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의 세계⑦ 팬픽, 판타지를 구현하는 사람들 (인터뷰)

'엑소902014'에서 언급된 팬픽 문화

‘엑소 902014’에서 언급된 팬픽 문화

팬픽은 팬 픽션(Fan Fiction)의 줄임말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을 대상으로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비틀기하거나 재창작한 작품을 말한다. 흔히 좋아하는 연예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을 일컫는다. 국내에서는 아이돌 그룹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 팬픽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룹 내 멤버들끼리의 커플 짓기와 같이 동성애 코드를 차용한 팬픽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동성애 코드라니, 자칫 낯선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역이기에 인터뷰에 나선 팬픽 작가도 조심스럽게 말문을 뗐다. 그러나 분명한 건, 팬픽은 아이돌 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아이돌에게 팬픽은 아이돌이 가진 환상을 만들어내고, 대리만족을 제공하는 창구가 된다. 팬픽으로 인해 팬심이 더욱 단단해지고, 인기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팬픽 작가의 입에서, 팬픽 문화의 단면을 엿보았다.

Q. 작가님은 언제 처음 팬픽을 접했나요?
팬픽 작가 :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접했어요. 그 가수가 좋아서 관련 글을 찾아 읽었는데 알고 보니 동성팬픽이었어요.

Q. 팬픽 문화는 보통 어떻게 형성되나요?
팬픽 작가 : 팬덤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팬들은 팬픽을 쓰거나 접하게 돼요. 그룹이 인기가 많을수록 그 수요가 많아져요. 그룹 내 인기가 많은 멤버들로 주축을 이룬 팬픽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그 그룹이 몇 명인지, 홀수인지 짝수인지도 중요하게 작용하곤 해요. 대중적으로 그룹의 이름을 알리는 멤버가 있다면, 팬덤 내 독보적으로 인기 많은 멤버도 있잖아요. 인기가 많은 멤버들이 팬픽에는 많이 등장하는 편이에요.

Q. 팬픽은 팬덤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요?  
팬픽 작가 : 팬픽의 가장 큰 기능은 팬이 해당 멤버에게 가지는 판타지를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아이돌은 환상의 존재잖아요. 팬픽을 통해 그 멤버에 대한 환상을 키우고 생각한 이미지에 맞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어요. 멤버의 실제 모습이 그 환상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이런 모습도 있네’라며 그 모습을 팬픽에 넣기도 해요. 그냥 진짜 콩깍지를 계속 씌게 만드는 거랄까요.

Q. 판타지 충족이 핵심 기능이군요.
팬픽 작가 : 쓰는 사람들에게도 자기 판타지 충족이 커요. 팬픽 때문에 팬덤이 커지는 경우도 있어요. 또한 팬픽에도 트렌드가 있고, 대부분 스타 작가에 의해 전체적인 흐름이 달라지기도 해요. 작가가 주인공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멤버에 대한 판타지가 다양하게 작용할 수 있거든요.

Q. 아, 팬픽계에서는 작가의 역량도 정말 중요하군요.
팬픽 작가 : 네, 유명 작가가 인물을 어떻게 설정하는냐에 따라 트렌드가 바뀌기도 하고, 인기도에도 영향을 미쳐요. 유명 작가가 팬덤을 옮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팬픽 마니아들은 문체를 보면 다 알게 되죠. 예전에는 이것을 두고 ‘철새팬’이라고 비난받았는데 요즘은 그룹이 많고, 팬 이동이 쉬워진 만큼 작가들의 이동도 자유로운 편이에요.

Q. 아이돌 그룹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팬픽 문화의 이면도 있을 것 같아요.
팬픽 작가 : 다른 팬덤에서 인기 많은 팬픽의 주인공 이름만 바꿔 무단으로 도용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경우는 일단 그 멤버 이미지와도 맞지 않은데다가 창작물인데 민폐죠. 이것 때문에 팬덤 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많아요.

Q. 1세대 아이돌 시절 팬픽과 지금처럼 아이돌이 더 많아진 현재의 팬픽 문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팬픽 작가 : 예전에는 팬픽이 많이 활성화된 분야가 아니어서 쓰는 사람이 적었다면 현재는 그 팬덤세계를 거쳐온 분들이 또 팬이 되는 경우가 있어서 ‘팬픽 작가’에 도전하는 사람이 많아요. 읽기만 하지 않고 쓰기도 한다는 거죠. 팬픽을 연재하는 홈페이지에서도 인기를 얻은 작가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홈페이지를 차려서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최근에는 작가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도 익명성이 보장돼서 비공개 홈이나 익명홈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요.

