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효진 “운이 좋았고, 앞으로 계속 좋을 거라고 믿으려고요”

공효진 “운이 좋았고, 앞으로 계속 좋을 거라고 믿으려고요”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는 참 부러운 여자였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독고진과 어느 곳 하나 빠질 데 없는 남자 윤필주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MBC 의 구애정. 그러나 이 여자를 질투할지언정 미워할 수 없었던 건, 구애정을 연기한 배우 공효진의 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뷰 100’의 테이블 앞에 앉은 공효진이란 사람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사랑하는데도 사랑을 받는데도 전혀 의심 없는 태도였습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란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 공효진은 그 사랑이 너무 과분하다고 도망가거나, 너무 당연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감사히 받아들이는 보기 드문 여자였습니다. 제대로 사랑받을 줄 아는 여자, 필요 이상의 겸손으로 스스로를 폄하하는 대신 열심히 살아온 스스로를 대견해 할 줄 아는 건강함을 가진 배우 공효진과의 인터뷰 시간은 그렇게 지난 상반기, 최고의 즐거운 순간으로 기억 될 것 같습니다.

100: 두 남자 사이에서 정말 비현실적인 사랑을 받는 역할이었잖아요. 어떠셨어요? 구애정. 이 여자가 마음에 들었나요.
공효진: 저는 이 여자가 참 좋았어요. 대쪽 같다, 잡초 같다 이런 말 보다는, 고속도로에 어떻게든 비집고 피어난 들꽃 같은 여자랄까. 왜 사랑받는지, 이 여자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뭔지도 알겠더라고요. 일단 참 착한 여자잖아요. 어떤 소용돌이에 휘말리지도 않고,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많은 일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물론 그것 역시 지난 십여 년 간 비호감으로 살아오며 쌓인 인생의 노하우겠지만. (웃음)

“차승원 선배는 마초예요. 참 귀여운 마초”

100: 그동안 많은 남자배우들과 일해 왔지만 차승원 씨의 에너지는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공효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에너지였어요. 일단 때 조재현 선배님을 제외하면 또래 배우들과 주로 작업을 했잖아요, 그런데 차승원 선배는 뭐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까…. 마초예요. (웃음) 참 귀여운 마초. 처음엔 그래도 어른이시고 한참 선배니까 긴장을 많이 했어요. 눈치도 보고. 그런데 금방 친구처럼 편안해졌어요. 원래 그 벽을 넘기기 어려운 배우들이 있잖아요, 카리스마를 부리는 사람들. 그런데 오빠는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죠. 독고진 같은 사람이었어요, 저한테는. 그리고 지금도 독고진 같아요.

100: 지난 작품들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을 보면서 공효진이 균형감이 좋은 배우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어요. 자기 연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늘 그 순간, 앞에 있는 배우에게 가장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다보니 독고진 같이 다소 과한 캐릭터를 만나도 두 사람이 있는 풍경의 합은 과하지 않도록 밸런스를 맞추시더라고요.
공효진: 한국에서 드라마를 찍는 환경이란 것이 배우가 정신을 잠깐 놓으면 잘못된 연기가 방송을 타고 나갈지도 모르는, 거의 라이브 무대거든요. 그 와중에 다른 배우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의 연기를 바꾸기라는 건 어려운 일이죠. 아마 독고진은 독고진의 연기를 했을 테고, 저도 제 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게 다 일거예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제가 상대방 연기를 보면서 연기하는 사람인건 맞아요. 남의 대사를 들어야 그때서야 제 대사가 기억이나요. 사실 대화란 게 그런 거니까요. 하지만 차승원 선배는 아마 제가 그 앞에 없더라도 혼자 모든 연기가 가능하실 거예요. 본인 대사 외에도 모든 대본을 다 외우세요. 중간에 끊어서 가더라도 오빠는 혼자 시작할 수 있는 배우고, 저는 앞의 대사를 쳐줘야 그걸 듣고 연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완벽하게 다른 사람들인 거죠.

