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 “나는, 내 인생을 저주하고 사랑한다”(인터뷰)

[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유아인07
유아인은 종종 제임스 딘을 이야기한다. 그에겐 청춘에 대한 동경이 있다. 청춘의 얼굴로 기억되고 싶은 욕망이. 하지만 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생각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서 멈춰서며 불멸이 된 제임스 딘과 달리, 디카프리오는 눈부셨던 청춘의 시기와 자신을 둘러싼 이미지에 격렬히 저항하는 시간을 지나, 이젠 다양한 얼굴표정으로 믿음을 주는 현재진행형의 배우가 됐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힘들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요즘 유야인의 얼굴에서 제임스 딘보다 디카프리오의 얼굴이 더 자주 엿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유아인은 여전히 생성 중이다.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고, 고이지 않고, 그렇게 흘러간다. 놀랍게도 그가 떠난 자리엔 늘 유아인이 남는다. 쉽지 않은 일이다.

Q. 조만간 극장과 브라운관에 ‘재벌 3세 유아인’(베테랑)과 ‘비운의 왕자 유아인’(사도)과 ‘호방한 이방원으로 분한 유아인’(육룡이 나르샤)이 동시에 관객을 만난다.
유아인: 얕은 수를 썼다가는 들통 날 텐데…(웃음) 그러니까 ‘얕은 수를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 ‘육룡이 나르샤’를 찍고 있다. 동시에 세 인물이 나오니 얼마나 비교 대상이 되겠나.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Q. 흥미롭게도 세 작품 모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아버지 눈 밖에 나기 싫어 임원회의에 기저귀를 차고 들어가는 조태오, 사랑에 목말라 하다가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 아직 방영은 안 됐지만 ‘육룡이 나르샤’에서 연기한 이방원도 역사적으로 왕위 자리를 두고 아버지와 여러 마찰을 빚은 인물이다. 굳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부자지간은 평생의 미스터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아인: 아들에게 아버지는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고 극복하고 싶은 대상이다. 자식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도 자식에게 인정받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자식이 치고 올라오면 콤플렉스를 느끼기도 하고. 이선(사도)이 이산(정조)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자식이 없어봐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은 워낙 사회성으로 똘똘 뭉친 동물이지 않나. 먹이를 사냥해서 집에 물고 와야 하는 존재. 사회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존재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하고, 극복하고 싶어 하고, 콤플렉스도 느끼고… 그렇게 되는 것 같다.

Q. 본능적으로 그런 측면이 강하다고 보는 건가, 사회가 그렇게 만든다고 보는 건가.
유아인: 본능과 사회성을 분리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전에는 분리해서 생각했었다. 인간이 지닌 순수성·본성·기질·천형 여러 가지 순수에 가까운 것들과 사회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분리해서 바라봤었다. 하지만 이젠, 분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본다. 사람이라는 네트워크, 사회라는 시스템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긴 거다. 완전히 세상을 등지는 척, ‘세상은 세상이고, 속세는 속세고, 나는 나다!’ 라고 한 적도 있었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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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있었다?
유아인: 있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있다. ‘어느 순간, 나는 (모든 것들로부터) 완전히 분리 될 수 있어!’라는 게. 그것이야말로 근거 없는 자신감인데, 그런 하나의 얄팍한 끈을 잡고 있기는 하다.

Q. 그 시기의 유아인은 남들이 보기에 많이 뾰족했겠다.
유아인: 많이 뾰족했다. 유난히 뾰족했을 거다.

Q. 배우에게 금기라 여겨졌던 날것의 언어들을 그때그때 표출하기도 했다.
유아인: 이미지…였을 거다. 할 말을 제대로 해서가 아니라, 어떤 이미지였을 수 있다. 그때는 의식적으로 조금 더 울퉁불퉁하게 한다거나, 뾰족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내 이미지에 대한 나름의 인지가 있었고, 그걸 만들고자하는 경향이 어느 정도 반영된 부분이 있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다’라는 것, 그걸 ‘전략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게 특권’이라는 걸 그 순간에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Q. 지금은?
유아인: 이제는 특권이 아니지. 하하하. 지금 하려면 훨씬 더 능수능란하고 매끄러워야 할 텐데… 무엇보다, 이젠 더 이상 튀려고 안달하지 않는 것 같다. 날, 알지 않나. 예전에는 나를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흔히 말해서 ‘관종(관심종자)’ 같은 면도 있었다는 걸.

