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기막힌 인연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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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인연이다. 양희은이 이상순이 작곡한 노래 ‘산책’을 부르게 된 것 말이다. 이상순은 메르세데스 소사를 떠올리며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책’의 가사를 쓴 작사가 박창학은 양희은이 라디오 DJ 시절 선곡한 ‘Duerme Negrito’를 듣고 메르세데스 소사를 처음 알게 됐다. 긴 세월이 흐르고 양희은의 곡에 참여하게 된 박창학은 작곡을 맡은 이상순이 메르세데스 소사의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떠한 인연을 느꼈다.

양희은은 80년대 초반 라디오 DJ 시절 한국에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을 처음 소개했다. 스페인, 아르헨티나를 배낭여행하며 모은 메르세데스 소사, 아타우알파 유팡키 등의 LP를 고국으로 가져왔다. 정보가 없던 시절 아르헨티나 대사관을 찾아가 노래 가사의 번역을 직접 부탁했다. 소사의 노래에 담긴 남미 사회변혁에도 영향을 미친 ‘누에바 칸시온’ 운동의 정신은 양희은에게도 영감을 줬다. 양희은은 소사와 협연을 할 기회가 있었지만, 소사의 건강 악화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은 양희은과 이상순, 박창학을 하나로 이어줬다. ‘인연’은 그렇게 ‘산책’이 됐다. 양희은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희은 with 이상순 박창학(작사가) _녹음실 컷 원본

이상순, 양희은, 박창학(왼쪽부터)

Q. ‘산책’에 이상순이 연주로도 직접 참여했다. 조카뻘인 후배인데 호흡은 어땠나?
양희은: 이쪽 계통(음악) 아이들이 낯을 가린다. 나도 수줍음이 많은 편이다. 상순이는 내성적인 스타일이 아니더라. 카톡 많이 하면서 친해졌다. 함께 연주 영상을 찍는데 친밀하게 느껴졌다. 상순이는 머리가 좋다. 말은 느리지만 할 이야기 다 하고, 전달을 제대로 한다. 작년 봄에 효리 집에도 갔었다.

Q. 이상순은 메르세데스 소사를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고 하더라.
양희은: 내가 우리나라에 소사의 음반을 처음 소개했다. 80년대에 스페인, 포르투갈 등을 돌면서 음반들을 사서 한국으로 부쳤다. 노래 가사가 궁금해서 아르헨티나 대사관까지 찾아갔다. 대사가 직접 번역을 해줬다. 그렇게 얻은 자투리지식을 방송에서 소개를 했고, 누에바 깐시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때만 해도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잖아. 그런 자투리지식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Q. ‘산책’에 노래하면서 소사를 떠올리셨나?
양희은: 소사처럼 되고 싶지만 따라갈 수는 없지. 소사는 나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다. 2000년 무렵에 메르세데스 소사 밑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교포를 통해서 협연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 교포 덕에 소사가 내 존재를 알게 됐다. 내가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서 함께 공연을 하려고 기획을 했다. 그런데 소사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Q. ‘산책’을 들으면서 양희은과 라틴 음악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양희은: 이런 스타일은 처음 시도해본다. 이제껏 이렇게 낮은 음역대로 녹음해본 건 처음이다. 상순이가 내 저음을 끄집어내보고 싶었나봐. 노래는 가수의 노래도 중요하지만, 원작자의 의도가 잘 전달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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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산책’ 외에도 최근에 윤종신, 이적, 정재일 등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작업을 하셨다.
양희은: 그건 1994년부터 내 음악감독을 해주고 있는 김영국의 아이디어였다. 그 친구가 “여태까지 방식과 다르게 해보자”고 했고 나도 토 달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에 낸 새 앨범 ‘2014 양희은’ 그리고 디지털 싱글에서 젊은 친구들과 작업을 하게 됐다. 2015년에도 그런 방식으로 계속 작업해볼 생각이다.

Q. 윤종신, 이적, 정재일 등과 작업은 어땠나?
양희은: 재밌었다. “오 놀라워라”(환생) 이런 윤종신 냄새 나는 걸 나에게 시키더라고. “좋아↗”(배낭여행)이런 식으로 끝을 올리는 거 말이다. 노래하면서 속으로 너무 웃긴 거야. 하지만 난 후배라도 시키는 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정재일은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이적은 노랫말이 참 좋다. 이렇게 만난 것도 다 인연이지.

Q. 카톡 문구가 “니 이름이 모니?”시더라. 그걸 처음 성대모사한 사람이 코미디언 이성미 씨로 알고 있다.
양희은: 맞다. 성미가 제일 먼저 성대모사를 했고 그러면서 다른 이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성미가 신인 시절에 아침 프로그램 리포터를 할 때 처음 봤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어 방송국 소파에서 잔다고 하더라. 왠지 마음이 가서 “꼬마야 이리 와봐 너 이름이 뭐니?”라고 말했는데 그게 그렇게 무서웠나봐. 난 말투가 나긋나긋한 편이 아니니까.

