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10│⑬ 오지은과 늑대들 “솔로 앨범이 일기장이었다면, 이번엔 소설”

인디 10│⑬ 오지은과 늑대들 “솔로 앨범이 일기장이었다면, 이번엔 소설”

스케줄이 많아 점심도 걸렀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일까. “신인 밴드의 핵심 포즈는 점프”라고 외치는 멤버, 남자 포토그래퍼를 향해 “다리가 참 예쁘시네요”라는 농담을 던지는 멤버, 직접 사진기를 꺼내들고 기자회견 분위기를 연출하는 멤버까지 십대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활기와 짓궂음이 넘친다. 이들, 오지은과 늑대들은 ‘홍대마녀’ 오지은과 세션 멤버 네 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5인조 밴드다. 지난 해 12월 발매된 앨범 에는 연애하는 여자, 그리고 이제 막 밴드를 시작한 멤버들의 설렘이 함께 녹아있다. 2008년과 2009년, 이라는 제목의 솔로 앨범 두 장에서 쓸쓸하고 불안한 사랑의 감정, 이십대 여성의 삶과 고민에 집중했던 오지은은 ‘늑대들’을 만나 “솔로 앨범에 절대 수록할 수 없는 신나는 곡”들을 만들어냈다. 오지은의 음악이 “새벽”이라면, 오지은과 늑대들은 “대낮”이다. 그러니 그들의 음악처럼 유쾌하고 수다처럼 떠들썩했던 오지은(보컬), 정중엽(기타), 신동훈(드럼), 박순철(베이스), 박민수(건반)와의 인터뷰 역시 밝은 대낮에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오지은과 늑대들의 첫 앨범 잘 들었다. 특히, ‘사귀지 않을래’와 ‘아저씨 미워요’에서 오지은의 ‘귀여운’ 보컬이 인상적이었다. (웃음)
오지은: 솔로앨범 때는 특별히 미화할 것 없이 그냥 부르면 됐는데 이번 녹음은 쉽지 않았다. 노래를 부를 땐 그 감정을 가진 여자에게 완전히 빙의돼서 부르는데, 제 정신으로 그걸 들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다. 내 평소 목소리, 내 인격과 너무 다르니까. 감정에 맞는 인격을 못 찾아서 녹음을 접은 날도 많았다.

그래도 그 목소리 덕분에 ‘홍대마녀’ 이미지에서 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박민수: 난 사실 왜 지은누나 별명이 마녀인 줄 모르겠다.
오지은: 그게 다 아이라인 때문이다.
신동훈: 그냥 동네 누나 같다. 평소에 화장도 안 하고, 합주실에 올 때도 이만 닦고.
정중엽: 이는 닦아?
오지은: 이는 철저하게 닦아.

“이번 앨범은 한 마디로 생 막걸리”
인디 10│⑬ 오지은과 늑대들 “솔로 앨범이 일기장이었다면, 이번엔 소설”인디 10│⑬ 오지은과 늑대들 “솔로 앨범이 일기장이었다면, 이번엔 소설”
보컬 뿐 아니라 전체적인 앨범 분위기가 오지은의 솔로 앨범에 비해 밝고 스트레이트해졌다.
오지은: 두 장의 솔로 앨범은 수많은 감정들을 정리하는 마음이 컸고, 확 터지는 것도 많이 절제했다. 반면, 이번 앨범은 어떤 상황이 시작될 때의 부글거리는 감정이다. 가사도 설레고. 마치 장독 밑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이 아니라 맨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들을 건져낸 앨범이랄까. 한 마디로 생 막걸리다.

2009년 여름, 2집 활동을 끝내고 오지은과 늑대들을 결성하기 전에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왔다. 혹시 그 여행이 밴드 색깔에 영향을 준 건가.
오지은: 솔로 앨범 때는 주로 내 얘기를 썼다. 그러다보니 누가 노래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그게 꼭 내 인생을 지적하는 것처럼 들려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홋카이도로 여행을 갔다. 그 때 피치카토 파이브의 라이브 앨범을 챙겨갔는데, 신나는 곡들이 많았다. 문득 난 왜 이런 감정을 얘기하지 못했을까, 나도 새벽이 아니라 대낮에 들을 수 있는 신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신나는 음악을 굳이 밴드를 통해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뭐였나. 전처럼 세션 구성만으로도 밴드 사운드는 충분히 낼 수 있지 않나.
오지은: 세션 멤버 네 명의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밴드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세션 멤버를 쓸 때는 곧 죽어도 내가 정해놓은 방향대로 가야 된다. 하지만 밴드의 경우, 내가 가사와 멜로디의 대략적인 분위기만 얘기하고 나머지는 다 같이 만들어간다. 말하자면, 내가 퍼즐을 거의 다 만들어놓고 부속품 몇 개를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다섯 개의 퍼즐이 만나는 거다. 어떤 퍼즐들이 만나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그림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게 밴드의 굉장한 힘이다.

