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리, “‘해무’와 홍매한테 매우 고맙다” (인터뷰)

사진. 구혜정
영화 ‘군도’에는 여러 유명 배우가 등장한다. 그중 짧은 출연만으로도 눈에 띄는 배우가 있다. 바로 극 초반 잠깐 출연하는 한예리는 하정우의 동생 곡지로 출연해 짧지만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한예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 그 이상을 해내는 배우임이 틀림없다.

13일 개봉을 앞둔 ‘해무’에서도 그녀의 진가는 두드러진다. 소식이 끊긴 오빠를 찾기 위해 밀항에 오른 조선족 처녀 홍매가 한예리의 옷을 입었다. 해무가 가득한 바다 위에서 죽을 위기를 넘기고, 끔찍한 상황을 목격한다. 그 와중에 동식(박유천)과 슬픈 사랑의 몸짓을 나눈다. 감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해무’의 승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아담한 체구가 뿜어내는 열기는 ‘해무’ 속 어떤 남자배우 못지않다. “영화를 하면서 많은 열정이 생겼다”고 할 정도로 힘든 현장을 누구보다 즐겼기에 가능했다. 인터뷰 중에도 뭐가 그리도 좋은지 홍매 이야기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해무’와 홍매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Q. ‘해무’ 인터뷰 때문에 만나지만, 먼저 ‘군도’를 묻고 싶다. 초반 짧은 등장이었지만, 매우 강한 인상이었다. 더 보고 싶었는데 짧게 나와서 아쉬웠을 정도다.
한예리 :
감독님께 ‘더 출연하게 해주세요’ 했지만, 가차 없었다. (웃음)

Q. ‘군도’는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된 건가.
한예리 :
예전부터 윤종빈 감독님 작품을 좋아했다. 그리고 진웅 선배, 재영 선배 등 같은 소속사 선배들이 ‘군도’에 출연하지 않나. 그래서 ‘아무거나 시켜주시면 안 되느냐’고 졸랐다. 짧지만, 강한 캐릭터를 주셔서 좋았다. 곡지 역할 하면서 평소 존경하는 김해숙 선배님도 뵙고, 하정우 선배와 연기도 해볼 수 있었다. 그 두 분과 다시 연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Q. 윤종빈 감독과 원래 친분이 있었나.
한예리 :
감독님 작품에 같은 소속사 배우분들이 많이 출연해서 자연스럽게 뵙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현장에) 응원 차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인사드리기도 하고.

Q. 사실 ‘군도’에 한예리가 나온다는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던 터라 곡지가 한예리인지 몰라보는 사람도 있더라.
한예리 :
잘 몰라보는 게 오히려 좋다. 나름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였다. 그랬기 때문에 ‘한예리가 출연했어?’ ‘그게 한예리였어?’ 이런 반응이 나오니까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았다. 곡지를 잘 입었다는 생각도 들고, 한예리가 아닌 캐릭터도 봐주는 것 같다.

사진. 구혜정
Q. 이제 ‘해무’로 돌아와서. 이 작품 역시 제작 초기서부터 기대작으로 손꼽혔다. 그리고 여러 여배우가 물망에 올랐던 걸로 알고 있다.
한예리 :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정말 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결국 로맨스란 생각이 들었고, 홍매 역할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기에 여배우 선택에 시간과 고민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Q, 그럼 한예리만의 시나리오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한예리 :
딱히 그런 건 없다. 매번 바뀌는 것 같다. 감독님이 우선일 때도, 시나리오가 우선일 때도 있다. 또 상대배우나 스태프가 우선시 되는 경우도 있다. 매번 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되는 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Q. 방금 말에 따르면, ‘해무’는 시나리오가 우선이었고, ‘군도’는 감독이 우선이었겠다.
한예리 :
하하. 그렇게 볼 수 있다.

Q. 홍매 캐릭터는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쉬운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예리 :
대부분 캐릭터는 친절하게 표현해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홍매는 약간의 판타지도 있고, 진심이 뭔지 계속 궁금했다. 도대체 홍매는 어떤 여자인지 마지막까지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관객들도 영화를 본 뒤 (홍매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그 점도 매력 중의 하나였다.