Q. 후배가 궁금해서 그러신 게 아닌가.
양희은: 맞다. 그 뒤로 우리 집에 불러다 밥 먹이고 그러면서 친해졌지.

Q. 새 앨범 ‘2014 양희은’ 쇼케이스 때 “김치는 담글 줄 알아야 한다. 식탁이 무너지고 있다”라고 하신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양희은: 난 진짜 그거 정말 중요하기 생각한다. 우리 남편이 아파서 내가 이 나이에 도시락까지 싸는데 집밥 먹는 거랑 외식은 천양지차다. 일단 배가 꺼지는 게 달라. 외식은 서너 시간이면 꺼지는데 집에서는 깍두기국물에 비며 먹어도 대여섯 시간 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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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후배들에게 직접 밥을 지어 주시기로 유명하다.
양희은: 우리 밴드는 ‘밥심’으로 연주한다. 내가 콘서트 때 2시간 넘게 노래하는 것도 다 밥심이다. 밀가루만 먹고는 그렇게 공연 못한다. 90년대 초부터 함께 음악 하는 후배들에게 밥을 해주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연습하면 다들 내 밥을 먹었다.

Q. 목소리를 유지하시는 비결은 역시 밥심이신가?
양희은: 연습이지. 지금도 항상 발성 연습을 한다. 연습 없이는 절대 노래 할 수 없다.

Q.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가 담긴 앨범 ‘1991’을 만들 때에도 작곡과 연주를 맡은 이병우에게 밥을 해 먹이셨다고 들었다.
양희은: 당시 이병우는 비엔나에서 유학 중이었다. 여름방학 때 비행기 타고 내가 있던 미국으로 날아와서 앨범 작업을 했다. 두 달 반 정도 같이 지냈다.

Q.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로 양희은을 기억한다.
양희은: 요즘 젊은이들은 ‘아침이슬’보다 그 노래가 익숙할 거다. 그런데 1991년에 나온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1997년도에나 세상에 알려졌다. ‘한계령’도 1985년에 나왔는데 90년대 들어서야 히트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계령’ 때문에 결혼했다. ‘한계령’ 발표할 때 우리 레코드사 사장(킹박)이 “너 언제까지 이런 노래 부를래? 제발 장사될 노래를 해라”라고 하더라. ‘상록수’가 금지곡이 되고 ‘늙은 군인의 노래’는 국방부장관 명령으로 금지됐다. 난 도대체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멘붕’이 오더라. ‘한계령’ 내놓고는 사장의 말이 상처가 돼서 ‘내가 노래만 아니면 뭐든지 하겠다’라고 결심했다. 그 와중에 우리 신랑을 만나서 1987년에 결혼하게 된 거야. 미국에서 신접살림을 하다가 한국으로 휴가를 왔는데 어머니가 “‘한계령’ 좋더라”라고 하시는데 난 그 말이 강원도 한계령이 좋으니 놀러 가보라는 소린 줄 알았다. ‘한계령’을 내가 노래했다는 사실조차 인생에서 지워버렸던 거야. 하지만 좋은 노래는 지가 살아서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하더라. 요즘 같이 음원차트 위주의 세상에서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Q. 어린 시절에 ‘봉우리’를 듣고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 노래를 듣고 자아성찰을 한 것은 그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양희은: 그 노래는 김민기가 다큐멘터리 OST로 만든 거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메달을 못 따서 선수촌에도 못 남고 집으로 돌아간 이들을 위한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작가가 송지나였고, 그 주제곡으로 만든 게 ‘봉우리’였다.

Q. 새 앨범에서 동생 양희경과 함께 ‘넌 아직 예뻐’를 노래했다. 두 분 목소리 구분이 어렵다.
양희은: 희경이가 나보다 가늘다. 그저께 전유성에게 전화가 왔다. ‘불후의 명곡’에서 내가 희경이랑 노래하는 걸 봤다고 하더라. 그 노래는 두 할머니가 서로에게 ‘참 예쁘다’라고 말해주는 노래다. 전유성이 “늙고 뚱뚱한 여자 둘이 ‘참 예쁘다’라는 가사를 살리기 힘들 텐데 둘이 잘 살렸어. 늙은 여자들이 되게 좋아할 것 같아. 자기보고 ‘예쁘다, 예쁘다’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난 그 노래 참 좋아”라고 하더라.

