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나무가 자란다

아차! 소년이 연극 영화과에 가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난히 소심한 소년의 성격을 고치기 위해 부모님이 배우게 한 많은 것들 중에서 ‘연기 수업’이 있었음을 그제서야 기억해 낸 것이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 소년은 무작정 대전을 떠나 서울로 향했고, 작은 고시원에 틀어박혀 밤낮으로 공부를 했다. “스스로 뭔가를 이뤄 놓으면 부모님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허락해 주실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지만 외로움과, 서러움, 그리고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과 싸우는 그 시간은 갓 스물이 된 소년, 송중기에게 분명 버티기 쉬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얀 거탑> 장준혁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결국, 소년은 목표를 달성했다. 번듯한 대학의 경영학과 학생이 되었고, 계획대로 배우도 되었다. “성적이 올라가는 성취감 때문에 공부를 했죠. 제 성적표 보면 놀라실 걸요. 경영학 전공이 결정되고 나서 2학년부터는 급하강 곡선을 그리거든요. 그 때도 줄곧 배우가 되고 싶었으니까, 다른 일이 마음에 들어오기 어려웠던 거겠죠.” 한여름 복숭아처럼 맑고 귀여운 얼굴, 수줍게 윗니를 드러내는 환한 웃음. 영화 <쌍화점>의 건룡위 노탁, KBS <내사랑 금지옥엽>의 막내 진호가 보여주었던 새침한 외모는 그대로인데, 조곤조곤 말하는 목소리만큼은 소년의 것이 아니다. “외모 때문에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제 성격은 편안하고 느긋한 충청도 사람의 전형이에요”라고 말하는 송중기를 보며 다시 복숭아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안에는 크고 단단한 씨앗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는다.

어떤 씨앗은 자라서 풀잎이 되지만, 송중기가 품고 있는 씨앗은 나무를 꿈꾼다. 심지어 그 나무는 제법 크고, 복잡한 무늬를 지니고 있다. “<하얀 거탑>에서 김명민 선배님이 연기하신 장준혁 같은 역할을 정말 해보고 싶어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뭐든 다 하는 이기적인 사람인데,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잖아요.” 정면으로 돌파하기 보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영리하게 길을 돌아갈 줄 아는 성격 때문일까. 그가 마음에 담는 장면들은 강렬하기보다는 섬세하고 정교한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쌍화점>을 극장에서 봤는데, 개인적으로 미안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조인성 선배님의 미묘한 마지막 눈빛이 압권이었어요.” 야무지게 감상을 말하는 송중기의 눈빛은 막 문제지를 받아든 우등생의 눈빛처럼 도전의식으로 반짝인다. 게다가 <비열한 거리>, <달콤한 인생>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에게 ‘홍콩 느와르 속의 장국영’같은 역할을 추천하자 그 눈빛은 한층 더 빛을 발한다. “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탄성을 지르는 그는 당장이라도 비장한 느와르 영화의 오디션을 보러 달려 갈 기세다.

그의 귀여운 얼굴을 믿지 마세요

요컨대, 송중기는 사나이다. 십여 년간 쇼트트랙 선수로 활약하면서 길러온 승부욕과 여전히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닐 정도로 털털한 성격으로 이루어진 진짜 그를 알게 되는 일은 유쾌한 반전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춤과 노래에 약해서 뮤지컬에 도전해 보고 싶고, 도통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재주가 없어서 코믹한 연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그는 경험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용기 또한 가졌다. 그 뿐인가, 연애를 할 때도 한 여자를 오래 만나는 편이고, 우연히 본 연극 <라이어>가 너무 재미있어서 같은 날 1,2편을 다 섭렵했다는 그는 결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마저 갖췄다. 그래서 다시, 그가 굳이 경영학과를 목표로 삼은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나중에 여자 친구 만날 때도 경영학도라고 하면 좀 스마트 해 보일 것 같고. 하하” 아차! 겉치레라고는 없는 대답은 영락없이 우직한 충청도 사나이의 것. 귀여운 외모의 베일을 벗고, 오롯이 연기로 승부하게 될 멀지 않은 그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