Q. 혹시 연극 ‘해무’는 봤나.
한예리 :
감독님이 DVD를 주셨다. 그런데 ‘영화 촬영 끝나고 보면 좋겠다’고 하셔서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촬영 후에 봤다.

Q. 영화와 연극 속 홍매를 비교한다면.
한예리 :
우선 연극과 영화는 결말이 다르다. 그리고 연극 속 홍매는 사건에 휩쓸려가는 느낌이 더 컸다. 분명한 건 홍매로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지점이 달랐다. 내 생각에는 영화 속 홍매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한예리는 동식과 홍매를 계속해서 ‘홍식’이라고 칭했다. 주연배우가 역할이름도 헷갈리나 싶어 의아하게 생각했다.) 촬영 감독님께서 ‘홍식’이라고 세트로 불러서 입에 붙었다.

사진. 구혜정
Q. 극 중 홍일점이다. 남자들이 많은 영화에서 홀로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현장이 조금 남달랐겠다.
한예리 :
글쎄. 식구 같은 느낌이었다. 불편함이 있거나 어떤 대우를 받은 것보다 다 같이 잘 어우러졌다. 그게 영화에도 고스란히 잘 녹아든 것 같아서 좋다. 그리고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다. 현장 자체가 너무 힘드니까 여배우라고 해서 ‘힘들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Q. 극 중 홍매는 조선족 처녀다. ‘코리아’ ‘스파이’ 등에서 이미 북한말로 연기한 경험이 있어서 말투는 익숙했을 것 같다.
한예리 :
나도 익숙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처음부터 열심히 했고,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홍매가 동식과 있을 때 좀 더 여성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보통 여성은 남성과 있을 때 다른 느낌을 주지 않나. 그런 걸 살리고 싶었다. 또 나이 어린 여자의 느낌이 들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말도 부드럽고, 좀 느리게 했다. 특유의 악센트도 완화하려고 노력했다.

Q. 동식은 홍매를 첫눈에 반한 것처럼 보인다. 홍매 역시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처음부터 동식이 싫지만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진다.
한예리 :
감독님이 일부러 홍매의 마음을 모호하게 해 놓으셨다. 친절하게 설명하진 않았지만, 연기하는 나는 분명했다. 생명을 구해준 사람인데 얼마나 감사하겠나. 그리고 못 생기지 않았다. (웃음) 또 따뜻한 곳에 데려가고, 뭔가 더 해줄 게 없을지 배려하는 동식을 봤을 때 분명 홍매도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처음에 기관실로 데려갔을 때도 홍매가 ‘어떻게 해보자는 겁니까’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는데, 동식은 그 말에 굉장히 당황해 한다. 그런 순박한 모습에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여하튼 (홍매도 처음부터 동식을 좋아한 것 아니냐는) 그런 말을 해주신 분이 처음이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Q. 홍매의 감정을 잡아가는 게 쉽지 않았겠다. 방금 말했듯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게 아니니까.
한예리 :
처음에는 ‘이 여자 잘 모르겠어요. 왜 왔다 갔다 하고, 또 결말은 왜 이래요’라고 감독님께 물어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친절하지 않았던 게 오히려 홍매의 매력이고, 오랫동안 많은 분이 그 점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연기하는 나로선 그런 부분까지 설정해놓고 가야 하기 때문에 어려웠다. 그래도 홍매의 매력이 잘 보인 것 같아 다행이다.

Q. 박유천과의 베드신은 어땠나. 노출이 심하진 않더라도 베드신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한예리 :
사전에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베드신은 사랑을 넘어서는 생존을 위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인 것보다 감정적으로 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찍을 때는 두 사람이 너무 불쌍했다. 찍으면서도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이런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Q. 더욱이 상대배우가 톱 아이돌인 데다가 영화는 처음이다. 당연히 베드신은 처음이고. 베드신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한예리 :
이런 상황에서 쭈뼛 쭈뼛하는 게 더 어색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여배우는 당당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미 노출에 대해서는 상의를 많이 한 상태였고, 감독님도 그런 걱정은 안 했다. 그리고 정말 별 이야기 안 했다.