Q. 안 그래도 묻고 싶었다. 두 달 전 인터뷰에서 이야기 한 ‘관종’이라는 것에 대해. 오히려 이젠 반대가 아닐까 싶거든. 근 몇 달 동안 당신 스스로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모든 언론매체가 먼저 유아인을 꺼내고 유아인을 이야기 하고 유아인을 드러내고 있다.
유아인: 결국엔 뭐가 진짜고 뭐가 아니고, 무엇이 내 것이고 무엇이 내 것이 아닌가라는 판단이 서야할 것 같다. 이 안에서 흥청망청 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외부에 의해서 결정지어는 나와, 내 핵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나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 하고 있다. 둘 사이의 접점을 찾아서 지금의 내 자세를 결정짓는 것일 테고. 어쨌든 구분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Q. 잘 구분하고 있는 것 같나.
유아인: 하하하. 모르겠다. 내 얘기를 해도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흘려보내는 것들도 있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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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의 상황을 의외로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유아인: 그런 생각을 했다. 기자는 배우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분들이다. 기자가 대중들에게 ‘이 배우는 무엇이다’ 규정짓게 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게 아주 큰 거고, 영향력인 거고. 그런데 지금의 시스템이 뭐랄까. 뭔가 색을 펼칠 새도 없이 끊임없이 덧칠되어지고 있고, 끊임없이 스크롤 되고 있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당장 다를 수 있는 구조 속으로 들어와 있는 거다. 이러한 미디어와 배우의 상생관계는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은 있다. 가령 ‘안 좋은 기사가 나왔어? 됐어! 내일 스크롤이 떨어질 텐데, 뭐’하는.(웃음) 반면 3년 전 기사를 퍼와 다가 어뷰징을 해대고, 이미 희미해진 무언가를 내 퍼즐에 확 갖다 붙이기도 한다. 결국 이 시스템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나를 드러내지 않은 것이 스스로도 다치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에도 흠집을 내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게 맞나?’ 싶을 때도 있고.

Q.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의 흥행 앞에서 “두렵다”고 했다. 유아인은 어떤가.
유아인: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무섭다’는 게 뭔지 알기 때문에 ‘무섭다’고 하는 것과, 몰라서 ‘무섭다’고 하는 것. 류승완 감독님은 전자다. 그 숫자의 의미와 가치와 부작용과 그게 어떻게 나온 숫자인가를 너무 잘 알기에 ‘무섭다’라고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굉장히 무섭지는 않다.(웃음)

Q. 이준익 감독이 사도세자에 대해 ‘숙명’을 타고 태어난 인물이라고 했다. 배우 유아인도 살면서 이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느꼈던 순간이 있을까.
유아인: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면 ‘숙명’이지 않나. 음… 몹시 어려운 질문이다. 안 좋은 순간이 떠오르는데.(웃음) 글쎄. 뭔가 콕 집어서 말하기 힘든 부분이다.

