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빈에게 ‘군도’가 필요했던 이유(인터뷰)

윤종빈

지난 13일 투자배급사 쇼박스는 ‘군도: 민란의 시대’(이하 ‘군도’)가 누적관객 476만 명을 동원하며 개봉 21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분명 기대에 비해 아쉬운 행보다. 개봉 첫 주 300만 관객을 돌파했던 매서운 성적을 생각하면 뒷심부족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크다. 영화를 본 300만 명이란 숫자가 입소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이는 관객이 원했던 것과 다른 결과물의 영화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군도’가 뚜껑을 연 후, 사람들은 기존과 다른 윤종빈의 연출 스타일을 두고 찬반 논란이 불을 피웠다.

‘군도’는 사실 윤종빈 감독의 피로감 속에서 탄생한 영화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까지 이어가는 과정에서 윤종빈 감독은 자신의 영화들이 머금고 있는 예민한 주제의식을 살피는데 많은 부분 힘겨움을 느꼈고, 그것을 상업영화 안에서 풀어내는데 적지 않은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시 영화를 못 찍을 수도 있겠다”는 위험의식. 그 고민의 끝에서 나온 영화가 바로 ‘군도’다. ‘군도’는 윤종빈 감독이 처음으로 ‘흥’을 노리고 만든 작품이고, 스스로가 그 ‘흥’을 만끽하며 찍은 영화다. 그것이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데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군도’를 통해 윤종빈 감독 스스로가 영화에 대한 ‘흥’을 되찾았다면 그 자체로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윤종빈 감독은 재능이 남다른 연출자다. 학창시절 찍은 단편영화 ‘남성의 증명’은 재기발랄함을 자랑하며 미장센단편영화제 희극지왕 부분 대상을 거머쥐었다.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는 힘과 묵직한 시선을 함께 갖춘 드문 데뷔작이었다. 첫 상엽영화 데뷔작 ‘비스티 보이즈’로 가능성과 함께 한계도 지적받았으나, ‘범죄와의 전쟁’으로 뜨겁고, 박력 있고, 섹시하고, 유머러스한데, 시대의 공기마저 농밀하게 담아낸 웰 메이드 영화를 내놓았다. 그리고 찍은 ‘군도’. ‘군도’를 통해 얻었을 여러 시행착오, 혹은 힘을 밑거름으로 다시 뜨겁게 달려주기를 기대한다.

Q. 여름 시즌에 대작들과 크게 붙는 건 처음이죠?
윤종빈: 네. 성수기 때 처음 영화를 개봉해 보는데, 이게 무슨 올림픽 나간 선수 느낌이에요. 각 배급사의 대표선수가 나와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두고 경쟁하는 느낌? 영화 찍을 때는 정말 신나게 했는데, 개봉 즈음 되니까 스트레스가 있네요.

Q. 순수한 영화 키드셨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큰 돈이 오가는 영화산업 한가운데 들어왔으니, 느낌이 남다를 것 같아요.
윤종빈: 센터는 안 좋은 것 같아요. 저는 ‘2월 영화감독’이 아닌가 싶어요. 아, 그런데 2월 영화시장이 괜찮아요. 크진 않지만, 방학 끝물이라 시장이 아주 작지도 않거든요. 또 그때는 찬 기운이 있어서 차가운 영화들도 많이들 찾아주시죠.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도 2월 2일 날 개봉했는데 그 정도가 제겐 적당한 것 같아요.

Q. ‘군도’는 감독님이 차린 영화사 ‘월광’의 창립 작품이에요. 혹자는 우리나라에서 감독이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개인 영화사를 차릴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도둑들’의 최동훈, ‘명랑’의 김한민 감독님도 각각 ‘케이퍼필름’, ‘빅스톤픽쳐스’를 차렸죠.
윤종빈: 맞아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예산 때문에 그래요. 영화로 수익을 내야 하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비를 줄이려 하는 경향이 있어요. 리스크를 줄여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죠. 감독입장에서는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범죄와의 전쟁’도 예산 때문에 못 찍은 장면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 천추의 한이 남죠. 물론 제작비를 넘치게 쓰고 나 몰라라 드러눕는 감독들도 없지 않아요.(웃음) 그런데 그건 도의가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게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럼 ‘한국에서 내가 원하는 작품을 찍으려면 제작사를 차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죠.

