음) 영화과(한예종) 입시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쓰게 됐다. 예술 학교니까 자기소개서도 좀 특이하게 해서 냈는데, 멋 부리면서 썼다고 면접관이던 김성수(‘비트’ ‘아수라’) 감독님에게 혼도 많이 났다. 언희(言喜)가 ‘말로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뜻인데, 나라는 사람이 진지하고 무거운 상황을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걸 못 견뎌서, 그런 성향의 글을 쓰게 된 게 있다. ‘재미있는 글을 써 볼까, 내 스타일이라는 게 뭘까’ 연구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10. 진지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라. 영화 ‘파수꾼’(2010)으로 당신을 기억하고 있거나, ‘동주’로 당신을 만날 팬들 입장에서는 착 달라붙지 않는 말이다.
박정민: 가령 이런 거다. 제작보고회나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뭔가 형식적이고 무거운 말들만 오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사석에서 진지한 건 괜찮은데, 우리 영화를 보러 온 분들이 무거운 이야기만 듣고 가는 게 싫다. 그래서 괜히 실없는 말들을 하곤 한다. 찾아보면, 기사화가 된 게 꽤 있을 거다. ‘대출금’ 같은 말들.
박정민

10. 대출금?
박정민: 영화 ‘오피스’ 제작보고회 때 사회자가 “직장인이 되고 싶은 적이 있나”라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하려고 “있다. 배우라서 대출이 잘 안 된다. 그럴 땐 직장인이 되고 싶어진다”라는 실없는 농담을 했었다.

10. 그런데 이번 ‘동주’ 시사회 끝나고 가장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한 장본인이 바로…(웃음)
박정민: 하하하. 맞다. 나다. 내가 이끌었지. 울어서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다니. 너무 창피하다. 영화를 보고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겠더라. 많은 분들이 진심이 느껴지는 눈물이었다고 말씀해주셔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게 진심이었던 게 맞고. 그래도 재미있게 해 드렸어야 했는데….

10. 왜 그렇게 웃음에 집착하나. 스스로가 만든 강박 아닐까.
박정민: 강박, 맞다. 이유? 나는 유연한 사람이 좋다. 좋은 화법을 구사하는 사람들 말이다. 내게 그런 능력이 없기에 글을 통해서라도 표현하고 있는 거고.

“신인/무명배우들이 겪는 많은 유혹들”

10. 송몽규에게도 당신처럼 자유롭게 글을 쓰고 보여줄 창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박정민: 송몽규 선생님에겐 시가 두 편, 콩트가 한 편 있다. 읽으면서 놀랐다. ‘10대에 이 글을 썼다고?’ 기본적으로 천재적인 면모가 있으셨던 분 같다. 노력도 하셨던 것 같고. 다만 누군가를 계몽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쪽에 자신의 글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많은 글이 남아있지가 않다. 안타깝다. 재능을 정말 좋은 곳에 쓰셨지만 윤동주 선생님의 아름다운 시처럼 남아있는 결과물이 없어서. 그 천재성을 사람들이 몰라주고, 그 분의 이름조차 몰라주는 세상이 돼버려서.

10. 이준익 감독님도 말씀하셨지만 송몽규는 과정이 아름다운 사람이다. 살아 있을 때 유명했지만 사후 잊혀진 예술가들이 있고,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후에 재평가 된 예술가들이 있다. 어느 쪽이 더 좋을 걸까,란 생각을 해 본다.
박정민: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연기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메시지를 던지는 건 필요하다는 생각을. 돈과 명예? 목소리를 내려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우선은 어떤 의식을 갖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생각을 잊고 있다가 ‘동주’를 만나 다시 해보게 됐다. 훗날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내 연기를 봐주시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 스스로가 걸어온 길에 대해 떳떳해야 할 것 같다. 후대에 회자되는 건 사실 운이기도 하고, 우선은 내가 이 길을 부끄럽지 않게 닦아놔야 후대가 알아줘도 알아주지 않을 까란 생각을 한다.

