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빈,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인터뷰)

전혜빈

배우 전혜빈. 지난 2002년 그룹 러브(Luv)로 데뷔한 그녀는 어느덧 데뷔 13년 차를 맞았다. ‘13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한때 그녀는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빼어난 외모와 춤 실력으로 ‘이사돈’(24시간 돈다)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일순간 쏟아진 관심은 그녀가 배우로 전향한 후 혹평으로 되돌아왔다.

기회는 의외의 방향에서 찾아왔다. 그 출발점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예능프로그램이었다. 지난 2012년 SBS ‘일요일이 좋다-김병만 정글의 법칙 in 마다가스카르’(이하 ‘정법’)에 출연한 그녀는 방송과 동시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여전사’라는 수식도 얻었다. 이때 드러난 그녀의 참 매력은 지난해 방송된 SBS ‘심장이 뛴다’에서 빛을 발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종방한 KBS2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의 의미는 적지 않다. 그녀는 극 중 ‘욕망의 불꽃’으로 그려진 최혜원 역을 맡아 아버지의 원수인 박윤강(이준기)에게 연모의 정을 품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호평받았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배우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입지를 다졌다는 것. 남들보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배우 전혜빈’이라는 꽃이 만개할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Q. 더운 여름 날씨에 방대한 스케일까지. 정말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작품에 임하는 부담이 컸겠다.
전혜빈: 이번만큼은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이 컸다. 작품에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막상 끝내놓고 보니 처음에 욕심부린 만큼은 못 보여드린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Q. 앞서 드라마 ‘인수대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사극이 꽤 잘 어울린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적 사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야기를 채 풀어내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전혜빈: 한 신만 나와도 시선을 확 끌 수 있도록 힘을 실었건만, 그 강렬한 느낌을 적절히 중화시키지는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역사를 기반으로 한 팩션 드라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Q. ‘정법’과 ‘심장이 뛴다’ 출연 이후 기대감이 높았던 상황이었다. 앞서 두 예능으로 상당히 조명받지 않았나.
전혜빈: 그게 참 역설적이다. 어릴 적에는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독이 됐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 기억 때문에 출연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예능프로그램이 예전처럼 ‘짝짓기’, ‘게임’ 위주는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

Q. 특히 ‘심장이 뛴다’는 의미가 남달랐을 것 같다.
전혜빈: 그 프로그램 출연 결정한 게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하하하. 소방관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면서 인간으로서, 배우로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달까. 살면서 노숙자와 이야기하고, 자살하려는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화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겠나.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Q. 예능에 출연하면서 팬들도 급속도로 늘었다. 한때 ‘백만 안티 양성설’이 농담처럼 나올 정도로 악플로 고통받기도 하지 않았나. 정말 감회가 남달랐겠다.
전혜빈: 옛날에는 댓글도 위에 세 개 보고는 더 이상 못 봤다. 요즘에는 확실히 나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소위 ‘선플’이라고 하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진정성이 담겨 있더라. 여러 오해와 편견을 깨고 십 년 만에 팬들의 마음을 돌려놨기에, 앞으로 좀 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하하.

전혜빈

Q. 한때는 ‘이사돈’으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헌데 그 인기가 나중에는 배가 돼 비난의 화살로 돌아오기도 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을 것 같다.
전혜빈: 마치 비를 맞듯이 온몸으로 그런 반응을 다 받아내야 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불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다. 원래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인지라, 어떻게든 그 상황을 헤쳐 나가보려고 노력하게 됐다. 그때 시작한 게 운동이다. 몸을 움직일수록 마음이 차분해지더라. 그러다가 피트니스 책까지 냈다, 하하하.

Q. 다음 달에는 영국으로 어학연수도 떠난다고 들었다. 뭔가 요즘에 와서야 삶의 여유를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다.
전혜빈: 사실 공부를 핑계로 한 여행에 가깝다. 해외에서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재충전의 기회가 될 것 같다.

Q. 활동을 오랜 시간 지켜봐 온 이들 중에서는 당신을 ‘백전노장’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더라, 하하하. 그만큼 쉽지 않은 게 연예계 활동이다. 30대에 접어들어 요즘 연예계를 지켜보면 감회가 남다르겠다.
전혜빈: 격세지감을 느낀다. 7~8년 전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가수들이 연기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 게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달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Q. 정말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격변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당신의 삶도 ‘조선총잡이’ 속 최혜원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여성이라는 점에서, 하하.
전혜빈: 딱 내 나이 때에 바뀐 것들이 많았다. 대중문화의 흐름은 물론이고, 교육제도도 나 때부터 바뀌었던 것 같네. 그래서 ‘조선총잡이’를 할 때 좀 더 와 닿는 게 많았다.

Q. 그 시기에 활동했던 연예인 중 살아남은 이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살아남거나, 도태되거나. 어찌 보면 참 잔인한 곳이 이쪽(연예계)이다.
전혜빈: 그때 살아남은 배우들이 이제야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꽃은 저마다 개화하는 시기가 다르지 않나.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는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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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느덧 30대다. 여자로서, 배우로서 생각이 많아졌겠다.
전혜빈: 아, 정말. 하하하. 20대 때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역경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왔기에 잘 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해졌다. 겸손하게 할 일하면서 ‘이로운 배우’가 돼야겠지.

Q. ‘이로운 배우’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오래전부터 계속해온 봉사활동과 관계가 있는 건가.
전혜빈: 종합적인 거다. 예전에 한국 활동을 하다가 중국 활동을 시작해보려고 성룡을 만난 적이 있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2008)이 일어났던 시점인데, 방송을 보고 계시다가 바로 재산의 반 정도를 기부하시더라. 그때 많은 걸 느꼈다. 단순히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사에 깊은 관심을 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도움을 준다는 게 쉽고도 어려운 일이니까.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던 순간이다.

Q. 앞으로 더 할 일이 많아지겠다. ‘조선총잡이’ 이후 행보가 중요할 것 같다.
전혜빈: ‘조선총잡이’를 통해 다시 출발점에 선 기분이다. 차기작들도 검토 중인데, 점점 내게 잘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모두 진심으로 내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신 팬들 덕분이다. 내가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맞을 것 같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나무엑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