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나, 브래드 피트야

“Look at you… a perfect.”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남자를 보고 여자는 휘둥그레 뜬 눈으로 더듬거리며 말한다. 진심으로 놀란 시선과 ‘perfect’란 단어가 향하는 지점에는 마흔 즈음의 나이로 젊어진 벤자민 버튼의 얼굴, 더 정확하게는 올해 46세인 브래드 피트의 얼굴이 있다. 비록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시작한지 두 시간여 뒤에나 나오는 장면이지만 같은 시대를 경험하면서도 다른 시간대를 살던 두 주인공이 비로소 비슷한 시간대의 삶으로 겹쳐지는 인상적인 순간이다. 또한 액션영화에서 악이 심판을 받고, 드라마에서 오해와 갈등이 풀리는 순간처럼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기도 하다. 벤자민이 노안이라고 버리고, 우습게 여긴 사람들 모두 보라고! 당신들이 무시했던 그가 사실은 이토록 완벽한 남자, 브래드 피트였다고!

무엇을 하든 멀어지지 않는 섹시 아이콘의 자리

브래드 피트가 데뷔 후 완벽한 남성으로서 할리우드에 군림해 왔던 걸 말하기 위해 1994년 <피플>지 선정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부터 매년 각종 잡지와 사이트에서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고 싶은 남자’, ‘가장 섹시한 40대 남자 배우’ 등의 타이틀을 동안 연례행사처럼 거머쥐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건 조금 지겹기도 하다. 작년 <피플>지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힌 휴 잭맨의 아내가 “이번엔 브래드 피트가 빠진 모양”이었다고 농담한 건 당연한 반응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지겨움이야말로 1991년 <델마와 루이스>에서 곱상한 얼굴과 풋풋한 나체를 드러낸 이후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완벽한 육체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브래드 피트라는 존재가 정말 흥미로운 건 그 오랜 시간동안 <칼리포니아>의 연쇄 살인마와 <트루 로맨스>의 마약 중독자, <트로이>의 신화 속 영웅처럼 다양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연기하며 계속되는 변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섹시 아이콘으로서의 존재감을 반복해서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가을의 전설>에서 장발의 터프한 미남 트리스탄을 연기하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그가 이후 조연인 <12 몽키즈>의 과대망상환자 제프리 역을 따기 위해 테리 길리엄 감독을 찾아가 로비를 펼치고, 몇 년 후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를 본 후 영국까지 가이 리치를 찾아가 모두가 주연이자 조연인 영화 <스내치>의 미키 역을 따냈다는 사실은 그가 단순히 잘생긴 얼굴 덕만 보는 섹시 스타가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욕심내서 시도한 변신은 <시리아나>에서 닳고 닳은 CIA 요원을 연기하기 위해 뱃살을 두둑이 불린 조지 클루니의 그것과는 다르다. <12 몽키즈>에서 인류 따위, 바이러스로 멸망해야 한다고 눈을 희번덕이며 떠들 때도 순수한 열망에 사로잡힌 그의 얼굴은 어딘가 치명적인 매력의 옴므파탈을 연상하게 하고, 이상한 사투리를 쓰고 지저분한 <스내치>의 미키조차 섬세하게 갈라진 근육을 통해 남성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처럼 그는 어떤 역할을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얼굴과 몸의 아름다움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대 최고의 미남 배우인 톰 크루즈를 압도하는 매력을 보여주고, <파이트 클럽>에서는 연기파 배우 에드워드 노튼과 박빙의 투톱 연기를 펼치고, 세기말의 감성을 가장 탁월하게 드러내는 연출가인 데이빗 핀처 감독과 세 번이나 작업한 배우다.

요즘은 그저 ‘브란젤리나’의 일원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런 브래드 피트의 존재감을 판타지 스타에 가깝게 만드는 것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레스타트(톰 크루즈)에게 목을 물리며 영생을 얻게 된 루이처럼 도무지 늙지 않는 듯한 육체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단순히 섹시한 배우를 넘어 섹시함이라는 의미 자체를 지시하는 일종의 기호와도 같았고, 그의 육체는 이런 의미 부여에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 그는 마흔이 넘어서도 액션 영화인 <트로이>와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에서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과시했고, 최근 제법 선명해진 주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얼굴은 40대라고 믿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사실 그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보단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에 가깝다. 그리고 도리언 그레이가 그랬듯 그 역시 순정파 연인 제니퍼 애니스톤을 차면서, 정확히는 안젤리나 졸리를 만나면서 과거의 자신과 구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파파라치의 사진이나 레드 카펫에서 보이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이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면 그건 단순히 좀 더 짙어진 주름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을 입양하는 안젤리나 졸리는 멋있을지 몰라도 그 뒤를 쫓으며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은 인류 평화와 공존 운동가보단 애처가에 가까웠고, 레드 카펫에서도 완벽한 남자 브래드 피트가 아닌 브란젤리나의 일원으로 인식됐다. 실제로 도움을 받았다 해도 <겁쟁이 로버트 포드의 제세 제임스 암살>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AFP와의 인터뷰에서 “졸리의 연기 조언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건 팬들이 원하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이 아니었다. 졸리와의 사이에서 난 딸 사일로의 사진을 <피플>지에 팔아 아프리카 프로젝트에 기부하고, 이런 기부에 대해 “이런 일이 나에게 무한한 만족으로 다가온다”고 말하지만 그의 활동이 U2의 보노 만큼 멋있어 보이지 않는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기다리면 보상받는다, 그의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하지만 그가 한 여자의 연인 역할과 그 연인이 입양한 아이들의 아빠 노릇을 충실히 한다고 해서 스크린에 비친 그의 모습마저 폄하하는 것은 반칙이다. 정말 졸리의 조언 때문인지, 아빠가 되었다는 자각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소통의 어려움 속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과 이해의 과정을 그린 <바벨>에서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모로코에서 한없이 불안해하는 이방인의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또 자신의 육체적 건재함을 과시하듯 <오션스 13>에선 여전히 늘씬하고 매력적인 러스티를 연기하며 대니얼 오션 역의 조지 클루니에게 체중 관리를 하라고 한 방 먹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통해 생애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기대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브란젤리나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연기 잘 하고, 좋은 작품을 고르는 배우라는 것을 입증한 셈이다.

그래서 어쩌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과 데이빗 핀처 감독의 연출을 떠나 브래드 피트라는 존재에 대한 찬가일지도 모른다. 다 죽어가는 노인의 몸을 갖고 태어난 벤자민이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질 때 우리는 그가 얼마나 멋있어질지를 궁금해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아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을 기다린다. 단순히 주연배우라서가 아니다. 벤자민이 어린 아이의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노인의 육체 때문에 생기는 불균형을 이겨나가며 성장하는 과정은 그에게도, 관객에게도 기다림의 시간이다. 이 누적된 기다림이 보상 받는 순간에 과연 브래드 피트만큼 완벽한 선물이 있을까? 설령 준비된 선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