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룡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인터뷰)

류승룡3
[텐아시아=정시우 기자]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류승룡은 허리를 보호해 줄 쿠션을 찾았다. ‘7번방의 선물’ 당시, 허리보호대를 차고 인터뷰에 임하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비가 오면 어김없이 삐걱거리는 수신호를 알려오는 그의 신체는, 류승룡이라는 배우가 걸어 온 길을 추측케 하는 일종의 암호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추측이 맞다는 걸 이번에 확신했다. 영화 ‘손님’에서 류승룡이 맡은 인물은 피리 부는 절름발이 악사 우룡. 다리를 저는 연기를 하는 동안 혹사당했을 그의 골반과 허리를 상상하니, 주인 잘못 만나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자신의 몸을 사리려 연기와 타협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Q. 카페에 앉아 릴레이 인터뷰 중이다. 기자들이 오고 가니까, 손님 맞는 기분도 들겠다.
류승룡: 맞다. 인터뷰 때는 항상 그런 기분이다. 나는 호스트고 기자들은 게스트라 생각한다. 손님도 여러 종류가 있을 텐데 기자들은 그 중에서도 VIP다. 관객들은 VVIP고.

Q. 날 좋은 주말이라고 가정해 보자. 어떤 손님을 초대하고 싶은가.
류승룡: 일단 가족들은 손님이 아니고. 음…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말하면 진짜 초대해야 할 것 같은데.(웃음)

Q. 하하. ‘손님’의 우룡은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다.
류승룡: 초대하지 않은 사람이지. 불청객이자 이방인이다.

Q. ‘손님’ 시나리오를 보고 받은 첫인상은 어땠나.
류승룡: 우룡이 찾은 마을은 비밀과 전사가 가득하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나, 거짓 평화지. 다들 쉬쉬하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무엇. 나는 그게 ‘쥐’라고 생각했다. 드러내면 혐오스럽지만 숨기고 살면 또 대세에 지장이 없는. 그러니까 쥐는 사회악, 불신과 거짓 같은 것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우룡을 통해 드러나면서 결국 파국으로 가는 거지. 내가 해석한 ‘손님’은 그렇다.

Q 언론시사회 때 ‘손님’을 처음 본 건가. 상영 후 약간 멍하게 있던데.
류승룡: CG까지 완벽하게 들어 간 완성본은 그날 처음 봤다. 비주얼 쇼크가 조금 있었다.(웃음) 그리고 영화의 여운을 느끼기도 전에 극장 불이 켜지고, 음악도 끊겨서 내심 아쉬웠다. 시사회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조금은 배려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류승룡1

Q. ‘손님’은 독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모티프를 얻은 판타지 호러다. 사실, 동화에 기반 한 공포물들이 꽤 있다. 앞서 나온 ‘장화홍련’(03, 김지운) ‘분홍신’(05, 김용균), ‘신데렐라’(06, 봉만대) ‘헨젤과 그레텔’(07, 임필성) 등과 비교했을 때, ‘손님’은 어땠으면 했나.
류승룡: 독일 등 유럽에 가서도 이 영화가 환영받았으면 했다. ‘아시아에서 이렇게도 해석될 수 있구나’ 호감과 공감을 느꼈으면 한 거다. 그리고 이 영화는 10년 후에 나와도 충분히 생명력이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기술적으로야 물론 뒤처지겠지. 하지만 품고 있는 메시지가 세월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품고 있지 않나. 가령 마을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집단 이기심이나 집단 광기. 이런 것들은 세계 역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거니까.

Q. 유룡은 사투리를 쓴다. 다리를 저는 설정도 있고. 새 인물을 만나면 해당 캐릭터에 대한 상상을 할 게다. 어디에서부터 착수하나?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작은 버릇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류승룡: ‘상황’이다. 다리를 저는 설정이야, 안 절어도 그 사람 절어도 그 사람이다. 직업 역시 그걸 해도 그 사람 안 해도 그 사람이고.

Q. 음. 직업이 그 사람의 많은 걸 바꾸기도 하지 않나.
류승룡: 그럴 수는 있지. 하지만 기자님이 셰프를 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Q.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활반경부터 만나는 사람, 관심사 등 모든 게 달라질 텐데.
류승룡: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우룡의 경우에도 억울한 상황이 없었으면 과연 변했을까. 가령 우룡이 악사가 아니라 선생님이었다고 치자. 다리도 안 절어. 그럼 마을 사람들 모아놓고 음악 연주를 해 주는 대신 “공부 좀 더 해야겠슈~” 장난치면서 수업을 해 주겠지. 음악연주를 하지 않고, 다리를 절지 않는다고 해서 우룡이 우룡이 아닌 건 아니다. 우룡이 진짜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건, 자신을 둘러 싼 상황이 변했을 때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우룡을 변하게 했다고 본다.

