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정점보다 내 마음 속의 진심을 찾아갈 거다” -2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는 게 여전히 실감나지 않고 어색한가?
엄태웅 : 그래도 예전보단 많이 적응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에 조금은 어색하지만 또 어떤 자리에서 전혀 날 모르는 척 하면 섭섭하기도 하고. (웃음) 그래도 거기에 익숙하게 행동하는 게 참 힘들다. 다른 동료나 선배들은 그런 걸 잘 받아들이니까 사람들도 즐거워하는데 내가 그걸 잘 못한다.

“이제 팬들도 나에게 포스가 없다는 걸 안다”
엄태웅│“정점보다 내 마음 속의 진심을 찾아갈 거다” -2
누나인 엄정화 씨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도 타고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엄태웅 : 그러게. 누나는 사람 많은 곳, 화려한 곳, 파티 같은 걸 굉장히 행복해 하고 좋아한다. 그게 참 부러운데 가끔 “같이 갈래?” 그래도 나는 그런 데 가면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를 모르니까,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못 간다. 다섯 명 이상 모인 자리에 가면 몸 둘 바를 모르겠어서. (웃음) 얼마 전에는 회사 대표가 결혼식 사회를 봐 달라고 해서 맡았다가 식을 망쳐 버렸다. 대사는 외울 수 있는데 그 자리에서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내용 가지고 띄어 읽기도 제대로 못하고 속도 조절도 못해서, 결혼식 도중에 대표의 부모님 표정이 참 난감해 보이셔서 정말 죄송했다. 심지어는, 아직까지 뭘 잘 해서 상을 받은 적도 없지만 준다고 해도 겁이 나는 건 시상식에 나가서 소감을 말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정말 언젠가 상을 받는다면 집으로 그냥 보내주면 좋겠다. (웃음)

‘엄포스’라는 별명과는 사뭇 다른 성격이다. (웃음)
엄태웅 : 그게 KBS 때문에 생긴 별명인데 나에 대해 잘 모르셨을 때 작품과 캐릭터를 보고 지어주신 거라, 이제 팬들도 나한테는 포스가 없다는 걸 안다. (웃음) 멋있고 좋은 별명이지만 처음에는 그것조차 부담스러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팬들이 “엄태웅 씨!”라고 부르는 것보다 “엄포스!”라고 부르는 게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다.

출연 도중 오랜만에 이동통신 CF를 찍었는데 낯을 가리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성격상 쉽지 않았겠다.
엄태웅 : 하하하, 콘티는 굉장히 재밌었지만 많이 쑥스러웠다. 춤추는 장면도 있고 해서 ‘난 드라마에서 우직한 김유신인데 여기 와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고. 그나마 아는 얼굴인 (유)승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막상 방송에 나간 걸 보니 재미있었고.

유승호와는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친해졌나.
엄태웅 : 승호가 처음 현장에 왔을 땐 굉장히 어른 같았다. NG 한 번 내는 것도 너무 부담스러워했고. 그런데 내가 현장에서 어이없는 농담 하고 장난치는 걸 보면서 ‘저 나이에 저런 사람이 있나’ 하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던 것 같다. (웃음)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편해졌는지 승호도 그 나이에 맞는 애가 됐다. 이게 과연 내가 승호에게 도움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NG 내고도 재밌어 하는 걸 보면. 요새는 촬영 때문에 만나면 서로 장난친다. 잘 생기고 착하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녀석이다. 나는 승호를 좋아하고, 승호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사진 찍어놓은 걸 어떻게 보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웃음)

그동안은 의 엄태웅, KBS 의 엄태웅 등 몇몇 작품으로 알려졌던 데 비해 을 통해 드디어 다수의 시청자에게 엄태웅이라는 배우의 얼굴과 이름을 각인시킨 것 같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걸 실감하나.
엄태웅 : 예전에도 많은 분들이 나를 알았지만 그러면서도 나에 대해 선뜻 친근감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 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품 속 캐릭터를 통해 나를 봐 왔으니까, 심지어 송강호 선배님을 어떤 자리에서 뵈었는데 ‘니가 이런 앤 줄 몰랐다’고 하셨을 만큼 같은 일을 하는 분들도 나에 대해 많이 모르셨다. 그런데 얼마 전 하루 촬영이 없어서 오대산 월정사에 혼자 다녀오느라 휴게소에 들렀을 때 많은 분들이 나를 굉장히 친근하게 대해 주셨다. 어떤 젊은 친구가 지나가다 나를 향해 “김유신 파이팅!” 하는데, 그럴 때 멋있게 딱 포즈도 취해 주고 그래야 되는데 그건 못했지만. 하하. 시청률이 높은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시골에 사시거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나에 대해 아시게 된 것도 있지만 보는 분들에게 친근함을 줄 수 있게 된 게 나에겐 굉장히 큰 재산이다.

