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종영① 또 있을까, 이런 드라마

SBS '펀치'

SBS ‘펀치’

처음부터 대단한 화제작은 아니었다. SBS ‘추적자’ ‘황금의 제국’의 박경수 작가와 김래원 김아중 조재현 등 스타 배우들의 속속 캐스팅 되면서 기대감을 높였지만 ‘시한부 인생을 앞둔 검사의 참회록’이라는 한 줄 요약이 시청자들과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의구심도 일었다. 그러나 뚜껑을 연 ‘펀치’는 첫 방송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명확히 했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전개 속에는 사회 풍자를 담고, 도치법와 은유법이 가득한 대사는 작품의 묘미를 한껏 살렸다. 주, 조연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자리를 잡은 배우들의 연기는 작품을 한층 성숙한 단계로 끌어올렸다. 2015년 포문을 여는 성공작으로 남은 ‘펀치’만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막강한 사회 풍자로 공감대 얻었다

‘펀치’ 속 등장인물들은 누구도 잘 웃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을 앞둔 박정환(김래원)의 딸 예린(김지영)이 보여주는 천진난만한 미소 외에 이들을 항상권력을 향한 음모와 권모술수 속에 살아가는 삶이 익숙해져버렸다. 이들의 웃음은 상대방과 야합하고 새로운 구조를 짤 때 스치는 필요에 의한 가면 속에서, 그리고 순수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속에서 이뤄진다.‘물건을 사듯’ 야망 속에서 이뤄지는 곳곳의 야합이 낯설지 않은 건 현실 정치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때론 언론을 이용해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폭로하는 모습이나, 팽팽한 대립을 하던 관계도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손을 잡는 모습을 우린 종종 목도해왔다. ‘펀치’가 건드린 것은 그런 사회 풍자를 면밀하면서도 힘있게 그려낸 지점이다. 엎치락 뒤치락하는 이태준(조재현)과 박정환, 그리고 윤지숙(최명길)의 동맹, 그 속에서 정의를 지키려는 신하경(김아중)의 곧은 마음이 주축을 이루며 ‘펀치’는 한국 사회 곳곳의 모습을 뼈아프게 재조명했다.

SBS '펀치'

SBS ‘펀치’

폐부를 건드리는 대사의 힘

드라마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힘은 대사에 있다. 비교적 긴 시간동안 미장센을 고민하고 매 장면의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는 영화와는 달리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처럼 촉박한 일정 속에서 본연의 색깔을 찾기란 녹록지 않은 과제다. 그런 면에서 ‘펀치’는 매 회 도치법과 상징성이 가득한 대사로 볼 때마다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신선한 자극을 줬다. 앞서 SBS ‘추적자’ ‘황금의 제국’을 통해 보여준 박경수 작가의 필력은 보다 견고해지고 완성도 높게 다가왔다.

서로의 이익이 부딪치는 순간에도, 목숨을 건 협상 테이블에서도, 식사 자리를 빙자한 채 의도를 교환하는 모습에서도 ‘말의 힘’이 어떤 작품보다 강하게 보여졌던 작품이다. 시종일관 긴장감있게 전개된 이야기가 한층 몰입도를 가질 수 있었던 힘도 바로 이 대사에 있었다. 마치 춤을 추듯 빠른 템포에서는 속사포같은 내용이,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에서는 여운을 남기며, 어떤 대사 하나 버릴 것 없이 작품 속에서 두루 두루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게감과 연기력, 개성을 두루 갖춘 연기 리그

배우들의 연기는 마치 경연의 장을 보는 듯했다. 진중하게 깔린 무게감 속에서도,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 어우러지는 데 빈틈이 없었다. 오랜만에 TV 드라마로 복귀한 김래원은 냉철함과 고뇌, 따뜻함과 단호함을 오가는 카리스마로 주인공 역할에 안착했다. 끝을 준비하는 인물의 간절함 속에서도 시종일관 차분한 톤을 유지해 온 그는 차가움 속에 폭발하는 에너지를 숨긴 남자의 모습을 자신만의 색깔로 구현해냈다. 그와 대립각을 이룬 이태준 역의 조재현은 ‘천의 얼굴’이라고 할 만한 변신을 이뤄냈다.

전작 ‘정도전’ 속 강직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지난했던 과거를 딛고 자수성가한 검찰총장 자리를 위한 사투를 온 몸으로 보여주었다. 강한 어조의 사투리 속에 숨긴 본심은 오롯이 불운했던 과거와 형에 대한 죄책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야망으로 채워졌다. 처음으로 엄마 역에 도전한 김아중도 극중 꿋꿋이 정의를 수호하는 검사 역을 안정감있게 소화해내며 무르익은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고고한 모습 뒤로 자신의 욕망을 감춘 윤지숙 역의 최명길, 표정 하나에서 악역의 기운을 고스란히 담아낸 박혁권도 기존의 필모그래피에서 의미 있는 변신을 시도해냈다.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제공.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