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써야 한다”

1980년대 대중이 생각하는 영화평론가의 이미지는 영화평론가 故 정영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KBS 의 예고에 출연해 방영할 영화에 대해 깔끔한 평을 곁들여 소개했다. 하지만 더 이상 故 정영일처럼 모든 대중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평론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론은 TV에서 지면으로, 다시 인터넷으로 넘어갔다. 그 사이 평론은 소수의 전문가에서 인터넷의 블로거까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됐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2011년 현재 영화 평론가의 한 방향을 보여준다. 그는 여전히 영화잡지 에서 원고지 수십 매에 달하는 영화 비평을 하지만, 동시에 SBS 와 KBS라디오 에서 위트와 평론을 적절히 섞으며 영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MBC라디오 를 단독 진행하며 문화 전반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아마도 2000년대를 보내는 사람에게 영화평론가의 모습은 이동진의 이미지로 기억되지 않을까. 평론가, 더 나아가 평론의 의미조차 모호해지는 지금 이동진에게 영화 평론, 그리고 영화평론가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경청했다.

요즘 방송출연이 많아졌다. 건강관리에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웃음)
이동진: 출연이 많아지면서 건강에 더 신경 못 쓰고 있다. 나는 밥 같은 건 하루 한 끼 먹어도 상관없는데 잠은 부족하면 혼수상태가 된다. 방송이 많아지니까 일단 잠부터 보충하면서 운동도 안하게 된다. 왠지 자기 합리화 같은데 (웃음) 작년 가을까지 열심히 운동하다 안하게 된 게 방송 일이 많아진 시점하고 겹치는 것 같다.

네이버의 에서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하며 “깊게 파기 위해서 넓게 판다”고 했는데, 요즘 활동이 그런 것 같다. 같은 단독진행 프로그램부터 TV나 출연까지 방송활동이 많아지고 방식도 다양해졌다.
이동진: 일단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인이다. 다니던 회사를 관둔지 4년이 넘었는데 그 동안 나에게 직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네이버의 ‘이동진의 영화풍경’을 진행하는 것이었고, 나머지는 부수적이었다. 그런데 계약이 끝나면서 다른 일을 해야 했고, 운 좋게도 내 입장에서 괜찮은 제안들이 와서 하다 보니까 방송이 늘어났다. 지금은 TV 4개와 라디오 2개를 한다. 활동의 중심이 방송이 됐다. 한시적인 건지 앞으로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신경을 많이 쓴다”
이동진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써야 한다”
에서는 진행자다. 게스트와의 인터뷰 시간도 지면용 인터뷰와는 달리 몇 십분에 불과하이다. 진행이나 인터뷰의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할 것 같다.
이동진: 매체가 활자냐 방송이냐에 따라 형식의 질과 양이 모두 달라진다. 어떤 사람과 열 시간을 얘기할 수 있느냐 30분을 얘기할 수 있느냐에 따라 인터뷰 내용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 특히 방송은 활자로 옮겨 정교하게 다듬을 수 없고, 말 자체가 그대로 나가기 때문에 마음가짐부터 모든 게 다르다.

그래서 전달 내용이 지면에 기고하는 비평과 달라진다. 에서 영화 를 소개하는데 주인공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설명하면서 그 사이에 한두 문장으로 평론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말하더라.
이동진: 에 대해 예를 들면, 내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에 원고지 40매 정도의 평을 쓴 것이다. 긴 평론을 쓰면 시간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데, 그 영화는 워낙 좋아서 제의가 왔을 때 쓸 때 바로 썼다. 그만큼 집중적으로 파고들 수 있었고. 그런데 방송에서 그런 걸 할 수는 없다. 나 스스로 프로그램이나 지면의 성격에 따라 교통정리를 한다. 예를 들어 처럼 가장 대중적인 영화 프로그램에서는 를 다루지 않는다. 은 내가 원고를 써서 말할 수 있을 거니까 다루는데 그래도 10분쯤 되는 분량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은 를 소개하기도 했지만 직업적이라기보다는 유희열과 수다 떤다는 느낌으로 하고, 나 자신에게도 활력소가 된다. 유희열이라는 사람 자체가 워낙 스마트하고 재밌는 사람이니까.

