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천만’ 감독탄생③윤제균 “민주화 실종? 가장 민주적인 영화현장이었다 자부”(인터뷰)

윤제균 감독

윤제균 감독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두 편의 영화를 ‘천만 목록’에 올린 감독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 1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국제시장’은 13일 전국 15만 4,606명을 추가하며 누적관객수 천만을 돌파했다. 이로써 지난 달 17일 개봉한 ‘국제시장’은 28일 만에 천만 고지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역대 14번째, 한국영화로는 11번째 천만 등극이다. 2009년 ‘해운대’로 천만 관객 ‘쓰나미’를 보여줬던 윤제균 감독으로서는 6년 만에 다시 느끼는 흥행의 ‘맛’. 하지만 천만까지 달리면서 영화는 각종 정치적 잡음과 이념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리기도 했다. 영화를 둘러싼 갑론을박 속에서 정작 윤제균 감독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윤제균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부산시에서 ‘국제시장’ 촬영현장을 이용한 관광 상품을 내 놓았다.
윤제균:
감독으로서 너무나 보람된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고향에 작지만 보탬이 된 거니까. 다만 이 야이기는 꼭 전하고 싶다. 지금 덕수(황정민)가 운영하던 ‘꽃분이네’ 앞이 사진을 찍으려는 분들로 인산인해다. 그런데 물건은 많이 안 산다고 하더라.(웃음) 사진만 찍지 마시고 자그마한 물건이라도 하나씩 사 주시면 좋겠다. ‘꽃분이네’로 인해 주변 가게들은 영업에 지장 받을 수 있으니 그 분들 가게에도 들려서 하나씩 사 주시면 좋겠고.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이 피해를 안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Q. 부성(父性)은 영화가 사랑하는 소재다. 윤종빈 감독은 아버지 세대를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이해준 감독은 ‘나의 독재자’로 풀어냈다. 감독님들마다 어떤 시기가 되면 아버지를 영화로 다루고 싶은 ‘어떤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윤제균:
동의한다. 그 이유는 감독들마다 다를 거다. 어떤 분은 연정의 마음으로, 어떤 분은 애증을 가지고 영화를 찍을 텐데 나의 경우엔 전자다. 난 사랑을 너무나 많이 받은 자식이다. 아버지 성격이 ‘국제시장’의 덕수와 똑같다. 다혈질이고, 주변 사람들과 자주 싸우고, 앞 뒤 안통하고. 그런데 나에게는 단 한 번도 화를 내신 적이 없다. 내 입으로 말하기 그런데, 학창 시절의 나는 굉장히 모범생이었다. 말썽 한번 피운 적 없는. 성적이 어땠냐고? 잘 했다. 중학교 때는 전교 1등도 했다. 고등학교 때도 1등급을 받았고.(웃음)

Q. ‘국제시장’에서 서울대 간 둘째 아들이네.
윤제균:
아, 그렇네. 덕수 동생 승규(이현)가 나랑 비슷하다.(웃음) 아버지를 생각하면 사랑받는 기억밖에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번 못했다. 그런 아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 등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윤제균감독 5

Q.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상업성에 대한 자신감이 있지만 작품성에 대한 콤플렉스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윤제균: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나는 내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작품성만 추구하는 것은 나와는 맞지 않는다. 물론 나도 영화마니아, 평론가, 전문가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싶다. 절실하게. 상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품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나의 오랜 화두이자 고민이다. 하지만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노력은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국제시장’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고.

Q.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쓰며 솔직하게 털어놓은 게 인상 깊었다.
윤제균:
그런데 작품성은 좋은데 흥행이 아쉬운 분들은 또 상업적인 부분에서 콤플렉스가 있지 않을까.(웃음) 다행이라면 나는 평론가들보다 대중이 내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더 행복을 느낀다.

Q. 표준근로계약서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다. ‘국제시장’은 기획단계를 포함한 전 제작 과정에서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한 ‘첫’ 영화다. 모든 스텝들에게 4대 보험 가입, 하루 12시간 촬영시간 엄수, 초과근무수당 지급 등이 지켜졌다. 감독의 원하는 씬이 나올 때까지 밤을 세서라도 찍는 게 충무로 관행이었는데, 표준근로계약서 안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어떻던가. 그걸 알면서도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한 셈인데.
윤제균:
나도 너무 좋았다. 감독도 쉴 시간을 갖는 거니까. 이번에 표준근로계약서를 하면서 ‘영화를 평생의 직업으로 가지고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48시간 잠 못 자고 촬영하는 게 비일비재했다. ‘영화 이건, 사람 할 짓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한 두 번 한 게 아니다.(웃음) 그럼에도 열정이란 이름으로 착취하고, 스태프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충무로엔 많았다. 그런 너무 안 좋은 것 같다. 행복해지려고 영화를 하는 건데, 그건 진짜 아니지 않나.

