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잘했군 잘했어>│커플들이 사는 세상

언젠가부터 드라마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물 간 갈등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도구가 되었다. 불륜을 위해, 삼각관계를 위해, 재벌 2세와 만나기 위해 사용되는 ‘사랑’ 대신 ‘사랑’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MBC 주말연속극 <잘했군 잘했어>의 제작발표회가 10일 일산 MBC 드림센터에서 진행됐다. 이번 발표회에는 MBC 드라마국 임화민 드라마 1부장과 연출을 맡은 김남원 감독, 극본의 박지현 작가, 배우 채림, 엄기준, 김승수, 김정화, 최다니엘, 서효림이 참석했다.

“독한 드라마가 인기지만 따뜻한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다”

“대형할인마트나 백화점이 아닌 재래시장의 조그만 좌판 같은 이야기”라는 김남원 감독의 말처럼 <잘했군 잘했어>에서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다. 미혼모인 사실을 숨기고 딸을 여동생으로 입적해 키우는 이강주(채림)와 이강주를 사랑하는 것만이 인생의 모든 것인 최승현(엄기준) 사이의 티격태격한 연애 사이에 가족과 친구 관계로 이어진 몇 개의 애정 관계가 엮일 뿐이다. 등장인물을 봐도 어느 대기업 실장님 정도의 자리에는 정신과 의사에 성격 올바른 유호남(김승수)이 있고, 남들의 사랑을 훼방 놓는 부잣집 악녀가 있었을 것 같은 자리에는 철부지 공주님인 나미라(김정화)가 있다. 시사를 위해 만들어진 5분짜리 편집본에서도 어떤 갈등보단 최고연장자 커플인 정수희(정애리)와 한상훈(천호진) 커플의 로맨틱한 데이트부터 이은혁(최다니엘)과 하은비(서효림)의 철부지 같은 연애까지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독한 드라마가 인기를 끌지만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고, 우리 드라마가 복잡한 인물 관계 안에서도 그런 따뜻함을 전해줄 것”이라는 배우 김승수의 바람처럼 화려함을 지운 이 소소한 드라마가 한 줌 진심이 담긴 사랑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 씩씩한 미혼모 이강주, 채림
모든 걸 장난처럼 살지만 사랑은 진심인 남자 최승현, 엄기준

실제로는 채림보다 3살 위인 엄기준이 이강주보다 2살 연하, 그것도 과외선생과 제자의 관계였던 최승현 역을 맡았다. “이강주만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열렬히 따라다니는 사랑 밖에 모르는 캐릭터”라는 엄기준의 설명대로 최승현은 서른이 넘어서도 ‘선생님께 어디 반말이냐’고 눈을 치뜨며 자신을 피하는 강주에게 목을 매는 피트니스 클럽 사장이다. 강주가 밝고 꿋꿋한 ‘똑순이’면서도 그 이면에 자신의 아이를 동생으로 두고 살아야 하는 아픔을 가지고 있다면, 승현은 클럽에서 여자와의 부비부비를 마다하지 않는 적극성 이면에 강주 한 명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숨겨온 강주의 아픔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승현의 순정이 어떻게 펼쳐질지가 앞으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직장부터 성격까지 모든 게 반듯한 정신과 의사 유호남, 김승수
호남 앞에서만 작아지는 공주님 나미라, 김정화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메인 애정전선 옆에서 서브 전선을 형성했던 두 배우, 김승수와 김정화가 커플로 만났다. 미국에서 의대를 마친 유호남이 김승수가 과거 연기했던 SBS <우리 집에 왜 왔니>의 이강재나 SBS <유리의 성>의 박석진처럼 좀체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엘리트 역할과 비슷하다면 나미라 역시 김정화가 맡았던 SBS <세잎클로버>의 부잣집 외동딸 박연희의 이미지에 가깝다. 이 둘이 유학 시절 만나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되었으니 결국 드라마 안에서 조건은 가장 좋은 두 남녀가 만난 셈이다. 하지만 호남의 시선이 과거 사랑하지만 떠나야했던 강주로 향하면서, 항상 당당했던 승주가 호남에게만큼은 매달리게 되면서 이 둘의 관계도 예상하지 못할 방향으로 흐른다.

은비와 호야가 세상의 전부인 훈남 미혼부 이은혁, 최다니엘
철없는 아메리칸 스타일 미혼모 하은비, 서효림

“드라마 안에서 웃음을 줄 수 있는 커플 역할”(서효림)로서, 그것도 철없는 미혼 부모 역할에 KBS <그들이 사는 세상> ‘미친 양언니’ 최다니엘과 MBC <그분이 오신다> ‘백치미 재벌 2세’ 서효림 조합은 최상의 선택일지 모른다. 중국집 사장님인 어머니가 부쳐주는 돈으로 미국 유학을 하던 은혁이 어릴 때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 은비를 파티에서 만나 사랑의 결실인 호야를 얻게 되지만 은비는 아이를 키울 생각이 없다. 졸지에 미혼부가 되어 귀국했지만 호야와 함께라면 언제나 싱글벙글인 은혁과 잠시 은혁과 호야를 보러 한국에 온 은비가 만들어나가는 좌충우돌 결혼 프로젝트는 웃으며 사랑과 육아, 결혼의 문제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관전포인트
이날 제작발표회에선 강은비 역의 서효림에게 연애 상대로서 최다니엘과 엄기준의 매력 비교를 원하는 질문이 나왔다. 엉뚱해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이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그것도 엄기준과 서효림은 연인 역으로, 엄기준과 최다니엘은 앙숙으로 함께했단 사실을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난해 가장 탁월했던 작품 중 하나에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시청률에선 고배를 마신 이들은 “MBC에서 출연했던 작품은 모두 시청률이 높았다”(채림), “찍으며 (시청률) 느낌이 좋다”(김승수)는 주위의 기대감에 어떻게 부응할까. <잘했군 잘했어>의 첫 성적표는 3월 14일 토요일 저녁 7시 55분에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