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원의 씨네컬 문화읽기, ‘시카고’, 묵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뮤지컬 시카고
1920년대 미국은 전국적으로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대. 하지만 그건 법조항만 존재할 뿐, 범죄단체들이 불법 양조장을 설치하거나 술집을 경영하면서 막대한 돈을 끌어 모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카고가 심했으며, 마피아가 지하세계의 돈으로 도시를 장악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바로 전설적인 갱 ‘알 카포네’를 지칭하는 바, 그는 술을 독점 판매하고 술집에 재즈니언을 고용해 매상을 톡톡히 올렸다. 한편으로 경쟁 갱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술 판매를 거부하는 상점에다가 폭탄을 투척하기도 했다. 살인과 강도 등 강력범죄가 연이어 일어나는 동시에 거리엔 환락이 넘쳐나고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한 곳 같은 도시, 시카고.

바로 이러한 범죄와 쾌락이 난무하는 시카고의 분위기를 브로드웨이의 신화적 존재 밥 파시(Bob Fosse)가 뮤지컬로 탄생시켰다. 이 공연이 초연 이래 37년이 지난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1920년대를 무대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는 것. 배우들의 화려한 몸짓과 열창 속에서 통렬한 사회 풍자가 드러난다. 남편 몰래 바람을 피우다 정부(情夫)를 살해한 록시(아이비), 자신의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현장을 목격하고 살인을 저지른 벨마(최정원), 오직 돈에만 관심이 있는 변호사 빌리(성기윤) 그리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특종에 혈안이 된 기자들의 행동 모두 공감이 갈만한 세상사 이야기다.

영화 그 이상의 매력
시카고
작품 ‘시카고’의 특징을 두 가지 꼽으라면, 극 전체의 분위기가 화려하면서도 음울하다는 점과 영화와 뮤지컬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 영화의 경우,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 존스, 리차드 기어 등 당대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았고, 감독 롭 마샬 역시 뮤지컬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가이다. 극의 진행은 코믹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법정스릴러를 연상시키고, 특히 록시 역을 맡은 르네 젤위거의 가창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뮤지컬 ‘시카고’도 국내 최정상급 배우들의 열인이 돋보인 무대라 할 수 있다. 오래 연마된 내공이 빛을 발하는 최정원과 성기윤 그리고 ‘록시의 재현(再現)’이라 불릴 만한 아이비. 특히 아이비의 관능적인 몸짓과 표정 연기는 다른 록시 역을 맡은 배우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극의 진행은 뮤지컬의 특성상 영화만큼 장면 전환이 빠르지 못하지만, 대신 보여줄 게 많다. 한 예로, 록시가 무죄판결을 받는 장면을 들 수 있는데, 영화에선 긴박함이 느껴지는 반면 뮤지컬에선 화려함과 능숙한 무대매너가 돋보인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여타 뮤지컬과 달리, 악단이 무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해 장면 전환에 따른 무대 장치 변화가 거의 없었다. 전문 무용수들과 앙상블의 군무 장면에선 무대가 비좁다는 게 확연히 드러날 정도. 그럼에도 이 공연은 관객으로 하여금 묵은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릴 정도로 유쾌하고 재밌다.
시카고 록시
끝으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섹시하고 감미로운 재즈의 선율이 넘쳐나는 술집 분위기나 교도소에서 변호사와 죄수들 간에 오가는 돈거래와 음모는 비단 공연 속 가상 이야기가 아닌 1920년대 실제 시카고의 모습이자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비정한 사회의 한 단면이다. 웃음과 재미 그리고 탄사를 자아내게 하는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실제 미국 역사의 한 장면마저 접할 수 있는 뮤지컬, 바로 ‘시카고’만이 지닌 주요한 매력 포인트로 꼽을 만하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