Q. 안 그래도 ‘국제시장’ 관련 표준근로계약서 취재를 하면서, 스태프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고 느꼈다.(표준근로계약서 관련 취재 기사가 궁금하시다면 클릭, <JK필름 길영민 대표 인터뷰>)
윤제균: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름 자신이 있다.

‘국제시장’ 스태프들과 배우

‘국제시장’ 스태프들과 배우

Q. 사실 표준근로계약서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갖는 스태프들이 상당히 많다. 가령 아직 개봉하지 않은 A주연의 영화 B같은 경우, 표준근로계약서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방식의 ‘통계약’ 때보다 임금을 더 못 받아서 스태프들의 불만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같은 표준근로계약서라도 다 같은 표준근로계약서가 아닌 거지. ‘국제시장’의 경우 계약이 잘 지켜졌다는 얘기가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더라.
윤제균:
‘국제시장’을 통해서 내가 정말 자랑하고 싶은 건 이 부분이다. 왜 이 영화에 민주화 이야기가 안 나오냐고 이야기 하시는데,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그 어느 작품보다 민주적인 현장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말로만 민주화 민주화 한 게 아니라 진짜 민주적인 방법을 도입한 거다. 표준근로계약서로 인해 제작비가 2-3억 정도 더 들었다. 투자자 분들께서 조금만 더 양해하고 우리와 함께 고통분담을 한다면, 많은 스태프들이 보다 인간적인 환경에서 복지혜택을 받으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게 민주화가 아닌가 싶다.

(#참고. ‘국제시장’은 스태프들에게 ‘한 달 22회 차’가 보장됐다. 즉, 한 달에 10일만 일해도 22일 일한 만큼의 임금을 지급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23일 일하면 22일 플러스 1일 일한 것을 또 따로 지급했다. 스태프 입장에서는 적게 일해도 기본적으로 약속된 건 모두 받은 셈이다.)

Q. ‘국제시장’은 한 남자(황정민)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가 크게 네 가지 시퀀스로 제시된다. 만약 당신 인생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꼭 다뤄져야 할 시기가 언제일까.
윤제균: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포인트들을 찾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20대가 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사실 20대는 돈도 쓰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많을 나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20대 때 대학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만 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했거든. 그래서 누가 나에게 20대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싫다고 한다. 암울했던 그 시절로는 진짜 돌아가기 싫다. 그 다음은… 아, 10대도 나와야 할 것 같다. 10대 때는 행복한 우리 가족. 평범했지만 큰 걱정 없이 행복했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첫 번째 위기가 20대 때 온 거다. 세 번째는 감독 데뷔를 다뤄야 할 것 같다. 5년 동안 ‘미생’으로 지내다가 정말 운 좋게 감독이 됐다.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꽃분이네'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꽃분이네’

Q. 정말 운이었을까.
윤제균:
사실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노력을 많이 했다. 단칸방에서 시나리오를 쓸 때는 1년 동안 하루에 4시간 이상 자 본적이 없다. 그래서 ‘두사부일체’를 통해 감독이 됐을 때가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두사부일체’로 감독이 된 후에도 롤러코스터처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위에도 가보고, 저 밑바닥도 가 봤다.

Q. 밑바닥은… ‘7광구’ 인가.
윤제균:
‘7광구’도 그렇고, ‘낭만자객’도 그렇고. 내가 만들거나 제작한 16편 중에 손익분기점을 안 넘은 작품은 ‘시크릿’ 까지 세 개다. ‘시크릿’은 망했다기보다는 손익분기점에 조금 못 미쳤다.

Q. 16편 중 3편만 실패면, 성공타율이 굉장히 좋은 거다.
윤제균:
그런데 실패할 땐 또 너무 크게 했으니까. 많은 이들의 비난과 혹평도 굉장히 많이 받았고. 20대 때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면 30대에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은…마지막은 ‘국제시장’이 될 것 같다. ‘해운대’도 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긴 한다. 하지만 ‘국제시장’은 뭔가 복잡 미묘하다. 최초로 천만을 두 번 했고, 많은 사랑을 받았고, 논란도 있었고, 그 속에서 느낀 것도 많았다. ‘투 비 컨티뉴(to be continue)’이긴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인터뷰를 하고 일을 줄, 2주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다.

‘쌍천만’ 감독탄생① ‘국제시장’ 천만 돌파, 주요사건일지
‘쌍천만’ 감독탄생②윤제균 “허지웅·진중권 영화평 흥행에 도움 됐다”(인터뷰)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