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우 감독│“한 판 뜨고 싶을 때 말리는 세상, 그래서 <맞짱>을 만들었다”

tvN <맞짱>은 시청률 2~3%를 넘나드는 ‘대박’ 케이블 드라마가 아니다. 하지만 투박하지만 날 것의 냄새가 나는 <맞짱>의 액션은 수는 적지만 열광적인 팬을 만들어냈다. 특히 다른 것도 아닌 싸움을 통해서 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원초적 낭만을 자극한다. 너무나 솔직하게 남성 시청자를 타깃으로 잡은 이 드라마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것이 영화 <신라의 달밤>과 <주유소 습격사건>의 시나리오를 쓴 박정우 감독이라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이 두 영화에서 남자들의 패싸움을 신명나는 한 판 축제처럼 묘사했던 그에게 남자들의 싸움이라는 것, 그리고 그걸 주제로 한 드라마 <맞짱>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들어보았다.

“<맞짱>은 정통 액션, 야리꾸리한 거 다 빠진 그런 것”

충무로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다가 드라마, 그것도 케이블 드라마로 돌아왔다.
박정우:
막연히 드라마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영화 시스템은 표현하는 게 100분이면 100분 안에 우겨넣어야 하니까. 압축시켜서. 대사도 마음껏 못 내지르고, 요약하고, 표현하는 것도 비약과 생략이 많고. 그래서 드라마를 언젠가 해보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몇 년 전에 <PD수첩>에서 한국형 파이트 클럽을 취재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인터뷰하는 친구 하나가 ‘싸움을 하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는 걸 보고 (이야기 거리로)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영화 느낌은 아니었다. 어떤 한 놈이 싸우며 발전하는 이야기를 하려면 영화로는 분량이 부족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드라마가 낫겠다고만 생각했다. 공중파로 할지, 케이블로 할지 생각하진 않았고. 그냥 시나리오 작업만 했는데 tvN 쪽에서 이런 걸 원했다. 보통 케이블 드라마가 그런 거 있지 않나. 자극적이고, 섹시 코드도 있어야 하고, 아니면 코미디로 가든가. 그런데 정통 액션, 야리꾸리한 거 다 빠진 그런 걸 원했고 나 역시 그런 게 반가웠다. 그래서 <맞짱>을 하게 된 거지.

그런 싸움 동호회 같은 걸 보며 정서적 공감을 느끼는 편인가.
박정우:
남자들은 다 로망이 있을 거다. 왜 남자들이 옆에서 친구들이 싸우는 거 보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힘들어가고 그런 거 있지 않나. 사실 고등학생 때 이소룡 영화 보고 자세 안 잡아본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있다.

혹시 액션 장면에 대한 로망도 있나. 시나리오를 썼던 영화 <신라의 달밤>이나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는 남자들이 우르르 패싸움 하는 신이 많다. 원래 ‘다찌’ 신을 좋아하는 편인가.
박정우:
원래 예전부터 영화에 나온 ‘다찌’를 안 좋아했다. 정교하게 합을 짠 ‘다찌’를. 사실이 아니거든. <신라의 달밤>도 그렇고 <주유소 습격사건>도 그렇고 개싸움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나리오에도 개싸움이라고 쓰고, 감독에게도 뒤엉키는 개싸움으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 스스로 그런 스타일이었는데 이 드라마는 내용상 본격적으로 실제 싸움을 해야 하니까 여태까지 사람들이 안 해본 걸 해보는 게 있었다. 실제 길거리에서 싸우는 듯한 그런 맛이 나게.

그런 만큼 리얼 액션이라는 게 화제가 되는 것 같다. 그런 리얼 액션을 증명하기 위한 장치 같은 건 없나. 영화 <옹박> 같은 경우 같은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찍고 연속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리얼 액션을 증명했다고 하는데.
박정우:
대역을 쓸 수가 없으면 싸움 수준에 한계가 있지 않나. 맞는 거, 이런 건 준비된 운동 해온 사람들에게 가능한 건데 배우들은 그게 안 되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드라마 내용상으로도 싸우는 기술의 수준을 일반인 수준으로 낮춰놓은 다음에 편집의 힘으로 막 조절을 하고, 정말로 맞거나 때리는 것들은 카메라 두어 대 뻗쳐놓고 잡는 거지. 건이(유건) 같은 경우는 실제로 하다보면 대역을 써서 두들겨 맞고 그래야 하는데 맞는 걸 커트해서 다른 사람 쓰면 대역인 거 뽀록나지 않나. 그래서 좀 맞아주라고 부탁해서 진짜로 맞고, 누워서 잠깐 쉬웠다가 다시 하고.