10. 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는 것 같다. ‘박정민의 언희’에 “소신도 있고 신념도 있고, 그것들을 크게 배신한 적도 없었다”고 썼던데.
박정민: 배우마다 각자의 신념이 있지 않나. 훗날 되고 싶은 배우상도 있을 테고. 하지만 신인배우나 무명배우들 앞에는 그것을 배반하는 어떤 유혹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그 유혹들에 다 넘어가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싸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나름 지켜 온 신념이 있기에 그런 글을 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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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박정민: 분명 앞으로도 많은 유혹들이 나를 간질이지 않을까 싶다. 그걸 버텨내는 것도 나 같은 배우에겐 숙명인 것 같다.

10. 그렇다면 두 가지가 궁금하다. 신인배우들에게 주어지는 유혹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그런 유혹에도 스스로를 지킨 원동력은 뭔지.
박정민: 신인/무명배우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도 아니고 뭣도 아니고, 인지도다. 인지도를 올리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가령 예능출연. 조심스러운 말인데, 결코 예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예능프로그램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거든. 다만 그런 거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배우라고 각인했을 때 예능에 나가는 건 별 무리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데 예능에 나가서 예능인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그 순간 내가 꿈꿨던 것들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같은 게 있다. 그래서 속으로 ‘이겨내자.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참자. 내 진짜 모습을 조금 더 보여 주자’ 다짐한다. 그런 유혹들과 계속 싸우는 거다.

10.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도 나온 것 같다. 스스로에게 부끄럽기 싫은 게 커 보인다.
박정민: 그게 가장 크다. 아직 꿈꾸는 게 있기 때문에. ‘’

10.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를 이야기 한 적이 있더라. 올해 서른이다. 이젠 슬슬 칼을 꺼내들 때 같기도 하다.
박정민: 서른이 됐으니까 그 칼을 꺼내야지, 하는 건 없다. 뭔가를 계획하기 보다는, 본능을 믿는다. 내 앞에 적이 나타났을 때 ‘이번엔 베야지’하는 게 본능적으로 오리라 생각한다.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동주’를 만나고 달라졌다”

10. 무리들 사이에 있을 때 박정민은 어떤가.
박정민: 듣는 쪽이다. 말을 많이 안 한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두려움이 있다.

10. 왜 그럴까.
박정민: 아직 내가 철이 덜 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나의 단점인데, 틀리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다.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강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이게 공부 잘 하는 애들의 특징 같다.(웃음) 틀리면 안 되거든. 1,2,3,4번 중에 3번이 정답이면 3번을 꼭 맞춰야 하는 애들 있지 않나. 내가 수학을 좋아하다. 수학은 정확하게 똑 떨어지니까. 이런 성향이 연기할 땐 불편을 주곤 한다. 여러 가지를 해 봐야 하는데 틀릴까 봐 머뭇거리곤 하니까.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그걸 깨준 게 ‘동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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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동주’가 어떤 의미에서?
박정민: ‘동주’는 여러 가지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현장이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매체에 송몽규라는 사람을 내가 처음 소개하는 거니까. 내가 그려내는 모습이 보는 이들에겐 송몽규의 이미지가 되니까.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고,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갔다. 이전에는 정답만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동주’에서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틀린 것들은 삭제해 나갔다.

10. 수학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굳이 따진다면 배우에겐 수학적인 면보다 문학에 가까운 감성이 더 요구되지 않나.
박정민: 수학을 이성-계산, 문학을 감성-본능이라고 한다면 두 가지를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사실 후자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감성이 좋은 사람들을 되게 부러워했었는데, 선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서 ‘아, 감성으로만 연기하는 게 아니구나. 이성을 바탕에 두고 감성을 더해야지 이성이 없으면 감성도 다 날아가는 구나’를 알게 됐다. 결국 중요한 건 조화 같다. 전자는 충분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감성을 기르려고 노력 중이다.

10. 공주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했더라. 수재들이 모이는 고등학교였다고.
박정민: 지금은 모르겠는데, 당시엔 내신으로만 들어가는 학교였다. 분당에서 전교 5-6등 하는 애들은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첫 모의교사에서 꼴지를 했다. 내가 벼락치기 스타일이거든요.