100: 영화 처럼은 아니지만 에서도 얼굴이 참 잘 빨게 지더라고요. (웃음) 맛장금 옷 입었던 날, 구애정이 내 여자 친구라고 말하는 TV 속 독고진을 보는 장면처럼요. 표정이 아니라 온 몸의 열이 확 오른 것처럼 보였거든요. 에서 눈알키스 했을 때도 귀까지 빨게 지셨고.
공효진: 찍고 나서 홍조가 생겼어요. 주름도 많이 늘고. 아! 산업재해예요.(웃음) 사실 저는 눈물을 흘릴 때도 슬픈 기억을 떠올리는 식으로는 접근을 잘 못해요. 그냥 그 상황을 순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100: 김태용 감독님이 유독 집중력이 좋은 배우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혹 전체 맥락이 주어지지 않는다해도 그 순간에 확 빠져드는 집중력이 높다고.
공효진: 판에 박힌 대답일 수도 있지만 슛! 하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돌 때 겁을 먹으면 안 돼요. 대신 모두들 나를 봐, 얼마나 잘하는지 라고 생각하면 순간적으로 에너지가 확 생겨요. 나를 믿고 가는 것, 나를 신뢰하고 가는 거죠. 음악 듣고 분위기잡고 그래봐야 기운만 빠지고 오히려 더 긴장해요. 오히려 편하게 있다가 갑자기 슛, 들어갔을 때 순간몰입을 하는 거죠. 만약 내 앞에 독고진이 있고, 이 사람을 사랑한다, 라고 하면 그 순간만큼은 머리와 얼굴 근육을 이용한 웃음이 아니라,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니까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마음이 내 근육들을 작지만 제대로 움직여서, 보는 사람들에게 전달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그런데 연기를 좀 해줘야겠다,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군더더기가 많이 붙는 것 같아요.

100: 하지만 연기를 하다보면 그런 욕심이 들게 마련이잖아요. 어떻게 쳐내는 건가요?
공효진: 대본 보면서 엄청난 눈물폭풍인가보다, 생각하고 촬영장에 갔는데 실제로는 별로 슬프지가 않은 경우가 있잖아요. 만약 그 상황에서 통곡을 하는 게 억지인 것 같으면 차라리 그 슬픔을 억누르는 느낌으로 연기를 바꿔요. 저는 저를 믿어요. 지금 내가 하는 게 맞는다고, 내 감정의 판단이 맞다고. 억지로는 안하려고 노력해요.

100: 예를 들자면요?
공효진: 에서도 기자회견 하러가는 구애정에게 독고진이 처음으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해주잖아요. 구애정, 나를 팔아 하면서. 대본에는 처음으로 이 여자가 상황을 인지하고 엄청 운다고 되어있는데 현장에서는 막상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독고진이 머리 빡빡 깎고 앞에 나타났다면 모를까, 도저히 죽을 사람으로 안보이기도 했었고. (웃음) 그 이야기를 듣고 당장 그걸 슬픔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오히려 거짓말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것 같았죠. 그래서 그냥 제 판단대로 안 울고 갔죠. 물론 찍고 나서도 이게 맞나 아닌가? 고민도 하긴 했지만요.

100: 혹 그런 고민 끝에 연기를 마치고 나면 그냥 까먹는 편이예요. 아니면 두고두고 생각하는 편이예요?
공효진: 생각 꽤 하긴 해요. (웃음) 잠깐만 내가 너무 덤덤했나. 여기는 너무 많이 웃었나? 하지만 어디에나 다 열연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매 신에 열연하면 보는 사람도 너무 피곤하잖아요. 진짜 강조하고 싶을 때 강조 할 수도 없고.

“첫째, 장녀, A형의 습관들이 연기하면서 드러나는 것 같아요”
공효진 “운이 좋았고, 앞으로 계속 좋을 거라고 믿으려고요”
100: 그렇게 배우와 캐릭터가 조율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공효진과 구애정이 구분 안 가게 겹쳐지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공효진: 그런 순간이… 꽤 있었는데요. 특히나 마지막 회가 그랬어요. 이제 이 사람이랑 있는 게 마냥 너무 행복했거든요. 독고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빙의가 되어 있었어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아서 나 너무 입이 찢어지나? 그랬죠. 너무 행복했어요.