에서 ‘시네마틱한 순간’이라는 표현을 쓰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그게 당신이 생각한 영화의 핵심일 텐데, 방송에서는 줄거리를 이야기한 다음에 그 말을 마지막으로 꺼내더라. 불특정 다수의 청취자에게 평론을 편하게 전달하면서도 핵심을 말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 것 같았다.
이동진: 아무래도 대중은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도 지식도 다 다르니까. 예를 들어 스포일러만 해도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방송에서는 미장센이라는 표현도 안 쓴다. 매체마다 말과 글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블로그에 올릴 때는 굉장히 짧게 평을 쓴다. 블로그도 매체의 특성이나 당신의 평이 가지는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쓰는 건가.
이동진: 예를 들면 블로그에는 어느 타이밍에 글을 써야할지도 염두에 둔다. 그리고 영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관객들은 개봉 첫 주에 보니까 블로그에 첫 느낌을 쓴다. 요즘에는 영화가 풀리는 과정 자체가 고도로 짜여있다. 포털 사이트에 나오는 영화 광고는 기자시사 전 날부터 시작한다. 광고로 관심을 모으고, 그걸 기자 시사회를 하고나면 쏟아지는 기사로 이어가는 거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런 흐름을 따라 영화에 관심이 쏠릴 때 필요한 평을 제공하는 게 좋지 않겠나. 그래서 블로그에 첫 느낌을 올릴 때는 영화가 깊네, 얕네 또는 재밌네 이런 느낌 정도로만 정리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지면에 글을 쓰고. 영화에 대해 말하는 다양한 방식이다.

블로그에 쓰는 평은 간단하지만 퍼지는 속도는 가장 빠르다. 당신의 평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동진: 그래서 사람들이 블로그에 글을 막 쓴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막 쓰는 게 아니다.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아도 문장 하나, 단어 하나 굉장히 조심한다. 나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 말을 과감하게 하거나 내 마음 속에 느껴지는 독설을 그대로 내뿜거나 하지 않는다. 솔직하긴 하지만 표현 같은 걸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당신의 책 에서 김혜리 기자와 의 ‘메신저 토크’를 하면서 메신저를 처음 깔았다는 부분이 있는데, 어느새 블로그부터 방송까지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게 됐다.
이동진: 나는 생계형 유저다. (웃음) 내가 ‘메신저 토크’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메신저를 안 했을 거다. 회사를 나오지 않았다면 블로그도 안했을 거고. 지금도 트위터는 할 생각이 없다. 다만 그런 걸 해야 하는 상황, 하면 좋겠다는 상황이 오면 당일치기로 배워서 한다.

“사실 난 시대 변화에 둔감한 사람”
이동진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써야 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마음먹으면 굉장히 빨리 적응하는 것 같다.
이동진: 그랬다면 정말 다행인 거고. 옛날에 다른 매체에서 나를 인터뷰 했을 때 이동진닷컴을 한다는 이유로 나를 1인 미디어의 선봉으로 몰아가려고 했었다. (웃음) 그래서 내가 그런 비유를 했었다. 어떤 배가 해협을 건너는데 갑자기 풍랑이 심해져서 아이가 빠졌다. 그 때 웬 할아버지가 뛰어들어서 폭풍우를 헤치고 아이를 구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칭송하니까 할아버지가 그러는 거다. “누가 나 밀었어?” (웃음) 내 상황은 그런 거다. 내가 만약 아이를 구했다면 누가 내 등을 밀어서 그런 거다. 사실 난 시대 변화에 둔감한 사람이다. 하지만 일에 대해 받아들여야할 부분이 있다면 받아들이게 된다.