Q. 예전 한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만났을 때 ‘류승룡화’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류승룡: 캐릭터를 만났을 때 ‘나라면,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내가 그 위치에 있다면’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배우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는 그 사람다울 때 나오니까. 예외도 있다. ‘시크릿’의 재칼이나 ‘7번방의 선물’의 용구처럼 내 안에서 그런 모습을 찾기 힘들 때.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접근하기 쉽지 않을 때. 그럴 때는 나를 완전히 비워내고 바꿔서 표현하는 편이다.
류승룡2

Q. 김광태 감독은 ‘손님’이 약속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 조금 다른 의미로, 배우의 삶은 약속의 연속일 텐데.
류승룡: 기본이다. 모든 게 약속으로부터 시작된다. 계약부터해서 촬영장에 모이는 거, 대사 하나 내 뱉는 거, 액션 하는 거…모든 게 약속이다. 액션을 하다가 다치는 대다수는 약속을 안 지킬 때 발생한다. 정말이지 모든 게 약속의 향연인 것 같다. 그런데, 인생 자체가 그렇지 않나 싶다.

Q. 그 많은 약속들을 어떻게 대하나.
류승룡: 어떤 약속이든 지키려고 노력하고, 지킬 약속들만 하는 편이다.(웃음) 아이들과의 약속에서도 그렇다. 약속은 신중해야 한다.

Q. ‘최종병기 활’에서 만주어를 구사했다. ‘명량’에서는 일본어를 완벽 소화했고. 이번에는 파리를 직접 불러 화제가 됐다. 관련 기사들이 상당히 많이 나오던데.
류승룡: 그런 것들이 기사 헤드라인으로 나오는 게 사실 좀 민망하다. 피리 부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우리나라는 수치, 순위, 상대평가, 몇 킬로 뺐다, 이런 것들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그냥 극중 만주 사람이니까 만주어하고, 일본 사람이니까 일본어 하고, 피리 부는 사람이니까 피리 불고, 액션 영화니까 액션을 한 것뿐이다. 그래서 그런 기사들을 나오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

Q. 그럴 필요까지야. 사람들이 놀라는 건 단순히 만주어나 일본어 연기를 했다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했다는 데 있다. 그만큼 큰 노력이 있었겠지. 그건 분명 높이 평가받을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류승룡: 하하. 내가 연극에서 출발해서 그런 걸까. 그냥 내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연극의 경우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관객들 앞에 노출돼 서 있어야 한다. 대역이 없다. 편집도 없다. 그래서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 그때 몸에 밴 습관들이 영화를 찍을 때도 똑같이 발현되는 것 같다.

Q. 서울예대(이전 ‘서울예전’) 연극과-극단-난타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연기수업을 했을 텐데, 어떤 훈련이 가장 유용하게 작용하는 것 같나.
류승룡: 내가 한양대를 떨어지고 서울예전을 갔다. 서울예전이 2년제다. 그래서 ‘한양대에 붙었다고 생각하고 2년 동안 더 열심히 부지런히 많이 배우자’ 마음먹었다. 입학 후 발레 한국무용 아크로바틱 등 다양한 것들을 배우려고 했고, 일주일에 공연 두 개씩 보기 등 커리큘럼을 스스로 짰다. 그 시간들이 나에게 굉장히 유용했었던 것 같다.
movie_image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예전 생활을 범상치 않게 한 걸로 안다. 기인이었다고.
류승룡: 우리 학교에 놀러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학생들 구경하려고. 특이한 사람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다. 자기 안에 불은 뜨거운데 그걸 풀 곳은 없고, 세상은 또 알아주지 않고.(웃음) 그게 객기로 펼쳐졌던 거다. 괜히 머리 기르고, 몸에 두루마기 걸치고 다니고. “몇 시야?” 물어보면 자명종 꺼내서 딱 보여주고. 하하하. 지금 생각하면 귀엽다. 그런데 또 그 나이에 해 보지, 언제 해 보겠나.

Q. ‘번데기 술안주’ 추억을 듣고 배꼽 잡게 웃은 기억이 있다.
류승룡: 하하하. 새우깡 한 봉지로 술 마시던 시절이었다. (과거 후일담: 한번은 후배들과 술을 마셨는데, 네 명이서 고작 번데기 하나를 시켰다. 그땐 다들 돈이 없었거든. 당시 도루코 면도칼도 지니고 다녔는데, 한 잔 마시고 번데기를 결대로 잘라 먹었다. 주름대로. 하나를 통째로 먹으면 서로 혼내는 거다. 그러면서 재미있다고 막 웃고. 하하하.)