100: 이 작품 하면서 너무 예뻐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죠?
공효진: 그저 를 거치면서 애교를 떠는데 이젠 노하우가 생긴 거죠. 남자배우를 바라볼 때 가장 사랑스러워 보이는 각도라든지, 계속 눈을 쳐다보다가 남자가 보면 쓱 피하는 것 같은… 여러 스킬까지 생겼죠. (웃음) 게다가 차승원 선배가 키가 워낙 크다보니까 마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위로 우러러 봐야 하잖아요. 그게 유독 사랑스러워 보이는 각도인 것 같기도 해요.

100: 장신의 여배우가 키 맞는 남자배우를 만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공효진: 맞아요. 독고진에게 안기면 목이 꺾일 정도로 키가 컸어요. 게다가 그놈의 ‘충전’은 늘 집에서 이루어지잖아요. 집에서 힐을 신을 수도 없고 (웃음) 오빠 덕을 많이 봤죠. 워낙 남자답게 생겼으니까 상대적으로 제가 하얗고 뽀얗게 보였던 거죠.

100: 부터 까지 남자배우들이 공효진 앞에서는 어쩐지 남동생이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어요. 제 아무리 독고진이라고 해도. 모든 남자들을 돌보는 느낌이랄까.
공효진: 그죠…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첫째고 장녀고 A형이라서 그런 습관 같은 게 있죠. 남동생 케어도 해야 하고, 승범이(류승범)도 돌봐야 하고… 다 제가 키운 애들이라. (웃음) 정말 그러다보니 남자 키우는 데는 상당히 익숙해져버렸어요. 연기하면서 상대방이 모르게 그런 느낌을 까는 것 같아요. 조금씩 마음을 주면서 슬슬 내가 너를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걸 인지시켜 주는 거죠.

100: 남자들을 그다지 무서워하는 편은 아닌가봐요.
공효진: 저도 가까워지면 나이하고 상관없이 좀 맞먹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차승원 오빠도 가끔 저한테 어휴 구애정 얄미워!!!!! 그 표정 짓지 마!!!! 그래요. 뭐 다 아는 것처럼 쳐다본다고. 그러면 이렇게 말하죠. 아유,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100: 아! 얄밉네요! (웃음)

100: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찍을 때는 연기 계속 할 거냐고 물어도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천진난만한 대답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는 정말 배우를 진지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공효진: 300만원인가 준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고 갔어요. 만날 밤새라고 그러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안보내주고. 감독님에게 가서 이거 몇 시에 끝나는 거예요? 저 화면에는 손톱만 하게 나올 것 같은데요? 기둥 뒤에 숨으면 안 보일 것 같은데요, 그러고. (웃음) 그때 제작부장님은 밥 챙겨주는 사람이구나 생각했고, 피디는 뭐하는 사람인데 매일 반바지 입고 저렇게 낚시의자에 앉아 있을까 했죠, 영화라는 것에도 배우 일에도 정말 관심이 없었어요.

100: 김태용 감독님은 “말은 참 안 듣는데 어쩐지 아끼게 되는 말썽장이 느낌”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공효진: 저한테 ‘남중생’ 같다고 하셨어요. (웃음)

“정말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처음 드는 거예요”
공효진 “운이 좋았고, 앞으로 계속 좋을 거라고 믿으려고요”
100: 그러던 사람이 연기를 업으로 삼아야겠다, 결심한 계기가 뭐였어요?
공효진: 사실 촬영 할 때는 애들 밤새는 거 보면서 어휴- 주인공은 하면 안 되겠다 그랬었어요. 게다가 다른 친구들은 소속사도 있고 관심도 많이 받았는데 저는 그렇진 못했으니까. 그냥 빨리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죠. 근데 가 개봉을 딱 했는데 사람들이 쟤는 누구야? 하면서 갑자기 저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예요. 그제야 기획사에서 콜을 하기도 했고. 사실 제 성격이 테니스를 배우던, 피아노를 치고, 공부를 하던 간에 점수를 더 내서 칭찬 받아야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항상 이 정도면 됐어. 이 정도면 괜찮아 했죠. 그런데 정말 더 잘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처음 드는 거예요. 그 솟구치는 욕심이라니. 그런데 스크린 위에 나오는 내 얼굴은 너무 너무 못난이더라고요. 라면 먹고 자다가 나오라고 하면 나와서 찍고 그랬거든요. 되게 못생겼구나, 충격 받았죠. (웃음)

