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결] 정은지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

[텐아시아=박수정 기자]정은지

기승전결(起承轉結). 동양의 전통적인 시작법 중 하나로, 작품 내용의 흐름을 뜻한다. 오늘 날 온라인 상에서는 ‘기승전XX(결국엔 XX더라)’로 변형돼 자연스런 흐름을 강조하는 말로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감히 ‘기승전’을 붙이고 싶은 배우가 있다.

정은지. 2011년 데뷔한 걸그룹 에이핑크의 메인보컬. ‘연기 잘하는 아이돌’을 꼽을 때 항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제 어엿한 여배우.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게는 항상 ‘연기력 논란’ 꼬리표가 따라오지만, 정은지에겐 논란은 미미했다. 신드롬급 인기를 끈 ‘응답하라 1997’부터 현재 출연 중인 KBS2 월화드라마 ‘발칙하게 고고’까지, 매해 작품을 통해 배우의 길을 다지고 있는 정은지는 다양한 캐릭터를 정은지화(化)시키며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다. 정은지가 배우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게 되는 ‘기승전결’의 과정이다.

응답하라 1997 성시원

일어날 기(起) : 2012 tvN ‘응답하라 1997’ 성시원

그야말로 일어났다. 정은지는 ‘응답하라 1997’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처음엔 모두가 정은지의 여주인공 기용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이돌 출신, 첫 연기 도전, 케이블 드라마 등 정은지 앞에 놓인 난관은 많았다. 그러나 정은지는 난관들을 보기 좋게 넘었다.

성시원은 정은지 그 자체였다. 차진 부산 사투리, 아이돌 출신이란 색안경을 무색하게 만드는 생활 연기가 극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첫 연기라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안정된 모습이었다. 정은지 아니면 누가 성시원을 연기했을까 생각할 정도로 정은지는 성시원과 하나였다. 연기 문외한인 정은지가 덜컥 여주인공으로 발탁된 배경에도 연기 재능을 넘어선 성시원와 정은지의 싱크로율 아니었을까. 정은지도 ‘응답하라 1997’ 당시 인터뷰에서 “설명을 들을수록 어디서 많이 보던 에피소드였다. 시원이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은지가 아니면 안 되는 성시원이었다.

그겨울 바람이분다 정은지
이을 승(承) : 2013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문희선

‘응답하라 1997’로 단숨에 떠오르는 연기돌이 된 정은지에겐 또 다른 과제가 있었다. 과연 표준어 연기도 잘할 수 있을까. ‘응답하라 1997’의 성공에 이어 정은지는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표준어 연기에 도전하게 됐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정은지에게 전작의 시너지를 이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조인성, 송혜교, 김범 등 쟁쟁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응답하라 1997’의 화제성을 이어갔다. 여주인공이 아닌 조연으로서 표준어 연기력에 대한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노희경 작가와의 호흡이라는 큰 배움의 기회도 얻었다. 결과는 호평이었다. 정은지는 표준어 연기도 해내면서 연기돌의 확장팡을 이뤘다. 성시원처럼 밝으면서도 상처를 지니고 있던 문희경을 연기하면서 정은지는 착실히 내공을 쌓았다.

바꿀 전(轉) : 2014 KBS2 ‘트로트의 연인’ 최춘희

정은지는 드라마 출연 1회 만에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정은지가 세 번째 연기 도전만에 미니시리즈 주연 자리를 꿰찼다. 앞선 두 작품에서 모두 호평을 얻은 정은지지만, 역시나 미니시리즈 주연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트로트의 연인’ 속 최춘희 캐릭터는 정은지만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트로트의 연인’은 트로트에 재능이 있는 20대 여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트로트로 사랑과 성공을 거두는 이야기. 노래와 연기 그리고 20대, 정은지 말고 또 누가 있었을까.

정은지는 자신에게 꼭 맞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여배우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응답하라 1997’에서 보여준 생활 연기,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보여준 표준어 연기가 발전해 ‘트로트의 연인’에서는 정은지만의 매력을 풍겨내는 연기가 완성됐다. 에이핑크 메인보컬로서 발휘되는 가창력까지 드라마 속에 담기면서 ‘트로트의 연인’은 정은지의 모든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가 됐다. 정은지는 단 세 작품만에 정은지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의 영역을 만들어냈다.

정은지

맺을 결(結) : 2015 KBS2 ‘발칙하게 고고’ 강연두

‘발칙하게 고고’ 속 강연두 또한 정은지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 아닐까. 강연두는 긍정적이다. 당차다. 불의를 참지 못하면서도 용서할 줄 안다. 그동안 정은지가 보여준 캐릭터들의 특성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응답하라 1997’ 성시원의 당차고 털털한 모습, ‘트로트의 연인’ 최춘희의 따뜻하고 희망적인 모습 등 정은지가 표현한 캐릭터들의 장점이 강연두 속에 모두 담겼다.

무엇보다 다시 교복을 입은 정은지를 봐도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정은지는 자신을 일으킨 ‘응답하라 1997’에 가려지지 않고 정은지가 먼저 나오는 한 명의 배우가 됐다. 정은지는 ‘발칙하게 고고’ 제작발표회에서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밀착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여배우 정은지의 활약은 이제 시작이지만, 정은지는 네 작품을 통해서 모두 정은지 아닌 다른 배우를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모든 것을 정은지화(化) 시킨다는 것, 여배우 정은지의 가장 큰 매력이다.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tvN ‘응답하라 1997’,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 KBS2 ‘트로트의 연인’, KBS2 ‘발칙하게 고고’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