멤버들은 언제부터 세션으로 함께 활동했나.
오지은: 중엽이와 동훈이는 2집 전부터, 순철 오빠와 민수는 2집 이후에 합류했다.

다들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가.
오지은: 중엽이한테 좋은 건반 좀 소개시켜달라고 했더니, 학교 동기인 민수를 데려왔다.
박민수: 혼자서 계속 음악 작업을 하다보니 밴드가 절실하게 하고 싶었다.
정중엽: 민수는 작곡가 출신인데, 컴퓨터와 놀고 컴퓨터와 대화하고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해왔다. (웃음) 예전에 학교에서 자작곡을 발표하는데, 혼자서 기타 솔로, 건반 솔로, 플룻 솔로까지 다 하더라. 그러다가 사람이 그리워졌는지 나한테 밴드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오지은: 동훈이는 제대하는 날 세션 제의를 받았다. 하하하하. 디어 클라우드의 용린 씨한테 전화해서 드러머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바로 한 명 있다고 하더라.
신동훈: 제대하던 날, 용린이 형이 차를 몰고 날 마중 나왔다. 형이 “너 세션할래?”라고 물어 보길래 각 잡고 앉은 자세로 “넵!”이라고 대답했다.

밴드 결성 제안을 들은 네 사람의 반응은 어땠나. 흔쾌히 받아들이던가.
오지은: 굉장히 긴 시간을 설득했다. 긴 시간을!

왜 그렇게 망설였나.
정중엽: 세션으로 활동하면서 서로 재밌다고 느낀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음악적인 부분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과 책임감이었다. 현재 내가 활동하고 있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올해 4월쯤에 앨범을 낸다. ‘과연 밴드 활동까지 병행할 수 있을까’, ‘밴드로 묶이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동훈: 나도 다른 밴드의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올인할 수 있을까가 가장 걱정이었다.
오지은: 쉽게 얘기하면, 데이트만 하는 사이였다가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다. 데이트는 좋은 순간에 만나서 하고 싶은 것만 하면 되는데, 결혼을 하면 의무가 생기지 않나. 시댁에도 가야 되고 설거지도 해야 되고, 왜 나만 빨래를 하는지 모르겠고.
정중엽: 아기가 똥을 싸면 누가 치울 건지 정해야 되고.
오지은: 맞아, 그런 거.
신동훈: 아기가 어딨어?
정중엽: 앨범이라는 아기가 태어났잖아.
신동훈: 앨범이 아기야?
일동: ……

“솔로 앨범이 내 얘기였다면, 이번에는 남의 얘기”
인디 10│⑬ 오지은과 늑대들 “솔로 앨범이 일기장이었다면, 이번엔 소설”인디 10│⑬ 오지은과 늑대들 “솔로 앨범이 일기장이었다면, 이번엔 소설”
…그러다가 밴드가 결성된 시기는 언제였나.
오지은: 미리듣기 앨범을 발매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오케이 했다. 연애로 비유하자면, 굳이 사귀자는 얘기 안하고 ‘우리 이제 뽀뽀했으니까 사귀는 거야’ 이런 느낌?

이번 앨범의 핵심은 사실 전반부다. 타이틀 곡 ‘뜨거운 마음’에서 “넌 대체 내가 보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인지 궁금해”라는 가사처럼, 연애하는 여자의 미묘한 감정을 잘 포착했다. 어디서 소스를 얻었나.
오지은: 솔로 앨범이 내 얘기였다면, 이번에는 남의 얘기다. 작가가 된 기분으로 데이트가 잘 안 풀리는 여자, 지금은 남자 마음속에서 방석 한 장이지만 언젠가는 소파가 되겠다는 호탕한 여자, 남자친구의 한심한 면까지 귀엽다고 생각하는 여자 등을 상상했다. ‘아저씨 미워요’ 같은 경우는 실제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아저씨를 짝사랑하는 친구를 보고 쓰게 됐다.

특히, ‘넌 나의 귀여운!’에서 “하나 좋으면 두개가 미워지고 세 개가 미우면 네 개가 좋아져”는 가사가 와 닿더라.
오지은: 그렇지? 남자의 단점이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 데도 사귄다. 여자 눈에는 귀여운 남자친구니까.

‘사실은 뭐’, ‘없었으면 좋았을걸’ 등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솔로 시절 오지은의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가 풍기는데, 정작 그 곡을 만든 사람은 오지은이 아니라 나머지 멤버들이라는 게 재미있다.
오지은: 다들 ‘오지은이 결국 못 참았구나’ 라고 생각했을 거다. (웃음) 근데 내가 신나는 곡을 만들고, 이들이 어두운 노래를 만들었다. 흥미롭지 않나?