100: 그런데 사람이 각오나 욕심이 생기면 원래는 안중에도 없던 방법적인 것을 고민하게 되잖아요.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도 아니고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그 신선함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순간이 오게 마련이구요.
공효진: 그 시기가 한 2004, 5년 쯤 왔어요. 끝내놓고 찍을 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딜레마라면 딜레마, 슬럼프라면 슬럼프였어요.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은 나에게 오지 않고, 재미도 없고 만족도도 없는 작품만 나에게 오는 거죠. 뭐 해야 하지? 아… 사람들이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 그 동안은 나는 잘하는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자꾸 노력을 더 하라는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그것도 최측근에서. 그런데 워낙 딩가딩가 살아오던 사람이다 보니까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어디서 뭘 배워야 하지? 연기 패턴을 좀 바꿔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때 쯤 만났던 게 이었죠.

100: 마냥 씩씩하기만 하던 개성 있는 신인 공효진이 아니라, 어른 여자 공효진의 탄생이 아니었나 싶어요. 결국 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공효진: 사실 이성으로서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나 재주도 없고, 그러기엔 와일드하고 까랑까랑한 이미지가 굳어져서 누군가의 이상형인 여자가 되기는 힘들겠다는 건 알았죠. 그보다는 멋진 여자, 닮고 싶은 여자로 만족해야하나, 하는 생각. 하지만 나 영화 < M > 같은 작품을 통해 그 전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준비했던 건 사실이에요. 의 서유경도 원래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제가 많이 바꾸고 만들어 나간 부분이 크고.

100: 원래는 어떤 캐릭터였는데요?
공효진: 억척이었죠. 머리에 하얀 수건 하나 질끈 동여매고 열심히 일하는 남자애 같은 여자애. 원래 세프랑 많이 싸우고 반항하는 장면도 많은데… 그냥 제가 다 안 해버렸어요. 지금까지 연기한 것처럼 서유경을 쿨하고 시원시원하게 했으면 또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너무 힘이 없다고 걱정하시는 거예요. 최쉐프랑 붙는데 게임이 안 된다고, 포스가 밀린다고. 그런데 포스가 밀리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막내인데. 혼나면 무섭고 죽을 것 같고 쉐프가 뭐라고 말만하면 목이 거북이처럼 들어가는 게 정상 아닌가? 그래서 할 수 있는데 몇 번을 더 시켜도 안했어요.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서유경을 제가 가장 얻고 싶은 캐릭터로 만들어 가는데 나름으로는 성공을 했죠.

100: 확신에서 나왔던 고집이었던 거죠?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공효진: 예, 왜냐면 사람들은 자꾸 익숙한 걸 원하니까. 나를 캐스팅 할 때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원래 생각한 모습을 뽑아내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런데 그 조율의 기간이 짧았어요. 감독님이 편집 하신 후에는 내 말이 맞는 것 같다고 그 이후로 계속 믿어주셨어요. 의 만족도가 개인적으로 컸던 것도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캐릭터를 그대로 만들어서 보여드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대중들이 좋아했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있었고요. 귀여운척해도 봐주시고. (웃음) 그래서 끝나고 솔직히는 이런 역할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을 만났고, 이제 사람들이 공효진도 사랑스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을 해주시는 게 너무 행복해요.

100: 영화 는 공효진 필모그래피에 보기 드물게 극적인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말투만 보면 거의 독고진에 가깝달까. (웃음) 큰 결심을 한 작품이었죠?
공효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예요. 분명 그런 도박을 걸만한 캐릭터였고 영화라고 생각해서 아예 맘먹고, 꼭 다들 혀를 내두르게 해줘야지, 하는 각오로 시작했죠. 이상한 코트를 입고, 이상한 신발을 신고. 얼굴도 포기하고! 내 치부를 다 보여주겠어! 하는 마음으로. (웃음) 그래서인지 보상심리도 되게 컸죠. 조금만 악플이 올라와도 “너 누구야! 나 공효진이거든!” 이런 글을 쓰기도 하고. 그러니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겠어요. 막 울고. (웃음) 비로소 세상이 나에게 오케이 너는 승! 이런 판정을 내려준 것 같아서 너무 기뻤죠. 포스터는 제작을 하신 박찬욱 감독님이 고르신 거라 바꾸지도 못했어요. 이경미 감독님이라면 여자로서의 인생 운운하면서 어떻게든 설득해보려고 했을 텐데. 그 빨간 얼굴이 극장 앞에 이따-만 하게 걸려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런데 그게 정말 저를 해방시켰어요. 를 하고 나서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게 되었거든요. 다 봤잖아요. 뭐가 두렵겠어요. (웃음)

