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이번 프로젝트로 음악이 일이 아니라 놀이처럼 느껴졌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인류 역사상 2000년대처럼 음악을 듣는 방법이 다양해진 시대는 없을 것이다. 홍대의 어느 레코드점에서는 여전히 LP를 파는 반면, 그 앞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처럼 태어나서 한 번도 CD라는 걸 사본 적 없는 경우도 있다. 또 누군가는 조만간 나올 아이폰 4세대를 사서 무선 인터넷을 통해 유튜브로 전 세계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나 동영상을 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음악은 경건한 숭배의 대상이고, 누군가에는 토론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3분여의 소비제품일 뿐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과거처럼 음악이 하나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10 아시아>는 오늘부터 3일간 메이저 씬에서 각자 다른 음악, 다른 경력, 다른 상황에 있는 세 팀의 뮤지션들이 직접 말하는 음악 이야기를 싣는다. 첫 손님은 김동률과 이상순이 결성한 프로젝트팀인 베란다 프로젝트다. 김동률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유학 생활 중이던 이상순과 만나 우연히 곡을 만들면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1년여의 시간을 거쳐 한 장의 앨범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들의 전작과는 많이 다른 어쿠스틱 사운드와 라틴 음악적 요소가 많은 앨범 < Day off >는 그들이 암스테르담부터 한국에 이르기까지 함께 노래하고, 녹음하고, 이야기하고, 사진을 찍으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들의 음악처럼 햇살이 맑게 내리쬐는 날, 그들에게 ‘Day off’ 했던 시간 동안의 일들에 대해 들었다.


앨범을 들으면서 왔다. ‘Bike riding’부터 쭉 들으니까 오늘 날씨하고 잘 어울리더라.
김동률
: 그래? 그럼 날씨와 끼워 팔아야 하나 (웃음) 예전에 앨범 낼 때는 스피커와 끼워 팔고 싶었는데 (웃음)

“음악이 일이 아닌 놀이가 되었다”

베란다 프로젝트의 이상순(왼쪽)과 김동률.

음악을 듣고, 앨범의 사진을 같이 보고, 날씨를 함께 느껴야 음악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사진이 음악의 이미지를 담고 있더라. 오늘 날씨 같은.
김동률
: 우리가 같이 작업했으니까 그때의 환경과 날씨, 생각들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음악 할 때는 감정이 바닥까지 치고 내려갈 수도 있는데, 둘이 하니까 너무 빠지지 않고 잔잔한 물 위에서 함께한 것 같은 작업이 돼서, 일상의 느낌이 나온 것 같다.

그래서 사진 전시회도 여나. 스폰지하우스에서 사진전을 여는 걸로 안다.
김동률
: 앨범에 찍었던 사진들을 전시한다.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하겠나. (웃음)
이상순 : 둘이 같이 찍은 사진 말고는 모두 우리가 찍었다. 처음에 암스테르담에서 작업했고, 거기서 작업한 느낌이나 우리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사진도 찍었다.
김동률 : 둘이라 가능했다. 사진을 찍어서 재킷을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내가 냈는데, 내 솔로 앨범 재킷을 내가 찍은 사진으로 해야 한다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다. 그런데 믿는 구석(이상순)이 있으니까 (웃음) 한 번 해볼까 한 게 꽤 많았다.

처음에 두 사람이 우연히 곡을 만들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로 알고 있다. 두 사람의 이전 작업들은 오랫동안 준비해서 만든 것이었는데, 이런 방식의 작업은 어땠나.
김동률
: 음악을 하면서 즐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솔로는 굉장히 힘들다. 내가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스케줄을 짜서 언제까지 작업을 끝내는 식이 아니라서 음악을 만들다 보면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힘들어진다. 그런데 오랜만에 둘이 하니까 통하는 면도 있고, 즐겁기도 했다. 상순 씨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걸 가진 사람이다. 그걸 계속 배우고. 내 음악이 달라지는 게 즐거웠다. 일이 아니라 놀이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이상순 : 롤러코스터에서 셋이 작업했지만, 그때는 분업에 가까웠다. 지누형은 리듬, 나는 리프나 구성 이런 식으로. 그런데 동률 씨와는 모든 작업을 같이 하니까 많이 배웠다. 그리고 내가 나서서 노래하는 건 새로운 분야라 너무 재밌었다.

