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의 10 Voice] 돈이 동해를 구원하리라

[최지은의 10 Voice] 돈이 동해를 구원하리라
KBS 일일 드라마 는 일명 로 불린다. 주인공인 동해(지창욱)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드라마가 한없이 지지부진한 ‘동해의 수난시대’에 가까운 탓에 일부 시청자들이 붙인 별명이다. 사실 는 동해가 웃으라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MBC 의 인숙(염정아)에게 어느 날 찾아온 조니(피터 홀맨)가 반가운 아들이기 전에 덮어버리고 싶은 과거이듯, 유망한 호텔 관리자인 도진(이장우)과의 결혼을 꿈꾸는 새와(박정아)에게 미국 유학 시절 함께 살았던 남자친구 동해와 지적장애를 지닌 그의 어머니 안나(도지원)는 치워버리고 싶은 장애물이다. 보통 일일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이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부잣집 딸 때문에 수모를 겪고 음모에 빠진다면 ‘남성판 캔디’인 동해를 수렁에 빠뜨리는 것은 옛 여자친구 새와다.

가 속한 KBS 일일 드라마의 세계
[최지은의 10 Voice] 돈이 동해를 구원하리라
그래서 새와에게 차인 동해는 새와를 구하려다 차에 치어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나고, 동해와 안나에게 미국으로 떠나라고 호령하던 새와의 엄마 술녀(박해미)는 요리경연대회를 위해 동해가 준비한 청국장을 망쳐놓는다. 새와는 동해의 요리대회 레시피를 유출시키고, 동해의 아버지 제임스이자 자신의 시아버지인 김준(강석우)을 동해 모자와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들의 관계를 증명할 증거품을 훔치기도 한다. 새와가 자신의 직업인 아나운서 일을 도대체 언제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듯, 몇 주 전과 비슷한 음모가 오늘 또 등장하고 말 한 마디면 밝혀질 비밀을 질질 끌거나 교통사고로 미뤄 버리는 전개는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새와의 ‘과거’는 왜 그토록 공포스러운 주제가 되는가. 김준과 동해 모자의 재회가 과연 새와의 결혼 생활을 무너뜨릴 문제인가. 새와가 30분 안에 들통 날 계략들만 꾸미지 않았더라도 동해와 새와는 각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가 속한 곳은 KBS 일일 드라마의 세계다. 개연성과 감정선 대신 우연으로 움직이고 혈연으로 지탱되는 이 세계에서도 동해는 특히 문은아 작가의 전작 의 주인공 새벽(윤아)의 남성 버전에 가깝다. 보호자가 없거나 없는 것에 가까운 환경에서 천애고아처럼 자랐지만 타고난 능력과 긍정적인 성품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들에게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미궁과 가시밭길을 통과해 결승점에 다가선 주인공에게는 하늘의 선물도 주어진다. 새벽에게 미국에서 온 부자 친엄마가 나타났던 것처럼 동해는 새와의 남편 도진과 시어머니 혜숙(정애리)이 일하는 호텔의 소유주인 외조부모를 만난다.

결국 부모의 재력으로 구원받는 캔디들
[최지은의 10 Voice] 돈이 동해를 구원하리라
‘알고 보니 왕의 자손’이었던 주몽과 덕만처럼, 새벽과 동해는 ‘알고 보니 있는 집 자식’이라는 면에서 완벽한 주인공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물론 주인공은 부자가 되어도 선하고 소탈하지만 동해를 사윗감으로 못미더워하던 봉이(오지은)의 엄마 선옥(이보희)이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꾸고 동해의 외할머니 말선(정영숙)이 동해에게 고급 승용차를 선물하는 것처럼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한다. 새와가 동해를 음해하던 극 초반 동해의 귀인이었던 혜숙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동해의 적으로 돌변하지만 동해의 뒤에는 더 큰 힘, 더 큰 부를 지닌 귀인 외할아버지가 있다. 이는 언제부터인가 한국 드라마를 지배하는, 개인의 행복이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만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혜숙이 동해와의 문제를 제외하면 평생을 걸고 호텔에서 성실히 일해 온 사장임에도 말선이 딸에게 호텔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것은 기업을 가족 집단의 사유재산으로 여기며 세습하는 풍토와도 닮아 있다. 그래서 돈은 핏줄을 타고 흐른다. 남편과 사별 후 미용실을 하는 어머니 아래서 자란 새와는 인생역전을 위해 도진과 결혼했지만 ‘부잣집 며느리’라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악녀가 되었고, 어제(4월 13일) 결국 이혼 소송을 위해 법정을 찾았다. AGB 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기준 35.5%의 시청자들이 이를 지켜보았다. 꼬일 때 까지 꼬이는 드라마의 내용이나 그 드라마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현실이나,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글. 최지은 five@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