100: 남자친구인 류승범 씨 반응은 좀 다르지 않았을까요?
공효진: 승범이는 그 영화를 진짜 좋아해요. 한참 칭찬해줬어요. 사실 걔가 칭찬에 인색한 아이거든요. 비로소 내가 자기보다 연기를 좀 더 잘한다는 걸 인정해주기 시작한 거죠. (웃음) 그리고 그때부터 갑자기 자기 영화 A 편집본을 가져와요. 자! 어떤 부분이 어떻다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줘, 하면서 내 모니터링을 받아 적어요. 하하하. 그 동안 제 연기를 되게 무시했거든요. 어휴- 연기에 ‘연’자도 모르던 공효진 내가 키웠는데… 이러면서. 카메오 해주려고 왔을 때도 “효진아, 조금 더 어른스러운 연기를 해” 뭐 이러면 “뭐야, 오늘 처음 와놓고 내 연기를 뭐 안다고 그래?” 하면서 티격태격했죠. 예전에는 서로 연기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잘 안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정확하게 가장 냉철하게 모니터해주는 사이가 되었어요.

100: 하지만 그때는 두 사람이 잠시 헤어졌던 시기였는데 에서 헤어진 남자친구 역으로 류승범 씨를 추천한 게 효진 씨였다면서요.
공효진: 재밌잖아요. 나랑 싸우는 옛 남자친구 역할인데, 잠깐 나오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하는데 류승범 이상이 없었죠. 개봉하고 승범이에게 정말 고맙다고 이야기했어요. 너 때문에 이 영화가 30% 이상 좋아진 것 같다. 너의 연기 때문이 아니라 너의 존재감 때문에. (웃음)

“점점 배우로서 더 인정받고 싶다는 꿈이 자꾸 생겨요”

100: 이경미 감독은 “공효진은 같이 있으면 신나는 사람”이라고 말하시던데, 을 읽으면서 가족의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자란 긍정적인 사람이란 걸 느꼈어요. 특히 오징어도 씹어서 줄만큼, 아버지의 사랑은 유독하신 것 같던데요.
공효진: 어느 날 회사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팬클럽 회장이 ‘홍콩공’이란 사람이 공효진 아빠라고 사칭하는 것 같은데 확인 좀 해달라고. 그래서 문자로 ‘홍콩공’이 아빠야 설마? 했더니. 처음엔 아닌데? 하시는 거예요. 아빠는 ‘HONGKONGGONG’이라고 영어로 썼다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사업하시던 곳이 홍콩이었거든요. 푸하하. 이제는 커밍아웃하고 제 공식 사이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세요. 드라마 현장에 팬클럽에서 간식해서 보내시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자기가 20만원 냈다며!

100: 하하하. 공효진 씨의 독고진은 아버지시네요. 특유의 긍정성도 이런 사랑에서 비롯되었겠군요. 그런데 예술을 하는 사람의 촌스러운 강박일 수도 있는데 고통에서 무언가가 나와야 한다고 믿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게 에너지원이 되는 배우들도 있고요.
공효진: 승범이 보면서는 그래요. 배우는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것들이 잠재된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저는 정말 그런 게 없거든요. 평탄하게 둥글게 살아온 삶이었으니까요. 찍을 때도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 느꼈던 제일 큰 두려움 중 하나가 긍정의 에너지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였어요. 나를 방어하기 위한 이상한 태도가 생길까봐. 가끔 여배우들에게서 발견되는 과한 카리스마는 나 우습게 보지 마, 하는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가시처럼 돋아져 나온 거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독기가 생길까봐 두렵기도 해요. 가장 경계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지금만 봐도 20대 초의 내 성격과는 많이 달라져버렸거든요.