대중에게는 이제부터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서겠지만 사실 그동안 현장에서 같이 일해 온 사람들의 평은 항상 ‘엄태웅은 좋은 사람’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 배우에게는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인데 스스로 생각하기엔 어떤가.
엄태웅 : 한 때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처음엔 내 성격대로 좋은 사람, 많이 참는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어떤 면에선 손해가 많았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현장에서의 기다림 같은 걸 불편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다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고, 물론 내가 이해하기도 했지만.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그런 것들 때문에 내가 일하는 데 더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남들처럼 좀 거절도 해보려고 했는데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안 되겠더라. (웃음) 난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거고 나한텐 이게 맞는 거다. 당장 좀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 편한 게 나한테 맞고, 누군가에게 자연스러운 일들이 나로선 억지로 해야 하는 거라면 그건 나한테 맞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내가 더 잘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내 노력에 달린 일이다.

그런 점이 김유신을 닮은 것 같다. 자신을 해하려는 비담의 책략을 알면서도 넘어가 주고 억지로 이기려 들지 않는 것처럼.
엄태웅 : 하하, 그래서 어떨 때 보면 작가님들이 나를 알고 쓰시나 싶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값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엄태웅│“정점보다 내 마음 속의 진심을 찾아갈 거다” -2 예전에는 정점을 찍지 못한 데 대한 불안함이 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가.
엄태웅 : 지금도 못 찍었다.

아직도 불안한가?
엄태웅 : 많이 편해진 것 같다. 성격이 그렇다 보니. 내가 살아온 과정을 보니까 정점을 못 찍을 수도 있고, 욕심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가는 게…아, 이런 점이 오기가 없다면 없는 거겠지만. (웃음) 연기는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는 거니까 그냥 정점이 오지 않더라도 내 마음 속에서 진심을 찾으며 꾸준히 해 나가려고 한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살아가고 연기를 하는 데 있어 열등감이 가장 큰 원동력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를 한 적도 있었다.
엄태웅 : 지금도 그런 열등감이 드라마틱하게 어느 순간 탁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그건 내가 평생 갖고 갈 부분이지만, 그와 함께 예전에는 없었던 자신감들도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내가 얻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예전에는 열등감이 훨씬 더 앞서 있었다면 지금은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들을 만들어서 균형을 맞춰 가는 시기인 것 같다.

김유신은 곧 삼국 통일을 이루게 되는데, 엄태웅이라는 사람이 지금까지 이룬 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엄태웅 : 글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진 않다. 모르고 살다가도 순간순간 돌아보면 버릴 수 없고 버리기 싫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보다 정말 많은 걸 얻었다. 처음엔 그냥 내 돈으로 차를 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차도 있고, 내 나이 또래 중에 집이 있는 분보다 없는 분이 더 많을 텐데 나는 어떻게 집도 얻게 됐고, 나를 좋아해 주시는 팬들도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이것들을 지킨다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값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일종의 전환점처럼, 마음을 다잡고 내가 지금까지 얻은 것들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시작을 할 때인 거다.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고 하니. (웃음)

대장정이었던 마지막 촬영이 끝나면 뭘 할 생각인가.
엄태웅 : 을 함께 했던 임순례 감독님이 동물 보호단체에서 일을 하시는데 예전부터 내가 개 좋아하는 걸 아시고 한 번 참석해 달라고 하시는 걸 계속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유기견들이나 학대받는 동물들을 위한 행사에서 개와 주인이 함께 모이는 자리에 가려고 한다. 얼마 전 길에 묶여서 버려져 있는 걸 데려온 강아지 ‘춘희’가 있는데 이 녀석은 아직 바깥 세상에 아직 적응을 못하고 항상 나한테만 매달려 있기 때문에 데려가지 못하고 원래 내가 기르던 ‘진돌이’와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버려진 개를 그냥 두지 못하고 데려와 애지중지하는 얘기를 들으니 에서 혼자인 사람들을 계속 집에 데려와 함께 살려고 하는 형철과도 닮은 것 같다. (웃음)
엄태웅 :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