Q. 두 분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으니 예뻤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겠다.
양희은: ‘넌 아직 예뻐’는 희경이가 출연한 창작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에 삽입된 스코어 두 곡을 합쳐서 만든 곡이다. 그 뮤지컬을 보고 펑펑 울었다. 두 할머니가 묘한 인연으로 만나 서로 의지하고 사는 내용이다. 내가 이 노래를 고른 이유는 늙어가는 여성들이 서로에게 기운을 북돋아줬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여자끼리 연대가 중요하다. 내가 ‘시골밥상’ 5년 간 방송 하면서 전국을 돌았는데 명랑한 할머니들은 거의가 과부댁이야. 한숨 푹푹 쉬는 이들은 영감이 살아있다. ‘시골밥상’을 하면서 안사돈끼리 의지하면서 사는 집을 봤다. 둘이 정말 둘도 없는 친구인 거야. 그걸 보면서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마음 둘 곳이 있으면 뭐든지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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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새 앨범에는 이한철, 한동준, 육중완, 지근식 등이 작곡으로 참여했다. 지근식은 변진섭의 히트곡을 대거 만든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양희은: 지근식이 고등학생 때 자기가 만든 곡이 담긴 데모테이프를 들고 우리 집에 왔다. 내가 다 들어보고 “이거 다 카피한 거잖아. 네가 만든 게 뭐가 있어? 공부해서 대학가라”라고 돌려보냈다. 그러자 지근식이 “누구나 다 모방으로 시작하는 거 아닌가. 누나 노래도 존 바에즈 흉내 낸 거 아냐”라고 당돌하게 말하더라. 지근식은 원래 포크가수로 시작했다. 김한년, 김영국 등과 ‘노래그림’ 멤버였다. 이후 내 앨범에 좋은 곡을 많이 줬다.

Q. 김한년은 양희은 첫 콘서트 반주를 한 연주자로 알고 있다. 첫 공연이 언제였나?
양희은: 1994년 대학로가 첫 공연이었다. 정식으로 내 이름을 걸고 티켓을 판 공연이 그게 처음이었다. 거의 다 여성 관객이었다. 여자 화장실 하나밖에 없어서 난리가 났었다. 아기 업고 온 엄마들도 많았고, 포항에서 올라온 이도 있었다. 사람이 정말 많이 와서 무대 위에다가도 관객을 앉혔다. 나중에는 우는 아이들 그치게 하려고 막대사탕을 공연장에 놓기도 했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 팬들에게 선물 받잖아. 나에게는 아주머니들이 대바구니에 삶은 계란을 소복이 쌓고 아오리사과를 손수건으로 싸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

Q. 무대에서 많이 떠신다고 들었다. 직접 뮤지컬에서 연기 하신 걸 봤는데 긴장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더라.
양희경: 속은 굉장히 떨고 있다.

Q. 전혀 모르겠던데
양희경: 그게 나의 불행이야. 난 암수술해서 누워 있을 때에도 밥을 너무 잘 먹었다. 병원밥이 맛 없다는데 난 그게 그렇게 맛있는 거야. 지인들이 와서 울다가도 내가 씩씩하게 밥 먹는 걸 보면 “얘가 잘 먹고 잘 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더라.(웃음) 무대에서는 많이 웃는다. 사람들은 여유로운 웃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Q. 양희은은 관객을 울리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얼마 전 송창식과 함께 한 ‘열린음악회’ 녹화에서는 본인이 노래하다가 눈물을 흘리셨다고?
양희은: 그건 창식이 형이랑 공연한 거니까. 창식이 형이랑은 각별하니까 내가 운거다. 알게 된지 47년 정도 됐는데 그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 내가 초라하고 별 볼 일 없을 때 창식이 형이 자기 스테이지를 나에게 할애해 줬다. 내 인생이 시궁창에 코 박고 있을 때 형이 나에게 처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었다. 창식이 형은 정말 나를 꿰뚫어봤다. 나에게 “왜 노래하려고 해?”라고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Q. 2015년에도 계속 신곡을 내실 예정이라고 들었다.
양희은: 그렇게 노래가 쌓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또 새 앨범을 낼 생각이다. 난 아직도 노래에 미련이 많다. 난 반성을 한다. 내가 라디오를 한만큼의 에너지를 노래에 쏟았다면 지금쯤 어떤 가수가 돼 있을까? 난 라디오는 할 만큼 했지만 노래는 그만큼 못했다. 좀 해본 것 같아야 그만두지 않겠나? 단순히 추억팔이가 아니라 현역 가수로 계속 노래하고 싶다.

Q.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르셨는데 새 앨범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양희은: ‘아침이슬’로 데뷔한 것이 내게는 정말 견디기 힘든 부담이었다. 그 ‘아침이슬’이라는 산을 넘어서야 할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놓은 지는 꽤 됐다.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줘야한다는 의무감도 벗은 지 오래다. 이제는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까, 그 지친 어깨에 손을 올려주는 친구처럼 노래했으면 한다.

Q. 양희은은 우리 대중음악계에 ‘봉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양희은: 봉우리 위에서 결국 깨닫는 것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봉우리를 오를 나이도 아니고, 이제는 후배들과 함께 섞여서 흘러갔으면 한다. 대신 선배로서 우리 시절의 노래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고 싶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옹달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