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주의 10음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네

page

한음파, 정재원, 말로, 9와 숫자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빛을 가려줘 보이지 않게, 저 태양에 눈이 부시지 않게, 날아가 버릴 듯 몸을 가볍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네

한음파 ‘곡예사’ 中

한음파 ‘이명’
KINR-003272_b한음파의 3집이자 세 번째 모습이라 할 만한 결과물이다. 한음파는 1집 ‘독감’과 EP ‘잔몽’으로 몽골 악기인 마두금이 중심이 된 이국적인 사운드와 사이키델릭한 음악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집 ‘키스 프롬 더 미스틱(Kiss From The Mystic)’에서는 마두금을 절제하고 간결하고 호쾌해진 록을 들려주며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에는 사운드의 스케일이 한층 커졌다. 한음파 사운드의 확장이랄까? 1~2집의 요소를 모두 가지면서 그것을 버무려 대곡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본인들이 좋아하는 팀인 펄 잼의 사운드로 회귀가 느껴진다. ‘크로우(Crow)’ 등을 비롯한 곡들은 다소 복잡한 구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안에 그런지 록 특유의 멜로디와 질감을 잘 살아있다. 이것은 마치 펄 잼이 5집 ‘일드(Yield)’ 이후에 그런지 록의 틀을 벗어나 마치 또 다른 세계로 흘러들어가는 듯한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까? 누군가는 라디오헤드가 ‘더 벤즈(The Bends)’에서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로 넘어가는 사이의 경계선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진보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밴드의 행보답다.

정재원 ‘한마디’
KBND-006072_b음악적으로 신뢰하는 한 레이블 대표와 올해의 앨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정재원의 ‘한마디’를 2014년의 앨범 중 하나로 꼽더라. ‘적재’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정재원을 처음 본 것은 지난 5월 27일 종로 반줄에서 열린 바버렛츠의 쇼케이스였다. 바버렛츠의 공연이 끝난 후 강승원, 선우정아, 정재원 등 동료들이 차례로 공연을 가졌다. 최근에는 김동률의 콘서트에서 출중한 통기타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최근 세션 기타리스트들이 싱어송라이터로서 앨범을 내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데 김선욱, 빌리 어코스티, 정재원이 그들이다. 이들은 어쿠스틱 풍의 음악 안에 나름의 기타 실력을 내보이는데 결과물에서 존 메이어가 언뜻 스쳐단다는 공통점이 있더라. 정재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출중한 어법을 선보이며 정재원이라는 이름의 명함을 굳건히 내보이고 있다. 웬만한 장르는 커버가 가능한 연주자로 알려져 있는데 본인의 앨범은 팝적인 어법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아이 헤이트 유(I Hate You)’에서 꽤 화려한 기타솔로를 뽐내기도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극히 드물다. 얼핏 들으면 카페에 자주 흐를법한 곡들인데 곡들의 만듦새, 편곡에 있어서 전형적인 흐름을 피하려 한 것이 읽힌다. 그럼에도 노래의 힘으로 청자를 설득한다. ‘한마디’는 최근에 조원선이 피처링한 곡 중 가장 조원선의 매력을 잘 살린 곡.

말로 ‘겨울, 그리고 봄’
KNJM-001627_b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정규 6집으로 리메이크가 아닌 창작 앨범으로는 무려 7년 만의 새 앨범이다. 말로는 화려한 스캣을 들려줘 ‘한국의 엘라 피츠제럴드’라는 별명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적인 재즈를 들려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말로는 스캣을 하지 않고 감성적으로 노래할 때에도 상당한 매력을 발산한다. 특히 말로의 최고작이면서 한국 재즈의 기념비적인 앨범으로 평가받는 3집 ‘벚꽃 지다’는 재즈와 가요를 가장 적절하게 결합한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말로가 전곡을 작곡하고 작사가인 이주엽이 가사를 쓴 ‘겨울, 그리고 봄’ 역시 가요적인 색체와 재즈의 어법이 버무려진 결과물이다. 오랜 동료들인 민경인(건반), 황이현(기타) 정영준(베이스), 이도헌(드럼)이 퀄텟을 이뤄 말로의 음악을 완성시키고 있으며 조윤성, 배선용, 정태호(라 벤타나) 등이 함께 했다. ‘벚꽃 지다’ 등 말로의 가사를 써온 이주엽의 노랫말은 한 편의 시와도 같다. 말로의 깊은 서정미는 이 가사를 표현하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전반적으로 차분한 음악이 담겨있지만 역시나 재즈 연주자의 앨범이기에 ‘날이 가면’과 같이 연주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9와 숫자들 ‘보물섬’
KINR-003275_b2014년은 컴백의 해로 기억되려나 보다.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로로스, 십센치, 한음파에 이어 9와 숫자들도 무려 5년 만에 새 정규앨범 ‘보물섬’으로 돌아왔다. 새 앨범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데, 1집과 EP 발매 후 한국 모던록을 이끌어갈 차기 대표 선수 정도로 주목받은 터라 부담이 작지 않았으리라. 새 앨범도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의 섬세한 감성과 차분한 연주, 넘치지 않는 사운드, 그리고 복고, 복고, 복고. 이는 팬들이 기억하는 9와 숫자들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는 데 9와 숫자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이 머무름은 음악적인 정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적인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고고(孤高)함을 뜻하는 것이다.(언니네 이발관의 잔상도 여전하고) ‘보물섬’에서는 보다 드라마틱해진 전개가 인상적이며 ‘실버 라인’의 예쁜 멜로디, ‘깍쟁이’의 경쾌함은 반복해서 들을수록 좋다. ‘높은 마음’ ‘잡 투 두’ 등에서 나타나는 사운드 메이킹은 블러(Blur)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어지는 ‘커튼콜’은 완전 80~90년대 가요풍이라 황당하다. 헌데 이런 황당함이 나쁘지 않다.