Q. 그래서 이번에는 원하는 그림을 충분히 찍으셨나요?
윤종빈:결론은! 예산이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영화는 언제나 돈이 모자라구나!(좌중폭소)
윤종빈

Q. 2005년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가 얼마에 찍었죠?
윤종빈: 촬영까지 2,000만원 들었어요. ‘군도’(총제작비 160억원)가 몇 배야? 와~

Q. ‘용서받지 못한 자’를 찍을 때, 10년 후 ‘여름 영화시장의 대표선수’가 될 줄 예상했을까요?
윤종빈: 저는 제가 배고픈 감독이 될 줄 알았어요. 좋아하는 작품들이 저예산 독립영화 쪽이었으니까요. 그리고 20대 때 가장 좋아했던 연출자가 홍상수 감독님과 마틴 스콜세지였어요. 사실 두 분이 흥행이 아주 잘되는 감독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배고프게 살 줄 알았는데, 내 안에 보편적인 지루함을 못 견디는 성향이 있더라고요.

Q. 그걸 언제 느꼈나요?
윤종빈: ‘범죄와의 전쟁’ 찍으면서 느꼈어요. ‘아, 내 안에 이런 성향이 있구나.’ 그러면서 중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제가 아무것도 모를 때 흥분하고 좋아했던 요소들을 생각해 봤어요. 무협지, 무협소설, 순정만화가 막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만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만화방에서 살 정도로요. 엄밀히 말하면 저는 영화키드라기보다 만화키드였어요.

Q. 만화방 구석에 앉아서 라면 먹는 학생?(웃음)
윤종빈: 맞아요. 그게 저였어요, 저. 하하.그리고 생각났던 게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관에서 본 ‘비트’였어요. 친구들과 ‘비트’를 보고 나와서 “와, 정우성 미치겠어!” “XX, 멋있어!” 이랬어요. 정우성 이미지 하나에 완전 ‘뻑’이 갔던 거죠. 그때의 그런 순수한 마음들, 그런 것들을 다시 한 번 찾아보자. 내 안의 원초적인 것들에 다가가 보자 한 거예요.

Q. 그런 로망을 강동원이라는 피사체를 통해 실현하셨군요.
윤종빈: 그렇죠. 하하하. 혹시 순정만화 ‘리니지’ 보셨어요?

Q. 그런 대작을! 그럼요. 봤죠.
윤종빈: ‘리니지’에 나오는 반왕 캐릭터 죽이지 않아요? 악당인데도 주인공보다 훨씬 멋진 거예요. 중학교 때 그 캐릭터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사실 그런 판타지 영화를 찍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순정만화 속 주인공이 현실에 있지도 않고요. 그런데 어떤 영화를 보는데, 가능한 배우가 보이는 거예요. 그게 바로 ‘형사’에서의 강동원 씨였어요. ‘와, 세상에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Q. 그걸 강동원 씨에게 말했어요?
윤종빈: 네. 처음 만났을 때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악역을 만들어주겠다”고 말했죠. 결국 그것이 ‘군도’의 시작점이었어요. ‘군도’의 모티브는 반왕이었던 거죠.

Q. 요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만화키드였던 감독님도 만화에 기댄 작품을 만들어 볼 생각이 있으신지요.
윤종빈: 그건 잘 이입이 안 돼요. 만화만으로 표현할 수 게 존재하는 것 같거든요. 아, 그런데 딱 한번 생각한 적은 있어요. 혹시 황미나의 ‘레드문’ 보셨어요? ‘레드문’은 심지어 판권도 알아봤었어요. 그런데 이미 할리우드에 팔렸더라고요. ‘이런 한발 늦었군!’ 했죠. 그 정도로 제가 그런 코드를 좋아해요. 영화의 세계에 빠지면서 잠시 잊고 살았을 뿐. 그러다가 ‘범죄와이 전쟁’을 찍으면서 그런 기운이 스멀스멀 살아난 거예요. 왜 살아났을까?
윤종빈

Q. 아직, 그 이유를 못 찾았어요?
윤종빈: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왜 ‘풍문으로 들었소’ 음악 나오는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 어떤 ‘흥’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진짜 작정하고 오락영화를 만들어볼까?’ 한 거죠. 그리고 당시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면서 상당히 많이 지친 상태였어요.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러면서 ‘내가 영화를 오래도록 찍으려면 새로운 영화를 해야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도출했고요.

