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vs <선덕여왕>│여왕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미실(고현정)의 퇴장과 덕만(이요원)의 여왕 등극으로 MBC 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덕만이 갖은 고생을 겪고 성장해 마침내 미실과 맞섰던 미실의 시대에 이어 현재의 은 온전히 덕만의 시대다. 그래서 덕만이 미실과 맞서느라 소모했던 에너지를 술책이 아닌 진심에 쏟아 부을 수 있는데다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모호한 현 상황은 극의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은 명확한 구심점 없이 이야기들은 흩어지고, 캐릭터들은 이제껏 쌓아왔던 매력을 힘없이 무너뜨린다. 여왕님의 장기 집권에 적신호가 켜진 것일까?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을 강명석 기자와 조지영 TV평론가가 점검했다. /편집자주

MBC 의 미실(고현정)은 정말 신녀가 아닐까. 그는 죽음을 앞두고 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했다. “그만 할래요.” 덕만(이요원)과의 기나긴 정쟁으로 지쳤던 미실처럼, 지금의 은 지친 나머지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덕만은 ‘미실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은 여전히 미실이, 혹은 미실과 했던 것들을 반복한다. 미실의 자리를 대신하는 비담(김남길)은 미실처럼 권력을 위해 ‘대의’를 어기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책략을 꾸미고, 덕만도 여전히 대담한 정치적 노림수로 위기를 극복한다. ‘미션’의 마지막에는 당연히 김유신의 활약이 더해진다. ‘정치력’이나 ‘대의’에 대한 고민 보다는 ‘정치 기술’에 의한 책략들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면서, 의 미덕은 모두 사라진다.

선덕의 시대, ‘왜’는 있되 ‘어떻게’는 없다
<선덕여왕> vs <선덕여왕>│여왕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미실의 죽음 전까지, 덕만은 미실과 맞서면서 성장했고, 비담은 덕만에 대한 사랑과 미실에 대한 애증, 선과 악 사이에 놓인 자신의 천성 때문에 갈등하는 복합적인 인간이었다. 하지만 모성이 그리운 천재 야심가로 등장했던 김춘추(유승호)는 지금 덕만에게 계책을 꺼내는 아이디어 뱅크일 뿐이다. 현재 은 기존의 에서 정쟁과 멜로적인 요소만 부분 발췌한 축약본에 가깝다. 미실처럼 한 캐릭터의 인생을 깊고 다채롭게 바라보는 풍부한 서사는 사라졌고, 이벤트적인 에피소드만 남았다. 어떤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황실부터 일반 백성까지 릴레이하듯 이어지는 특유의 반복적인 설명이 주는 단조로움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는 근본적으로 이 ‘왜’는 보여줬으되 ‘어떻게’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에서 미실은 능력은 탁월하지만 모든 백성을 껴안을 수는 없는 정치가였다. 그의 능력과 업적은 결국 특정 계급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었고, 덕만은 모두를 끌어안는 정치로 미실을 극복하려 했다. 덕만이 약자 위주의 조세 개혁을 시도하고, 화백회의의 만장일치제를 다수결로 바꾸려한 것은 정치와 경제 양쪽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덕만이 권력을 잡은 뒤 은 오히려 권력이 백성에게 끼치는 영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덕만은 권력의 유지와 후계구도에 고심하고, 그의 정치력은 상대편의 음모를 해결하는 것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덕만은 어떻게 전시 중에도 백성들의 경제를 풍요하게 만들었는가, 비담은 어떻게 귀족들의 지지를 얻었는가. 수많은 현실 정치의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은 더 이상 그 과정을 치열하게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정말 그만 두는 게 답이었을까?
덕만과 미실이 ‘시대정신’을 두고 논하던 정치 담론의 깊이도, 현실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던 통쾌한 정치 풍자도,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한 청춘들의 피 끓는 열정도 지금의 에서는 찾을 수 없다. 현실을 바꾸고자 했던 청춘들이 현실과 마찰하며 생기는 에너지로 끌고 갔던 드라마가 현실을 도외시하면서, 은 그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극과의 변별력을 잃는다. 덕만은 “술책이 흔들리지 않는 진심”을 이야기하지만, 그 진심을 잃어버리고 ‘미실의 시대’에 성공한 에피소드 구성의 ‘술책’만 남은 건 자체다.

‘붉은 투구’ 계백(최원영)의 등장이 과거의 비담이나 김춘추처럼 화제를 모으지 못한 건 연기자의 지명도 이전에 새로운 캐릭터가 드라마의 판도를 바꿀 동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남은 12회 중 3-4회 정도의 분량을 이어줄 소모품이다. 그리고 계속 새로운 이상 대신 새로운 적을 만드는 데만 골몰하던 은 58회에서 기어이 염종(염효섭)의 책략으로 덕만과 비담을 틀어지게 만들었다. 주인공의 ‘이’와 ‘대의’에 대한 갈등과 화합이 아닌 악역의 계책이 드라마의 물줄기를 바꿔 놓는 순간, 은 자신의 ‘대의’도 잃었다. 미실의 말대로 정말 그만두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을까. 그러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이나마 남았을 텐데. 드라마건 현실이건,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가 보다.
글 강명석

미실(고현정)의 죽음 이전, 은 통상적으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이중의 해법을 동시 조명해왔다. 즉, 미실파와 덕만파가 공통의 과제 혹은 당면한 이슈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비췄다. 이런 과정에서는 빈번하게도 결과(그러니까 승패)가 먼저 나오고, 나중에 그 원인과 작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 백이 도입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다중의 시점으로, 속도감을 실어 나르고, 추리를 섞어서 상대방의 패를 짐작하고 내 패를 던져보는 흥미로운 전개가 가능했다. 그런 미실의 죽음 이후, 양상은 달라졌다.

