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 수배] 10월 첫째 주, 놓치기 아까운 음반

[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음악에 빠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던 경험이 있는가? 노래가 종일 귓가에 맴돌고 입 밖으로 튀어나와 곤혹스러웠던 경험이 있는가? 완벽하게 취향을 저격해 한 시도 뗄 수 없는 음악, 때문에 ‘일상 파괴’라는 죄목으로 지명 수배를 내리고 싶은 음악들이 있다.

당신의 일상 브레이커가 될 이 주의 음반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루시의조용한친구들

사건명 루시
용의자 루시의 조용한 친구들 (요조, 에릭 유)
사건일자 2015.10.02
첫인상 요조와 니들앤젬의 에릭 유가 만나 결성한 팀이다. 팀명에 등장하는 루시는 요조도 아니고 에릭도 아닌 제 3의 가상인물. 루시는 젊고, 매력적이고, 다양한 립스틱을 바르는 것을 좋아하고,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예쁜 몸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함부로 꺾이기를 거부한다. “그녀는 그냥 루시일 뿐.” 이 한마디를 위해, ‘조용한’ 친구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추천트랙 ‘루시(Lucy)’. 꽃은 예쁘다. 예쁜 것을 손에 넣고자 함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꽃을 꺾어 손에 넣었다. 그러자 꽃이 시들었다. 하지만 예쁜 것을 손에 넣고자 함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그리고 본능은 잘못이 아니다. 루시의 친구들은 이 같은 생각에 반격을 가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그녀는 너의 꽃이 아니야(She’ not your flower)”라고. 그녀가 원한다면, 꽃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너의’ 꽃은 아니다. 그러니 ‘너’에게는 루시를 꺾을 권리가 없다. 루시의 조용한 두 친구들이, 조용하게 묻혀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서사무엘

사건명 프레임워크(Frameworks)
용의자 서사무엘
사건일자 2015.10.02
첫인상 서사무엘의 첫 정규앨범. 앞서 그는 여러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및 EP, 싱글 앨범 발매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바 있다. 덕분에 흑인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천재 아티스트’라는 호칭을 얻고 있을 정도. 서사무엘은 이번 앨범을 통해 랩, 노래, 작사, 작곡을 오가며 자신의 총 역량을 발휘했다. 매 곡 함께 실린 아트워크를 살피는 것도 앨범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추천트랙 ‘썸바디(Somebody)’. 펑키한 리듬 위에 독특한 플로우의 랩이 얹힌다. 가사의 내용은 유치할 만큼 올바르다. 또렷한 발음은 한국어 가사의 각진 맛을 살려내고, 덕분에 돌직구로 날아 들어오는 랩도 제법 패기 있게 느껴진다. 더욱 재밌는 건 후렴구다. 가스펠 풍의 분위기와 흑인 톤의 보컬이 어우러져 그루비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멜로디는 새롭되, 후크감도 뛰어나서 한 번 들으면 내내 귀에 맴돈다. 정통과 트렌드 사이 그 어딘가에 서사무엘이 있다.

도재명

사건명 시월의 현상
용의자 도재명
사건일자 2015.10.06
첫인상 로로스가 잠정적인 해산을 맞이한 뒤(일각에 따르면 라인업 재정비 후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란다), 도재명이 발매한 두 번째 싱글앨범. 로로스가 드라마틱한 구성과 웅장한 편곡 등 화려한 연주를 선보였다면, 도재명의 솔로곡은 잔잔하고 섬세한 어법으로 이야기된다. 첫 싱글 ‘미완의 곡’에서 말하고자 했던 완성되지 못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시월의 현상’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추천트랙 ‘시월의 현상’. 도재명의 첫 솔로 싱글 ‘미완의 곡’과 비슷한 성격, 내용을 가진다. 여전히 도재명에겐 결핍이 있고 슬픔이 있으며, 그는 이를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아름답게 그려낸다. 피처링에 참여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는 제 몫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조심스레 뱉어낸 첫 소절부터 듀엣 파트에서 느껴지는 비틀거림이나 건조함까지, 남상아의 감성을 거치면 평범한 단어들도 모두 시어가 된다. 아름답다.

임재범

사건명 이름
용의자 임재범
사건일자 2015.10.06
첫인상 임재범의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의 선공개곡. ‘너를 위해’ ‘고해’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 임재범 특유의 야성적 창법이나 진한 발라드를 기대한다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톤이 레트로 소울풍의 장르를 만나, 그루브한 느낌이 한껏 살아있다. 보컬리스트로서는 초심으로의 회귀를, 음악적으로는 새로운 진화를 꾀하고 있는 것. 정규앨범은 10월 중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추천트랙 ‘이름’. 임재범은 무릎을 꿇었고 관객들은 눈물을 쏟았다. MBC ‘나는 가수다’에서 보여준 ‘여러분’ 무대에서 말이다. 그 이후로 2년이 지났다. 임재범은 달라졌지만, 동시에 달라지지 않았다. ‘여러분’에서의 비장함은 없어도,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라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경쾌한 선율을 따라, 임재범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유려하게 흐른다. 여기에 임재범 특유의 한국적인 소울이 넘실댄다. 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름이 남아있는 한, 임재범은 행복할 테다.
출몰지역 오는 30~31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의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고 이후 10개 도시 투어 공연을 갖는다.

트램폴린

사건명 마지널(Marginal)
용의자 트램폴린 (차효선, 김나은, 정다영)
사건일자 2015.10.06
첫인상 3인 밴드 체제 하에서 완성된 첫 번째 정규 앨범. 트램폴린은 기타와 베이스, 신디사이저로 연주하는 밴드적인 면모를 살리되, 기존의 일렉트로닉한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DJ소울스케이프를 공동 프로듀서로 영입했다. 그의 참여로 이번 앨범은 서사성과 사운드적 요소에서 한층 강해진 면모를 과시한다.
추천트랙 ‘폴리가미(Polygamy)’. 일렉트로닉과 팝의 ‘이종교배물’. 이번 앨범을 소개하면서, 트램폴린이 자주 사용했던 단어다. 비트는 단순하고 기타와 베이스, 신디사이저의 앙상블도 깔끔하다. 여기에 차효선의 시크한 목소리와 칠링한 멜로디가 어우러지니, 일렉트로닉을 재료로 훌륭한 팝 음악이 완성됐다고 할 수 있겠다. 이만하면, 단순한 ‘이종교배물’ 정도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장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 하다.

이은호 기자 wild37@
편집. 김민영 kimin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