10. 벼락치기가 중학교 때까지는 먹히는데, 고등학교 때는 안 먹히지.(웃음)
박정민: 맞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는데 2점, 이런 게 있어서 깜짝 놀랐다.(웃음) 충격을 한 번 받고 영화감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종 꿈은 연기였는데, 공주에서 연기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 보니 내가 영화를 찍고 주인공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영화감독을 목표로 세웠다. 학교에서 15분 뛰어가면 읍내에 작은 비디오 가게가 있었는데 매일 비디오를 빌려와서 새벽에 몰래 보면서 공부를 했다.

10. 그때 인상 깊게 본 영화는?
박정민: ‘바람난 가족’(2003) 19금 영화인데, 시골이라 쉽게 빌려 볼 수 있었다.(웃음) 보면서 진짜 충격을 받았다. 컷 바이 컷으로 분석하면서 보기도 했다.

10. 그나저나 왜, 연기였나.
박정민: 배후에 박원상 선배님이 계시다.(웃음) 중학교 때 친구들과 우연히 강원도에 놀러갔다가 자신을 연극배우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만났다. 박원상 선배님이었다. 조만간 자신이 출연한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가 개봉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영화를 찾아보니 진짜 그 분이 있더라. 멋있었다. 그때부터 영화를 꿈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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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와이키키 브라더스’ ‘바람난 가족’ 두 편 모두 소속사 선배 황정민이 출연한 작품이네.(웃음) 그 인연은 나중에 묻기로 하고, 정작 처음 들어간 곳은 고려대 인문학부였다.
박정민: 한예종 시험이 떨어진 후 고려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한예종 영화과 시험을 봐서 우여곡절 끝에 합격했다. 시험을 8월에 봐서, 입학까지 6개월 정도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그 시기에 경상도 여행을 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박원상 선생님이 생각났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다 그 분 때문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만나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다.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남부터미널에서 내렸는데 ‘뻥’ 하나 안 보태고, 전봇대에 그 분의 얼굴이 딱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극단 차이무 10주년 공연, ‘마르고 닳도록’ 포스터였다. 포스터에 있는 차이무 이메일로 메일을 보냈더니, 다음 날 선배님에게 전화가 왔다. “나, 너 기억난다! 술 한 번 먹어야지. 어디야? 나와!”

10. 대단한 인연이다.
박정민: 놀랍지. 그때 선배님이 날 ‘동학’이라는 대학로에 있는 술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갔더니 세상에! 문소리, 박광정, 강신일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쫙 앉아 계시는 거다. 그때 마침 원상 선배가 소리 누나와 ‘슬픈 연극’이라는 2인극을 준비할 때였다. “죄송한데 연습실 한 번 놀러가도 될까요?” “어 놀러와.” 다음 날 연습하는 걸 보고는 또 “내일 하루 더 와도 될까요?” “그래, 와!” 이런 게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차이무에 4년을 있게 됐다. 차이무에서 연기에 대한 기본을 배운 거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혹은 누군가의 질투를 받는”

10. 영화과에서 연극과로 전과를 한 데에는 차이무의 영향도 있겠다. 전과는 한예종 안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사건이었던 것으로 안다.
박정민: 극단에 있으면서 무대 세팅이나 조명, 망치질 등 기본적인 걸 습득했다. 연기 기본기도 어깨 너머 배웠는데, 정작 연극이 시작되면 무대 위에 내가 없더라. 안되겠다 싶었다. 정식으로 연극을 배우자, 연극과로 전과를 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때 나름 머리를 쓴 게, 영화과에서 연극과로 전과를 한 사례가 없었기에, 먼저 연극을 부전공으로 신청하고는 모든 연극과 수업을 들었다. 올 A+를 받아냈고. 덕분에 선생님이 좋게 봐 주셨다. 전과 입시시험을 볼 기회를 받았다.