미실의 부재 이후, 선덕여왕이 봉착한 문제점
<선덕여왕> vs <선덕여왕>│여왕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막강한 적 하나를 상대로 성공과 실패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전진하던 시대와는 달리 미실 이후, 선덕여왕(이요원)의 시대에는 명징한 ‘전선’이 없다. 전선은 희미하여, 이편과 저편이 명확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은, 드라마적 재미는 떨어지지만 역설적으로 현실정치와는 가장 닮아있기 쉽다. 권력의 정통성은 있으나,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선덕여왕이 세력을 확장하는 모습은, 정치적 지분은 있으나 권력의 정통성이 없었던 미실과 비교되는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역시 큰 줄기의 갈등이 깔리고, 서브 플롯 한두 개가 보조를 맞추던 이전과는 달리, 복잡다단한 극 전개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점이 되니 드라마 자체는 다소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여러 개의 사건을 숙제 해치우듯 동시 전개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무리수도 눈에 띈다. 가령, 그토록 밝히기 어렵던 백제 스파이 이름에서 흑(黑)자가 부수였다는 힌트, ‘일거에 백리’를 간다던 귀신은 원래 백제의 장수 두 명이었다는 사실 모두 어이없게도 금방 눈치 챌 수 있는 간단한 추리였고, 명색이 ‘밀약’이 담긴 문서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쉽게 발각되기도 한다. 결국 전체 플롯의 구성이 헐거워진다는 뜻이다. 이는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장편드라마들이 풀어내야 할, 한국 드라마 제작구조의 숙제이기도 한다.

사랑밖에 모르는, 비담의 딜레마를 넘어야 한다
비록 어려운 방식이기는 하지만 선덕여왕은 나름대로 위기를 돌파해왔다. 복야회를 춘추(유승호) 앞으로 복속시켰고, 전쟁을 거치며 유신(엄태웅)을 다시 상장군으로 올렸고, 비담(김남길)을 상대등으로 즉상하고, 그와 국혼을 추진했다. 권력을 뺐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하고, 누구를 누구 밑으로 내리기도 하고 올리기도 하면서, 귀족 세력을 견제하려고 했다. 이 흐름의 한 가운데서 캐스팅 보트는 비담이 쥐고 있다. 문제는 비담의 ‘덜 자란 사내아이의 마음’ 에서 싹튼다. 어미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란 사내아이가, 큰 권력을 쥐고 나서, 연모의 마음을 마음껏 과시하고 싶어 하는 모습은, 극 전개에 있어서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캐릭터는 드라마의 중반 흐름까지는 종횡무진 조커 같은 활약을 보였지만, 예견된 비장한 엔딩으로 향하면서 홀로 무협지의 어느 페이지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 같다. 로맨스의 ‘푸르른 마음’에 기대고 싶은 비담은, 여심은 달랠지 몰라도 캐릭터의 현실성에서 홀로 멀어지고 있고, “네가 나를 만지면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아?” 라고 비담에게 고백하는 여왕의 대사도 뜬금없을 수밖에 없다.

칠숙(안길강)과 소화(서영희), 설원(전노민)과 미실이 보여주었듯, 무릇 애정은 과정에서 싹튼다. 그런데 선덕여왕이 갑자기 비담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그런 과정의 안배를 소홀히 한 것처럼 보인다. 급작스럽게 대내외의 모든 조건으로부터 쫓기기 시작하는 현 상황이 안타깝긴 하지만, 로맨스를 선보이려면, 정서와 교감이 쌓여야 하고, 작전을 짜려면 기초공사부터 해야 하고, 덫을 놓으려고 해도 이중 삼중으로 포석을 놓아야 할 것이다. 결국, 미실이 죽고 난 후의 의 목표지향은 무엇인가? 이 근본적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할 것 같다. 선덕여왕이 어떤 업적을 이뤘다가 아니라, ‘어떻게’ 해냈다가 더 중요하다면, 얼마 남지 않은 회차에서라도, 그 ‘과정’의 위대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MBC 에서 가장 중요했어야 할 고구려 건국의 장면이 얼마나 허무하게 스치듯 지나갔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은 마침내 왕이 된 여자, 그녀가 자신의 시대를 이전과 어떻게 구분지었는가를, ‘덕업일신 망라사방 (德業日新 網羅四方) ‘의 기반을 어떻게 다졌는가를 보여주며 유종의 미를 거두어주기를 바란다.
글 조지영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조지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