곡을 만드는 과정도 달라졌을 것 같다. 김동률의 음악은 오케스트라를 많이 쓰는데 이번에는 이상순의 기타가 중심에 있다.
김동률
: 누군가와 곡을 같이 쓰는 것 자체가 큰 변화였다. 크레딧에 내가 쓴 걸로 돼 있는 곡도 같이 연주하면서 어떻게 갈지 끊임없이 얘기했다. 혼자 생각하면 A로 쭉 갈 곡이 둘이 하니까 A`나 B로 간 경우도 많고. 이런 작업을 한참 하다 보니까 오케스트라가 들어간 곡을 쓰고 싶어지기도 하고 (웃음) 내가 가진 걸 계속했으면 그런 작업이 식상했겠지만, 다른 곳에 갔다 왔기 때문에 신선해지는 것도 있을 것 같다.

정말 ‘Day Off’ 했던 앨범인 거군. (웃음) 그래선지 솔로 앨범의 치밀함 보다는 일상의 순간을 담은 에세이같다.
김동률
: 맞다. 음악적 내용으로도, 만든 과정으로도 그렇다. 그리고 혼자 고민하던 게 둘이 하니까 바로바로 정답이 나오는 게 편하다. 혼자하면 이게 맞는 건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긴가민가할 때 상순 씨가 너무 자신 있는 표정으로 할 때 괜찮다고 하면 괜찮구나 하고 그냥 하고, 아니다 하면 접게 되고. 그게 너무 좋았다.
이상순 : 곡을 쓸 때는 너무 여유롭게 했다. 하지만 녹음할 때는 힘든 부분도 많았다.

어떤 점에서?
이상순
: 처음에 작업할 때 목표가 즐겁게 음악하자는 거였다. 그래서 여유롭고 평화롭게 하려고 일부러 노력한 것도 있다. 남들이 들었을 때 편안한 음악을 하려고 더 편한 마음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고. 그런 건 되게 힘들더라. (웃음)

“이번 앨범은 비우는 걸 목적으로 한 부분들이 많았다”

녹음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던 걸로 안다. 김동률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보니까 기타의 소리를 잡는 것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던데.
김동률
: 우리나라는 스튜디오마다 정해놓은 사운드의 기본 값이 있는 편이어서 어느 스튜디오와 어떤 엔지니어와 했느냐에 따라 비슷한 사운드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최고는 아니어도 우리만의 소리를 갖고 싶었다. 그걸 연구하면서 그 시간에 투자한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처음에는 시간을 날리기도 했지만 (웃음) 곡마다 조금씩 기타 소리가 달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이상순 : 기타 사운드에 대해 많이 배웠다. 연주 테크닉보다는 기타의 소리에 중점을 둬서 녹음했다. 기타와 보컬이 똑같이 비중을 갖지 않아도 분위기를 기타가 주도해야 했다. 그래서 어쿠스틱 기타나 나일론 기타의 사운드 톤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특정 부분의 기타 연주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남더라. 기타의 톤이 중요했을 것 같다.
김동률
: 맞다. 이런 기타가 사실 되게 잡기 어렵다. (웃음) 듣기에는 편안하겠지만 사실은 이게 더 어렵다. 우리가 라틴 음악을 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라틴 음악은 특히 이런 느낌을 내는 게 중요했다.

기타가 굉장히 드라이해서 공간을 채우는 울림보다 공간을 남긴다는 느낌으로 간 게 흥미로웠다. 김동률의 보컬도 솔로 때보다 건조하고.
이상순
: 우리 음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얘기하면서 브라질리언 음악을 해보고 싶었고, 그들의 음악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싶었다. ‘어쩐지’와 ‘단꿈’이 특히 그랬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음악을 할 때 울림을 내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나라 보다는 그 쪽의 사운드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 자체도 드라이한 소리를 좋아해서 그 영향도 있을 거고. 앨범 전체로 보면 비우는 걸 목적으로 한 부분들이 많았다.
김동률 : 상순 씨 말처럼 곡이 가져야할 사운드의 당위성에 따라갔다. 상순 씨와 같이 부르다 보니까 균형을 맞추려고 더 덤덤하게 부르기도 했고.

‘기필코’에서는 기타리스트 김성수를 일렉트릭 기타 슈퍼바이저로 뒀던데.
이상순
: 일렉트릭 기타 소리를 내는데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웃음) 어떤 방법이든 다 해보고 싶었는데, 친구에게 일렉트릭 기타의 사운드에 관한 전문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조언을 들었다. 매우 효과적이었다.
김동률 : 기타리스트는 연주를 잘 할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에서 최고의 연주를 딱 한 방만 치고 나갈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하는데, 그 기분을 가지고 스튜디오에 왔다 톤이 안 잡혀서 3-4시간 고생하면 그 때부터 기분이 확 상하는 거다. 그리고 내가 녹음을 하다 “여기서 기타가 무지갯빛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을 때, 그 사운드를 낼 수 있도록 모든 준비가 돼 있으면 너무 편하잖아. (웃음) 그 분하고 같이 작업을 하면서 그런 걸 편하게 했다.