Q. 작품에 주인이 있다고 생각하나.
류승룡: 있다. 분명 있다. 모든 게 순리대로라고 생각한다. 왜 자기에게 맞는 옷이 있다고 하지 않나.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안 되는 게 있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운 좋게 맞아 떨어지는 배역이 있다. 신기한 일이다.

Q. 작품이 주인을 잘 만나야 좋은 영화가 나올까, 주인이 작품을 잘 만나야 좋은 영화가 탄생할까.
류승룡: 음. 후자 같다. 결국은 작품이다. 작품에 부등호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좋잖아? 그럼 어떤 배우가 해도 50보 100보라는 게 내 생각이다.

Q.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 배우가 하지 않았으면 제대로 된 맛을 살리지 못했겠다, 싶은 캐릭터를 만날 때가 있거든. 가령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 ‘최종병기 활’의 쥬신타는 다른 배우가 했다면 그런 정서적 느낌을 만들어내기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류승룡: 하하. 내가 그렇게 얘기하면 건방지게 보일…(일동 웃음) 배우에 따라 캐릭터의 느낌이 달라지긴 한다. 그래도 큰 대세는 작품이 지닌 힘이라고 생각한다.
류승룡4

Q. 학창 시절, 학교 은사님(김효경 교수)이 당신에게 “너는 봄에 피는 꽃이 아니라 늦가을에 피는 꽃이다”라고 한 말이 유명하다. 지금 어떤 가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나.
류승룡: 이젠 겨울을 맞이해야지.(웃음)

Q. 아…그런데, 계절은 또 순환을 하니까. 겨울과 봄을 보낸 후, 다시 가을을 맞겠지.
류승룡: 그런 의미에서 한 인터뷰에서 ‘나무’를 비유해서 얘기하기도 했는데… 여러 가지로 말이 자꾸 왜곡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쉽다. 조심스럽기도 하다. 때로는 침묵보다 큰 지혜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라는 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이나 혹은 옮기는 과정에서 변질되거나 왜곡될 수도 있으니까. 나이가 될수록 말을 아끼게 되는 것 같다. 그게 또 맞다는 생각이 든다.

Q. 안 그래도 이전보다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는 인상을 인터뷰 내내 받고 있다. 당신 특유의 유쾌한 유머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류승룡: 그럼.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까.(웃음)

Q. 그나저나, 마흔 여섯은 당신에게 어떤 나이인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을 넘었는데, 세상이 어디 또 말처럼 쉽나.
류승룡: 나이 때문에 불안을 느낀 적은 없다.

Q 한 번도?
류승룡: 가만있어보자. 아, 스물아홉에서 서른 되는 1년간은 정말 힘들었었다. 20대 때 “나이 서른에 우리 무엇이 될까~♪”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이 서른이 굉장히 희망적이고, 어른이고, 뭔가 안정적일 줄 알았다. 그래서 스물아홉에 잠을 못 잤다 ‘내일 모레면 서른인데, 나는 지금 왜 이러나’하는 불안 때문에.
류승룡5

Q. 그래서 서른이 되니까.
류승룡: 똑같더라고.(웃음) 예전 일기장을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서른까지 6,000만원 모으는 게 목표’ 이런 게 있더라. 되게 웃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는 나이와 관련해 불안해 한 적이 없었다.

Q. 쉰 살에도 같은 마음일까.
류승룡: 건강을 잘 유지한다면, 그러지 않을까.

Q. 얼마 전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아놀드 슈왈제너거를 보면서 굉장히 놀랐다. 내년이면 일흔인데, 어쩜 고난도의 액션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나이 일흔에 액션을 멋지게 해 내는 배우가 나올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류승룡: 내 또래들을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아, 나는 그런 몸이 아니고.(웃음) 가령 차승원 씨나 김수로 씨, 몸 관리를 엄청 잘 하지 않나. 이성재 씨도 그렇고. 다들 나와 동갑이거든. 어마어마한 분들, 굉장히 많은 것 같다.

Q. 당신은. ‘표적’ 때 몸이 상당하지 않았나.
류승룡: 에이~ 그때만!(웃음)

Q. ‘표적’ 당시, 몸매를 유지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했다고 들었다. 소문이 정말 자자했다.
류승룡: (부끄러워하며) 그것도, 당연히 해야 일이었을 뿐. 하하.

Q. 아! 이런 말, 낯간지러워 한다는 걸 방금 전 듣고도.(웃음)

정시우 siwoorain@
사진. 팽현준 pangp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