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나는 아직 스물네 살을 사는 것 같다”-2

10년 전 쯤 <이홍렬 쇼>에 산울림의 3형제가 출연했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때 김창완은 OX 퀴즈를 풀면서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다”라는 이홍렬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그리고 10년 후 김창완을 인터뷰하면서 김창완이 정말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믿게 됐다. 때론 독특한 비유를 섞어 쓰기도 하는 그의 말들은 때론 두 번 세 번 생각해야 그 의미를 알 수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꾸 머리에 맴돌아 사람의 행동을 조종했다. 그건 깊은 연륜의 어른이 주는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고민쯤은 훌쩍 뛰어넘은 외계인이 건네준 인생에 관한 암호 같은 것이었다.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도 어느 한 부분에서 그런 암호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삶을 회고하지 않고 계속 그 순간을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 <The happiest>는 산울림 초기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 그대로 30년 동안 살아와서 만든 앨범 같기도 했다.
김창완
: <The happiest>의 재킷을 내가 그렸다. 꿈에서 본 걸 그대로 그린 건데, 아기 침대에 어른 다섯 명이 앉아 있는 거였다. 언제 어른이 되었지 하는 그런 표정으로. 그래서 아이디어를 디자이너에게 주고, 이걸 해보라고 했다. 콘셉트는 그거다. “언제 어른이 되었지?”

어떻게 그런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가. 당신은 은둔자도 아니고, 매일 사람들과 부딪치는데. 보통 어른들은 그러면서 ‘사회화’란게 되지 않나.
김창완
: 그건…. 뭐랄까, 오래된 습관이기도 하고, 나의 정체성의 일부이기도 한데, 그건 항상 지금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거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떻다라고 하면, 항상 그 모습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한다. 그런 모습이 내 모든 작품에 담겨 있다. 어떤 경향에 함몰되는 삶이 싫었다. 지금도 싫고. 끝없는 자기 부정. 또 자기 스스로를 회의주의자로 바라보기.

“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그런 지루함, 그런 붙박힘이 중요하다”

그렇게 살려면 피곤하지 않나. 늘 예민하고, 늘 생각을 많이 해야 할 수도 있는데.
김창완
: 예를 들어서… (기자의 손을 잡고, 얼굴을 감싼 뒤)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하자. 내가 손을 잡으니까 따뜻하지 않나?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살아보니, 생각이라는 것은 이런 손만짐, 바라보기, 키스 같은 것에 비하면 너무나 단순하다. 우리가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 수억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고, 수많은 생각이 있었을까. 생각을 유지하는 건 쉽다. 삶에 비하면.

KBS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당신은 여전히 누군가를 짝사랑 하는 김국장에게 “몸은 나이 들어도 마음은 나이 들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산 증인 같은 놈아”라고 한다. 하지만 당신이야말로 그런 말을 들어야할 사람 같다. (웃음)
김창완
: 어느 방송에서 후배들이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연주하는 걸 들으면서 “이 노래가 발표된 지 30년이 넘었는데 이 노래는 아직도 스물네 살입니다”라고 말했었다. 노래는 주름이 생기지 않더라. 나는 아직 그 시절을 사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오랜 시간동안 중년의 아저씨를 연기했다 (웃음)
김창완
: 산울림이 음악을 발표하던 때가 음악을 검열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주로 단골로 맡던 애 딸린 홀아비나 (웃음) 마음 좋은 아저씨를 연기할 때는 내 음악을 검열하던 시절처럼 안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왜 그런 배역을 연기한 건가.
김창완
: 그런 연기를 하면서 연기 훈련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내가 작품을 고르는 걸로 알지만, 나는 전혀 작품을 고르지 않는다. 어떤 감독이 하자고 해도 다 한다. 시간이 허락하면 배역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고, 어떤 감독이라도 상관없다. 무슨 역인지 모르겠지만, 나하고 같이 하고 싶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그런 배역을 연기했던 건 일상성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일상을 지루함이나 권태로움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상의 반복은 변화를 느끼게 하는 가장 거대한 밑그림이다. 그건 그랜드 캐년 투어 같은 거다. 그랜드 캐년 투어를 할 때는 경비행기로 할 수도 있고, 며칠씩 야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한 지점에서 하루 동안 일출부터 일몰까지 모두 경험해 보라고 한다. 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그런 지루함, 그런 붙박힘이 중요하다. 오랫동안 반복되는 캐릭터에서 내 속 깊이 있는 일상성을 발견했고, 그랬기 때문에 나중에 성격있는 역할을 맡았을 때 차별화돼서 보이기 시작한 거다.