Q. 그렇다면, 연기자가 된 건? 그건 ‘숙명’이라기보다는 ‘운명’이겠지?
유아인: 아니, ‘숙명’인 것 같다. 의미는…의미는 노코멘트로 하면 안 될까. 너무 강하거든.(웃음)

Q. 상당한가 보다.(웃음) ‘사도’ 현장은 어땠나. 불꽃이 튀지 않았을까 싶은데.
유아인: 내 방식은 그냥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거다.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뭐냐면, 현장에 나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거다. 나는 사실 집에 혼자 틀어박혀 그림 그려야 하는 스타일이다. 성격적으로 굉장히 폐쇄적이고 낯가림도 심한데 배우의 일이라는 것은 함께 하는 것이지 않나. 절대 혼자 하는 게 없다. 혼자 잘 하는 일도 없고. 그런데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뭔지도 모를 어린 나이에 이 세계에 막내로 뚝 떨어져서 스탭을 밟아 오다보니 일그러진 부분이 있다. 솔직히 지금의 내 모습이 예쁘다고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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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면에서?
유아인: 가령, 예의라는 것. 너무 중요하다. 너무 중요한데, 그 안에서 자연스럽고 싶은 마음이 있다. 없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지도 않고, 없는 존경을 표현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송강호 선배, 너무 존경한다. 황정민 선배, 김윤석 선배, 감독님들, 정말 스승들이고 존경하는 분들이다. 그런데 그건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거든. 가끔 자연스럽지 않음을 강요받을 때가 있다. 무조건 깍듯해야 하고, (어른들에게)배운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배웠다고 얘기해야 할 것 같고.(일동웃음) 물론 배운다. 뭔가를 배우긴 한다. 윤석 선배가 ‘완득이’ 인터뷰 때 멘토에 대해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진짜 구린 인간을 봤을 때 어마어마한 걸 배웠다”고 했다. 누군가를 보며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느끼는 것도 배움의 일종인 거다. 인간은 결국 스스로가 열어만 두고 있으면 배움 밖에 없는 것 같다.

Q. 유아인은 배움을 갈구하는 인간인가.
윤아인: 사실 끊임없이 숙제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성장자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다.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나의 큰 과업이다. 그런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나이라는 제약 안에서, 부자연스러워지고 잃어버리는 것들도 많지 않나 싶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에 한계를 만들어버린다는 거지. 이제까지는 최대한 나를 안전망 안에 몰아넣고 일을 해 왔다. 그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도록.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모니터에서 진짜 멀리 떨어져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 지금도 그런다. 현장에서 나는 아주 먼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Q. 뭔가에 대한 규정을 경계하는 것 같은데, 답답하기도 하겠다.
유아인: 그렇다고 해서 독고다이로 한다는 건 아니다. 주연배우로서 해야 하는 것들이 있지 않나. 가령 후배나 신인배우가 나오면 ‘으싸으싸’해서 끌고 가기도 하고, 내가 필요한 순간이 있으며 말도 한 마디 한다. 그걸 능수능란하게 휘두르고 있는 ‘척’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몹시 불편한 건…….

Q. 어쩔 수 없는 문제지.(웃음)
유아인: 하하하. 맞다. 가령 담배를 보자. 세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가진 예의라는 게 있지 않나. “선배님, 한 대 펴도 되겠습니까.” 쿨한 선배들은 그런다. “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러니. 그냥 펴” 그런데 막상 그냥 펴 봐. 속으로 ‘이 새끼 봐라?’ 그럴 거다.(일동웃음) 이 ‘쿨’ 병 들린 세상에 진절머리가 나지도 하지만, 타인과 부대끼면서는 진정 쿨하고 싶다. 또 나는 진짜 쿨하거든. 하하하하. 쿨하지 않은 것들은 집에서 혼자 머리 싸매고 한다.

Q. 유아인이 정의하는 ‘쿨함’은 뭔가.
유아인: 자연스럽게, 솔직하게 혹은 유연하게 선입견 없이 행동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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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당신은 스스로가 선입견이 없는 인간이라 생각하는 건가.
유아인: 아니…나는 선입견이 많은 인간이다.

Q. 뭔가 상충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유아인: 어떻게 보면 쿨하겠다는 ‘의지’ 같은 거다. 내가 지닌 선입견에 대한 반대급부를 항상 치열하게 생각한다. “너는 왜 이렇게 나를 쉽게 판단 해? 너도 쉽게 판단 받고 싶지 않잖아!”라는 공감대를 만들어가면서 상대에게 말하는 편이다. 그건,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가령 연예인 가십을 보고 웃고 떠든다거나,(웃음) 현장에서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외부로 자신을 만들고자 하는 아주 못생긴 지점들. 거기에 너무 심취하게 되면, 그런 것들을 통해 못난 자존감을 만들고 일그러진 자신감을 만들게 된다. 결국에는 아주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스탭을 밟아야 하는 것 같다. 나에게로 화살을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고. ‘나는 완전히 순결해요’가 쿨함은 아닌 거지. ‘이! 이!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 진짜 쿨해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런 걸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진짜 쿨한 것 같지는 않다.

(다른 질문을 하려 하자, 잠시 막아선다)
유아인: 미안한데, 잠시만. 관련해서 조금 더 이야기 하고 싶다. 쿨하다는 것은…그것은 결국 서양문물인 것 같다. 대한민국 구조 안에서, 우리의 습속 안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스템 안에서 그게 먹힐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불가능한 지점일 수 있는 것 같다.