Q. 그런 상황을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 ‘군도’는 의외일 수밖에 없는 영화에요. 감독님의 전작을 생각하며 찾은 관객들에겐 더욱 더요. 윤종빈이라면 당연히 당대의 사회성을 영화에 투영할 것이라는 어떤 기대가 있었을 테니까요. 특히 이번 영화는 소재자체가 사회비판의 여지가 컸는데, 오히려 그런 요소를 쫙 빼고 순수 오락영화로 만드셨어요.
윤종빈: 네. 그 부분에서 많은 호불호과 나뉘더라고요. 하지만 말씀드렸듯 저는 오락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찍은 영화예요. 처음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찍은 영화이고요. 이전 영화들은 모두 주제가 강해서, 찍을 때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저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심지어 카메라를 이동시킬 때에도 ‘왜 카메라가 움직여야 하지?’ 그 이유를 머리 싸매고 고민했어요.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를 받은 거예요. 그런데 ‘군도’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였기 때문에 작정하게 폼 나게, 자유롭게 찍었어요. “카메라 밀어! 더 밀어! 그냥 확 들어가, 줌인!” 이러면서요.(웃음)

Q. ‘군도’가 감독님의 첫 15세관람가 영화잖아요?
윤종빈: 아, ‘용서받지 못한 자’가 15세였어요.

Q. 엇! 그 영화가 15세였나요? 내용상 당연히 청소년관람불가이리라 생각했어요.
윤종빈: 노무현 정권 때는 심의가 굉장히 후했어요. ‘살인의 추억’도 15세였는걸요. ‘실미도’도 그렇고. 왜냐하면 영등위원원장님의 성향이 정권을 따라가니까…(웃음)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이후 심의가 예민해졌죠.

Q. 하하. 흥미롭네요. ‘군도’를 15세로 맞추면서 아마도 많은 걸…
윤종빈: 많은 걸 포기했죠.(웃음) 19세로 했다면 아마 여럿 (목숨이) 날아갔을 거예요. 피가 사방으로 막 튀고. 그런데 미련은 없어요. 어차피 ‘군도’는 처음부터 15세 콘셉트에 맞게 내용을 짠 영화예요. 그런 거에 미련 두지 말자고 마음먹었었죠.

Q. 내레이션이 ‘군도’의 톤 앤 매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느낌이에요. 제가 알기로는 ‘비스트 보이즈’와 ‘범죄와의 전쟁’때 내레이션을 쓰려다가 결국 안 쓰신 걸로 기억해요.
윤종빈: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과 ‘카지노’의 영향인데, 제가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의 플롯은 딱 떨어지는 플롯이 아니에요. 삶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타는 플롯을 좋아하는데, 스콜세지는 그런 리듬을 내레이션을 통해 물 흐르듯 잡아내요. 그래서 ‘범죄와의 전쟁’ 때 사용해볼까 했는데, 결국 포기했어요. 이유는 상업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웃음) 당시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이랄까.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없다보니, ‘범죄와의 전쟁’은 무조건 잘 돼야 한다고 생각이 있었어요. 하하하.

Q. (웃음) ‘군도’는요?
윤종빈: ‘군도’도스타일적으로 쓰려고 한 게 시작점은 아니었어요. 초고를 쓰고 딱 봤는데, 돌무치가 도치(하정우)가 된 이후 조윤(강동원)과 다시 만날 때까지, 제 생각엔 그 부분에서 영화의 몰입도가 떨어진다고 봤어요. 그 부분의 타임을 줄이는 게 관건이었죠. 여러 가지를 생각해 봤는데, 몽타주로 하면 설명이 부족하고, 씬으로 붙이면 너무 길어지고, 답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레이션으로 줄여야겠다 생각했는데, 중간에 넣으면 너무 뜬금없으니까 아예 오프닝부터 사용한 거예요. 스타일적으로 인식하게 한 거죠.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했으나, 시간을 줄이는 게 먼저라고 판단했어요.