손성제 & 송준영 & 김은영 ‘A Farewell To An Unknown Friend’
KNJM-001631_b한국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색소포니스트 중 한 명인 손성제는 독특한 뮤지션이다. 정통 재즈와 컨템퍼러리 재즈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하는 그는 재즈 앨범을 발표하면서 싱어송라이터로 ‘비의 비가’란 앨범을 냈는데, 이게 은근히 호평을 받았다. 니어 이스트 퀄텟(Near East Quartet, ‘근동퀄텟’이라고도 한다)으로 국악과 재즈를 결합하기도 했고, 라이브 세션에서는 트로트를 구성지게 불기도 한다. 이 모든 게 손성제다. 새 앨범은 송준영(드럼), 김은영(피아노)와 트리오를 이루고 있다. ‘색소폰 트리오’는 대개 피아노 없이 색소폰-베이스-드럼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 화성악기(피아노)가 없으니 색소폰이 자유로운 솔로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신보에서 손성제는 김은영과 송준영이 깔아준 하얀 캔버스에 겨울풍경을 그리듯 차분하게 연주하고 있다. 아방가르드한 연주가 나올 법한 편성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다만 변칙적인 편성을 통해 일관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앨범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어 페어웰 투 언 언노운 프렌드(A Farewell To An Unknown Friend)’부터 현인의 ‘꿈속의 사랑’, 윤형주 ‘어제 내린 비’ 현미 ‘밤안개’를 커버한 트로트풍의 멜로디가 묘하게(아주 묘하게) 통일성을 보인다.

dsb ‘One Lucky Day’
KNJM-001592_bdsb는 남광현(드럼), 이동욱(색소폰), 양영호(베이스)로 이루어진 색소폰 트리오다. 남광현과 양영호는 기타리스트 김유식과 함께 애시드레인으로 활동하며 석 장의 앨범을 냈으며, 기타리스트 민영석과는 프론트라인을 결성해 한 장의 앨범을 냈다. 애시드레인과 프론트라인은 기타 트리오였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으며, 둘 다 기존 한국 재즈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험적인 음악을 들려줬다. 이동욱이 합류한 이번 트리오에서도 애시드레인에서의 특색이었던 3명의 밀접한 인터플레이, 그리고 특정한 이미지가 느껴지는 편곡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단순히 리듬을 친다기보다 융단을 깔듯이 연주하는 남광현의 드럼 위로 양영호는 6현 베이스로 기타와 같은 연주를 들려주는 한편 루프 이펙터 등을 통해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동욱의 색소폰 역시 단순한 솔로 악기가 아니라 둘의 유영(游泳)에 동참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전통적인 트리오를 넘어서 셋 만의 풍성한 앙상블을 들려준다.

준킴 ‘감성주의’
KNJM-001615_b기타리스트 준킴의 네 번째 리더 작. 준킴은 최근 한국 재즈 기타리스트 중에 가장 많은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준킴은 준킴 그룹(퀄텟), 트리오, 그리고 듀오 등 다양한 편성으로 앨범을 발표해왔다. 이외에도 김오키 동양청년, 김성준 퀄텟 등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준킴은 기존의 앨범들을 통해 재즈 록·퓨전부터 100% 즉흥연주로 이루어진 프리 아방가르드 등 다채로운 재즈를 들려줘왔다. 음악이 다소 복잡했기에 쉽게 들을만한 재즈는 아니었다. 새 앨범 ‘감성주의’는 준킴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듣기 편한 축에 들 것이다. 제목처럼 감성적인 연주들이 담겼다. 준킴의 발라드라고 할 만한 연주곡부터 다소 팝적인 트랙들이 쭉 이어진다. 사실 어떤 뮤지션이든 ‘예술적 표현의 서정성(Lyricism)’을 가지고 있다. 이 앨범은 준킴이 자기 나름대로의 서정적인 감성을 풀어낸 결과물이다. 이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자전적인 연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한 연주자들인 김오키 동양청년의 멤버들(김오키, 김윤철, 서경수)과 피아니스트 윤문희는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원곡에 충실하다.