“사실 유건이 보이는 것처럼 마냥 순하고 그렇지 않다”

무술감독이나 액션 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겠다.
박정우:
액션 팀이 수년 동안 그렇게 작업해온 습관들이 몸에 배서 원하는 것이 쉽게 안 나왔다. 간단한 일례로 맞는 장면이 있으면 우리 팀은 맞으면서 뒤로 확 넘어간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 이 드라마를 기획하며 격투 자료를 엄청 보지 않았겠나. 실제로 맞을 때 맞는 사람은 앞으로 몸이 움직인다. 그러다가 그냥 주저앉는다. 원래는 뒤로 날아가서 다시 다음 액션을 취했는데 그걸 버리니 이제 합이 잘 안 짜진다. 처음에는 되게 힘들어했다. 그쪽은 그게 몸에 배었으니까. 저쪽이 휘두르면 몸이 획 돌고 그래서 그거 아니다, 날 냄새 안 난다, 이런 거 하지 말고 그냥 엉켜라, 주문한다. 그래서 싸우다보면 진짜 두들겨 맞고, 자기도 모르게 욕 나오고. 우리 드라마 끝나면 대접 받는 건 무술팀 밖에 없을 거다. 적어도 우리 드라마는 ‘저건 어떻게 찍었지? 진짜 때렸나?’ 싶으니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액션을 선호하겠지. 그냥 화려하게 합을 짠 액션을 보면 희열이 없으니까.

실제로 쌈닭 회원들이 싸우는 신을 보면 확실히 주먹 쓰는 것도 정교한 복싱과 거리가 먼, 막 휘두르는 식이다. 하지만 강건의 형인 강진(이종수)이 뛰는 프로 격투기 무대에서는 보여주는 액션이 달라야 했을 거 같다.
박정우:
이게 현실적인 문제랑 드라마적인 문제랑 섞여서 결정이 나는 건데 모든 인물들이 다 그렇게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주인공 건이에게 콘셉트를 맞춰서 애초에 목표했던 리얼 격투기로 하고, 형이나 최대리(백도빈)는 조금은 합을 맞추는 식으로 가려고 했다. 더 현실적인 문제를 보자면 프로 격투가인 강진 역은 강건이나 최대리처럼 몇 개월 수련해서 끌어올리는 수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강진을 운동 잘하는 신인으로 가기에는 너무 비중 있는 역할이다. 그래서 강진은 제법 무게를 잡는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 하되 액션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갔다.

<겟 썸> 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조각 같은 몸매에 뛰어난 격투 능력을 보여준다.
박정우:
그런 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뭐냐 하면, 그 전에 충분히 시간을 두고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데 일단 드라마가 들어가려면 어떤 배우가 캐스팅 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면 바쁜 배우들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바쁜 배우들이 그렇게 공을 들여 하긴 어렵다. 영화는 그래도 조금은 그렇게 할 수 있겠지. 영화는 어차피 준비 기간이 기니까. 그런데 내가 영화 <바람의 전설>을 연출할 때 춤을 못 추는 배우들을 가르쳐서 춤을 추게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는 어려웠다. 관객들은 냉정하지 않나. 우리가 뭐 연습한 거 치고는 잘했다고 해도 그렇게 봐주지 않으니까. 나는 언젠가 이런 걸 다시 한다고 하면 딱 ‘몰빵’해서 영화 <300>처럼 몸 제대로 만들고 액션 있으면 고난도 훈련을 빡세게 해서 그걸 그냥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는 걸 해보고 싶다.