Q. 그런 점에서 이준익 감독과의 호흡을 물어보고 싶다. 권위를 별로 내세우는 분이 아니지 않나.
유아인: 그래서 진짜 권위가 있는 거다. 자신을 옥죄는, 자신을 얽매이게 하는, 자신을 제한하는, 자신을 규정하는, 자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들에 갇힌 채 살아갈 수 있는 ‘꼰대’가 될 수 있는 많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으신 건, 나 같은 어린 애들이 지닌 의지보다 훨씬 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걸 거다. 에너지가 폭발적일 수 있은 건 결국 중심이 있기 때문일 테고. 감독님을 보면, 몸에 지방 한 점이 없다. 나는 육체가 생각을 반영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가끔 놀리기도 한다. “간디 같다”고.(웃음)

Q. 그렇다면 지금 유아인의 육체는 어떤 걸 반영하는 몸인가.
유아인: 하하하하. 그야말로 의지다. 아까도 일하는 친구랑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운동해?” “어쩔 수 없이 해. 안 하면 엉덩이가 쳐져.” 푸하하. 정신적인 탄력을 잃지 않고 싶은 것처럼, 육체의 탄력도 가능한 오래 유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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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도제사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다양하다. 누군가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누군가는 광인으로, 누군가는 이상주의자로 그를 해석한다. 아마 유아인도 500년 후, 출연 작품을 통해 후대에 평가될 텐데 어떻게 해석되길 원하나.
유아인: 일단 긍정적이었으면 좋겠다. 미술을 보면 ‘사조(思潮)’가 있고 ‘파(派)’가 있지 않나. 유행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있고 새로움을 끄집어내는 사람이 있는데, 아티스트라면 어느 정도의 포부는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경향에 따라가는 사람이 될 것인가, 경향을 제시하고 주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음…이 시대의 배우가 가진 포지션이라는 게 있을 텐데, 그 포지션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포지션이 결정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결정지어진 게 아니거든. 지금은 배우라는 직업이 각광받지만 어느 시대에서는 광대 취급을 받기도 했으니까. 어느 나라에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대단한 영향력을 떨치기도 하고. 시스템 안에서 유명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그 안에서 배우로서 ‘연기라는 예술’을 행한다는 것에 대해, ‘뭘 꼭 하겠다’는 의지보다는 ‘폭넓게 생각하고 있다’는 정도만 말씀 드리고 싶다.

Q. 살아있을 때 빛을 보지 못하다가 후대에 재평가 받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반 고흐 같은. 반대로 당시에 잘 나갔어도 지금은 잊혀진 아티스트가 있고.
유아인: 맞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연기=예술’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나다. 나조차도 그렇거든. “저, 예술가예요!”라고 말하기엔 약간 민망하고 오그라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적어도 내 후배들이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하고, 타인으로부터 예술가라는 말을 듣는 것에 떳떳할 수 있는 전례를 만드는데 조금은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경향인 거고.

Q. 유아인리즘?(웃음)
유아인: 으하하하하하. 그러지마~ 하하하하. 좋은 선배들이 있으면 그 분들을 보면서 자신 있게 ‘나도 아티스트야’라고 할 때가 있다. 나도 앞으로 점점 더 선배가 되어 갈 텐데,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스스로 무엇으로 불리는지가, 자신의 후배가 무엇으로 불릴지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배우들이 스스로를 ‘딴따라’나 ‘광대’라고 하는 게 예뻐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기는 할 거다. 많은 공격으로부터 비켜나가게 만들어 주기도 할 테고. 하지만 본질은 예술이니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시대가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그걸 행하는 사람들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병행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그런 떳떳한 선배들과 감독님들을 만나면 아주 큰 힘이 난다.

Q. 약간 오그라들 수 있는 질문이다. 유아인은 유아인의 인생을 사랑하나.
유아인: 하하하. 그 마저도 두 개다. 저주하고 사랑한다. 진담이다. 뭘 더 들여다보고, 매 순간 뭘 선택하느냐가 다른 뿐, 동시에 간다. 저주하고 사랑한다. 그건 오그라들지만 아주 좋은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쉽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대답이거든.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