태완 ‘As I Am’
KBND-005970_b태완의 8년 만의 새 앨범. R&B 싱어송라이터들의 앨범이 이어지고 있다. 정기고는 ‘썸’으로 ‘빵’ 떴고, 자이언티, 크러쉬, 계범주, 범키 등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외에 크루셜 스타, 에이치원(H.one) 등 R&B 계열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앨범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힙합의 부각과 함께 메인스트림 시장 진출을 꾀하고 있기도 하다. 태완도 그 중 한 명이다. 태완은 C-Luv라는 이름으로 이효리, 이민우, 주석, 이현도, 거미, 휘성 등의 앨범에 참여해온 꽤 오랜 경력의 소유자다. 자신의 고향인 힙합 레이블 브랜뉴뮤직으로 돌아온 태완은 신보를 통해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PBR&B 장르를 가요화해 들려주고 있다. 확실히 사운드 메이킹에 있어서 현지 트렌드에 맞닿아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향후 브랜뉴뮤직에서 나오는 앨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가요앨범 중에는 후배인 박재범과 유사한 스타일을 들려주고 있는데, 실제로 둘이 친하다고. 브랜뉴뮤직의 산이, 버벌진트 등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서울 마더스 ‘Don`t Forget What Your Mother Said’
KINR-003245_b서울 마더스의 14년 만의 새 앨범. 90년대 후반에 음악잡지 ‘핫뮤직’에서 ‘클럽 하드코어’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장르를 나눔에 있어서 하드코어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지만, 당시에는 콘, 콜 체임버, 데프톤즈, 바이오해저드 등의 뉴 메탈을 모두 ‘하드코어’라고 부르곤 했다. 이 ‘클럽 하드코어’에서는 삼청교육대, 바세린과 같은 과격한 밴드들이 공연을 했고, 서울 마더스도 그 중 하나였다. 원래는 ‘서울 마더퍽커스’로 하려 했으나 서울 마더스가 어감 상 좋아서 팀명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바이오해저드 풍의 뉴욕 하드코어를 추구한 서울 마더스는 2000년에 발매했던 정규 1집 ‘서울 마더스(Seoul Mothers)’에서 뉴메탈의 기본에 충실한 육중한 사운드를 들려줬다. 신보에서도 역시 서울 마더스는 광폭함 그 자체다. 최근 80년대 헤비메탈 밴드들의 재결성 움직임이 이어진 바 있다. 서울 마더스의 새 앨범은 90년대 후반의 한국 헤비 신에 대한 일종의 증거라 할 수 있겠다.

슬립낫 ‘.5 : The Gray Chapter’
CORE-002309_b극악의 뉴 메탈 밴드 슬립낫의 6년 만의 신보로 정규 5집이다. 슬립낫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 림프 비즈킷, 데프톤즈과 같은 뉴 메탈 밴드들이 헤비니스 신을 장악하고 있던 1999년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이후 한층 헤비한 사운드로 팬들을 사로잡으며 메탈 신의 새로운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물론, 슬립낫의 인기에는 가면을 쓴 나름의 신비주의도 한 몫 했다. 슬립낫은 보컬, 드럼, 베이스, 기타 두 명에 퍼커션 2명과 DJ 등 아홉 명의 멤버로 이루어져 있다. 데뷔앨범 ‘슬립낫(Slipknot)’은 평단의 찬사와 함께 로드러너 레이블 최초의 플래티넘 앨범을 기록했고, 2집 ‘아이오와(Iowa)’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2010년에는 베이시스트 폴 그레이가 갑작스레 사망해 해체설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신보를 통해 건재함을 보여줬다. 밴드 특유의 음산함과 파괴적인 매력이 살아있는 첫 싱글 ‘네거티브 원(Negative One)’을 비롯해 폴 그레이를 추모하는 ‘굿바이(Goodbye)’, 육중한 그루브가 일품인 ‘사캐스트로페(Sarcastrophe)’ 등을 들려주고 있다. 아니, 들려준다는 표현보다는 귀에 쑤셔 박아준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