솔로 때는 모든 것을 오지은 혼자 결정했다면, 이번에는 공동작업이다.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오지은: 사실 세션은 안 맞으면 자르면 되거든. 하하하. 근데 우리는 이미 한 배를 탔다. 매번 네 명한테 모든 걸 물어보고 방향을 결정하는 게 힘들었다. 사실 밴드를 결성하면 내 일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전혀!
박순철: 짧은 시간 안에 앨범을 만들어야 되니까 그 부분에서 지은이가 일을 5분의 1로 나누려했다가 오히려 더 떠안게 됐다.

곡은 어떤 식으로 만들어갔나.
오지은: 솔로 앨범을 만들 땐 가사를 먼저 썼는데, 이번엔 곡을 먼저 가져온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곡을 가져오면 그 분위기에 따라 여자아이를 상상하면서 가사를 붙였다.
박순철: 다들 개성이 강하다보니까 지은이가 큰 그림을 그리면 우리가 살을 덧붙이는 방식이었다. 안 그랬으면 내년에 앨범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웃음)

“우리는 오래된 연인처럼 편한 사이”
인디 10│⑬ 오지은과 늑대들 “솔로 앨범이 일기장이었다면, 이번엔 소설” 오지은이 곡의 대략적인 윤곽을 잡아온다는 얘기인데, 멤버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나.
오지은: 요즘에는 ‘이건 슬픈 노래인데 이 부분에서는 꿍따 꿍따따 꿍따 꿍따따’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예전에는 곡에 대한 이미지를 던져줬다. 예를 들어 ‘니가 지금 깊은 바다 속에 있는 듯한 톤을 내야 돼’ 이런 식으로.
정중엽: 동훈이가 그것 때문에 굉장히 고생했다.
신동훈: 난 학교에서 피터지게 경쟁하면서 음악을 배운 타입이라, 누나와 생각이 많이 달랐다. 적응하는 데 1년 걸렸다.
오지은: 난 비전공자니까. 동훈이는 자꾸 무슨 템포로 어떤 리듬을 치냐고 물어보는데, 난 계속 리듬이 아니라 이미지를 얘기하고 있고.
정중엽: 내가 중간에서 통역을 많이 해줬다. 예를 들어 누나가 ‘이 노래는 뭔가 구름 위를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야’라고 얘기하면, 동훈이가 처음에는 쿠우우웅 따아악 치다가 점점 짜증을 낸다. 어떻게 쳐도 누나가 아니라고 하니까. 그 때 내가 통역을 해준다. 그건 왠지 뚱따당 뚜두두둥 같다고.
오지은: 그래, 그게 바로 구름이 떠다니는 느낌이잖아. 내가 계속 이미지를 얘기한 이유는 동훈이가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을 남겨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구름이 떠다니는 느낌을 동훈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했고. 그래서 일부러…
신동훈: 뻥치시네!
오지은: 아냐, 진짜야! 내가 코드를 다 찍어와서 알려주면 그건 세션이잖아.

본격적으로 앨범에 대한 평가가 나올 시기다. 만약 따끔한 지적이 들어온다면, 예전처럼 또 상처를 받을 것 같나?
오지은: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일 것 같다. 솔로 앨범이 일기장이었다면, 이번엔 소설이다. 소설 줄거리를 평가해주는 거니까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쿨하게 넘어갈 수 있다.

가장 오래된 멤버 정중엽이 보기에 오지은은 어떤 사람인가.
정중엽: 굉장히 털털한 성격이다. 그래서 가끔 잊어버린다. 그녀가 여자라는 걸… (웃음) 사실 우리 둘은 4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라 언젠가부터 만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카페에 가도 각자 노트북 펴놓고 할 일 하고 밥 먹다가 반찬 뺏어먹고 커피도 마시고. 그러다가 ‘커피도 다 마셨고… 갈까?’ 이렇게 되더라. 꼭 오래된 연인처럼 편한 사이다. 그리고 상대방 말 들어주는 것도 좋아하고, 조언도 잘 해주는 자상한 상담가다.

멤버들도 잘 챙겨주겠다.
박순철: 거의 엄마지.
정중엽: 근데 아빠는 없다. 다 자식들이다.
오지은: 죽을 것 같다. (웃음) 다들 하고 싶은 게 어찌나 많으신지.
박순철: 사실 우리는 위아래가 없다. 가끔은 지은이가 누나 같고, 동훈이가 형 같고.
정중엽: 아냐, 형은 확실히 위야. (웃음)

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와 사진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이지혜 se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