10. 전과 입시시험에서는 어떤 연기를 준비했나.
박정민: 이것도 이야기 하자면 긴데, 혹시 조현철이라는 배우를 아나? ‘차이나타운’(2014)에 나온. 고동학교 동창이고, 영화과 동기다. 친한 친구인데, 한때 함께 살기도 했다. 그런데 얘는 항상, 내가 뭘 하려고 하면 갑자기 나타나서 자기도 같은 걸 하겠다고 하는 아이였다.(웃음) 내가 3년 동안 영화과를 준비했다면, 현철이는 시험 보기 며칠 전에 “나도 영화과 시험을 볼래” 하는 식이었다. 큰일 났구나 싶었다. 3년 동안 지켜본 현철이는 정말 천재거든. ‘현철이만 붙으면 나는 병신되는데’ 싶었다.(일동웃음) 다행히 둘 다 같이 떨어지고 같이 붙였다.

10. 천재가 옆에 있었네.
박정민: 그러니까. 나는 영화 한편 만들려고 오랜 시간 머리를 쥐어짜는데, 애는 한 번에 슉! 뭐든 나보다 잘 했다. 심지어 관심도 받지 집중도 받지…살짝 짜증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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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윤동주가 송몽규에게 느낀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질투 같은.
박정민: 그런 느낌일 수 있다. 내가 영화과에서 연기과로 전과를 했는데, 이 새끼가 또 연기를 한다고.(일동웃음) 그래서 전과 시험을 볼 때, 내가 준비한 연기가 (모차르트에게 열등감을 느낀)살리에르다. 현철이 때문에. 하하하.

10. 살리에르 감정은 ‘파수꾼’에서도 연기를 한 적이 있다. ‘파수꾼’에서 희준(박정민)이 기태(이제훈)에게 지닌 감정 중 하나는 동경과 질투였으니까. 어떻게 보면 송몽규는 ‘파수꾼’의 기태와 비슷한 느낌이 살짝 있다.
박정민: 맞다. 기본적인 감정만 두고 보면 송몽규는 희준보다는 기태 쪽이다.

10. 어떤가. 두 가지 감정을 다 연기해 본 셈이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혹은 누군가에게 질투를 받는. 어떤 게 연기할 때 재미있나.
박정민: 질투 받는 게 훨씬 좋다. 평소의 나는 질투 받는 사람이 아니니까 카메라 속에서라도 질투를 받아 보고 싶은 거다.(웃음)

10. 연기하면서 당신을 자극시키는 배우는 누구인가.
박정민: 자극이라기보다 내 연기를 보여주기 무서운 사람이 있다. ‘오피스’에서 함께 한 (배)성우 형. 형이랑 되게 친하다. 연기 방향과 지향점이 비슷하다보니 ‘내가 저지른 실수를 성우 형은 분명 볼 텐데. 아, 무서워’ 하는 느낌이 있다. 형도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아마 너는 내 실수가 보일 걸?” 서로 자세한 말은 안 해도 알 것 같은 것들이 있다. 아까 이야기 했듯 틀리는 걸 싫어하는 내겐 좀 무서운 존재다.(웃음)

10.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일견 행복한 거다.
박정민: 맞다. ‘동주’ 준비하면서 힘들 때, 투정부리러 가장 많이 찾아간 게 또 성우 형이었다.

10. 이야기를 듣다보니, 배우 박정민 인생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선배들이 많은 것 같다. 연기 세계로 이끌어준 박원상, 소속사 선배이자 ‘전설의 주먹’을 함께 한 황정민, 면접관이었다가 영화 ‘감기’로 만난 김성수 감독, 연기에 대한 여러 고민을 나누는 배성우, ‘동주’로 인도해 준 이준익 감독. 이런 인연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박정민: 내가 사람들에게 잘 못한다. 애교도 없고. 그런데 그 분들이 그런 걸 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가령 이런 거다. 정민이 형에게 설날 선물을 드리려고 하면 형이 그런다. “꼴값 떨지 말고, 나중에 잘 되면 그때 두 배로 해!” 내 상황을 알기에 부담주지 않으려고 하는 말씀인 걸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내가 가서 치대는 걸 과연 원하실까. 아닌 것 같다. 지금은 그 분들의 마음을 감사하고 깊게 품는 게 맞는 것 같다. 언젠가 꼭 갚으리라 생각하면서. 유혹들로부터 날 지키면서.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조슬기 기자 ke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