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원의 씨네컬 문화 읽기 ‘보이첵’, 연극적인 요소를 만끽하는 공연

'보이첵' 김다현.

‘보이첵’ 김다현.

기운이 달려 행군을 따라가지 못하는 병사 보이첵(김다현). 아내 마리(김소향)와 아기의 생계비를 벌기위해 생체실험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매일 완두콩만 먹고 그에 따른 증상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으로 심신이 피폐해져가는 보이첵. 한편 방탕한 군악대장(김법래)은 마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그녀를 유혹하기 시작하는데…. (중략)

연극과 영화로 대중에게 알려진 게오르그 뷔히너의 희곡 ‘보이첵’. 이 작품이 윤호진 연출로 새로이 창작 뮤지컬로 탄생했다. 윤호진 연출가가 내건 이 공연의 콘셉트는 ‘본질로의 회귀’. 국내 뮤지컬이 현재 아이돌 스타들 중심 구조로 재편되고, 극의 내용보단 무대장치와 의상을 중시하는 제작관행으로 흘러간다고 일침을 가한 그는 공연의 본질이 드라마와 캐릭터 중심이 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이 뮤지컬은 여타 공연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거대한 세트나 화려한 조명 장치 대신 배우들의 캐릭터와 인물간의 갈등 연기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 또 한 가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하는 여타 뮤지컬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유는 바로 원작 ‘보이첵’의 극적 구성이 너무나 어둡고 무거워서다. 그리고 평범하고 착한 소시민, 보이첵이 피폐해져가고 처절하게 파멸하는 내용은 비단 공연에 그치지 않고 현실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참담함이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영화 그 이상의 매력
해피엔드
이 공연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보이첵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아내를 살해하는 대목이다. 아내의 불륜 문제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소재는 흔하디흔한 것으로 수많은 영화, 특히 동명의 영화(베르너 헤어조크 감독, 클라우스 킨스키 주연의 영화(1979)와 헝가리에서 제작하고 야노스 사스가 연출한 영화(1994)가 있음.)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그리고 ‘보이첵’으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고 알려진 한국영화가 있는데, 바로 최민식과 전도연 주연의 ‘해피 엔드’(1999)이다. 흥행과 작품성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이 영화는 당시 전도연의 전라 연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주요 내용도 ‘보이첵’처럼 남편이 아내의 불륜에 참다못해 살인을 하지만, 살해 동기에 있어서 뮤지컬과 차이점이 있다. 영화에선 아내가 지속적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반면, 뮤지컬에선 단 한 번의 실수만 한다는 것. 더욱이 뮤지컬에선 아내 마리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남편에게 죽음을 당한다. 따라서 뮤지컬의 결말이 영화 ‘해피엔드’보다 훨씬 비극적이고 참혹하다.

이제껏 본 뮤지컬 중에서 가장 참혹하고 가슴 아픈 내용의 공연, ‘보이첵’. 오죽하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열창에도 불구하고 공연 내내 박수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다. 객석 분위기가 너무나 무거웠던 탓이리라.

'보이첵' 김소향, 김법래.

‘보이첵’ 김소향, 김법래.

그러나 한편으로 박수 소리가 작다고 해서 이 공연을 폄하해선 안 된다. 그만큼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다는 것이고, 그 중심에 주인공 보이첵 역의 김다현이 있다. 그는 이 공연을 위해 무려 10kg 이상의 체중을 감량해 상처입은 영혼의 보이첵 이미지를 잘 살렸다. 십여명의 의사가 경멸어린 눈초리로 자신을 보자, 보이첵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실험실 장면은 지금도 처연한 기분이 들 정도.

끝으로 이 공연은 뮤지컬과 연극의 두 요소를 만끽할 것 같다.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앙상블의 역동적인 율동에선 뮤지컬의 진수를, 비열하고 잔인한 인간 군상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선 비장한 느낌의 연극적인 요소를 말이다.

글. 연동원 문화평론가 yeon04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