사진. 구혜정
Q. 엔지(NG)는 없었나.
한예리 :
테이크는 여러 번 갔지만, 엔지는 없었다. 또 감정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콘티에 나와 있는 것 외에 다른 앵글은 찍지 않았다.

Q. 언론시사회에서 베드신을 두고 “이것이 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살아있는 뭔가를 만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했다”는 말을 했다. 구체적인 의미를 듣고 싶다.
한예리 :
심리학에서 죽음을 경험하거나 목격하고 나면 그 스트레스가 엄청 난다더라. 본인도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그래서 실제로 전쟁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행위들이 많다는 걸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이건 사랑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하니까 잘 이해됐다. 사실 이 같은 경험이 쉽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해하기엔 어렵지만, 살아 있는 걸 증명하려는 그런 느낌이라고 하더라.

Q. 뭔가 결말이  확실하지 않은, 좀 애매하다고 느껴졌다.
한예리 : 동식 입장에서 홍매를 볼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나고, 후회될 텐데 어떻게 평생 짊어지고 살라고 하겠나. 홍매 입장에서도 목숨까지 구해줬는데 평생 책임지라는 말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홍매가 떠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Q.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같은데, 영화를 마치고 나서 어떤 기분이 들었나.
한예리 : 영화가 끝나고 난 다음에 빨리 다음 작품에 들어가고 싶었다. 영화를 하면서 더 많은 열정이 생겼고, 그 에너지를 다른 영화에 쏟아 붓고 싶었다. 쉬운 영화가 아닌데도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건 내가 영화를 정말 좋아하게 된 것 같다. ‘해무’와 홍매한테 매우 고맙다. 소속사 대표님께 이 얘길 했더니 그럴수록 천천히, 신중하게 하라고. ‘해무’ 홍보가 끝나고 천천히 시나리오를 볼까 한다.

Q. 지금까지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에너지를 받았던 건가.
한예리 :
아침에 눈을 뜨면 현장에 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겼다. (Q. 아까 배려가 없었다더니 뭔가 있었던 거 아니냐. 하하) 그런 건 절대 아니다. 하하. 이런 현장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진. 구혜정
Q. 이번 작품이 배우 한예리에게 뭔가 큰 의미를 부여한 듯싶다.
한예리 :
정말 동의한다. 이제 여배우란 타이틀을 얻은 기분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Q. 올여름 극장가가 치열하다. ‘명량’은 엄청난 규모로 다가오고 있고, ‘해적’도 만만찮다. ‘해무’ 역시 일찌감치 ‘빅4’로 꼽혔는데, 다른 영화들에 비해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한예리 :
충분히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큰 영화, 오락영화들이 나오는데, ‘해무’는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보고 나서 소주 한잔 하시면서 홍매가 어땠다.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영화여서. 정말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보지 않을까.

Q. 영화 이야기 말고, 지난해 5월, 무용 공연을 했다. 어릴 때부터 무용을 해왔고, 전공도 무용이다. 다시 무용수로서 활동 계획은 없나.
한예리 : 9월에 한다. 영화를 좋아하게 됐다고 해서 그걸 잊진 않는다. (웃음)

Q.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무용이 주는 희열은 당연히 다를 것 같다.
한예리 :
무대라는 곳이 엄청난 희열과 에너지를 주는 곳이다. 영화와는 또 다른 느낌이 분명하다. 관객들의 피드백이나 에너지, 감정들을 그 즉시 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공연을 한 번 하고 난 다음에 영화 할 때도 좀 더 많은 에너지가 생긴다. 아마 연극을 하시는 선배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무용도 신체를 움직이고, 연기 역시 신체를 움직이는 거기 때문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Q. 그런데 연극과 달리 무용과 연기를 병행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한예리 :
아직은 가능한데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때까지 해보고 싶다. 체력적으로는 당연히 힘든데 꼭 다. 그런데 그거 때문에 무용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병행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Q. 최근 영상자료원 홍보대사로 위촉됐다는 소식 들었다. 평소에 고전을 많이 보는 편인가.
한예리 :
한국 고전 영화보다 외국 고전을 더 많이 봤더라. 왜 한국 고전을 보지 못했을까 생각했더니 접할 기회 자체가 없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홍보)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