화창한 곡을 쓰고선 좁은 스튜디오에서 공학자처럼 사운드에 매달린 건데,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았나.
김동률
: 녹음이야 성에다가 원하는 모습으로 녹음실을 지어놓지 않을 바에야 기분 좋게 할 수는 없다. (웃음) 오히려 가사 쓰기가 힘들었다. 음악은 쨍쨍한 날에 썼는데 가사는 겨울에 써서. 게다가 이번 겨울이 특히 길어서, 4월초까지 날씨가 안 좋아서 힘들었다.

그런데 가사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활기가 느껴지던데.
김동률
: 그렇게 느꼈나? 재밌네. 가사는 계획을 세우고 쓰지 않고 굉장히 힘들게 한 곡씩 썼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음악이 그렇게 나왔기 때문일 거다. 사람이 제짝을 모르다 수많은 시간을 지나 기적적으로 사랑을 하듯, 곡을 만들면 가사는 운명적으로 정해지는 것 같다.

“자유롭고 싶어서 같이 한 프로젝트”

그렇게 음악의 시작부터 가사와 재킷까지 일일이 만드는데, 시장 상황은 싱어송라이터에게 매우 어렵다. 부담감은 없었나.
김동률
: 그건 어차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다행히 우리의 음악을 믿어주는 회사에 있고, 어쨌든 기다려주는 팬도 있으니까.

그런데도 정규 앨범을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가벼운 프로젝트로 시작한 일을 그 과정을 거쳐서 한 장의 앨범으로 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김동률
: 당연히 부담은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걸 했을 때 듣는 사람이 “아 얘네가 이래서 이런 음악을 했구나”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으면 열 곡 정도는 필요하다. 한 곡만 빠져도 흐름이 이상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CD를 사든 안사든 처음부터 끝까지 앨범 순서대로 한 번쯤 들어봤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걸 양에 차게 느낄 수 있으니까. 그게 다섯 곡이라면 너무 힘든 일이었을 것 같다.

누군가 ‘Bike Riding’만 들었으면 거기서 끝나버리는 거니까.
김동률
: 그렇지. 누가 또 ‘기필코’만 들었으면 그냥 김동률 스타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Train`만 들으면 편곡을 한 정재일의 색깔이 강한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미니 앨범은 고민이 되는 형태다. 물론 언젠가 낼 수도 있다. 자선사업을 할 수는 없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 세대가 음악을 듣는 방식은 김동률 몇 집이다라고 하면, 특정 곡이 아니라 그 앨범 전체, 앨범을 만드는 동안 그 곡과 자기가 얽힌 사연을 생각나게 하는 게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 닿는 데까지 정규앨범을 내보려고 한다.

앨범 전체로 봤을 때 하나의 흐름을 생각했다는 건가. 앨범에는 어쿠스틱이나 라틴 음악만 있는 건 아니다. ‘Train’처럼 복잡한 구성의 곡도 있고, 앨범 전체에 기승전결이 있다.
김동률
: 그렇다.
이상순 : 둘이 함께한 음악이라 억지로 곡을 쓰거나 사운드를 내는 대신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겠다 싶은 요소를 넣었다. 그게 우리에게 더 만족스럽고, 자연스럽다.

베란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음악에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겠다.
김동률
: 그럼. 그런 걸 해보고 싶어서 같이 한 거였으니까.

프로젝트 활동인 만큼 어쩌면 다음 활동을 기약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웃음)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이번 활동 계획을 말한다면.
김동률
: 사실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분이 우리의 2집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하기에, 그때야 처음으로 아, 2집도 가능하겠구나 했었다. 다음 앨범 활동 같은 것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 공연은 아직 안 잡혔고.
이상순 : 라디오 출연을 하고는 있는데, 공연은 대관 문제나 여러 가지 일로 쉽지 않다. 하고 싶은데 준비해야할 게 많다. 그리고, 모든 앨범이 그렇듯이 이 앨범도 앨범으로 듣는 게 정답인데, 요즘에는 다른 방식으로 듣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걸 우리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 현실이니까. 하지만 가능하면 앨범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

사진제공. 뮤직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