100: 어떻게요?
공효진: 옛날에는 뭔가를 거부한다거나 거절한다거나 하는 걸 잘 못했어요. 예전에는 정말 대책 없이 긍정적이었거든요. 내가 귀찮더라도 손해 보더라도 그냥 했죠. 중간엔 하기 싫은데도 억지로 했고, 해야 하니까. 그런데 지금은 못하는 것은 정확하게 자를 수 있고 뒤도 안돌아볼 수 있게 된 거죠. 싸인이나 사진 같은 아주 간단한 문제부터 큰 결정에 대해서도요. 냉철해지기도 했지만 냉소적으로 변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난 더 이상 20대가 아니고 누가 봐도 어른인 나이잖아요. 삶은 더 치열해질 거고, 나는 더 어른이 될 거고, 더 많은 일을 겪을 테고. 사람들은 더 큰 기대를 할 거고, 더 많이 실망할거고, 나는 더 많이 창피해질 텐데. 그러니까, 인생에서 뭐가 더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하고 있는 시기예요. 지금이.

100: 요즘처럼 많은 사랑을 받을 때가 가장 무서운 순간이 아닐까요?
공효진: 로 여우주연상 받고 세상이 바뀔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웃음) 왜 하필이면 이럴 때가 비수기야, 난 왜 이렇게 운이 없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을 바뀌었어요. 당장 오지도 않은 것에 대한 걱정을 좀 접고 그냥 이 시간을 좀 즐기려고요. 나는 운이 좋았고, 앞으로 계속 좋을 거라고 믿으려고요. 물론 그 사이 침체기를 겪어본 적도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도 알고, 방법들을 많이 찾았죠. 어떤 일도 지나고 보면 크게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것도 알았기 때문에 굳이 소심하게 굴지 않고 멋있게, 대범하게 해버리니까 오히려 그게 더 당당해 지는 것 같고요. 그냥 배우 말고 제 인생도 살고 싶어요. 아, 빨리 지산 록페스티벌이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케미컬 브라더스도 오잖아요!

100: 안 그래도 록페스티벌에 가장 어울리는 여배우에 뽑혔던데요?
공효진: 우아 정말요! 그거 정말 멋진 일인데요! 나 얼마 전에 가족이 되어보고 싶은 연예인 1위도 했는데. (웃음) 록페스티벌 가는 건 1년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에요. 제가 술을 잘 못해서 만취상태로 즐기지는 못하지만.

100: 그런데 바로 영화 들어가셔야 하잖아요.
공효진: 한 달 후 쯤 부터 하정우 씨랑 이란 영화를 찍는데 혹시 그러면 페스티발 날짜는 빼달라고 회사에 말해놔야겠어요. (웃음) 이 영화는 너무 재밌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 읽고 홀랑 반했거든요. 애교의 끝을 보여주겠어요! 베드신도 있어요, 처음으로.

100: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니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혹 그것이 공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공효진: 글쎄요. 그냥 쉽게 만약 적절한 나이에 결혼을 해서 안정적으로 사는 거랑, 멋지게 모든 것을 다 섭렵하면서 배우로서 싱글로 사는 거랑 둘 중에 하나를 잡으라고 하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슬슬 후자로 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점점 배우로서 더 인정받고 싶다, 이름을 더 높이 알리고 싶다는 꿈이 자꾸 생겨요. 둘 다 잘하는 건 쉽지 않겠죠. 어쩌면 가능 할 수도 있겠지만. 아… 뭐가 좋을까요? 지금은 정말 답을 못 내리겠어요.

100: 배우로서의 욕심이 예전보다는 확실히 많아지긴 한 거로군요.
공효진: 네. 확실히요. 아마 답을 못 내리는 이유는 좋은 사람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라는 답을 선택할까봐 두려운 건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100% 전자였으니까요. 좋은 엄마, 좋은 아내, 내가 인간적으로 웰빙하고 싶었던 욕구가 더 컸으니까. 하지만 요즘엔 만약 내가 인간적으로는 좀 괴롭더라도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가치 있는 영화를 찍을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해요. 그래서 어서 빨리 그런 강렬한 영화를 만났으면 좋겠어요. 당당하게 많은 것을 얻고 싶어지는 그런 작품, 올인 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요.

글, 사진. 백은하 기자 one@
편집. 장경진 th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