당신에 대한 요구가 달라지면서 미디어에 비치는 모습도 전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나 에서 편하게 농담을 하는 모습은 이전보다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동진: 나 원래 웃긴 사람이다. (웃음) 나는 아직 방송에 대해 아마추어라 누구와 하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하는 김태훈과 유희열, 전에 함께 했던 성시경은 모두 대화하기 좋고 인간적으로 매력 있는 사람이다. 세 사람은 모두 리액션이 좋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딴 데 가서 하면 썰렁하다 싶은 것도 그 사람들하고 하면 심리적인 부담이 줄어들고, 그래서 계속 던지다 보면 가끔 안타도 나온다. (웃음)

방송은 평론의 역할과 재미를 동시에 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 전달하게 되는 내용도 기존 평론과는 달라진다. 그래도 최우선적으로 전달하려는 건 뭔가.
이동진: 에서 나와 김태훈 씨가 하는 코너는 카메라만 있고 PD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유롭게 말하는데,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비평하는 건 30분 얘기한다고 치면 1분 들어간다. 그런데 농담은 딱 두 번 해도 한 번은 들어간다. 가장 오락적인 게 나가는 거고, 그걸 사람들도 가장 많이 볼 거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농담 안하고 평론만 해야지” 하면 더는 그 코너를 진행할 수 없을 거다. 먹고 살기 위해 그런 걸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방식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래서 의 모든 평은 마지막 몇 초의 멘트에 압축적으로 들어있는 것 같다. 글이든 멘트든 글을 길게 쓰는 것보다 더 고민될 것 같다.
이동진: 사람들이 듣고 싶은 방식으로 말할 것이냐, 아니면 사람들이 듣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것인가의 괴리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 내가 어떤 영화에 대해 공들여 지면에 쓴 글이 있었는데, 그건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 진짜 좋습니다”라고 블로그에 쓰면 댓글이 백 개 달린다. 그렇다고 진지한 평론을 안 쓰면 안 된다. 그 글에 반응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런 평론을 안 본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뿐만 아니라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도 고민 될 것 같다. 논쟁적이고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영화와 대중적인 영화 사이에 어떤 영화를 선택하느냐부터가 평론가의 입장을 정하게 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이동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영화 평론가의 역할에 대해서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2월 17일에 개봉하는 영화만 16편인데, 아무리 영화 평론가라도 그 중 반도 못 볼 거다. 그렇다면 거기서 어떤 영화를 보느냐의 문제가 생기는데, 같은 영화 평론가라도 국제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가장 새롭고 전위적인 것을 발굴해서 소개하는 게 덕목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너네 이런 사람 모르지’하면서 누군가를 소개하는 역할은 덜 하는 거다.

대중과 함께 가는 평론이 당신의 입장이라는 건가.
이동진: 사람들과 같이 얘기하고 싶다는 게 내 지향점이다. 사람들하고 영화를 보면서 그야말로 반 발짝 정도 앞서 가며 말하는 거다. 마주보고 얘기하기 보다는 같이 걸으면서 옆 사람하고 얘기한다는 느낌. 그래서 지금 개봉해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영화들을 주로 다룬다. 단지 박스오피스 순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어쨌든 개봉해서 지금 볼 수 있는 영화를 선정한다. 그래서 대중이 평론가가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게 거짓말을 하는지, 허세를 부리는 건지 판가름 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같이 걸어 나가는 사람으로서 좀 더 전문적인 시각으로 얘기하는 동반자가 되고 싶다.

그 반 발짝이 참 어려운 것 아닌가. 대중은 모두가 말하는 걸 이야기하는 평론도 읽지 않고, 아주 다른 것도 읽지 않는 것 같다. 그 사이에 들어가는 무언가를 고르는 건데, 거기서부터 각자의 평론의 출발점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다.
이동진: 예를 들어 최근 주류 한국영화들이 안 좋았다. 그런데 그 영화들을 사람들이 궁금해 하긴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영화들이 안 좋았다고 계속 말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이 나왔는데 좋은 작품이어서 올해 나온 한국영화 중 제일 좋았다고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에 대한 평을 내가 최근 한국 영화가 안 좋았다고 말했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게 된다. 그러지 않고 내가 계속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만 거론하며 좋다고 했다면 사람들은 그들만의 리그로 생각하지, 자신들과 관계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내가 에 대해 평해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더 보게 된다면 그건 그 평론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전까지 다른 영화들에 대해 언급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를 만들어 보고 싶다”
이동진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써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중이 무엇을 다루는 평론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하고 쓰는 건 평론가에게 중요한 문제일 것 같다. 뒤집어서 말하면 평론가가 누구를 대중으로 생각하고 쓰냐의 문제인데, 당신에게 대중은 어떤 존재인가.
이동진: 너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면, 우선 영화를 거의 전문가 수준으로 보는 극소수의 엘리트적인 영화팬은 내 평론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만의 리스트가 있고, 영화를 일주일에 몇 편씩 보는 사람들은 알아서 자신의 영화를 보고 평하면 된다. 반대로 영화를 거의 안 보는 사람들, 가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평론도 읽지 않는다. 나는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평론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평론은 이슈나 매체에 전파되는 방식에 따라 당신이 생각하는 대중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전달된다. 에 대한 논란은 과거라면 평론가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평론에 대한 대중의 관점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이동진: 대중이라는 말 자체가 한두 요소로 규정할 수 없는 수많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집합 아닌가. 똑같은 대중이라도 한주에 영화를 한 편 이상 보는 사람과 일 년에 한두 편 보는 사람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평론을 하면서 주의하는 것 중 하나가 팬덤이다. 사람이 어떤 특정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맹목적으로 편 들 수밖에 없는 마음이 생기고, 팬덤이 크면 그런 움직임은 더 커진다. 가 가장 극단적인 사례였다고 보고. 물론 가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쓰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 팬덤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바꾸거나 하면 안 된다. 그런 것에 맞서야 한다.