단편 ‘남성의 증명’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상업영화 데뷔작 ‘비스티 보이즈’ 흥행작 ‘범죄와의 전쟁’(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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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적인 쾌감이 이쉽다는 의견도 있어요.
윤종빈: 한쪽에서 확 몰아치는 쾌감이 아니라, 전 후반 캐릭터가 분산되는 게 있어서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건, 제가 이 영화에서 가져가고 싶었던 하나의 주제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도 쾌감보다는 짠한 정서를 주려고 했고요.

Q. 영화 들어가기 전에 발로 뛰는 조사를 상당히 꼼꼼히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비스트 보이즈’ 때 호스트바에 웨이터로 위장취업을 했고, ‘범죄와의 전쟁’ 때는 검사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셨죠. 그에 비해 이번 영화는 자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어땠나요.
윤종빈: 영화의 접근 자체가 달랐죠. ‘범죄와의 전쟁’까지는 그 세계의 논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했기에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반면 ‘군도’는 시작점이 오락영화였기 때문에 그런 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그럴싸해 보일까가 관건이었죠. 물론 자료조사는 많이 했어요. 고증도 했고요. 어긋나더라도 어긋나는지는 알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어떤 부분은 철저하게 고증에 따랐고, 어떤 부분은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갔어요.

Q. ‘군도’가 코믹 성향이 강해서 의외이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감독님이 2004년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남성의 증명’이 코미디였어요.
윤종빈: 네. 코미디에요. 제 안에 코믹본능이 있는 거죠. 그걸 조금 ‘군도’에서 푼 거고요. 이제, 속이 시원해요. 여한이 없어요,

Q ‘범죄와의 전쟁’이 나왔을 때, 누군가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까지 세 작품을 묶어서 ‘남성 증명 3부작’의 완성이라고 평한 기억이 있어요. 그렇다면 ‘군도’는 어디에 놓여 있을까요. 새로운 시작이라고 봐야할까요?
윤종빈: 동심 혹은 중고삐리 감성으로 돌아간 영화? ‘범죄와의 전쟁’까지가 저의 20-30대를 채웠던 것들의 집결체라면, ‘군도’는 나의 10대를 형성했던 모든 것들이에요. 한 감독이 일관된 자기 색을 일생 유지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감독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봐요. 저 같이 지루함을 잘 느끼는 사람은 더욱 더요. 제겐 ‘군도’가 환기도 되고 사고의 틀도 조금 더 확장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Q. 하정우 씨에게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코믹본능이 넘치는 분시잖아요.
윤종빈: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 편히 웃겨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더 웃겨달라고.(웃음)

Q. 만약 감독님이 배우로 태어난다면 천의 얼굴을 가진 하정우와 로망을 자극하는 강동원 중 어떤 얼굴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윤종빈: (재빠르게) 하정우!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잖아요. 물론 동원 씨도 여러 얼굴을 가진 배우이긴 한데, 배우로서의 최고 얼굴은 정우 형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멋도 있잖아요. 제가 ‘군도’를 찍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아, 형 얼굴이 정점에 올랐구나’ 했어요. ‘대부 2’의 알 파치노도 떠올랐어요. 외모가 닮았다는 게 아니라, 그때 알 파치노도 최고 물이 올랐었거든요.