Q. 팬픽이라고 하면 동성애 코드나 망상 같은 부분에 대해 안 좋은 시선으로 보기도 하는데요.
팬픽 작가 : 싫어하는 사람들은 엄청 싫어하죠. 음지 문화 안에서도 호불호가 갈리고, 커플 싸움도 심해요. 팬픽 자체가 여러 문화를 거쳐 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도 다양하죠. ‘왜 오빠들을 이상하게 만들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 팬픽은 ‘음지 문화’라고 불리기도 해요. 그게 맞고요. 그래서 팬픽을 싫어하는 팬들은 아예 팬픽을 읽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팬픽 말고도 팬질할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Q. 걸그룹도 팬픽 문화가 있나요?
팬픽 작가 : 여자그룹도 팬픽이 많아요. 걸그룹 중에도 여덕이 많고, 팬픽을 통해 ‘걸크러쉬’라는 판타지를 표출하죠. 동경하는 판타지를 넣는 것이죠. 이것 때문에 인기가 많아지는 경우에 멤버들의 행동이 떡밥으로 쓰이는데 팬들의 판타지를 같이 즐기는 그룹도 있어요. 하지만, 걸그룹이고 보이그룹이고 대놓고 ‘팬픽 떡밥’을 노리고 행동을 취하면 역효과가 있을 수도 있어요. 이건 팬들이 알아서 만드는 판타지이니까요.

Q. 팬픽이 책으로 출판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팬픽 작가 : 요즘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서 진짜 재미있는 것만 인기가 있어요. 작품성도 좋아지고 있죠. 작품성이 좋으니까 주인공 이름을 바꿔서 출판사를 통해 정상 출판되는 경우도 있어요. 정상 출판되면 저작권을 보장받지만, 음지문화이기 때문에 표절 등과 같이 억울한 부분도 많아요. 정상적인 통로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죠.

Q. 출판까지 되는 것을 보면 팬픽은 단순한 팬의 글이 아닌 작가의 또 다른 창작 통로이기도 하네요.
팬픽 작가 : 1세대 아이돌 시절 팬픽은 작품성 없는 작품이 많았긴 해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없었으니까요. 요즘은 눈도 높아지고, 쓰는 사람들의 역량도 높아졌어요. 1세대 아이돌이 나이가 들면서 팬들의 나이도 많아지니까 성숙해지면서 퀄리티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장르도 다양해요. 역사적인 소재를 사용한 어떤 팬픽의 경우는 그 작가가 역사적 소재에 대해 몇 달 동안 공부를 하고, 역사적 고증을 거쳐서 팬픽을 썼어요. 그 팬픽으로 인해 아이돌에만 관심을 두던 사람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었죠. 마치 사극보고 역사에 흥미를 느낀 것처럼 말이에요. 팬픽이라면 19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요즘은 아닌 것도 많고, 수준 자체가 높아지고 있어요.

Q. 작가님도 팬픽으로 진로에 영향을 받으셨나요?
팬픽 작가 : 네. 어렸을 때 경험이 전공 선택에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사람들이 아이돌 쫓아다닌다고 욕하기도 하지만, tvN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처럼 되는 경우도 많아요. (tvN ‘응답하라 1997’에서 성시원은 자신이 직접 쓴 팬픽으로 대학 특기 전형에 합격한다.)

Q. 팬픽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으로서 주변의 시선에 억울한 점도 있을 것 같아요.
팬픽 작가 : 네, 팬픽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실제와 판타지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요. 판타지라는 것을 인식하고 팬질하는 것이죠. 실제로 진짜 동성애라고 오해하지 않아요. 그런 팬들이 있더라도 확실히 실제와 판타지에 선을 긋고 팬질을 하는 것이 필요하죠.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팬픽 작가 : 팬픽 문화는 어찌됐든 음지문화에요. 겉으로 드러나면 안 되는데 외부에서 간섭하기 시작하면 더 음지로 가게 돼요. 그럼 악용하는 사례가 있을 수도 있어요.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긴 해요. 팬픽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어요. 그 만큼 중독성도 있고, 매력이 있는 문화에요. 그래서 간섭보다는 서로 ‘마이 웨이’하는 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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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제공. Mnet ‘엑소 902014’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