이런 대중의 문제와 관련해서 늘 거론되는 게 평론의 위기다. 처럼 영화에 관해 깊게 쓸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평론가가 깊이를 갖출 수 있는 기반이 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평론과 방송 양쪽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동진: 안타깝다. 지금도 영화 평론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다섯 명이라도 될까 모르겠다. 다들 소속이 있거나 영화 프로그래머를 하거나 하면서 먹고 살지 않나. 그렇다고 잘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웃음) 다만 나는 내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없어지면 무대를 만들 만큼 개척적이진 않다. 지금 같은 상황조차도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오면 “그래도 나는 고독한 길을 걸으리”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지만, 상황이 안 되면 다른 일을 할 거 같다. 먹고 사는 건 중요한 일이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내 아이가 자라서 만약 평론가를 하겠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말하게 될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면 평론가가 가져야할 직업적인 덕목은 뭐라고 생각하나.
이동진: 우선 문장력이다. 미문을 쓰는 게 아니라 생각을 얼마나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느냐는 거다. 자신이 다루는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은 굉장히 게으른 직업인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식견이 중요하다. 어떤 영화가 올해 최고라고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작품을 골랐다면 곤란하다. 취향이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식견도 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정직성이다. 자신의 감상과 다르게 대세에 따르거나 따르지 않거나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 평론가가 식견이 없어서 영화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그냥 도태되면 된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속이는 사람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어제 만나 술 한 잔 했던 감독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니다.

어차피 평론은 많은 경우 호평을 하면 왜 옹호하냐고 욕먹고, 비판을 하면 왜 비난하냐면서 욕먹는 일 아닌가. (웃음)
이동진: 백 명이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면 반드시 그 과정에서 다섯 명, 열 명은 싫어하게 된다. 그랬을 때 내가 어떤 영향력이 있다면 그게 커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팬이 10만 명 생기고 안티가 1만 명 생기는 게 팬이 1000명 있고 안티가 없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게 싫다. 누군가 나를 굉장히 미워하는 게 싫고,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세상 모든 이들의 마음을 사려고 하면 그나마 사람들의 마음도 못 산다. 그래서 결국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앞으로 평론가로서 해보고 싶은 일은 뭔가.
이동진: 영화제다. 기존 영화제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상영하고 싶다. 로저 에버트를 안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자기 영화제를 하는 건 부럽더라. (웃음) 매년 할 필요도 없고, 영화 끝나고 관객들과 대화도 하고 그런 영화제를 하고 싶다.

이동진 영화제? (웃음)
이동진: 그러면 낯부끄러운 일이고 (웃음)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하는 영화제면 좋겠다. 항상 평론할 때 어떤 공동체를 상상한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의 공동체. 그런 상상이 없으면 활동을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굉장히 힘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이 적절히 분위기를 맞추고 믿음을 주게 되면 힘을 실어주는 선한 기능을 가진다. 그런 사람들의 리액션이 굉장히 큰 힘이 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그 일로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이 일은 돈도 못 벌지 않나. (웃음) 그런 기쁨마저 없으면 정말 힘들 것 같다.

글. 강명석 two@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