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원│“정다정이 어떻게 하면 더 다정스러워 질 수 있을까” -1

“안녕하세요-” 엄지원이 들어서는 순간 봄이 성큼 다가왔다. 낭랑한 하이 톤의 음성, 애교 넘치는 억양은 MBC 에서 그가 연기하는 귀여운 속물 골드미스 정다정 그대로였다. 그리고 데뷔 10년차 배우인 그가 자신의 캐릭터와 연기를 영민하게 분석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보여주는 화사한 눈웃음에 몇 번이나 넋을 잃고 빠져들 때마다 생각했다. 만약 인간의 유전자 속에 ‘사랑스러움’ 이라는 요소가 있다면 엄지원은 틀림없이 우성인자 보유자일 것이다.

드디어 대망의 결혼식을 올렸다고 들었다.
엄지원 : 지난 주말에 촬영했는데 아침에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에 끝났다. MBC 이후로 두 번째 결혼식 신인데 결혼은 너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다. (웃음) 이번에도 별별 일이 다 생기지만 정말 재미있다. 미리 말해 줄 수는 없지만 결혼식 날 대형 사건도 터진다. 아하하.

“배우는 대본에 있는 걸 잘 캐치하는 게 중요”
엄지원│“정다정이 어떻게 하면 더 다정스러워 질 수 있을까” -1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일에서만 잘나가고 결혼을 못할까!” 하고 한탄하던 다정이 정말 결혼을 하다니 감개무량하다. (웃음) 가 중반에 접어들며 반석(최철호)과 연애하고 반석 아버지(백일섭)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다양한 갈등을 겪게 되었는데.
엄지원 : 4부까지의 대본과 시놉시스를 보고 출연을 결정했는데 촬영 초반 6부까지 대본이 다 나와 있었다. 그런데 제작 사정상 순서대로가 아니라 5, 6회 다정과 반석의 만남을 먼저 촬영하고 다시 1회로 돌아가 찍기 시작해야 했다. 김민식 감독님이 6회 완제를 하시면서 ‘순서를 뒤집어 찍으면 약간 톤이 바뀌는 배우들도 있는데 지원 씨는 전혀 달라지는 게 없어서 놀랐다. 처음부터 머릿속에 다정이를 딱 잡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결혼 반대에 부딪힌다거나 그럼에도 어떻게 결혼이 진행된다는 시놉시스를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국면을 맞아서 새로워진다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다정이에 계속 살을 붙여가는 것 같다.

영화 이나 등 전작들에서의 쉽게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에 비해 정다정은 좀 더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었을 것 같다.
엄지원 : 그렇다. 다정이는 한 단계 거르지 않고 쉽게 다가오는 사람이다. 처음 대본을 보고 캐릭터를 만들 때는 이 사람이 자칫하면 조금 미워 보일 수 있는 함정들이 있으니까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배우는 악기라고 생각하는데, 좋은 악기를 잘 다룬다는 건 어떤 부분을 울리고 어떤 부분을 튕겼을 때 어떤 공명이 생기고 음이 나오는지 잘 알아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관 중에서 어떤 것들을 사용하면 좀 더 다정스러워질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극 중에서 친구 이신영(박진희)의 말을 빌면 다정은 “키 180 이상에, 명문대, 억대 연봉에 시누이 없는 차남, 인물 좋고, 사투리 안 쓰고, 머리숱 많고, 40평대 아파트를 가진 남자”를 대놓고 바라는 여자다. 당연히 ‘속물’이라는 비난이 따를 법도 한데 그럼에도 다정이 밉지 않아 보일 수 있는 경계는 뭘까.
엄지원 : 그 줄타기가, 다정이 사랑받느냐 못 받느냐의 승부수라고 생각했다. 어떤 캐릭터를 하던 ‘아, 요걸 이렇게 잘 해내면 재밌어지겠다’ 싶어서 도전하고 싶고 욕심나는 지점이 항상 있는데 다정이 경우는 ‘아, 요 줄타기를 잘 해내면 사랑받을 수 있겠지만 그걸 못해내면 좀 욕 먹겠군’ 하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작가님이 대본에 다정을 미워할 수 없는 구석구석들을 다 배치시켜놓으셨기 때문에 배우는 그걸 찾아서 표현하느냐 못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5회에 공항에서 다정이가 우연히 신영이의 옛 애인 상우(이필모)를 만나는데 상우가 신영이에 대한 연애 상담을 하니까 “나 살짝 기분 상하네요. 난 지금 내 코가 석자인 사람이예요. 그런 나한테 두 사람 연애만 도와달라는 거예요 뭐예요?” 하고 따지는데 상우가 바로 “미안해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하니까 갑자기 이렇게 (토라진 표정으로) 있다가 “부기 씨가 새로 준비하는 레스토랑 오픈 때 근사하게 차려입고 와요. 내가 상우 씨도 초대했다고 할게요” 라고 정리한다. 그 0.00001%의 미묘함을 통해서 그 사람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나도 좀 미안하니까 쿨하게 배려해 주는, 아주 짧지만 감정은 확- 넘어가는 부분이다. “내가 초대했다고 할게요”라는 한 마디에 “괜찮아요. 상우 씨 이해할 수 있어요” 라는 부연 설명을 생략하고 다정이 나름대로의 배려를 담는 거다. 그러니까 대본에 다 있는 걸 얼마나 잘 캐치하는가가 제일 중요하다.

“촬영장은 친구들끼리 수다 떨고 노는 느낌”
엄지원│“정다정이 어떻게 하면 더 다정스러워 질 수 있을까” -1 의 김인영 작가가 “엄지원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의외로 굉장히 웃겨서 다정이 캐릭터를 맘 놓고 쓸 수 있겠다”고 했다던데. (웃음) 정다정을 만들기 위해 살을 붙인 건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들인가.
엄지원 : 음, 정다정은 일상적인 내 성격과 닮은 지점이 많아서 그냥 하는 게 많다. 아하하. 일단 중요한 건 일할 때 프로페셔널한 태도, 그러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틈이 많은 성격, 그리고 금세 파르륵 하고 화를 내지만 별로 얄밉지 않아 보이는 모습이다. 특히 표정에서 (입술 비쭉 내밀며) 이런 거, (눈썹 찡그리며) 이런 것처럼 포인트를 많이 주려고 한다. 일단 한번 캐릭터를 구축해 놓으면 다음부터는 그 힘으로 계속 가는 것 같다.

, , , 등 영화에서도 유독 남자들 세계에 홀로 있는 여자를 많이 연기한 편이다. 드라마도 오랜만이지만 이렇게 여배우들과 주로 함께 하는 작품은 처음일 텐데 현장에서는 어떤가.
엄지원 : 정말 재밌다. 우리끼리 있으면 세팅하고 리허설 하는 사이 수다 떨다가 준비 끝난 것도 잊어서 “어머, 죄송합니다~” 하고 들어갈 때도 많다. 아하하. 그냥 친구들 만나서 얘기하고 노는 것 같다. 드라마가 끝나도 같이 이것저것 배우면서 자주 만나기로 했다.

다정의 직업이 동시통역사다 보니 종종 영어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데 단기간에 연습한 티가 나는 경우와 달리 상당히 자연스럽다.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동기 부여가 있었나.
엄지원 : 여행을 좋아해 혼자서도 잘 다니는데 외국에 나가면 말을 잘 못해서 좀 불편하고, 언어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주눅 드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서 공부를 했다. 아우, 왜 여행 가서 내 돈 주고 다니는데 주눅까지 들어야 되지? 하는 기분에 시작했다가 재미있어서 계속 하게 됐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