Q. 최고의 칭찬이네요. 그 말, 해줬어요?
윤종빈: 네. (Q. 뭐라던가요?) 자기도 공감한다고!(일동 폭소) 정우 형은, 지금 아무거나 해도 되요. 그래서 제가 “형, 연출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조금만 미루고 지금은 작품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이 좋을 때 더 많이 해라. 놓치면 아깝다” 그랬어요. 배우에겐 절정의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Q. 감독은 어떤 것 같나요?
윤종빈: 감독도 피크에 오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래가지는 않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스콜세지가 대단한 게, 그런 게 세 번 있었어요. 내려갔다가 팍 올라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고. 와, 이 사람은 정말 거장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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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군도’ 시사회 후 가장 많이 호출되는 영화가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와 김지윤 감독의 ‘놈놈놈’이예요. 혹자는 대나무 씬에서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을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이런 비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윤종빈: ‘군도’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모아서 보여준 영화이기 때문에 전혀 개의치 않아요. 사실 ‘놈놈놈’은 단체로 말 달린다는 것 빼고는 닮은 게 없어요. 타란티노의 ‘장고: 본노의 추적자’ 얘기도 많이 하시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저는 타란티노의 ‘장고’가 아니라 프랑코 네로가 주연을 맡았던 1966년 영화 ‘장고’를 많이 오마주했어요. 음악의 경우 타란티노의 ‘장고’에서 힌트를 얻은 건 맞아요. ‘군도’ 촬영 한 달 전에 ‘장고’가 개봉했는데 스태프들이 보고 와서는 구도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한재승 피디는 “영화에 굉장히 신나는 음악이 있는데, 타란티노가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우리가 제대로 한 번 써 보자” 하더라고요. 그래서 “까짓 거. 그래, 써 보자”가 된 거죠.

Q. 어릴 때 만화 말고, 음악도 즐겨 들었나요?
윤종빈: 제 음악 신보는 2000년대 브리팝에서 끊겼어요. 마지막까지 열광해서 들었던 밴드가 버브. 버브까지 딱 듣고 영화로 넘어오면서 음악은 안 듣게 되더라고요. 지금 유일하게 듣는 장르는 포크예요. 이제는 음악의 모든 수식, 포장, 그런 것들이 다 과하게 들려요. 기타 하나로 연주하는 음악이 더 좋아요. 아, 최근 인상 깊게 봤던 영화가 코웬 형제의 ‘인사인드 르윈’(무명음악가 이야기)인데, 영화도 OST도 너무 좋더라고요. 특히 ‘Hang Me, Oh Hang Me’는 와~

Q. 오, 녹이죠.
윤종빈: 제가 또 그 영화의 정서를 너무 잘 알아요. 예술 한다고 집에서 천대받는, 그런!(일동폭소) 제가 29세까지 누나에게 용돈 받아쓰고 그랬어요. ‘비스티 보이즈’ 끝나고도 돈을 못 벌었거든요. 그래서 누나로부터 “인간 구실도 못하는 게, 무슨 예술을 한다고! 너 앞가림부터 해” 구박을 많이 받았죠.

Q. 독립영화를 시작으로 해서, 이제 예산이 큰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키고 있는 철칙이랄까.
윤종빈: 저는 오락영화든, 예술영화든, 감독의 세계관이 작품에 투영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본질적으로 형식보다는 이야기에 맞는 연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아까 내레이션 이야기를 했는데, 이런 이야기이기 때문에 내레이션이 필요했던 것이지, 내레이션을 쓸려고 한 건 아니에요. 이야기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고민하다 보면 영화에 맞는 형식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건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Q. 올해 미장센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셨어요. 감독을 꿈꾸는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윤종빈: 사실 후배들 나이가저랑 차이가 얼마 안 나요(웃음) 영상원 전문사나 아카데미 나와서 단편 찍은 친구들의 경우엔 대부분이 또래에요. 그래서 그런지, 왜 남자들 특유의 그런 거 있잖아요? 약간 띠겁게 보는 시선? 그런 게 있어요.(좌중웃음) 그런데 그건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있을 수밖에 없죠.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Q.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나요?
윤종빈: 아니요. 저는 오히려 그 친구들이 부러워요. 저는 이제 너무나 많은 것들을 고민해야 하고, 조율해야 하는 입장이 됐어요. 상업적 스코어부터 이 배우랑 하면 저 배우가 삐지지 않을까 등 업자화 돼 가고 있달까요? 그에 비해 이 친구들은 영화에 대한 접근이 아직은 순수하잖아요. 그래서 미장센에 가면 정말 좋은 기운을 많이 얻고 와요. 어린 시절의 저를 생각하면서요.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