“독창성 있는 배역을 맡으면 음악 할 때와 같은 정열이 솟는다”

그 붙박힘에서 MBC <떨리는 가슴>의 ‘바람’을 기점으로 당신의 연기는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변화의 순간이 있었나.
김창완
: 특별한 포인트는 없다. 일단 드라마에 캐스팅 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니까. 감독이 나에게 배역을 주는 건 그 사람의 본능에 가까운 후각이기 때문에, 그들이 내 어떤 부분에서 냄새를 맡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바람’의 이윤정 감독은 당신의 음악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냄새를 맡았던 건 아닐까. ‘바람’에서는 당신의 음악이 매우 중요한 테마로 사용되기도 했다.
김창완
: 그럴 수 있다. 안판석 감독이 나한테 우용길 역을 맡기면서 그랬다. “나는 형이 이 역을 잘 할 거라고 믿어. 왜냐하면 형의 음악에서 이미 그런 것들을 보여줬으니까.”

그런데 지금 당신은 또 다시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의 캐릭터가 ‘산울림의 김창완’을 전제로 둬야 할 수 있는 연기라면, MBC <하얀거탑>, SBS <일지매>, 영화 <앤티크>같은 작품들은 당신의 삶을 투영하는 대신 그 배역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김창완
: 맞다. 그 전에는 많은 관객들이 나의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금 하고 있는 배역들은 상상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독창성. 그래서 이런 배역에 임할 때는 음악 작업 할 때와 같은 그런 정열이 솟는다.

연기가 더 재밌어졌을 것 같다. 전에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는데, 요즘엔 본인의 연기를 찾아단다는 느낌이 있다.
김창완
: 연기관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연기를 하는 나를 보니 민망해졌다. 그 민망함을 어느 정도 조절하면서 또 다른 단계가 된 것 같다.

<앤티크>는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원작에서도, 영화에서도 많은 설명이 없는 캐릭터인데, 어떻게 상상했나.
김창완
: 어떤 상상이라기보다는… 이건 비밀인데 (웃음) 언젠가 만드려고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을 <앤티크>에서 처음 보여준거다. 민규동 감독은 처음에는 내 캐릭터에 그렇게 접근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원하는 캐릭터에 대해 금방 이해를 해줬다.

“쉰 넷은 쉰 넷을 살지, 행복하다”

그런 상상들이 끊임없이 가능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조금 전 사진 촬영을 할 때도 당신은 섬뜩할 정도로 매 순간마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더라.
김창완
: 집중력이 좋다고 봐야지. 렌즈로 먹지를 태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떠다니는 많은 감상들 속에서 심금의 떨림을 포착해 내는 건 굉장히 예민하고,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걸 생각이나 사고를 통해 포착하면 너무 둔해진다. 어떤 감성을 표현하겠다고 할 때는 고도의 집중을 한다.

아까 손을 잡는 것과 같은 건가. 뇌를 거치지 않고.
김창완
: 그렇다. 사고라는 건 삶을 인식할 때 너무 둔한 도구다. 흔히 작품을 머리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라면을 끓일 때도 나만의 레시피가 있다. 끓는 시간을 타임워치로 재고, 물은 550CC를 맞춘다. 달걀은 30초 전에 넣고. 생각을 거치지 않고 정해진 것들을 당연하게 하듯, 그렇게 사고를 거치지 않고 하는 거다.

그런 방식으로 연기를 하는 게 힘들진 않나. 게다가 당신은 매우 바쁜데.
김창완
: 음악이나 연기 때문에 생활의 많은 부분이 훼손당하고 있다. 자전거를 너무나 타고 싶은데, 그게 안타깝다. 자전거를 타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데 왜 모든 캐스팅을 거절하지 않고 계속 활동하나.
김창완
: 나는 늘 행동 과다증처럼 여러 일을 동시 다발로 한다. 그건 나의 탈출구다. 나는 그런 행동 과다가 필요하다. 내가 그 밖에 하는 일은 자는 일 뿐이다. 그리고 술 마시고. 술처럼 음악이나 연기가 나를 숨겨주는 방책이라고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서 달아나는 것과 일로 달아나는 건 감상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을 수 있다.

끊임없이 일을 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음악에서 타협도 안하고, 언제 어른이 됐지 싶은 아이의 꿈을 꾼다. 그러면, 당신의 쉰넷은 대체 어떤 나이인 건가.
김창완
: 쉰 넷은 쉰 넷을 살지. 행복하다.

인터뷰.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