액션에서는 미흡할지 몰라도 배우 유건은 드라마 속 강건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 같다. 선한 눈망울 같은 것이.
박정우:
이 드라마는 원래 강건보다 나이가 좀 더 있는 직장인, 지금으로 치면 최대리 정도 되는 주인공을 생각했었다. 사실 젊은 애들은 평범하게 살다가 센 사람이 된다고 할 때 감흥의 파장이 작지 않나. 실제로 그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찌들대로 찌들고 적응할 대로 적응해서 이게 인생인가 싶은 사람이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놔 세지는 모습은 파장이 클 것이다. 영화 <반칙왕>처럼. 원래는 형이 주인공이고 동생이 프로격투기 선수인 걸 생각했었다. 그랬더니 캐스팅으로 유건이 들어와서 바꿔서 갔다. 사실 유건이 딱 맞는 게 얘가 그렇게 마냥 순하고 그런 애가 아니다. 걔도 나름대로 보통 사람들이 겪어본 거 다 겪어본 애였고, 처음 프로필 사진 봤을 때 받은 느낌도 지금 가지고 있는 (순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어쨌든 시작이 그렇게 풀려서 계속 어리바리하고 순한 애로 가는데 나는 얘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가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거 같다. 다행히 우리 드라마는 네 최근 이미지와 비슷한 걸로 시작하니 그렇게 시작해서 원래 네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이미지를 찾는 걸로 가자.’ 그러면서 4부 정도 기준으로 잡고, 앞과 뒤의 말투며 행동이며 표정을 정확히 구분해서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다른 느낌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용감한 놈이면 영화 안 하고 현실적으로 싸우겠는데”

싸움 기술을 하나하나 장착하는 것과 그러면서 주인공의 성격이 변하는 것이 만화책 <홀리랜드>를 연상시킨다.
박정우:
드라마 들어가기 직전에 누가 <홀리랜드>를 권해줘서 봤다. 내가 그거 보고 받아들인 게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싸움에 대한 디테일한 상식을 가르쳐주는 거다. 그것도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될 것 같았다. 주먹은 어떻게 쥐고, 발차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식으로. 상대에 따라서도 상대 특기가 유도면 잡히지 말아야 하고 피하려면 발차기로 거리를 둬야하는 그런 걸 가르쳐주는 식이다. 그러면서 발전하는 거다. 처음에는 주먹, 발차기 식으로 타격을 보강하다가 그 다음에는 최무배가 연기하는 고수에게 배워 그라운드까지 하고.

최무배뿐 아니라 데니스 강도 출연했다. ‘스피릿 MC’ 같은 단체의 협조를 받은 건가.
박정우:
그랬다. 어차피 격투기 선수도 나오고 싸움하는데 너무 우리끼리만 하면 사실감이 떨어지니까. 결과적으로 선수들 출연이 드라마 홍보 차원에서도 좋았다.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런 걸 은근히 동경한다. 데니스 강 같은 경우 연기를 되게 하고 싶어 한다고 하더라. 아침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찍었는데도 좋아하더라고. 최무배는 아예 이쪽으로 오려는지 연기 선생님도 있다고 하고. 그런데도 연기는 별로… 하지만 덩치가 하도 커서 싫은 소리도 못 하겠고.(웃음)

여러 가지 면에서 예전과 다른 시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과거 작품과의 연속선상에서 지켜오는 정서 같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박정우:
내 생각에 사회생활을 하는 남자 대부분은 자기가 애초에 꿈꿨던 것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그러려니 하며 산다. 그 중 어떤 사람들은 약간의 로망은 있고 꿈을 꾸고, 그나마도 잊고 사는 사람도 많고. 나야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편이지만 사실 강한 남자에 대한 꿈같은 것도 있었다. 나도 로망이 있으니까 작품하면서 그런 걸 계속 건드리게 된다. <맞짱>뿐 아니라 <쏜다>, <주유소 습격사건>처럼. 실제로는 일하다가 박차고 나가서 어디 강원도 7번 국도에서 낚시 하고, 혼자 차 몰고 나가서 여행 가고, 그게 안 되지 않나. 한 판 뜨고 싶을 때도 기다리는 가족들 생각하게 되고. 어차피 하라는 것보다 하지 말라는 게 더 많은 세상이고, 영화나 드라마는 현실적으로 못하는 걸 보는 대리만족시켜주는 재미가 있다. 보면 내가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다만 용감한 놈이면 영화 안 하고 현실적으로 싸우겠는데 그게 아니니까 치사하게 옆으로 빠져서 얘기하는 거다.(웃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